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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 박으며....
서프ㅣ미미
어제는 봄비가 내리고 강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막 피어나던 벚꽃은 제대로 웃어보지도 못한 채 지고, 노란 개나리꽃은 제대로 재잘거리지도 못한 채 지고 말았습니다.
어제는 그렇게 희고 노랗게 슬픈 꽃비가 내렸습니다.
엊그제 동네에 혼사가 있어서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버스가 천안 어름을 지날 무렵,
30여 년 저쪽 시절에 안성선 철길을 걸었던 기억이 가슴에서 돋아났습니다.
이미 오래전 폐쇄된 철길이기에 차장을 통해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으나 가슴에 진하게 새겨졌던 광경만은 또렷하게 되살아났습니다.
절친했던 고향친구가 중학교를 마치고 천안의 안성선 철길 부근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방학을 이용해 그리운 친구를 찾아볼 수 있었고 친구와 함께 철길을 걸었습니다.
그리웠던 친구와 회포를 풀며 철길을 걷던 나는 눈앞에 나타난 광경을 보고는 놀랬습니다.
선로위에, 아래가 잘려나간 채 몸뚱이만 눌러 붙어 있는 개구리가 보였습니다.
살아있었고, 특유의 튀어 나올듯한 왕눈이 물기를 머금은 채 앞발을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그 참혹한 모습 앞에서 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습니다.
저것을 떼어줘야 하나, 아니면 그냥 두어야 하나,
떼어줘도 죽을 테고, 그대로 나둬도 죽을 테고,
더 이상 고통 받지 않도록 죽여주는 것이 도리일까?
안 절 부절하는 나의 모습과는 달리 친구는 자주 목격한다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고는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난 결국 개구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가던 길을 걸었고,
세월은 흘렀고, 충격적인 광경은 세월 따라 흐려졌고, 그렇게 잊혀졌습니다.
또 세월이 흘렀습니다.
참혹한 개구리 모습을 목격했던 청소년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국가보안법 피의자 신분이 되어 조사를 받았습니다.
청소년에서 중년이 된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난 차장에 나의 얼굴을 비춰보았습니다.
그런데, 차창에 흐릿하게 나타난 나의 모습은 안성선 철길에 다리가 잘린 채 몸통만 눌러 붙어서 죽을 수도, 살수도 없었던 바로 그 개구리였습니다.
그 개구리가 바로 나였습니다.
그 개구리가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중년이 된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 그 중에서도 더더욱 찢어지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면 울 엄니는 <자는 듯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신음소리를 노래처럼 하셨습니다.
자식들 때문에 차마 죽을 수도 없었던 엄니,
울 엄니와 아버지는 당신이 겪는 가난의 고통을 자식들에게만은 물려주지 않겠다며 <죽지도 못한 채>사셨지만 허무하게도, 당신이 겪었던 가난의 고통을 자식에게 그대로 물려준 채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세대가 그러하듯 열심히 반공반북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북 사람>하면 연상되는 것은 입에는 피거품을 물고, 머리에는 뿔이 났으며, 한 손에는 칼, 다른 한손에는 총을 들고 춤추는 것이 연상되었습니다.
그
런데 반공교육 시간에 보여준 이북 관련 <영상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머리에는 뿔이 달려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선전물>을 촬영하는 것이기에 머리에 난 뿔을 모두 감춘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반공교육에 의하면 이북의 인민들은 별을 보고 출근하고, 별을 보고 퇴근하며 퇴근해서도 온갖 회의에 강제로 끌려 나가야 하기 때문에 잠도 자지 못한다 했습니다. 삽질을 해도 <천 삽 뜨고 허리 한번> 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북의 인민들이 먹는 것이라곤 풀뿌리와 나무껍질이고, 강냉이 죽이 전부라 했습니다.
삽질을 하거나 삼태기나 바구니 등으로 흙을 나르는 이북 영상물을 보면 정말 빠릅니다. 얼마나 삽질을 빨리하던지..........그러한 영상물을 보던 중 나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울 엄니와 아버지 고생 끝>이라는 <대발견>을 하게 된 것이죠.
이북의 인민들이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고서 잠도 자지 않은 채 그토록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북 인민들이 먹는 풀뿌리와 나무껍질은 밥이나 고기처럼 대단히 영양가가 높은 식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수업이 끝나고 터질 것 같은 흥분을 누르며 교무실로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이북 사람들이 풀뿌리와 나무껍질만 먹고, 잠도 안자고, 그토록 힘든 일을 한다면 이북 사람들이 먹는 풀뿌리나 나무껍질은 엄청나게 영양가가 높을 것 아니냐, 이북 사람들의 먹는 풀뿌리 나무껍질이 무엇인지 알면 울 엄니 아버지 고생 끝이다. 이북 사람들의 먹는 풀뿌리 나무껍질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
그러자 선생님은 눈을 부릅뜨고 험악한 표정을 짓고는 <너 빨갱이야 새꺄, 당장 꺼지지 못해>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 <빨갱이>이인데, 선생님의 험악한 표정과 <빨갱이>란 소리에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나의 가슴은 한 순간에 터진 풍선의 잔여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터진 풍선의 잔여물이 되고 난 나의 가슴은 세월이 흐르며 얼음덩이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질기다고 했던가요?
소년은 청소년이 되었고, 죽지 못해 산 세월, 어느 덧 중년이 되었습니다.
내일 모레면 울 엄니가 돌아가셨던 나이가 됩니다.
죽지 못해 사셨던 울 엄니는 가는 마지막마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돌아가셨습니다.
간암, - 자는 듯이 죽었으면 좋겠다던 엄니는 빨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북의 인민들이 먹는 풀뿌리와 나무껍질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우리 엄니가 그토록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고통스럽게 돌아가지 않았을 텐데..... 불효자는 오늘도 심장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흘립니다.
난 아직도 이북의 인민들이 먹는 풀뿌리와 나무껍질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이북의 인민들이 먹는 풀뿌리와 나무껍질이 무엇인지 알면 가난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기에 이북의 인민들이 먹는 풀뿌리와 나무껍질이 무엇인지 알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랬던 어린 나는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오늘은 국가보안법 피의자 신분이 되었습니다.
난 한 마리 개구리입니다.
분단열차에 치여 다리가 잘려 나가고 분단선 선로에 몸뚱이만 눌러 붙은 채 고통의 세월을 사는 한 마리 개구리입니다.
울 엄니가 그랬던 것처럼,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는 처지의 한 마리 개구리입니다.
분단선 선로 위에 눌러 붙어 있는, 몸뚱이만 남은 한 마리 개구리는 다음 열차가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다음 열차는 내 가난한 이웃과 어린이들의 웃음이 가득 실린 통일열차이길 기대하면서......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3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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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