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시게 / 고양일
“어서 오시게!”
지하철 종점에서 내려 역을 나서자 입구 계단부터 길은 벌써 난장으로 북적댔다.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전에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저만치 눈앞에 다가온다. 이게 얼마 만인가. 오늘 그를 만나기 위해서 오랫동안 벼르다가 동살이 틀 무렵에야 떠날 채비를 했다. 오늘 아니면 또 닷새를 기다려야 한다. 곳이 곳인 만큼 오랜만에 나 홀로 가기로는 무언가 허전했다. 며칠 전부터 동행하자며 감언이설로 꼬셔놓긴 했지만, 김치 담글 배추를 절이고 헹궈낸 물을 빼느라 어젯밤 늦게까지 일하다 곤히 잠든 아내를 깨운다. 아침 날씨가 차가우니 겉옷이나마 따뜻하게 입고 가자며 그나마 생색을 낸다. 늦가을이긴 하나 오늘따라 날씨는 유난히 쌀쌀하다. 우리는 시청 앞에서 타고 왔던 버스를 내려 노포동 방향 지하철로 바꿔 탔다. 나는 오늘 만나게 될 그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자글자글한 얼굴에 허리까지 꺾인 나를 제대로 기억이나 할까 궁금해진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를 본지가 벌써 여섯 해가 넘었다. 짧은 듯 긴 듯 참 헛헛한 세월이다.
‘오시게장’은 조선 후기 지금의 동래 부곡동인 까막고개에서 열린 동래읍장이다. 열린 장터에 유달리 까마귀가 많아 까마귀 오烏자를 붙여 ‘오시게’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나름으로 이름을 혼자 풀어 보면서 ‘까막고개에 어서 오시게’라며 에둘러 표현한 옛사람의 번득이는 기지에 그저 놀랄 뿐이다. 무심히 막걸리 한 사발 마시다 무릎을 칠 만큼 절묘한 조합이 아닌가. 그러나 이 장터도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했나 보다. 사십 년 전 구서동으로 옮겼다가 이후 다시 지금의 노포동으로 옮겨왔다.
나름대로 적지 않은 풍상을 겪은 셈이다.
2일과 7일, 닷새를 간격으로 열리는 이 장은 도시가 알박이처럼 품었다가 어느 날 씀바퀴 뿌리처럼 뱉어버린 시골 장이다. 규모로만 따지자면 장터치고는 볼품이 없다. 비록 가게라곤 백여 개에 불과하지만, 사고파는 물건이 없는 것 빼고 다 있고, 경상도 장내기까지 모여들어 여느 장터처럼 생기가 돌아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더구나 전국을 오가는 시외버스 터미널과 도시철도 1호선 종점을 안고 있어 보내기 싫은 사람을 떠나보내거나 오는 사람을 반겨 맞는 사람들로 한층 더 북적댄다. 터미널 출입구부터 횡단보도 건너편 꽃가게 주위로 갖가지 노점들과 과일 곡식 농기구 한약재 야채전까지 빈틈없이 들어섰다. 난장을 벌린 틈새로 서로 어깨를 부딪히거나 엉덩이를 스치며 오가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 눈에 익은 모습들이다. 수수부꾸미전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빈 젓가락만 든 채 길게 줄을 섰고, 국화빵전에는 제 차례가 언제 올지 가늠이 없다. 명태 갈비전, 대가리전이란 이름도 요상한 별 음식도 다 있다. 두 개에 7천 원이라고 포장지를 찢어 쓴 가격표가 가을바람에 바람개비처럼 돌아간다. 이른 아침인데도 아랑곳없이 뻥튀기가 펑펑하며 축포를 터뜨린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도 모두가 흥겨운 장터 마당이다.
집에서 나올 때까지는 내가 주인이었는데 장터에 나오고 보니 아내가 주인공이다. 아내는 깻잎 한 포대를 주인 할머니와 밀고 당기며 흥정하고는 포대째 캐리어 속에 쑤셔 담는다. 넣은 자루 끈이 묶이지 않을 만큼 푸짐하다. 저 깻잎은 한때 값이 천장 모르게 뛰어 올라 삼겹살로 깻잎을 싸 먹는다는 소문난 몸이 아닌가. 그 귀하신 지존께서 단돈 만 원에 무릎을 꿇다니, 하잘것없는 생물이지만 태어나고 사라짐이 이리 무상한가.
해가 중천에 걸리도록 아침밥도 굶은 채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고 눈동자를 구슬려 살핀 탓인지 울컥 시장기가 발동한다. 하루에 국밥만 이천 그릇을 팔았다는 소문이 무성한 국밥집이다. 화려한 명성이 그냥 풍문만은 아닌 듯 소머리국밥, 수구레국밥, 소고기국밥, 돼지국밥 등등 어림잡아 종류가 스무 가지가 넘어 보이는 메뉴가 적힌 휘장은 이 장바닥에서 가장 돋보인다. 뭉실뭉실 김이 솟아오르는 가마솥과 고기를 삶는 구수한 냄새를 맡으면서, 아내는 소고기국밥 나는 소머리국밥을 주문했다. 소머리국밥이라면 유명한 경기도 곤지암에 있는 국밥집이 엄지 척이 아닌가. 옛날 여주 직장생활 때 서울에서 일을 보고는 소머리국밥을 먹을 셈으로 운전기사를 구슬려 고속도로를 마다하고 일부러 국도를 돌아오기가 한두 번이던가.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국밥에 군침이 돈다. 때와 곳은 달라도 지금 맛이 그때 맛이다. 거기다 시장기마저 보탰으니 그 맛이 오죽하겠는가.
오늘 담그기로 한 김치 속에 넣을 생굴 한 봉지, 뼈를 발라 낸 양념족발 한 개를 포장해서 샀다. 비록 주고 온 물건값은 가벼우나 묵직한 비닐봉지가 두 개, 거기에 캐리어에 한가득 담긴 깻잎까지 있으니 갖고 갈 짐은 수월찮겠다. 지난번엔 혼자 달덩이만 한 호박 한 개를 사들고 집으로 오면서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고 버스로 갈아타면서 얼마나 곤혹을 치렀던지. 그 기억이 되살아나서 이번엔 아예 엘리베이터 승강장만 찾아 다녔다. 올 때에 이어
“잘 가시게!”
헤어지기가 아쉬운 하직인사를 뒤로 하고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아들 집에 택배로 보낼 김치를 버무리고,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깻잎을 다듬는 노역을 맡았다. 아내가 시키는 대로 깻잎 한 장 한 장을 흐르는 물로 씻고, 큰 것 작은 것 깻순筍으로 가려서 몇 장씩 실로 묶었다. 겪고 보니 노동 대가를 감안하면 깻잎 값이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가 없다. 묶은 깻잎이 커다란 다라이에 한가득했다. 그릇그릇에 담아 소금물에 담그고 무거운 차돌로 눌러놓았다. 대충 마무리를 한 아내 표정은 매우 흡족한 모양이다. 꼬드겨서 같이 간 약발 탓이다. 짐작건대 깻잎은 된장 고추장에 장아찌로 박아 넣고 절인 것은 때가 되면 오만가지 양념을 발라 밥상에 오르거나 자식들 집에 두루 날라 보낼 것이 뻔하다. 그러나저러나, 한동안 내 밥상에는 끊임없이 깻잎만 오를까 지레 걱정스럽다.
두 사람이 오시게장에 갔다가 돌아와서 저녁 늦게까지 두 가지 큰일을 치르고 나니 모두 녹초가 되었다. 두 늙은이가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장 열두 시간을 쉼 없이 바닥에서만 헤맨 셈이다. 장에서는 장바닥을, 집에서는 마룻바닥과 부엌바닥을. 지친 몸으로 소파에 너부러져 있다가 문득 사가지고 온 돼지족발 생각이 떠올랐다. 냉장고에 있던 소주는 깻잎 절이는데 소금물과 같이 섞어 쓰고 겨우 두어 잔 밖에 남지 않았다. 조금 아쉽기는 하나 남은 술로 족발을 안주 삼아 둘이서 한 잔씩 공평하게 나눠 마셨다. 한 잔씩밖에 더는 없는 천금 같은 술이다. 짜릿한 소주에 쫄깃하고 듬삭한 족발 맛이라니, 천상의 배필이다. 모처럼 마신 술에 피로까지 곁들여 눈꺼풀이 자꾸만 무거워 온다. 적년회포를 나눈 오시게, 그가 나의 귀를 빌려 가만히 속삭인다.
“어서 주무시게!”
첫댓글 '오시게'장으로 가고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입니다. 잘읽고갑니다.
아! 글을 맛깔나게 잘 버무리는 재주가 비상하시네요. 아주 오래 숙성된 음식처럼 깊은 맛이 느껴져 적어도 글쟁이가 되려면 시력도 눈치도 머리도 팔다리도 좋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해 봅니다. 오늘은 너무 늦어서 다시 들르겠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