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민수 6,22-27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제2독서 야고 4,13-15
사랑하는 여러분, 13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14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15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복음 루카 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빈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의사인 이그나즈 젬멜바이스는 놀라운 발견을 합니다. 당시 산모들은 산욕열로 알려진 출산 후 발열 증세를 자주 보였습니다. 항생제가 등장하기 전이었기에 많은 산모들이 이 산욕열로 아기를 낳고 죽음을 맞이했지요. 빈 종합병원에 한 해 동안 3,000명의 산모 중에 600명 이상이 이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밝힌 것이 바로 의사 젬멜바이스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의사나 간호사가 손을 씻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환자에게 병을 옮기는 것은 다름 아닌 의료진이었던 것이지요. 실제로 손을 소독하기 시작하자 사망률이 20%대에서 1%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작은 또 사소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행동이 생명을 죽이기도 하고 또 살리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모두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의 사소한 말과 행동으로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를 줍니까? 조금만 더 신경 쓰고 배려하면 생명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잡이식의 인터넷 악성 댓글로 인해서 큰 상처를 받고 스스로 생명을 버리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늘 손쉬운 해법을 바랍니다. 그런데 손을 씻는 간단한 행동도 하지 않아서 생명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스스로가 주위를 기울여서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말과 행동을 한다면 어떨까요? 이 손쉬운 방법, 그리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나중에 주님께 혼나지는 않을까요?
오늘 우리는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맞이합니다. 설날에 가족, 일가친척들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갖습니다. 그런데 즐거운 만남이 괴로운 만남으로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되는 경우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지요. 바로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설날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복음을 통해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이 될 것을 명하십니다.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 그 준비는 내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말 한 마디와 사랑이 담긴 작은 행동에서 나옵니다. 아주 커다란 준비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연히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을 멋지게 사는 사람은 내일도 멋지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일만을 멋지게 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오늘을 망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멋지게 살겠다고 다짐한 그 내일도 형편없는 날이 됩니다. 즉, 우리들에게 맡겨진 지금이라는 ‘오늘’ 해야 할 일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말은 오븐에서 나와야지 냉장고에서 나오면 안 된다(헬 스테빈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말 말과 관련된 이슬람 속담이 있습니다.
말을 하기 전에 그 말이 세 개의 문을 통과하게 하라.
첫 번째 문은 “그 말이 사실인가?”
두 번째 문은 “그 말이 필요한가?”
세 번째 문은 “그 말이 따뜻한가?”
내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이 세 개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지를 따져보십시오. 분명히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 안에서 가장 큰 힘이 있는 말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말하십니까?
오늘 전례▦ 오늘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조상을 기억하며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며 덕담을 나누는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설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며 잠깐 나타났다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와 같음을 잊지 말고,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서 늘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합시다.
오늘의 묵상오늘은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부르는 설입니다. 교회 달력인 전례력으로는 이미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였지만, 많은 사람이 설을 맞이하면서 새해를 시작합니다. 세월에 마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 떠오른 해가 어제 떠오른 해와 다르지 않지만, 출발선에 선다는 것은 늘 새로운 활력과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합니다. 새해에는 지난해보다 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으로 여러 가지 다짐을 하며 설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떨어져 살았던 가족들을 서로 찾아보고, 돌아가신 조상들과 가족들을 기억하며, 그분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가족의 소중함과 따뜻함을 확인하는 명절인 오늘, 그동안 바쁘게 살던 것을 잠시 멈추고 우리의 가정과 가족들을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몇 시에 오든지 잘 맞이할 수 있도록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면서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듣는 것이 조금 어색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대상이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이어야 그 깨어 있음이 무거운 짐이 되지 않고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게 주님의 오심을 기쁘게 기다릴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 해를 나누고, 한 달을 나누고, 한 주를 나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영원의 시간 안에서 우리에게 변함없는 사랑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손을 맞잡고 하느님 앞으로 나아갑시다. 우리에게 좋은 모든 것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 합당하게 나아갈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가 이 설에 서로에게 빌어 주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한국은 오늘이 민족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그러나 미국 교회의 전례력으로 오늘은 연중 제4주간 화요일입니다. 모처럼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술을 마실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윤선도는 술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술을 마심에 덕(德)이 없으면 난(亂)해지고, 술을 마심에 예(禮)가 없으면 잡(雜)해 집니다. 그러니 술을 마실 때는 덕과 예를 갖추고 마셔야 합니다.” 법화경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과하면 술이 술을 마시고, 취하면 술이 사람을 마십니다.” 지난날의 감정을 술의 힘에 의지해서 말하지 말고, 가족들과 사랑을 나누는 술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탈무드는 사람의 인격을 판단할 때 3가지를 주면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돈입니다.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자신의 인격 수양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면 바른 인격일 것입니다. 둘째는 술입니다. 술을 마시면서 분위기를 좋게 하고,술 때문에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바른 인격일 것입니다. 셋째는 분노입니다. 화가 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또 어떤 경우에 화를 내거나 분노를 표출하는지, 이런 것들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돈과 술은 가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노여움은 내면 적인 것입니다. 자신의 분노와 노여움을 잘 조절하는 사람, 지혜롭게 대응하는 사람이 바른 인격자 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1984년의 일이 기억났습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03위 복자의 시성을 위해서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신학생이었던 저는 시성식이 열리는 여의도 광장에서 안내 봉사를 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서울 신학교를 방문하셨고, 미사 주례를 해 주셨습니다. 통로 자리에 있던 저는 교황님께서 입장하실 때 교황님의 제의가 저의 자리에 스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잠시지만 마치 제가 교황님의 제의를 만진 것처럼 감동이 전해졌습니다. 교황님께서는 2005년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2014년 성인(聖人)이 되셨습니다. 저는 사제가 되었고, 28년 동안 사제로 지내고 있습니다. 하혈하던 여인은 지극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하혈이 멈추는 것은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행위는 믿음입니다. 기적이 있으니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으니 기적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오늘은 중용 23장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극한 정성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새해를 맞이하는 모든 분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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