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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세계1차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된 배경은 1870년에 일어난 프랑스와 프로이센 전쟁부터
시작됩니다.
이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프로이센을 배경으로 독일제국이 성립하게 됩니다.(1871)
당시 이전쟁의 패배는 프랑스에게는 치욕이었죠.
당연히 프랑스는 보복을 생가하게 되고 이에 위협을느낀 독일은 오스트리아,이탈리아와 함께 삼국 동맹을 결성합니다.(1882)
이에 위협을 느낀 프랑스,영국,러시아도 역시 각각의 동맹을 통해 삼국협상을 결성합니다. 이렇게 유럽은 삼국동맹과 삼국협상으로 팽팽하게 맞서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1차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원인인 사라예보사건(1914)이 발발합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인에게 저격당한 사건이죠.
오스트리아는 즉각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세르비아와 같이 슬라브민족계
인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도와 오스트리아와 싸우게 됩니다.
이러자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도 참전하게 되고 영국,프랑스도 독일과 싸우게 됩니다.
또한 일본도 영국의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참전합니다.(국제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 입니다.)
이렇게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공격한 2개월만에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전
쟁에 참여하는 세계대전으로 발전하게 된거죠.
전쟁은 독일과 러시아가 대치하는 동부전선과 독일과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대치
하는 서부전선으로 나뉘어지는데 한꺼번에 많은 나라를 상대해야 하는 독일로써
는 전쟁을 단기에 끝낼계획이었는데 실패하면서 고전을 하게 되죠.
그래서 시작한게 잠수함 U보트를 이용한 무차별공격인데 그만 미국의 상선을 격
침시킵니다.(1917)
이에 화가난 미국이 참전하면서 전쟁은 순식간에 연합군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황제는 퇴위하고 1918년11월11일 파리에서
연합군과 독일군간에 휴전조약을 맺으므로써 독일의 패배로 전쟁이 끝납니다.
1차세계대전 1차세계대전때탱크의 모습1. 배경
제1차세계대전연표
1) 경제적 배경
1871년부터 본격화된 국가들 사이의 산업·상업 반목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1914년 독일은 유럽의 여러 나라와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당시의 독일은 영국의 경제를 따라 잡아 세계의 경제를 주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 정치적 배경
제1차 세계 대전의 정치적 원인으로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민족주의였다.
민족주의는 프랑스혁명에서부터 자리잡았으나 점점 여러 가지 위험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것은 대세르비아주의, 프랑스의 복수 범게르만주의었다
3) 외교적 배경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세르비아 왕국도 그 동맹국들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외교적인 위기를 전쟁으로 몰고 갈 엄두는 못냈을 것이다.
세르비아에 대한 지원은 니콜라이 2세 황제가 통치하는 러시아에서 왔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에서 분할한
폴란드, 우크라이나 영토를 누가 더 많이 자국의 세력권 안에 넣느냐 하는 문제로
오스트리아와 오랜 라이벌 관계에 있던 러시아는 발칸반도에서도 영토를 넓히려 하고 있었다.
또한, 흑해와 에개해를 잇는 중요한 수로인 다다넬즈 해협과 함께
전략적 요충지인 반도를 직접 통치하거나 아니면 자국의 영향권 안에 두고 싶어했다.
러시아 제국은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병합했을 때도 반대했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참패로 군사력이 약화된 터라 개입은 하지 못했었다.
세르비아의 편을 들어줌으로써 러시아는 전략적인 이득, 범슬라브 운동에 대한 동정, 숙적을 골탕먹이고 싶은 욕망의 충족이라는 세가지 목적을 동시에 도모할수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미 독일제국의 빌헬름 2세로 부터 비슷한 지원을 다짐받고 있었다.
독일도 러시아와 같이 동맹국 지원에 나선 동기가 단순치 않았다.
유럽의 통치자로서 자국의 무력에 대해 빌헬름 2세만큼 큰소리를 치는 군주는 없었다.
그는 독일제국이 완전히 지배하는 미텔 오이로파(중부유럽)를 꿈꾸고 있었다.
독일이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느끼는 국제적인 인정을 하루 빨리 받아내고 싶은 나머지,
그는 필요하다면 외국에서의 자국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칼을 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곤 했다.
당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고 있었다.
영국은 독일로부터 절박한 위협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어쨋든 빌헬름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였으며 조지 5세의 사촌이었다.
양국의 많은 귀족들은 공통된 전통과 혈연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은 독일이 해군력의 경쟁을 촉발하자 두려움을 갖고 대비하게 되었다.
사실, 영국은 섬나라여서 식량과 원자재 공급을
자국 선박의 해상로 확보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해상로 확보와 유지는 필수였다
2. 전개과정
1) 1914년
0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왕위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함.
0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
07월 30일: 러시아, 총동원령 발표. 독일, 러시아에 총동원령 취소를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함.
08월 01일: 독일, 대(對) 러시아 선전 포고.
08월 02일: 룩셈부르크가 독일 제국에 점령됨. 독일 제국은 벨기에에 영토 통과를 요구하나 거부당함.그 대신·오스만 제국 사이에 비밀 동맹 조약 조인.
08월 03일: 독일, 프랑스에 선전 포고. 독일, 슐리펜계획에 따라 벨기에로 진격.
08월 04일: 독일, 중립 국가인 벨기에에 선전 포고 후, 점령(루벵 시 학살 사건). 영국이 이에 대한 대으로 독일에 선전 포고. 미국, 중립 선언.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독일에 선전 포고.
08월 05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에 선전 포고. 독일, 벨기에의 리에주 요새를 공격. 몬테네그로,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8월 06일: 세르비아, 독일에 선전 포고.
08월 08일: 몬테네그로, 독일에 선전 포고.
08월 10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에 선전 포고.
08월 12일: 영국,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8월 15일: 일본, 독일군함의 동아시아 철수와 자오저우만의 독일조차지 인도를 요구하는 최후통첩 보냄.
08월 23일: 독일, 프랑스 파리 점령. 일본, 독일에 선전 포고.
08월 25일: 일본,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8월 26일: 독일,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러시아군 섬멸(~8월 30일).
08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벨기에에 선전 포고.
09월 03일: 프랑스 정부, 파리에서 보르도로 이동.
09월 05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간의 동맹 성립, 런던 선언 발표.
09월 06일: 프랑스의 마른강에서 프랑스의 반격, 마른강 전투 시작.
09월 11일: 독일의 프랑스 진공군, 엔강까지 후퇴. 서부 전선 교착.
09월 19일: 영국,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에 상륙.
10월 09일: 앤트워프 포위에 벨기에가 독일에 점령 당함.
10월 14일: 일본, 독일령 남양 제도 점령.
10월 29일: 오트만 제국, 러시아의 오데사와 세바스토폴 포격.
11월 02일: 러시아, 오스만 제국에 선전 포고. 세르비아, 오스만 제국에 선전 포고.
11월 05일: 프랑스와 영국, 오스만 제국에 선전 포고.
11월 22일 영국, 페르시아 만 연안의 바스라 공략.
12월 08일: 영국과 독일 해군,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부근에서 교전. 독일 대패.
12월 25일: 영국과 독일, 벨기에 땅에서 크리스마스 정전을 맺다.
2) 1915년
03월 18일: 영국과 프랑스, 다르다넬스 해협 포격.
04월 22일: 이페르(벨기에) 전투(~5.25)에서 독일군이 근대 이후 최초로 독가스 사용.
04월 24일: 오스만 제국이 미국을 연합군의 협력자로 인식하고 미국인에 대한 강제 추방과 사형을 집행함.
04월 25일: 갈리폴리 전투 시작. 영국-프랑스의 패배.
04월 26일: 런던 밀약, 연합국 측이 이탈리아에 참전의 대가로 남티롤 등의 제공을 약속.
05월 03일 이탈리아, 삼국동맹 조약 파기.
05월 07일: 영국 상선 루시타니아 호, 독일 잠수함에 첫 번째로 격침, 128명의 미국인 승객 사망.
05월 23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6월 03일: 산마리노,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8월 17일: 영국 상선 아라빅 호, 독일 잠수함에 두 번째로 격침되어 2명의 미국인 승객 사망.
08월 28일: 이탈리아, 오스만 제국에 선전 포고.
09월 18일: 독일 정부, 미국 정부의 항의로 잠수함 작전의 자제 결정(아라빅서약).
10월 11일: 불가리아, 동맹국 측에 가담.
10월 19일: 러시아 제국, 불가리아에 선전 포고.
10월 14일: 불가리아,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
10월 15일: 영국과 몬테네그로, 불가리아에 선전 포고.
10월 19일: 이탈리아, 불가리아에 선전 포고. 일본, 런던 선언 가입
10월 24일: 영국의 이집트 주재 고등 판무관 맥마흔, 아랍왕국의 독립을 약속한 맥마흔서한을 메카의 칼리프 후세인 빈 알리에게 전달(후세인-맥마흔협정).
3) 1916년
01월 05일: 영국, 의무 징병법 제정.
03월 09일: 독일, 포르투갈에 선전 포고. 포르투갈, 전쟁 반대 선언.
03월 15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포르투갈에 선전 포고. 포르투갈, 전쟁 불참 선언(후에 포르투갈은 영국의 요청으로 연합국에 가담).
03월 24일: 프랑스 선박 사섹스 호, 영불해협에서 세 번째로 독일 잠수함에 격침, 미국인 승객 부상당하여 미국·독일 관계 악화. 05월 04일 독일, 잠수함작전 자제 재약속으로 미국과의 관계 수복 기도.
05월 16일 사이크스-피코 협정 최종 체결.
05월 31일 유틀란트 해전발발(~6월 1일). 영국 해군 14척 11만 톤, 독일 해군 11척 6만톤을 유실하였으나 영국은 계속 제해권을 가짐.
06월 24일 솜 전투 시작(~11월 18일). 독일군은 30만명이 전사했으며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60만명이 전사하였다.
07월 03일 제 4 차 러·일협약 성립.
08월 27일: 루마니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8월 28일: 이탈리아, 독일에 선전 포고
08월 30일: 오스만 제국, 루마니아 왕국에 선전 포고(단독으로 루마니아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09월 01일: 불가리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에 선전 포고.
09월 15일: 빌헬름 2세, 루마니아 왕국에 대한 선전 포고를 총리에게 요구.
09월 18일: 영국군, 솜전투에서 역사상 최초로 전차 투입
10월 16일: 프랑스, 불가리아에 선전 포고
11월 21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 카롤리 1세가 즉위하다.
12월 12일: 독일 총리 T.T.F.A. 베트만 홀베크, 동맹국 측에 강화 제안 발표
4) 1917년
01월 16일: 독일, 멕시코에 멕시코가 동맹국을 도와줄 경우, 후에 "미국에게 뺏긴 영토의 재탈환을 도와주겠다."는 내용의 치머만 전보 전달
01월 22일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승리 없는 평화 제안
02월 03일: 미국, 독일과의 국교 단절.
02월 26일: 미국 상선 라코니아 호, 네 번째로 독일 잠수함에 침몰됨.
03월 14일: 시암과 중국, 독일과의 국교 단절.
04월 06일: 미국, 독일에 선전 포고.
04월 07일: 쿠바와 파나마, 독일에 선전 포고
04월 11일: 브라질, 독일과의 국교 단절.
04월 13일: 볼리비아, 독일과의 국교 단절.
04월 16일: 블라디미르 레닌, 망명지 취리히로부터 귀국
04월 17일: 레닌, 4월 태제 발표
04월 23일: 오스만 제국, 미국과의 국교 단절.
04월 26일: 영국 총리 D. 로이드 조지, 영국 해군에게 상선 호송 실시 명령.
06월 27일: 그리스, 전 동맹국에 선전 포고.
07월 19일: 독일 국회, 평화결의안 가결함.
07월 22일: 시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8월 14일: 중화민국[중국],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9월 21일: 코스타리카, 독일과의 국교 단절.
10월 06일: 페루, 독일과의 국교 단절.
10월 07일: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독일과의 국교 단절.
10월 26일: 브라질, 독일에 선전 포고.
11월 07일: 러시아의 러시아 혁명(10월 혁명, 11월 혁명) 발발.
11월 08일: 러시아의 레닌, 평화에 관한 포고 발표.
11월 16일 G.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에 취임. 친독파에 대한 탄압 시작.
11월 26일: 소비에트 정권, 모든 러시아군에게 정전 명령.
12월 06일: 미국,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12월 08일: 에콰도르, 독일과의 국교단절.
12월 10일: 파나마,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12월 22일: 러시아와 동맹국 측,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강화교섭 시작.
5) 1918년
01월 08일: 미국의 우드로 윌슨, 평화 14개조 발표
01월 28일: 핀란드, 러시아로부터의 독립 요구
02월 10일: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의 강화교 섭 중단, 소비에트 대표 L. 트로츠키가 전쟁 종결 선언 후 철수
02월 18일: 독일, 러시아에 공격 재개.
02월 23일: 소비에트 정부, 독일의 새로운 강화 조건 수락 결정.
03월 03일: 소비에트 정부, 독일 측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강화 조약을 맺음. (그러나 이 조약은 러시아의 보수파나 멘셰비키들에게 "러시아가 독일에게 항복하였다."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 때부터 1920년까지 러시아에 내전이 시작되었다.)
03월 21일: 독일군, 미햐르작에 의해 영국군에 대공세 시작. 제 2 차 솜전투 시작(~4월 5일)
04월 23일: 과테말라, 독일에 선전 포고.
05월 07일: 루마니아 왕국, 연합국 중 유일하게 동맹국에 항복(굴욕적인 부쿠레슈티 강화 조약까지 맺음).
05월 08일: 니카라과,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5월 23일: 코스타리카, 독일에 선전 포고.
07월 12일: 아이티, 독일에 선전 포고.
07월 19일: 온두라스, 독일에 선전 포고.
09월 30일: 불가리아 왕국, 연합국에 항복.
10월 30일: 오스만 제국, 연합국에 항복.
11월 03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국에 항복. 독일 제국, 혁명이 일어남.
11월 09일: 독일 제국 카이저 빌헬름 2세가 퇴위함과 동시에 네덜란드로 망명함.
11월 11일: 독일 제국 항복. 휴전 협정과 동시에 전쟁 종료.
3. 결과
1) 미국이 제1차 세계 대전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선언하여 국제정치가 이념화, 도덕화하기 시작했다. 이상적 집단안전 보장정책인 국제 연맹을 통해 법률적, 도덕적 세계여론에 부응하여 평화를 구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2) 이 때부터 총력전의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특히 벨기에 왕국, 러시아 제국과 독일 제국은 식량 부족이 심각했다.
3) 이 때부터 기관총(영국), 독가스(독일 제국), 탱크(영국), 전투기(프랑스), 잠수함(독일), 곡사포(오스트리아-헝가리) 등의 신무기가 생겨 났다. 이탈리아 왕국은 세계 최초로 기관단총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4) 독일 국민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일방적 평화의 강요나 다름 없는 베르사유 조약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 조약은 아돌프 히틀러 집권과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으며, 바이마르 공화국이 외부로부터 강요된 체제라고 하여 민주 정부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갖지 못하게 하여 공화국의 생명력을 위태롭게 만든 것이나 다름 없었다.
5) 이탈리아 왕국의 좌절감과 배신감은 파시즘의 발전과 베니토 무솔리니의 집권을 가능케 하였다.
6) 미국은 초 강대국의 지위에 올랐으나, 자신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연맹 참여를 거부하고 다시 고립주의에 빠짐으로써 강대국으로서 국제역할에 괴리를 가져왔다. 결국 경제 공황이 생겨 난다.
7) 많은 새로운 국가들이 탄생하여 다른 국가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민족자결주의로 민족주의가 상승하여 20세기 정치의 중요한 요소로 된다(인도, 조선 등에서 독립 운동 활발).
8) 일본 제국은 대체로 만족하였으며, 중화민국은 1917년에 참전(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산둥 반도를 차지한 것에 불만을 품고 사인도 하지 않고 국제 회의장에서 철수한다. 이것은 5․4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9) 국제 정치라는 것이 이제는 유럽에만 힘을 기울일 수 없게 되었다. 전 세계가 국제 정치의 무대가 되었으며, 국제정치가 좁은 유럽에서 벗어나 전세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0) 전 세계 국민의 감시 속에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전 세계 지도자들이 가지게 되었다. 특히, 도덕적으로 국제평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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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땅에서 전쟁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