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이브날 동창송별모임에 청산초 52회 동창인 김용철 친구가 참석했다.
영하의 차디찬 날씨로 조금 일찍 보라매역 세종숯불갈비 식당에 도착하니 이미 도착한 용철친구가
1층 로비서 은수랑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지만 마스크를 벗고 어린시절 얼굴을 떠올리니
용철친구 윤곽이 살아났다,
용철친구가 지난해 카톡 , 쉼표 점으로 이름을 날렸을 때(^ ^) 앨범을 꺼내 옛날 모습을 익혀준 덕분이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가던 차 함께 참석한 친구들과 54년만에 만난 근황을 살피니 이내 친구의 삶이 이해가 갔다.
용철친구의 모친은 친구가 혼인식 올리던 해 일찍 세상을 떠나셨지만, 청산성당 식복사(본당사제의 식사 등 도우미)를 하시던 어머니의 깊은 신앙심을 이어받은 친구와 늦게 세례받은 배우자의 열성으로 아들이 사제품을 받고 서울대교구 사목하던 중, 현재 로마 유학중이라고 했다.
가톨릭언론사서 일한 경험으로 비춰볼 때, 서울교구서 유학을 보내려면 학업성적과 사제로서 장래가 촉망되는 신부님을 선발하는데 용철친구 아들사제가 가톨릭 훌륭한 사목자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길 빌어보았다.
특히 김우중(스테파노_ 아들사제는 서울대교구 신학생들이 뽑은 가장 예수님을 닮은 사제라 일컬었던 송진(발렌티노)신부님의 추천으로 사제서품을 받았다하니 더욱 특별한 인연이라 생각들었다, 나 역시도 용철친구가 소속된 서울 신월동 본당에서함께 부부성가대 하는 형제의 권유로 송진 신부님의 추천을 받아 가톨릭언론사인 평화방송, 평화신문에 입사했기 때문이다. 그때 송진 신부님은 여간해서 신자들의 추천서는 써주질 않는다고 소문이 자자했는데 나의 신문사 경력증명과 기자활동 스크랩북을 보여주니 사장신부님이 "송진 신부님은 추천서 좀체 안 써주는 분인데 믿을만한 신자인가 보군요," 말하며 내일부터 당장 근무해달라 고 했다.
신월동 성당서 신앙생활하며 신부님을 눈여겨 본것은 서울시내 재력가의 아들임에도 식복사 없이 본인이 직접 자전거를 몰고 장을 보고, 밤이면 추위에도 인근 야시장 하는 신자들을 찾아 격려를 하는 등 요즘 보기드문 사목생활을 보며 신자들에게도 청빈한 신부님이라 칭송이 자자했는데 용철친구 아들사제도 송진신부님의 영향을 받아 사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공감이 갔다.
그러나 아쉬움이 많은 남는것은 어쩌다 같은 성당엘 다니고 있었는데도 고향친구를 몰라본 채 십수년을 매주마다 같은 성당에서 남남처럼 지냈던것이다.
용철친구가 모임에서 환영을 받고 쉼표얘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자 친구는 자신에 대해 숨김없이 사연을 꺼냈다, 직장도 오로지 롯데제과 한군데서 이정표를 찍고, 결혼하고 40년 평생 살아온 집도 지금의 신월동 성당 바로 앞집이라 했다. 용철친구가 이렇게 하나만 고집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여기선 생략하고.. 그러다 보니 직장과 성당, 그리고 아들사제를 위한 그 외 일에는 접근하는것도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친구들 모임에도 나오질 못하고 쉼표만 찍고 있었는데,
마침 옛날 같은 성당 다니던 부산에 학진이와 용종이 친구가 동창모임에 나가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또 청량리 경동시장서 큰 청과사업을 하다 쉬고 있는 청산초 45회 이용춘 형님도 힘을 불어 넣어주셨다고 했다.
모임이 시작되고 5년여 동안 청경회 회장을 이끌었던 안영구 친구가 두어마디 했는데 여운이 오래 남았다. 친구는 누가 회장이 되고 총무가 되었든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발버둥 치지만 여러친구들의 협조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여러분들이 관심을 갖고 회장 총무가 모임에 나가자고 하기보다 친구들 각자가 한명씩이라도 전화해 같이나오도록 독려하는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최근 황봉규 친구가 우리곁을 떠남에 칠순이 다 된 나이 건강도 스스로 잘 챙겨야겠지만, 나이들면 친구보다 더 소중한게 없을거라며 더 외로워지기 전에 동창회 모임에 잘 나와 고향친구로서 우정이 교감하도록 말씨고 가려서하고 서로 존중하는 풍토가 잘 조성되길 바란다 고 했다.
영등포서 40년간 사업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잔뼈가 굵은 영구 친구의 말에 모두들 공감이 가는지 머리를 끄덕끄덕 했다.
2022년 한해를 마무리 하며 치룬 성탄 송별모임은 용철친구를 우리들 곁에 보내주심에 감사하고, 코로나19로 여러가지 어려운 가운데 새해 청경회 재기를 기약하며 모임을 마쳤다. 그런마음들이 모아져서인지 성탄이브인데도 20명의 친구들이 모임에 참석했다.
첫댓글 초등학교 앨범 사진을 보니 용철 친구에 대한 추억과 기억이 새롭다.
중학교로 그레이드 하고 같은 반에서 만나 同門修學을 하였는데 ,명랑하고 쾌할한 학교생활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항상 品行이 단정하여 환한 얼굴에 산뜻한 교복 차림이였고, 상고 머리에 키는 작은 것으로 기억된다.
학교 생활도 쾌활한 성격탓에 항상 웃는 낯에다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많은 호감이 있는 대상으로 인식되어
용철 친구에게는 짓굿은 행동을 하거나, 괴롭히는 친구가 없었다.
반에서 유일하게 손목 시계를 차고 다니는 탓에 여느집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어머니 또한
인텔리젠트한모습에 인자하신 말씨와 행동은 가끔 아들을 보러 학교에 오실 때는 남다른 기품과
우아함이 있었다.
용철에게는 4~5 년 연배의 兄이 있었는데 용철을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 하였다. 항상 등 하교를 같이하며.
동생을 에스코트 하여주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고, 교실까지 찾아와서 쏟는 정성은 필자를 부럽게 하는 형제의 友誼였다.
또 용철친구에게는 남다른 친화력으로 주위사람을 즐겁게 하고 웃게 만드는 개그소질도 있었던것 같다.
좌중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주고 재미있는 얘기로 상대방을 리드 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두 어깨를 들썩들썩 하며 어울렁찌울렁 거리며 말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래서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그때 얻은 별명이 '찌울렁' 이었다. 그때부터 분위기에 따라 이름보다는
더 많이 별명으로 통했는데 본인을 卑下 하거나 통속적인 별명이 아니어서인지 용철 본인도 싫어하거나 기분
상해 하지 않고 그런대로 받아준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 적 부터인가 하여튼 열성적인 캐톨릭 집안 이었든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용철이가 신앙 내력을 이어
사제의 길로 가는 아들이 있다니 그동안 용철이가 살아온 끗끗한 인생의 길을 보는 것 같은 敬畏感이 들기도
한다.
정진석 추기경님의 옆에 依然하게 서있는 모습에 30년 가까이 신앙생활을 한 캐톨릭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선 남다른 훌륭한 모습의 사제를 대하는 기분이들고, 험난한 사제의 길을 택한 것이
전도가 양양한 존경받는 큰 인물이 될 것으로 믿는다.
연말을 맞아 반성하고 뒤돌아 보는 시간에 카페에 들어왔다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용철 친구의 근황 소식을
접하고 옛 기억을 더듬어 몇자 적어 본다.
참다운 기분으로 새로운 마음 가짐을 되새겨 보는 시기에 친구들 건강하고 대식친구의 獨也靑靑 변함없는
카페활동에 감사해 하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해 본다.
광호 친구 댓글 잘 보았네, 미쳐 알지 못했던 용철 친구의 지난 날 추억들을 접하니 굿굿히 외길인생 살아 온 용철친구의 삶이 유다르다 느꼈네, 용철친구도 모임 함께하니 이어 두 광호친구도 언젠가 함께 만나는 자리가 되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