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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전두환 시절 승승장구, 90년대 이후 CEO경험 없어
네이버 검색에서 '이명박'을 치면 그의 화려한 이력이 나온다. 그가 CEO를 맡았던 회사를 다 꼽아보면 현대건설, 인천제철, 대한알루미늄, 한라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백화점, 현대종합목재, 현대자원개발 등 그야말로 현대그룹 내 계열사를 거의 망라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실상의 명예직인 '회장'이 아닌 사장으로서는 1988년이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너가 아닌 사람이 사장에서 회장으로 타이틀을 바꿔달은 시점이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한발짝 후퇴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1988년이 도대체 언제냐? 전두환과 노태우가 유치 주역으로 자랑스럽게 VIP석에 앉아서 서울올림픽 개회선언을 하던 그 당시가 아닌가? 지금은 몰락한 기업인으로 기억되고 있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 등이 모두 최고점에 달해있던 시대였다. 그 후 YS정권에 들어와서 금융실명제가 통과되고, 집단소송제가 도입되고, WTO에 가입하고, 급기야는 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고, 현재 경제를 망친 주범들고 국민들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래도 '1988'이라는 숫자가 감이 안 잡힌다면 한가지 더 팁을 줄 수 있다.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이병철이 세상을 떠나고 셋째아들인 이건희가 삼성그룹을 물려받은 것이 1987년 11월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재벌 대통령'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건희가 비로소 세상에 그 이름을 드러낸 시점이 바로 이명박이 CEO로서 마지막 임기를 보내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삼성은 과연 어떠했는지 아는가? 가전은 금성에게 밀리고, 반도체는 일본업체들에게 판판히 깨져서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던 때란 말이다. '글로벌 삼성' 이미지를 심어준 '애니콜'과 '벽걸이 TV'는 아예 상상조차 못하던 시절이다.
백번 양보해서 이명박이 '회장'이라는 허울좋은 타이틀을 가졌던 시점까지 연장을 하더라도 그 마지막은 1992년이다. 자신을 키운 주군을 등지고 민자당으로 입당하면서 현대그룹의 모든 직책을 반납했던 시점이 바로 그 때다. '사장'이라는 실질적인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따지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고, '회장'이라는 상징적인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따지더라도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일이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세계경제를 감안할 때 과연 15년과 20년의 공백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2000년 시작한 자기사업은 사기에 공금횡령으로 실패했다?
물론, 이명박은 필자의 이와같은 지적에 대해 반론을 펼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가 CEO직을 수행한 것이 현대그룹이 마지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으로 승승장구하다가 선거법위반 및 범인도피 유죄판결을 받아 금뱃지를 반납한 후 2000년에 현재 미국에 도피중인 김경준, 그리고 그의 누나인 미모의 변호사 에리카 김과 함께 LKe뱅크라는 회사를 만들어 CEO를 했던 적이 분명히 있다. 그 결과는? 본인 주장에 따르자면 수십억의 돈을 동업자인 김경준에게 사기 당했고, 이명박을 믿고 그 회사에 투자했던 (주)심텍과 (주)다스 등도 수십억에 피해를 입었다. 주가조작 및 공금횡령으로 수많은 개미투자가들이 수백억 대의 피해를 입은 것도 잊으면 안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명박의 프로필 어디를 보아도 1992년 이후의 그의 CEO 행적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본인이 인정하지 않는 경력을 굳이 필자가 선심 쓰면서 인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니, 그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그의 CEO 경력은 지난 1988년 혹은 1992년이 마지막이었다고 보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경제현장과 동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명박이 정말로 경제전문가 혹은 CEO로서 검증을 받았는지를 확인하려면 대한민국 모든 기업가들에게 건국 이래 최대의 시련을 안겨주었던 1997년 IMF 금융위기 당시에 이명박이 뭐하고 있었는지를 찾아보면 된다. 그는 1996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핵심관련자인 김유찬을 돈으로 매수하고 해외로 도피시키고, 그 와중에 사실이 적발되어 법원을 오가며 조사 받느라고 시간을 다 보내고 있었다. 한마디로 시험을 보아야 할 시간에 바깥에서 사적인 일을 보느라 분주했었다는 이야기다.
이명박이 경제 전문가라면 지난 1988년 혹은 1992년 당시 전성기를 구가했던 김우중과 최원석도 충분히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과 김우중의 차이는 시험을 보고 낙제한 것과 시험을 보지 않아서 낙제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도 베스트셀러를 냈고, 김우중도 베스트셀러를 냈는데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판매부수에 있어서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이명박의 "신화는 없다"보다 훨씬 더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이명박이 '경제 전문가'라면 고건 역시 '최고의 경제통'이다
일각에서는 이명박에게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붙여준 것이 현대건설이 아닌 서울시장이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장은 행정가로서의 자리다. 청계천 개발(필자는 복원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과 대중교통종합체계가 이명박의 업적이라면 서울 지하철 5~8호선 역시 고건의 업적이 되는데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국가행정은 물론, 서울시 행정도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중장기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그것은 공무원들이 한덩어리가 되어서 팀웍으로 이룩한 것이지 이명박이 혼자서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것을 두고 이명박이 '경제전문가'라면 고건 역시 '경제전문가'라고 해야 한다.
지금은 많이 노회해진 이건희가 세상에 이름을 드러낼 즈음에 CEO로서의 자리를 벗어던진 사람에게 세계 11위 경제대국의 살림을 맡겨도 되는 것일까? 더욱이, 현대그룹이라는 온실을 떠나 자신의 독자적 비지니스로 시작한 회사는 스스로도 사기를 당하고, 그곳에 투자한 기업이나 일반투자가들 모두 거액의 피해를 당했는데... 정말 그를 가리켜 검증된 '경제 전문가'라고 해도 되는 것일까? 특히, 1997년 IMF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재발될 때에 이명박은 노하우도 경험도 전혀 축적된 것이 없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도 되는 것일까?
차라리 '정보통신 대통령' 소리를 들으며 대한민국 IT업계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이나 '윤리경영'과 '환경경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이명박 보다는 훨씬 낫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의 경제 패러다임을 갖고 21세기 대한민국의 CEO로 나서겠다는 그 용기는 가상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쌍팔년대 노가다 전문가의 무모한 정치실험의 '마루타'가 굳이 되어줄 필요가 있겠는가?
물론, 이명박이 '경제 대통령'으로 혁혁한 업적을 올릴 가능성도 있다. 만일 이명박 집권 후의 대한민국이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뺨치는 '권위주의 독재'로 회귀하고 정경유착과 권언유착이 일상화된다면 이명박에게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아니, 정말로 이명박이 실적을 내고 싶다면 의도적으로라도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시대에 만들어진 패러다임으로는 도저히 수십년의 경력 공백을 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명박에게 원하는 것이 정말 독재이고 정경유착인가? 잘 생각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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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당시엔 정경유착이 난무한 시절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결국 이명박은 정경유착으로 뒷거래 잘하는 ceo 였음이 확실할겁니다.
CEO가 아니라 건설하는 분이 왜 CEO라 합니까? 건설 전문가와 경제전문가가 같습니까? 참 웃기네요.
청계천에는 지금도 쉴새없이 서울 시민들의 혈세가 흐르고 있습니다.그야말로 청계천이 '혈천'으로 그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