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스포츠과학과 20학번 김민성입니다!
저는 2001월3월24일에에 인천 부평에서 태어났고, 저희 가족은 총 4명으로 아빠,엄마,여동생 그리고 저까지 살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사기로 인해 어려움에 쳐해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빠께서 열심히 일하셔서 저와 여동생을 키워오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3살부터 5살떄까지 미술학원을 다녔고 유치원도 잘 다녔습니다. 그 힘든 상황속에서도 남은 1000만원으로 제가 5살때쯤 목재사업을 시작하셨고 지금은 성공하셔서 저희의 첫 집과 차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빠를 존경해오면서 살았고 아빠를 실망시키기 싫어서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며 꿈을 이루고자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운동인데 하나를 뽑자면 저는 축구를 좋아합니다. 7살떄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 태권도를 다녔고, 2품까지 따고 3품을 준비하는 중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게 아니라는걸 깨닫고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야구도 적성에 안맞았습니다. 그래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축구 포지션은 골키퍼였으며 아무리 많이 다쳐도 저가 소중한 1골을 막아낼떄마다 너무 흥미가 넘치고 뿌듯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축구로 올인했습니다. 제가 축구를 그만큼 좋아했지만 초등학교때 축구,티볼,피구,줄넘기,투포환 던지기 등 다 주장을 맡게 되었고, 축구 성적 4강, 티볼 인천3등, 투포환 인천3등 등등 팀을 잘 이끌며 처음 나가는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이 끝나갈떄쯤 3개의 축구 클럽에서 스카우터 제의가 왔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당시 너무 뚱뚱했었기도 하고 체력도 많이 안좋고, 처음 정식으로 배우는 것이라 너무 두려움에 떨어서 저는 스카우터를 다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중학교를 가서 축구를 더 잘하고 살을 빼고 체력을 기르면 다시 스카우터가 오지 않을까 해서 인천유나이드 프로선수들이 다니는 인천 광성중학교를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프로는 아니지만 밑에서부터 올라가기 위해서 인천 미들스타라는 일반학생들이 학교 대표로 나와 인천의 모든학교와 대회를 하는 큰대회를 위해서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선배님과 친해지려하고 축구 동아리도 잘 나가서 선발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는데 학교 선생님들은 선배님들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라는 말하시면서 저는 교체선수로 되어서 1학년때는 경기를 뛰지 못했습니다. 이 속상함을 덜어내기 위해서 저는 2학년떄 더 성장하였고 마침내 선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2학년떄 저희는 조별예선1등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32강 1차전떄 몸살로 인해 못뛰었고 2대0으로 패배하였습니다. 저는 운동인이라 그런지 승부욕이 너무 강했고 2차전을 혼자서라도 체력을 단련하며 준비해왔습니다. 하지만 2차전 3일전 친할아버지께서 불법으로 배를 묶어둔 밧줄에 목이 감기는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정말 중요시하는 대회이기에 너무 뛰고 싶었지만 친할아버지에 손자 5명 중에서 장남이자 유일한 남자인 저를 위해 항상 챙겨주시고 사랑해주셔서
저도 당연시하게 친할아버지가 우선시이기에 경기를 포기하고 장례를 잘 치뤄드렸습니다. 2차전의 경기결과는 선제골을 넣었지만 그 후에 3골을 먹으며 합산 스코어 4-1로 저의 2학년의 미들스타대회는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저의 꿈인 축구선수의 길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마지막 중학교 3학년 때 미들스타대회가 남았기에 기대를 했지만 준비도 많이 못한만큼 조별예선 탈락으로 끝이 났고, 저는 그 날 이후로 축구선수의 길은 멀고 더이상은 힘들거 같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운동을 좋아하니깐 체육쪽으로 대학을 결심을 하게 되었고 체육중점반이 있는 인천광성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뚱뚱하고 체력이 안좋았기에 105kg에서 감량을 시작하였고 저는 3달만에 26kg을 감량하여서 79kg까지 뺐습니다.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로 인천학교끼리의 하이스타 축구대회가 있었고 축구선수의 길은 포기했지만 여전히 축구를 사랑하고 하고 싶었기에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선발자리를 차지하고 선배님들과 대회를 나갔습니다. 고등학교의 축구수준은 중학교랑 확연히 차이나게 잘했지만 저희 광성고등학교는 토너먼트 6경기를 다 이겨 인천 1등이라는 성적을 이루어 냈고 저는 6경기 2실점이라는 성적을 이뤄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희는 인천대표로 전국대회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는 축구선수라는 것을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결승까지 가면 생방송 중계도 있었기에 목숨을 걸어서 가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협회끼리 출동이 있어 유니폼 지원만 있을뿐 나이키 스폰을 받지를 못했고, 생방송 중계도 안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의 진짜 마지막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그 기회가 날라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확신을 잡은 체대를 가기로 하였고 전국대회는 처음이자 마지막일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경기에 임했습니다. 전국대회라 그런지 어느 상대든 너무 잘했지만 저희 학교도 만만치 않았기에 16강 3대0 승, 8강 2대1 승, 4강 2대0승으로 결승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저는 아직 고1이지만 선배님들과 같이 축구하는것도 좋았고 선배님들이라서 부담감도 있었지만 준결승까지 1실점밖에 안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대로면 무난하게 전국1등이라는 것을 따내겠다라는 당당함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결승전을 하게 되었는데 점유율 8:2 아니면 9:1로 상대진영에서 반코트를 했는데 계속 골이 빗나가던중 1번의 프리킥을 내주었는데 무회전 슛으로 와서 저도 어쩔 수 없이 골을 막지 못했고, 그렇게 지나하던 중에 끝나기 5분전 동점골을 넣었지만 1:1로 비겨서 승부차기까지 갔습니다. 아무리 승부차기여도 저는 그냥 이기지 이랬고 제가 마지막까지 저희 학교를 위해 승부차기까지 하고 싶었는데 저희팀 MVP공격수이자 전 골키퍼 출신이였던 형이 하게 해달라고 해서 양보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보다 잘하는 형인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을 믿고 맡겼는데 우리는 3골이 다 막혔고 상대는 다 넣어서 너무나 아쉬운 패배를 하여 너무 속상해서 다들 안아서 울음이 터졌었습니다. 알고보니 상대도 수비를 보던 선수가 골키퍼를 봤는데 중학교때까지 프로 골키퍼였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희가 너무 압도적이였기 때문에 후회가 너무 컸습니다. 그렇게 슬픔의 패배는 뒤로하고 전국대회 2등이라는 타이틀도 엄청난거였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회식을 했는데 저는 형들과 함께 이 자리까지 온 것도 좋았고 형들과 2박3일동안 같은 방을 쓰면서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던거 같습니다. 그렇게 회식을 하면서 야자타임도 하고 쌤들과 형들과 2등의 축하하고 건배를 하고 맛있는 회를 먹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좋았던 전국대회는 끝이 났고, . 물론 중계도 없었고 스카우터도 없었지만 나는 아직 체대라는 길이 있기 때문에 인천에 돌아와서 체대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2가 되었고 체육중점반에 들어갔습니다. 고1때 담임선생님께서 체육반가면 인생 망한다. 공부 안할거다. 이런식으로 매일 잔소리를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꼭 체대를 가기로 했고 그만큼 운동하면서 노력하고 싶었기에 담임선생님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난 체육중점반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체육중점반에 들어갔는데 하루에 체육이 2~3개이면서 방과후까지 1시간이 있었습니다. 첫 수업부터 체력부터 길러야 보조운동이나 실기를 한다고 하시면서 체력훈련을 했는데, 1바퀴만 뛰어도 죽을 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쉽게 포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힘들고 눈물이 나와도 포기하지 않았고 3달이 지났을때 쯤에 체력과 달리기 순위가 중위권까지 올라왔습니다. 저는 거기서 더 승부욕이 붙었고 점점 상위권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부분에서 내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해내고 있다는 생각에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싶었습니다. 저희는 매년 여름방학때 인천육상대회를 나갑니다. 저는 달리기보다는 던지는 종목이 자신있기에 투포환 던지기와 공 멀리던지기를 나갔다. 투포환은 초등학교때 해봐서 자신이 있엇고 공 멀리던지기는 긴가민가 했는데. 투포환 던지기에서 너무나 쉽게 1등을 차지했고, 공 멀리던지기는 10cm차이고 4등에서 성적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는 다시 몸을 끌어올리며 체중을 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체력훈련과 음식조절과 집에가서도 보조운동 등을 하며 나는 몸을 끌어올렸습니다. 부모님께서 너무 무리하지말라고 맛있는걸 해주신다해도 거절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생각해주셔서 그런건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춘기 시절도 없었기에 항상 부모님께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고 친 적도 한번도 없고 술,담배도 안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뿐만이 아니라 외할머니, 외할머지, 친할머니께도 잘해야 하는데 친할아버지의 사랑만 받아서 인지 쉽게 다가가지지 않는거 같습니다. 지금도 물론 잘 하려고 하고는 있는데 외가쪽은 아직도 불편한데 친할머니께는 잘해드리고 시간이 될 때마다 시골을 내려가서 일을 도와드리는 등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저는 그 사이에 모든 운동 상위권으로 만들고 고2를 끝내고, 1월달부터 체대입시를 들어갔습니다. 저는 학교에서도 많이 운동을 하는데 체대입시까지해서 너무 고통이였습니다. 집에만 오면 바로 자고 일어나면 운동 이 생활패턴이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체대입시는 첫 시간 체력훈련, 두 번째 시간이 실기 2종목, 3번째 시간이 1분싯업을 재고 목표만큼 못하면 1000개씩 하고는 끝났습니다. 이렇게 저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매일 노력하고 9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순천향대,건국대 글로캠,수원대,강남대,대전대,백석대,동서울대,국제대 실기를 봤는데 대전대와 순천향대는 잘 끝났지만 10월 초 백석대 실기 5일전 어깨 인대까지 늘어나서 너무 괴로웠았습니다. 그래도 침맞으면서 포기하지 않고 운동을 했고 만족은 하지 않았지만 실기를 보는것만 해도 너무 좋았고 그래도 원하는 순천향대학교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현재의 삶도 집이 어려워 너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떻게든 버텨낼 생각입니다.
저는 지금 순천향대학교에 너무 만족하고 원하는 체육대학까지 진학했기 때문에 지각하지 않고 모든 수업을 최선을 다해서 듣고 싶고, 저의 목표는 진로를 확실하게 정해서 그 진로로 빠지는게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해온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끝을 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어릴적부터 쭉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선수라는 목표를 잡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꿈에서 멀어졌을 때 많이 좌절을 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체육에 의지가 있어 체대까지 노력 끝에 오신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학번 차이가 많이 나서 어색할 수 있지만 편하게 말 걸어 주세요!
리베로 주장이셔서 축구를 좋아하신다는 건 알았는데 어렸을때부터 꿈이 축구선수셨다는 건 처음 알았어요!! 모든 시작하면 끝까지 노력하시는 게 너무 멋있고 배워야 할 점인 거 같습니다! 선배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축구를 좋아하시고 축구선수 꿈을 키우셨었는데 꿈과 멀어지셔서 좀 아쉽습니다. 체대입시 운동을 하면서 많이 고통스러우셨을텐데 참고 결국 순천향대학교를 입학하시고 만족하시는것이 멋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을 본 다는 말이 멋있습니다. 저에게 편하게 말 걸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대학생이 되기까지 많은 고난과 역경을 지나오셨지만 그런 부분들에 무너지지않고 훌륭한 어른이 됐다는게 존경스럽고 저랑 비슷한 부분이 많아 많은 공감이 됐습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셨는데 축구 쪽으로 가지 못 해서 아쉽지만 선배님의 포기하지 않는 열정 배우고 싶습니다. 학번 차이가 있지만 편하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