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는 왜 많은 교파들이 있는가
지금의 기독교는 어지러울 정도로 수많은 교파들로 나뉘어 있어, 참으로 어느 교파가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기 매우 어렵게 만든다. 또 같은 교파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여러 갈레의 교단들로 세분이 되어 극한 대립 양상까지 보인 나머지 전도의 장애물 역할을 하거나,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기독교는 모두가 한 하나님과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왜 이토록 교파들이 많은 것인가. 이제 그 배경과 유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교파의 유래
교파들이 생겨나는 데는 대체로 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성경 해석의 차이가 교파들을 생겨나게 한다. 기독교 안의 모든 교파들은 성경을 최고의 근거로 삼는 데 동의를 한다. 그러나 성경 구절이나 단어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힘에 있어서는 의견을 달리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의견의 차이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고 여겨질 때에는 심각한 논쟁이 벌리게 되고, 서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나누어지게 된 결과로 교파들이 만들어진다.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교파 분열은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분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성경 해석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성경을 해석하거나 읽는 것조차 금했던 중세시대 때까지는 성경해석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교파의 분열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성경의 해석은 특정한 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니라,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의 조명을 받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든지 성경을 직접 읽고 그 의미를 깨달아 교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면서부터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개신교 안에서도 루터파, 칼빈파, 침례파, 경건파 등의 분열이 생겨났다.
둘째, 교회 운영 방식의 차이가 교파들을 생겨나게 한다. 교회는 성도들이 교통하는 집합체이다. 집합체에는 질서와 순결의 유지를 위한 제도와 조직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대나 지역 또는 교인들의 수준이나 전통에 따라, 이 제도와 조직의 운영 방식에 있어 어떤 형태가 가장 효과적일 것인지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여러 형태의 교파가 등장하게 되었다. 장로제 운영을 택한 장로교, 감독제 운영을 택한 감리교, 회중들 중심의 운영을 택한 회중교회, 일체의 인위적 운영을 부정하는 무교회파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제 잘 알려져 있는 기독교의 대표적인 교파들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자.
2. 교파의 유형
1) 감리교회
교회 운영을 감독제도 방식으로 하기 때문에 갖게 된 이름이다. 요한 웨슬레가 영국에서 전개했던 회개 운동으로부터 시작된 교파이다. 웨슬레는 자기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회개와 경건생활을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지키려 했었기 때문에, 감리교를 영어로는 Methodist(방법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감독제도로 교회를 운영하는 교파는 감리교회 이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 개혁교회
종교개혁자 칼빈과 즈빙글리 등의 성경 해석을 따르는 교파이다. 한 때 개혁교회를 국교로 받아들였던 네델란드를 비롯한 스위스와 독일 남부, 스웨덴, 그리고 그들의 이주민들이 정착한 세계 여려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3) 구세군
알콜 중독자나 유흥가 종사자 같은 특수 계층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방법이 아닌 전투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감리교 목사이던 윌리암 부드에 의해 창설되었다. 독특하게 군대식 전도조직으로 교회를 운영한다. 연말이면 자선냄비 모금단체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4) 그리스도의 교회
모든 것을 버리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을 하면서, 소속되어 있던 교파를 나와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만 부르던 사람들 중, 토마스 캠벨과 알렉산더 캠벨 부자(父子)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시작된 교파이다. 교파를 없앨 것을 주장하고 시작했으나, 그들 스스로가 하나의 교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예배 때, 악기를 사용하는 것까지도 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5) 나사렛 교회
미국 남북전쟁 이후, 전국적으로 일어난 영적 각성운동의 결과로 생겨난 교파 중 하나이다. 성경 해석과 교회 운영방식에서 대체로 감리교의 방식을 따르고 있으나, 개 교회의 자치권을 더 많이 인정하려고 한다.
6) 동방 정교회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를 비롯하여 초대교회 때에는 동로마 지역에도 서로마 지역 못지않은 많은 교회들이 있었다. 그러나 동로마 지역의 교회들은 성경의 해석이나 교회 운영방식, 그리고 정치 문화적 배경 등에서 서로마 지역 교회들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차이점들은 마침내 1054년 새로운 동방교회라는 교파를 생겨나게 했다. 이들은 자기들이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정교회(正敎會, Orthodox Church)라고 불렀다. 이슬람 세력이 소아시아 지역을 점령한 이후로는 북쪽으로 올라가 러시아 정교회로 발전하였고, 러시아 공사관이 들어오면서 한국 정교회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그리스에 총 대주교가 있다.
7) 루터교회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성경해석에 동의하는 교회이다. 종교개혁 당시만큼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못하지만, 루터교회를 국교로 채택한 독일을 비롯하여 주로 북 유럽에 루터교회가 많다.
8) 성결교회
교회의 운영방식 보다는 개인적인 신앙생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4중복음(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강조하는 교파이다. 미국 감리교회 출신의 두 지도자가 일본에서 조직한 동양 선교회를 통해 한국에 소개되었다.
9) 영국교회(성공회)
영국 왕 헨리 8세가 자신의 이혼을 허락해주지 않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반기를 들고,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 아니라 국왕이라고 하면서 생겨난 교파이다. 교황권 반대 등 로마 교회와 다른 성경해석을 시도하여 개신교 사상 발전의 상당한 계기가 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성경해석과 의식(儀式)에서는 여전히 로마교회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래서 영국교회 스스로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중간 위치에서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자부심을 가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도신경의 본문 중 ‘거룩한 공회’를 한문으로 표기한 “성공회”(聖公會)를 교파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10) 오순절 교회
성경해석이나 교회운영 방식 보다는 오순절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지금도 개인적으로 체험할 것에 일차적 관심을 가지는 교파이다. 하나님의 성회도 오순절 교회의 입장을 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순복음 교회가 대표적인 오순절 교파라 할 수 있다.
11) 장로교회
일반 성도들이 장로를 선출하여 교회를 운영하게 하게 하는 방식을 택하는 교파이다. 장로제도는 일찌기 아브라함 때부터 있었고, 신약 성경에도 그 제도와 자격이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성경적인 제도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교황제도가 시행되던 중세에 맞서 존 칼빈이 제네바에서 장로제도를 부활시켰고, 이것을 존 낙스가 스코틀랜드에서 완전한 교회 운영제도로 정착을 시켰다.
12) 천주(로마 가톨릭) 교회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처음 언급된 이탈리아와 북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서로마 지역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었다. 기독교가 공적 인정을 받으면서 제국의 수도이었던 로마의 교회는 다른 지역의 교회들보다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로마 지역의 교회가 여러 지역 교회들을 대표하면서, 로마의 교회 영향 아래에 있는 교회만이 교회일 수 있다는 의미로 ‘보편적’이라는 뜻을 가진 ‘가톨릭’이란 말을 덧붙여 로마 가톨릭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특정 지역의 교회인 로마교회를 가리켜 전체를 의미하는 가톨릭이라고 하는 것은 부분을 전체라고 하는 명칭은 매우 논리적 모순을 느끼게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사도 베드로께서 로마교회의 최초 감독이셨다고 하고, 590년부터는 베드로 뒤를 이어 성경 해석과 교회 운영에 있어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지도자로 교황을 두는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사람에게 부여된 절대적 권한은 역사상 거친 반발과 개혁을 요구하는 심각한 오류를 생겨나게도 했었다.
13) 침례교회
세례를 침수 방식으로 행하는 교파는 침례교회 이외에도 많이 있다. 그러나 침례교회는 세례의 방법을 오직 침수 방식으로 해야만 한다는 강한 주장을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는 개혁교회나 장로교회와 가깝다. 그러나 교회 운영방식에 있어서는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성도들로부터 모아진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회중교회 형태를 따른다.
사도 바울께서는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엡 4:5,6)라고 하시면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라”(엡 4:3)고 말씀하셨다. 과연 주님이 한 분이시고, 믿음이 하나이고, 진리가 하나이라면, 우리는 여러 교파로 갈라져 있을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교파들마다 가급적 하나가 될 수 있는 요인을 힘써 찾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선 같은 교파 내의 교단별 연합이나 통합부터 적극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만에 하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분리를 일삼는 일이라도 있다면, 이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치는 반드시 단순한 타협이나 이해타산이 아닌, 참 진리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아직 일치를 이루지 못한 단계에서는 모든 교파들이 다양한 악기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관현악과도 같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노력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기독교의 여러 교파들.
1)한 교회 시대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 에루살렘에서 제일 먼저 형성되었는데, 이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을 체험한 무리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좇는 사람들이 세운 것입니다.
이 교회는 유대교 율법과 성정 경배로 인해서 유대교의 한 분파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와는 달리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갈릴리 예수를 그들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면,
사도들이 가르치는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등의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처음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으나 곧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수장으로 하는 유대 장로제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10번에 걸친 로마황제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점차 늘어났으며 마침내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인정한 313년에는 국가와 교회의 구별이 없어지고 서구 유럽의 여러 나아들은 기독교 국가가 되어 로마 가톨릭 교황이 통치하는 하나님의 교회인 로마가톨릭 교회만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2)서방교회와 동방교회
그리스도께서 사도들 특별히 베드로에게 주신 권한을 교황이 계승했다고 주장하며, 교황이 모든 교회의 신앙과, 윤리, 그리고 정치에 있어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던 로마가톨릭이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완전히 나뉘게 된 것은 교리 적인 문제보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정치적 중심지인 로마 교황과 종교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와의 불화하여, 867년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Photius가 로마 교황을 파문하고, 1054년 역시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미카엘 카를라류스와 로마 교황 Leo 9세가 서로 상대방을 파문함으로써 동방과 서방교회는 갈라지게 되었다.
3)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트(개신교)
마리아 숭배와 성인 숭배, 화체설(떡과 포도주가 신부의 손에 의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된다고 주장), 교황과 신부의 신격화(면죄부), 믿음 외에 선행이 추가되어야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연옥설 주장 등의 이유로 로마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날로 거세 갈 무렵,
마틴 루터라는 로마 가톨릭 신부는 마침내 1517년 95개 조항을 지적하며 교회의 자성을 촉구하였다. 성서신학자인 루터는 사람의 공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구원을 받으며, 교황의 말이나 교회의 전통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진정한 권위를 가진 것이며,
서품을 받은 신부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자가 될 수 있다는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했으나, 그는 로마가톨릭 교회로부터 파문당하여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로마가톨릭으로부터 분리되고 후에 그들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라고 불리게 됨으로써 오랫동안 하나의 교회(로마가톨릭)였던 기독교회 안에는 교파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4)개신교의 여러 교파들
교파(denomination)라는 말은 교리, 신조, 예배, 의식, 신앙생활의 특이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단체와 그 파(派)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교파라는 말의 의미가 유럽과 영국, 그리고 미국에서는 다소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과 영국에서는 그들의 국교회에서 이탈한 종파로 보고 다소 경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러나 미국에서는 국교가 없고 교파에 따라 형성된 교회들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교파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잇습니다.
교파는 교리에 대한 신앙 차이, 성경과 계시에 대한 재해석, 예배의식의 차이, 정치, 문화적 차이 등에서부터 교파가 갈라집니다. 교파를 형성하거나 분열하는 것을 무조건 죄악시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늘 변화받고 거듭나야 되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경우 어쩔 수 없이 갈라져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 친 교파주의로 흘러 자기 교파만이 참된 교회이고 타교파는 적대시하고 정죄하는 행위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인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는 아닙니다. 많은 교파들이 있지만 주요 교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감리회(Methodist Church)
감리교회는 요한 웨슬리의 신학과 신앙을 바탕으로 형성된 교회입니다. 계속된 영국 국교회의 타락에 회의를 느낀 웨슬리는 1719년 옥스퍼드 대학 안에서 몆몆 신앙 동지와 "신성 클럽(HOLY CLUP)"을 만들고 성결한 생활, 성경, 신학 연구, 빈민, 병자, 죄수 방문,
전도하는 데에 힘썼는데 이들이 규칙적으로 모임을 갖자 사람들은 그들을 규칙주의자(Methodist)라고 부른 데서 감리교회라는 명칭이 파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감리교회의 탄생은 1738년 요한 웨슬리가 올더스케잇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
구원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운 신앙체험을 한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웨슬리를 따르는 숫자가 증가하자 영국 교회가 이들이 설교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웨슬리는 영국 교회를 떠날 마음이 없었으나 런던 감독이 1784년 미국으로 파견할 설교자 코크에게 안수하기를 거부하자, '메도디스트라 불리는 사람들의 연회'를 조직하고 할 수 없이 스스로 안수하여 보냄으로써 영국 교회와 분리하게 되었습니다.
감리교회는 종교 사업, 교육, 의료, 사회 사업, 각 방면으로 그리스도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사업을 활발히 진행함으로써 당시의 영국사회를 산업혁명의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편 코크가 임명한 애즈베리에 의해서 미국 감리교회는 영국에서보다 더 급속한 성장을 이루게 되었으며, 독립전쟁 당시 영국 감리교회로부터 분리되어 오늘날 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감리교 선교는 미감리회의 일본주재 선교사가 1884년에 내한하여 고종의 선교윤허를 받은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후에 미감리회 해외 선교부는 병원을 세운 것으로 유명한 아펜젤러와, 스크랜튼, 이화학당을 세운 스크랜튼 부인 등을 선교사로 파견하였습니다.
감리교 신학적, 교리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무제한적, 보편적 속죄, 즉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는 우주적이며, 무차별한 것임을 믿는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며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2) 인간의 타락과 원죄를 믿지만 그러나 자유의지까지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다. (3)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완전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사회악 제거를 위해 헌신할 것을 요구하신다. (4)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체험과 이생과 내세에서 성화 됨을 믿는다.(성화 강조).
(2)구세군(The Salvation Army)
1858년 감리교 목사인 윌리암 부드(William Booth)가 교회일 외에 각종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소외된 계층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교파에 관계없이 런던의 빈민굴에서 전도를 시작하여 놀라운 중생의 체험한 사람들이 많이 생김으로써 조직을 확대하게 되었습니다.
878년 5월 이 단체를 구세군이라 부르고 윌리암 부드가 초대 대장이 되었고, 1912년 8월 20일 윌리암 부드가 별세할 당시 약 59개국에서 이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구세군은 개인의 자유와 기회의 균등을 확보하는 군대적 조직을 채용하여 세계의 구세군을 한 명의 대장이 통솔하게 되어 있으며, 복장이나 직분도 군대식으로 하고,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노방전도를 통하여 공격적인 전도를 합니다.
구세군 신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구세군의 모든 회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죄에서 구원받은 것을 고백하며, 그들은 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구원을 받은 군병으로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헌신할 것을 서약한다.
(2) 구세군 신문이나 발행물을 가가호호 다니며 전하고, 불신자를 개인적으로 권면 하며, 가족을 심방 하여 기도하기를 힘쓴다. (3) 구세군은 특히 아이와 여자의 권위를 존중하며 여자에게는 남자와 동등한 권리와 지위를 인정한다.
(3)성결회
일본인 나가다 시게하루는 미국 무디 성경학원에 유학하고 있는 동안 어느 집회에 출석하여 특별한 영감을 받아 일본으로 귀국한 후 각처로 순화하며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이때에 나가다 씨의 친구인 미국인 C. E. 카우만이 이 희생적 전도에 감동하여 그의 아내와 함께 1901년에 일본으로 건너와서 네 사람이 협력하여 활동하던 중 1904년부터는 "동양 선교회 학원"을 설립하고 또 몇 몇 주요한 도시에 전도관을 세우고 전도 사업을 확장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1907년에 동양선교회 복음 전도관을 서울에 세우고 전도를 계속하다가 1922년에 동양 선교회 성결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조직하고 해방 후부터 대한성결교회로 이름을 고치어 현재에 이릅니다.
대한성결교회의 7개 강령은 다음과 같다. 1) 성경을 근거로 하되 특히 중생, 성결, 재림, 신유를 성결 해설의 요체로 한다. 2) 교파주의에 편립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를 설립한다.
3) 사도신경을 신앙의 기초로 하고, 성경을 진리의 대해로 받아들여 영적으로 무한한 발전을 도모한다. 4) 교회의 정책은 일반 신도의 양심을 기초로 한 회의 제도를 채택한다. 5)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 행위이므로 엄숙하고 경건하게 진행해야 한다.
6) 건전한 지와 성결한 정과 견실한 의지에 기초하며 계발적으로 신앙을 지도한다. 7) 문서와 설교로 전도에 주력하는 동시에 실생활로 시범을 보인다.
(4)영국 국교회(성공회)
영국 국교인 성공회는 로마가톨릭에서 분리되어 나온 교파로, 1534년 영국 왕 헨리 8세 때에 국회에서 영국 교회가 교황에 종속되지 않음을 선포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영국국교회는 1536년 로마 감독의 교권을 폐지하는 법령 반포하였고, 1570년 교황 피오 5세는 당시 영국 왕 엘리자벳을 파문함으로써 완전히 로마 교회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885년 영국성공회 중국선교사인 울프 신부가 2명의 선교사와 부산지역 선교를 시도하였고, 1889년 영국 켄터베리 대주교의 지시로 영국 해군 군종신부가 1890년 한국의 첫 선교사로 입국하여 본격적인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1915년 김희순 신부는 최초의 한국인 사제로 서품을 받았습니다.
(5)오순절 교회(Pentecostal Church)
일찍이 미국 교회 안에는 오순절의 성신의 역사를 동경하는 신자들이 오순절회를 조직하고 있었는데, 1898년에 이 회원들은 남부 캐롤라이나 주 안더슨에 모여 따로 "불세례 성결교회"(Fire-Baptized-Holiness Church)를 조직하였다.
그 후 1년만에 역시 같은 주의를 가진 사람들이 "오순절 성결교회"(Pentecostal Holiness Church)라는 또 한 개의 교회를 조직하여 독자적인 형식으로 예배하고 있었는데, 1911년에는 이 두 단체가 합동하여 "오순절 성결교회"라는 이름으로 종교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915년에 이르러서는 또 다시 "성막 오순절 교회" 라는 교회가 이에 합병을 하였다. 오순절 교회 교리와 신조 : 이 교인들은 대부분이 감리교회나 침례교회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므로 모든 점에 있어서 이 교회들의 형식이나 교리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리의 요점은 삼위일체, 원죄,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말미암은 인류의 구원, 예수의 처녀 탄생과 신성, 영감, 성경의 문자적 무오설, 성령의 역사의 풍부함과 자비함을 믿는 것으로서 일반교회와 별로 다른 점이 없습니다.
특별한 점은 예배드릴 때에 매우 열정적이어서 소리치며 기도하고, 손뼉을 치며, 때로는 마구 뛰면서 방언을 하는 것입니다. 성례는 세례와 성찬이 있으며, 세례는 전신 침례로 하며, 성찬시에는 서로의 발을 씻겨줍니다. 이들은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은 병 고침을 굳게 믿으나 의학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General Council)
1914년 미국 아칸소 주 복음주의 할스프링에서는 오순절 교회의 목사들과 복음주의파 목사들이 보다 더 열렬한 복음전도 사업을 위해 합동하였는데, 그 본 교회에서 승인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한 종파를 이루게 되었다. 그들은 열렬한 근본주의자(진화론 반대자)로서 알미니안 주의를 그들의 신학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성회는 다음과 같은 신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성경의 무오성과 영감성을 굳게 믿는다. (2) 사람은 타락되었으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속량함을 받는다. (3) 성령으로 세례 받음과 방언을 믿는다. (4) 세상과 짝하지 말고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
(5)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이 교파의 사람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후에는 방언의 은사를 받는다는 교훈을 강조하여 이 교회의 목사는 누구나 방언을 할 수 있다고 신도들은 믿고 있습니다.
각 개 교회는 그 치리나 정치에 있어서 완전히 독자적이지만 구역적으로 모든 교회를 목회하며 전도할 책임이 있는 목사가 있습니다. 각 구역에는 노회가 있어 목사를 시취, 안수, 임명합니다. 그리고 모든 교직자들은 정기적으로 총회에 모이어 모든 일반 사무원을 선정하며,
교리의 표준을 규정하고 교회의 확장 책과 발전책을 협의합니다. 이 교파에서 가장 교인수가 많은 곳이 여의도 순복음 교회입니다.
(6)장로회(Presbyterian Church)
장로교회는 장로(presbyter, elder)에 의해서 치리 되는 교회 조직입니다. 교회 행정은 '가르치는 장로'(목사)와 '치리 하는 장로'(장로)에 의해서 이끌어지는데 장로들은 교인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어 노회에서 안수받아 장립됩니다.
장로교회가 독자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종교개혁 기간 중이었는데, 교황제도가 비성경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종교개혁자들은 장로제도가 사도들의 전통을 계승한 제도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제도를 명확하게 규명한 것이 바로 장로교 창시자로 불리는 칼빈입니다. 칼빈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실시한 신정정치는 장로제도를 구체화시켰는데, 우선 1559년 프랑스의 2천 교회가 장로회를 받아들였으며, 네덜란드에서도 1563년 앤트워프에서 장로교회가 창설되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장로교회라고 부르지 않고 개혁교회라고 부릅니다. 장로교회가 가장 활발하게 추진된 나라는 스코틀랜드였습니다. 종교개혁자 존 낙스에 의해 1560년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창립총회가 열렸으며, 이 교회는 스코틀랜드 국교회가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과 미국 장로교회의 확산지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복음을 전해준 사람들도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소속의 존 로스와 맥킨타이어 선교사였습니다.
장로교 5대 교리는 TULIP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1) 인간의 전적 타락, 2) 하나님의 무조건 선택, 3) 제한된 속죄, 4) 불가항력적 은혜, 5) 성도의 견인입니다.
또한 장로교 신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각 사람의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해 이루어진다. (2) 각 신도의 구원은 영원한 하나님의 뜻의 일부이다. (3)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믿음에 대한 상급이 아니다. (4)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5)중생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역사이다. (6) 한번 구원받은 자는 언제나 구원받은 자로 있다.
(7)침례회(Baptist church)
세례를 행할 때 물을 뿌리거나 부어서 하지 않고 물 속에 들어갔다가(침례) 나오는 의식을 주장하는 교파입니다. 1608년 영국의 핍박을 피해 폴란드의 암스텔담으로 망명해 온 비 영국교도들은 영국교 목사였다가 청교도가 되어 그 곳으로 망명했던,
요한 스미스(John Smith)의 지휘 밑에 처음으로 뱁티스트파(침례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미스가 그 곳에 이미 설립된 메노나잇파와 합동하려 하자, 토마스 헬위와 몆몆 동지가 이에 반대하여 1612년 영국으로 돌아가서 런던에 침례교회를 세웠습니다.
이후 18세기의 영국 침례회는 감리교운동에 영향을 받아 각성운동과 해외선교운동을 활발하게 했는데, 1792년에는 영국침례선교회가 조직되어 윌리엄 케리를 영국선교사로 파송하는가 하면, 19세기에 들어서 미국침례회도 1813년 아도람 져드슨을 미얀마로 파견하였으며,
유명한 역사신학자 레토레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부흥운동가 빌리 그레이엄을 배출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침례회를 전해준 사람은 캐나다 선교사 펜윅입니다.
그는 1889년 개인 자격으로 입국했다가 다시 귀국하여 1894년 한국내지 선교회를 조직함으로써 침례교 한국선교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양심의 지시대로 성경을 해석하며 과학과 교육에 새로운 해석이 생길 때는 그에 따라 신앙을 수정할 수도 있으며, 각 개인은 그리스도를 향해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를 경배할 수 있는 신조를 가지고 있는 침례교는 다음과 같은 신앙적, 신학적 주장을 펴고 잇습니다.
(1)각 교회는 독립해야 한다. (2) 교회와 국가는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 (3) 모든 신앙 문제에 있어서 종교적 자유가 있어야 한다. (4)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중생한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다. (5) 유아 세례는 비 성경적이므로 실시하지 말아야 한다.
(6) 세례는 신자에게만 베풀어야 한다. 형식만으로 받는 세례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세례의 예식은 전신을 물에 담그는 전신 침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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