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를 모든 악기의 으뜸이라 예부터 말하지만
말한 이를 살펴보면 모두가 사대부나 양반들이야.
이상만 높고 현실과 먼 유학의 경전을 외우기 바빴던
그네들이 어찌 대금과 피리와 해금의 깊이를 알겠어.
공자가 음악을 존숭하며 거문고를 놓지 않았다 전하니
공자의 가슴은 잊은 채, 겉만 따라 거문고를 튕기며
줄 한 번 내려치고 한참 깊은 소리를 음미하고
또 한 번 가볍게 쳐 엷은 소리에 빠져들다가
깊은 소리는 음에 있는 게 아니라, 소리 사이의 여백에 있다 – 는
그럴듯한, 궤변인 듯한,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던져 놓고는
음양과 오행과 이기론 등의 해괴한 이론을 들어
거문고가 모든 악기의 으뜸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말이 옳은 거야?
맹목이 아니겠어? 맹목이 가장 깊은 신앙이기는 하지.
맹목의 신도로 종교는 배 불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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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를 폄훼하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야; 거문고가 으뜸인 악기는 맞아.
또한 대금이 으뜸이고, 해금도 으뜸이지, 어찌 거문고 홀로 으뜸이겠니.
내가 말하고픈 것은 맹목이나 맹종을 경계하자는 거야.
유학자들이 누구야, 공자의 “인(仁) 사상” 아니겠어?
그러나 조선에 사서삼경 외에 인본사상이 존재했었니?
양반이 지배자가 되어 대부분의 백성인 상놈들을 억압하고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동물처럼 천대한 ‘악마의 나라’가 조선이야.
(그 반동으로 내가 인본사상과 페미니즘에 빠져 지내는 걸 거야)
가뭄에 콩 나듯 거문고 줄 뜯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
그러니 정신수양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위로를 하며
은연중에 거문고 배우기를 독려했던 까닭은 하나야;
그들의 교주인 공자가 거문고를 곁에 두고 찬탄했다!
유학자들의 대부분은 거문고를 탐냈지만
막상 배우고 타보니 재미도 없고 시간도 없으니
끊어진 줄을 벽에 걸어놓고 “소리 없는 줄의 탄주”를 즐겼던 거야.
대부분 사랑방의 윗목이나 창 옆에 세워놓고
공자나 백아의 탄주를 상상이나 환영으로 감상하거나
예(禮)를 건넌 악(樂)을 보여주려는 장식용이었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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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알아. 거문고의 진정한 맛을.
소리와 소리 사이의 여백; 무음의 진동에 있음을.
무음의 진동은 귀로는 들리지 않고 오직 눈으로만 볼 수 있어.
이를 잘 아는 거문고의 명인은 여백의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몸으로 허공을 느리게 저어 바람의 파동을 관객의 눈에 넣는 거야.
상류층의 거문고는 하류층의 ‘판소리의 발림 기법’을 사용해
귀와 눈의 종합적 예술로 승화시켰던 것이야.
신채호가 뭐랬어? 공연자의 첫째 덕목이 “인물치레”라 했잖아.
거문고 탄주는 인물치레, 즉 자태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폼생폼사’인 게야.
깊은 가을이야. 이제는 큰 거울을 앞에 놓고 탄주를 해야겠네.
소쩍새와 천둥과 무서리를 이겨내고, 거울 앞에 선 내 누이 같은 거문고여.
농현은 학의 날갯짓 되고, 탄현은 노송 그림자가 마당을 쓰는, 탈속한 한가로움이 되어지이댜.
첫댓글 그럼에도 내사랑 거문고. ^^
ㅋㅋㅋㅋㅋㅋ
수연장지곡을 거문고 연주로 듣고는
여백의 미와 정결하게 갖추어진 음양 팔상 변화의
지루한 자태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줄 아룁니다.
ㅎㅎㅎㅎㅎㅎ
맥박이 뛰는 사이, 그 사이의 흐름을
귀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될 줄 아뢰오.^^
적막이 주는,,,"지루한 자태"가....
그리움을 '기다리는 긴장'이 되도록.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