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스포츠과학과 24학번 염준서입니다. 저는 2005년 4월 19일 오후 1시경에 경기도 성남시에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3남중 장남으로 저희 집은 5인 가구입니다. 동생들은 현재 각각 19살, 9살이며 3형제 입니다. 저는 태어난 직후에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친가의 할아버지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유아기를 공기 좋은 곳에서 지내다가 어린이집은 다니지 않고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아버지 직장 동료분의 딸과 같은 반이라서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어딜 가든 그 친구와 가고 뭘 하든 그 친구와 했습니다.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어느새 초등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게 된 초등학교는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에 있는 광주초등학교입니다. 그 소꿉친구와는 운이 좋게 같은 초등학교 같은 반에 배정받았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에 소꿉친구와 항상 즐겁게 지냈고, 2학년이 되었습니다. 2학년 때에는 1학년에 친 동생이 입학하게 되었고 학교에 갈때, 항상 손을 잡고 같이 갔습니다. 동생과 함께 학교를 잘 다니다가 초등학교 2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저는 잘 몰랐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살기로 다짐하고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따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 있는 대원초등학교로 전학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학년일 때에는 건담과 같은 로봇 조립 및 RC카 운전과 같은 활동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고학년이 되자 신체활동이 많은 놀이를 주로 하며 심심할땐 축구, 캐치볼 등 몸으로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갔을때 집 근처 체육관에서 복싱을 배우고 재미를 한창 느꼈습니다. 동생과 함께 초등학교를 잘 다니다가 5학년에서 6학년에 올라갈 즈음에 동아리를 선택하는 기간이 주어졌는데 신체활동과 운동을 좋아해서 스포츠 관련 동아리를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아리의 종류가 스포츠 관련 동아리는 필드하키와 뉴 스포츠동아리 이렇게 두 가지가 있었고 하키라는 종목이 새롭고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필드하키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키부에 들어가게 되면서 생전 처음 보는 장비들과 경기 규칙에 대해 알게되었고, 하키의 기술들과 기본기에 대해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2학기가 되자 유소년 하키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게되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유니폼을 입고, 각기 다른 지역에서 같은 종목의 스포츠를 선택해서 하는 제 또래 다른 팀 선수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하키와 스포츠 전문 선수에 관한 매력을 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장래 희망은 운동선수가 되었고 경쟁이라는 것을 즐겼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는 시기에 초등학교 하키부 지도자 선생님께서 성일중학교 하키부에 진학하지 않겠냐고 제의하셨고 운동선수가 어느새 꿈이 되어있던 저는 당연히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성일중은 남녀 공학 학교인데 하키로 성일중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남중에 가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여자도 좋아해서 남중은 별로 좋다고 생각을 못했고 이 부분도 성일중 하키부에 진학하게 되는 이유중 하나로 다가왔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성남 종합운동장 하키경기장에서 항상 중학교 선배들과 함께 운동을 했는데 어느 날 중학교 코치선생님께서 신입생 중에 한 명이 골키퍼를 해야하는데 누가 해볼래? 하고 먼저 질문을 해주셨고, 아무도 희망하지 않자 차례대로 골키퍼 체험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골키퍼를 체험하게 되었는데, 유연성도 좋고 또래에 비해 반응속도와 공간 지각능력, 코어의 근력도 좋다고 코치님께서 말씀해주셨고 잘 막는다고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이 체험 하기 전에 저와 1:1로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3개월 뒤에 대회에 출전하게 될 텐데 저를 지금부터 골키퍼로 잘 다듬으면 U-15 꿈나무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제 골키퍼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해주셨습니다. 첫 대회, 2018년 전국 춘계 남녀하키대회에 출전하게 되었고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내게 되었습니다. 경기를 많이 뛰어본 적도 없었고, 골키퍼로 대회 경험은 전무했기때문에 이정도면 좋은 성적이라고, 앞으로 최선을 다 해서 운동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종별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에서의 첫 우승을 두번의 대회 출전으로 이뤄냈습니다. 세번째 대회 출전에서는 3위를 기록하며 1학년 때의 대회 시즌이 마무리 되었고 2학년이 되어서 U-15 꿈나무 대표를 선발되었습니다. 하키라는 종목은 판이 좁아서 팀도 적고 인원도 적어서 꿈나무 대표는 누구나 간다고 하지만 저는 태어나서 처음 달아보는 태극기에 꿈이 국가대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와 3학년 때에는 팀 전체 성적이 좋지 않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인 17살 2월달에 부모님께서 이제 고등학교에 가니까 운동은 그만 하고 공부로 진로를 변경하자고 하시고는 오늘 운동 안가도 된다고 하셨었습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고 방황을 하게 되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제일 좋아하는 운동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에게 빼앗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친구를 만나고, 매일 학교끝나고 놀다가 11시 넘어서 집 들어가고 외박하고, 싸우고, 부모님께 버릇없게 행동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도 많고, 후회스럽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나서 정신을 차렸는지 한 때에는 스터디 플래너를 써가며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스터디카페에서 매일 3시간씩 공부하고 집에 가면 새벽 1시가 되고 그랬는데도 학교에서 등급이 좋게 나오지 않자 정말 공부는 지금까지 꾸준히 해왔던 상위권 학생들과는 비교가 안되는구나 생각하고 부모님께 진지하게 상담했습니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는데 정말 운동이 하고싶다. 미래 지향적으로 생각해봐도 하키를 해서 대학교에 진학하는게 공부로 진학하는 것보다 상향인 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고 이야기 했더니 부모님께서도 열심히 공부 한 모습을 봐오셨기 때문에 동의해 주셨고 저는 그렇게 1학년 시절을 거의 다 보내고 하키부에 복귀했습니다. 성일고 하키부 선수로써 다시 들어가게 되고 나서 2학년이 되어서 죽을둥 살둥 운동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렇지만 경기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고 2학년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운동에 전념했더니 첫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했습니다. 두번째 대회에 나가서 아산고에게 4강전에서 패배 했고 저는 독기를 품고 칼을 갈았습니다. 다음 대회에 나가서 결승에서 슛아웃으로 아산고를 이기고 우승했습니다. 다음 대회에서 칼을 갈고 나온 아산고에게 또 패배하고 그 다음 대회에서 우승 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즌을 전국 대회 3관왕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입상 성적은 우승 3개에 최우수 선수상 1개뿐입니다. 대학교 원서를 넣어야하는데 제가 넣은 곳은 3곳입니다. 골키퍼를 뽑는 대학교가 세 군데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 원서를 넣었습니다. 한국체육대학교와 부산외국어대학교와 여기 순천향대학교였습니다. 한국체육대학교는 실기 시험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떨어졌고 부산외국어대학교는 실기 없이 붙었지만 신생팀이다보니 팀이 유지된다는 확신이 없었고 리스크를 감수 하고 갈 팀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순천향대학교도 원래는 떨어졌지만 추가합격 2차까지 기다려서 기회를 잡고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열정맨 하키부! 활발하고 재밌는 친구 같아 앞으로 더 친해지자:)
좋아 ! 더 친해지자
염준서..짱 멋있다..
역시 열정맨!
내가 항상 응원 할게 열정맨!
우리 앞으로 더 친하게지내자~
열정 열정 열정 !!
하키부 열정 대단한 것 같아 열정으로 꼭 국가대표가 됐으면 좋겠어!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 파이팅!
꿈을 응원해줘서 고마워 😊
우리조 열정맨~ 긍정적인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하키라는 대단한 스포츠를 이어나가고 있는게 멋지다. 앞으로도 멋진 활약을 하기를 바랄게 잘부탁해 ㅎㅎ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 !!
어린나이에 힘든경험을 했구나.. 그로인해서 준서가 더욱 어른스럽게 성장했다고 생각해 항상 긍정적으로 행동하는게 보기좋아 하키 열심히해서 꼭 국가대표가 되기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날 더욱 강하게 하는 법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