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금소리 - 이기철
네가 조금이라도 감상적인 사람이라면 풍금소리에 묻어 있는 낡은 초등학교와 정 들자 전근해 간 처녀
선생님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닦아도 닦아도 빛이 나지 않던 교실 바닥, 귀퉁이가 닳은 나무 책상, 앉으면 삐걱거리는 의자, 분필이
잘 지워지지 않던 칠판, 겨울이면 아이들이 한 개비씩 들고 와 불을 지피던 장작개비, 불을 붙이면 시커
먼 연기가 순식간에 교실을 덮던 조개탄 난로…
거기에 풍금이 있었다 풍금이 있었기에 그곳은 아직도 그리운 곳이다 지붕 위로 저녁놀이 떨어질 때 놀
속으로 Z자의 편대를 이룬 기러기가 날고 운동장에는 버드나무 잎이 물들어 떨어졌다 거기엔 짧은 치마
를 입은 여선생님이 있었다 여선생님의 목소리는 높고 머리카락은 물결처럼 찰랑거렸다 여선생님은 반
드시 풍금과 함께 있었다
풍금소리를 들으면 길을 가다가도 발이 멈추어지는 사람이라면, 지금도 풍금소리를 들으면 기차를 타
고 달려가고 싶은 고향을 지닌 사람이라면, 풍금은 사라진 골동품이 아니라 생각할수록 새록새록 그리움
을 키워주는 길동무, 그가 지금은 고관대작이 되었거나 아니면 이민을 갔거나 그것도 아니면 불행하게
도 공사장 철근에 그만 목숨을 잃은 친구라도 떠올리며 막소주라도 기울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랬을 때 풍금소리는 영원한 생의 단짝친구, 유성기소리처럼 애잔하고 애틋한 생의 반려, 매드라미 같
이 추위 속에 붉게 피는 생의 음표가 될 것이다
( 시집 : '스무살에게' , 수밀원 시선 )
* 사진 : 덕포진 교육 박물관과 이인숙 선생님
( 음악 : Waiting On The Rainy Street - The Daydre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