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에 순천향 대학교 스포츠과학과 24학번으로 새로 들어온 박진 입니다. 저는 2005년 7월 11일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아산 온양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아산 온양에 살고 있습니다. 벌써 아산에서 산지 19년이 되었네요.. 그만큼 아산은 살기 정말 좋은 곳 같습니다. 집도 19년째 같은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완전한 아산 토박이죠.. 저희 가족은 아버지,형,저 이렇게 3명이서 살고 있습니다. 형은 한국체육 대학교에 있는 하키부로 3학년 입니다. 저는 어렸을때부터 장난이 엄청 많아서 장난 꾸러기라고 많이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파란나라 어린이집 이라는 아산에 있는 어린이집을 다녔습니다. 그때는 한창 호기심이 많고 장난을 좋아해서 선생님들도 저한테 호기심이 정말 많다고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코가 많이 약해서 코피가 자주 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코피가 나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닐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학예회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 저는 엠블랙의 춤을 연습해서 췄던 기억이 있습니다. 센터에 스며 저의 끼를 많이 뽐냈죠. 그래서 지금도 춤을 꽤 좋아합니다. 하지만 잘 추지는 못합니다.. 어릴때 가장 안좋았던 기억은 어느 고기집에 갔는데 가스레인지에 덮개가 덮어져 있으서 손을 올렸는데 아주 뜨거워 화상을 입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매우 아팠어서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온양신정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집이 매우 가까워서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때에는 공부를 열심히 했었습니다. 영어,수학 학원도 다녔고 피아노 학원, 미술학원, 태권도 학원, 합기도 학원 이것 저것 많이 다녔습니다. 여러 학원을 다녀 보니 제가 운동 신경이 꽤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초등학교에 있는 운동부 동아리중 하나인 플라잉 디스크 얼티미트 종목 코치를 맡고 계신 선생님께 스카우트가 오게 되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때 플라잉디스크 얼티미트 종목에 선수가 되었습니다. 항상 아침에 일찍 와서 연습을 하고 수업을 들어 갔는데요. 여름에는 땀에 범벅된 채로 수업에 들어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시대회도 나갔었는데 강팀이였던 남성초등학교를 이기고 우승해서 도대회에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천안에게 져서 전국대회엔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에이스라 불릴 만큼 잘 하였으나 더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벽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까지만 하고 플라잉디스크는 접게 되었죠. 저는 달리기도 빨라서 체육대회를 할때마다 계주를 뛰기도 하였습니다. 1등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춤을 많이 췄었습니다. 수련회에 가서 친구들과 남자 아이돌 춤을 추고 초등학교 졸업식때도 졸업 공연으로 방탄소년단 춤을 추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잘 추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때 자전거를 많이 탔었는데요. 항상 학교가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주말에도 자전거를 타고 항상 자전거를 탈 만큼 자전거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천안까지도 가보고 새벽에도 자전거를 탔는데 친구들과 타는게 정말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를 맞으면서 탄적도 있는데 비를 맞고 학교에 와서 학교 수돗가에서 물을 뿌리며 놀았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선명히 기억날 정도로 매우 재밌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아주 빠르게 내려가다 앞 브레이크를 확 잡아서 앞으로 자전거와 함께 덤블링을 한적이 있는데 놀이터에 고무 블럭이 깔려 있어서 다치지 않고 재밌었습니다. 자전거는 아직도 탈 만큼 좋아합니다. 하지만 자전거가 없고 탈 시간이 얼마 없어서 많이 아쉽네요. 초등학생 시절 어떨땐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친구들과 얘기하며 놀기도 하고 옥상 난간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 철없는 행동도 했었습니다... 그때 그런 짓을 어떻게 했는지 정말 옛날의 제가 신기하네요. 겨울이 오면 썰매도 많이 탔는데요.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모여서 집에 있는 썰매를 하나씩 가져와 내리막길을 찾고 썰매를 재밌게 탔던 기억이 있습니다. 썰매는 어렸을때도 지금도 좋아 할 정도로 정말 재밌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 하고 저희 형이 아산중에서 하키부를 하고 있어서 동생인 저도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 와서 형을 따라 하키를 하러 아산중에 가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형 경기를 처음 보러 갔는데 그때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형이 멋있어 보이기도 해서 저도 하키부에 들어갔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대회기간에는 합숙도 해보고 전지훈련도 이곳 저곳 가보며 여러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생활 하는게 약간 어려움이 있었지만 점점 친해지고 편해지다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특히 선배들이 잘 챙겨준 덕분에 하키를 계속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 학교 점심시간에 항상 오는 야구르트 아주머니가 있었는데요. 거기에서 파는 야구르트가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없어져서 정말 아쉬웠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경기에서 주전으로 뛰며 첫 대회에서 우승을 하였습니다. 그떄의 기분은 정말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기뻤었습니다. 내가 팀에 많은 기여를 하고 그로 인해 우승을 했다는 것이 기뻤기 때문에 아직도 많이 기억 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승만 할 수는 없죠. 패배도 해보니 정말 많이 분했었습니다. 내가 좀더 잘 할 걸 이라는 생각도 해보고 왜 진건지 상황을 생각 해보고 개인운동도 히면서 실력을 늘렸고 그렇게 중학교에서 가장 큰 대회인 소년 체전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노력을 한 덕분인지 소년체전에서는 우승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기뻤고 앞으로도 노력을 더 해야겠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그렇게 중2가 끝나고 중3이 되어서 제가 중심 멤버가 되었지만... 하필 그때 코로나가 터져서 몇몇 대회들이 취소가 됐고 가장 중요한 소년체전도 취소가 되어서 많이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처음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그 다음 대회에서도 우승을 했는데 그때 제가 잘했다고 칭찬을 많이 받아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산중과 붙어있는 아산고등학교에 하키를 하러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코로나가 점점 풀리면서 대회들이 다시 열렸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처음 으로 가는 대회는 3학년 2명의 부상으로 아쉽게 졌습니다. 그렇게 3학년 형들이 복귀를 하고 다음 대회에 나가서는 우승을 하고 그 다음 대회도 우승을 계속 했지만 저는 대회 중반 쯤에 무릎 연골이 좋지 않아져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팀에게 정말 미안했고 내 무릎이 많이 원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처음 하는 수술이라서 매우 긴장이 됐었습니다. 환자침대에서 수술실로 이동하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계속 간호사님께 말을 걸고 혼잣말을 엄청 했었습니다. 그렇게 수술실에 도착을 하고 마취를 해야 해서 하반신 마취를 하는데 엄청 떨어서 주사를 어려번 꽂았었습니다. 많이 아팠는데 긴장이 더 돼서 안아프게 느껴졌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몇 일 동안은 거의 걷지도 못했습니다. 그때 옆에서 절 돌봐 주신 아버지께 정말 감사했다고 다시 한 번 전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괜찮아져서 퇴원을 하고 팀에 복귀를 하였는데 아직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 못해서 재활 훈련을 먼저 했었습니다. 팀들은 기술훈련을 하는데 저만 재활 훈련을 하는게 저는 많이 슬프고 미안하기도 하며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빨리 팀에 복귀 하기 위해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복귀를 하고 약간의 불편함을 가지고 전국체전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소년체전과는 다르게 더 큰 대회인 만큼 긴장도 많이 되고 떨렸었는데 우승을 하게 돼서 아주 기뻤습니다. 그렇게 시즌이 끝나고 동계 훈련을 하고 고2가 됐습니다. 고2때도 여러 대회를 나가고 우승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잘 못해서 많이 혼났던 기억이 있네요.. 저는 게임을 매우 좋아해서 고2때 게임을 엄청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이것 저것 재미있어 보이는 게임은 구매하거나 다운로드 해서 플레이 해보고 영상으로도 많이 봤었습니다. 게임은 아직도 좋아 하고 많이 할 만큼 제 삶에서 중요한 취미 생활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배의 권유로 민트초코를 먹어 봤는데 그때 매우 맛있었어서 지금 까지도 민트초코를 좋아합니다. 민트초코를 욕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음식은 햄버거 입니다. 먹기도 편하고 매우 맛있어서 좋아합니다. 그렇게 게임과 운동을 하다보니 고3이 되었습니다. 고3이 된 해는 연초에는 정말 안좋았지만 연말에는 정말 좋았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첫 대회에서 우승을 못하고 다시 시작하고자 머리를 빡빡이로 밀었으나 다음 대회 준비를 위해 스틱 훈련중에 뛰다가 심하게 접질러서 비골이 부러지고 발목 인대도 늘어나고 복숭아뼈 끝부분도 살짝 조각 날 만큼 많이 다쳤습니다. 그래서 발바닥 부터 허벅지 까지 깁스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하키부를 나가야 하나 생각도 하고 후회도 많이 했었습니다. 항상 목발을 짚으며 움직이는게 매우 불편했었습니다. 특히 학교를 가는 날에는 3학년 교실이 4층에 있어서 엘레베이터도 없는 바람에 한칸씩 위험을 감수 하고 올라갔었습니다. 다 올라가면 땀이 흥건 할 정도로 힘들었죠. 시간이 지나고 깁스를 풀고 한동안은 걷기가 힘들었었습니다.그래도 재활운동을 열심히 해서 다 나았고 다른 대회는 다 끝났지만 전국체전이 남아 있었고 전국체전에 나가게 됐는데 다치고 난 후 처음으로 주전으로 뛰는 경기인 만큼 최선을 다 하겠다 생각을 했고 매우 열심히 해서 전국체전 우승에 성공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대회인 만큼 우승하고 나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경기에서 마지막 골을 제가 넣었기 때문에 더 인상 깊고 통쾌 했었습니다. 그렇게 104회 전국체전을 우승해 7연패를 하게 되었고 저는 102회 103회 104회 전국체전 금메달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이 끝나고 대학을 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순천향 대학교가 가고 싶었고 좋다는 학교가 좋다는 소문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순천향 대학교에만 원서를 넣어서 순천향대학교에 하키부로 오게 되었습니다. 비록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그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글을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스포츠과학과 24학번 박진 이였습니다.
첫댓글 어렸을 때부터 하키를 꾸준히하고 우승도 많이 했다는 점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중간중간 큰 부상들도 잘 이겨낸 모습이 멋진 것 같아
저번 수업 때 하키를 했다는 것에 놀랐지만 더 많은 운동들을 접했었구나 많은 부상들이 있었을텐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건 대단하다
부상을 당해도 팀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 멋진거 같아 하키라는 종목이 진이때문에 더 유명해졌으면 좋겠어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치명적인건데 잘 이겨냈다는게 멋있다고 생각해, 하키라는 종목이 축구, 야구, 농구 처럼 대중적이진 않지만 나중엔 유명해져서 이름날리는 유명 선수가 되길 응원할게
운동선수를 하면서 심각한 부상을 당하면 정말 힘들고 포기하고싶었을텐데 그걸 이겨내다니 정말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