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부터 택시를 오랫동안 하다보니 슬슬 지겨움이 밀려왔다.
특히 야간에 술취한 진상들에게 시달리다보면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실업자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럴즈음,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버스였다.
버스는 정해진 노선만 다니면서 택시처럼 승객들 찾아 삼만리로 헤매고 다닐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입금에 대한 부담감 없이 월급을 받는 업종인 것이다.
이것이 버스에 대한 장점인데 택시에 비해 단점도 만만치 않게 많지만 택시일이 너무도 싫었던
그 당시에는 버스의 단점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2002년도에 버스를 운전하기 위한 대형면허를 서울도 아닌 천안까지 내려가서 취득하였는데
같은 시험이라도 서울보다는 지방쪽 면허취득이 상대적으로 쉬웠던 것.
그때는 대형면허증만 있으면 어느 버스회사라도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면허는 취득하였지만 경력이 없었기에 선뜻 버스회사에 취직은 하지 못했다.
한번 노선버스 회사에 입사시험을 보았지만 보기 좋게 낙방.
아무런 경력도 없는 초보자가 처음부터 대형 노선버스를 운전하기에는 무리였다
면허를 취득한지 2년 뒤,마을버스 회사는 취직을 할 수 있었는데 그때 처음 몰아본게 25인승 카운티 소형버스.
비록 소형버스지만 일반 승용차나 봉고차보다는 차체가 훨씬 크고 길었다.
그 차를 택시할때처럼 운전했다가는 곧 대형사고로 이어지기에 익숙할때까지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해야 한다.
지금이야 버스기사 처우가 대폭 좋아졌다지만 내가 첨 운전했던 2004년도에는 지금처럼 월급도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고참들의 텃세가 어찌나 심하던지 나 같은 초보자들은 그 들의 위세에 눌려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들에게 우리들은 소위 "쫄다구"로 불렸다.
아니?쫄다구가 뭐여? 쫄다구가?마을버스회사가 군대여?
그 정도로 회사에 갓 입사한 우리 같은 초짜들에게 마을버스회사는 거의 군대나 다름이 없었다.
경력을 좀 쌓아서 노선버스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고참들의 텃세를 6개월 동안 참아내다가 버스를 때려치게 된
동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회식때였다.
동료들과 즐겁게 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회식이 끝난 후,고참들이 노래방을 가잔다.
고참들이 가는데 나 같은"쫄다구"들은 좋든 싫든 따라가야했다.
근데 노래방에 남자들이 노래만 부르러 가겠는가?
자연스럽게 몇 명의 도우미들이 오게 되었는데 술 거나하게 걸치고 도우미들과 노래를 부르다가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60대 초,중반의 고참들이 조카뻘 밖에 되지 않는 도우미들을 자기 무릎에 앉히고는 온갖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때 내 파트너 도우미가 가장 이뻤는데 고참들의 만행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나와 더 밀착했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여자를 싫어하냐구?
아니?내가 무슨 수도승인 줄 아는가?여자를 왜 싫어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도우미 같은 여자들은 절대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을 너무도 쉽게 살려고 하는 부류의 여자들 같아서 난 아무런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도 없는 여자와 붙어서 춤추고 싶지 않아 그녀에게 얼마의 돈을 찔러주고는 노래방을 뛰쳐 나왔다.
그랬더니 다음날부터 고참들이 나를 엄청 씹어대는 것이다.
"쫄다구"주제에 고참들보다 먼저 갔다고 뒷다마 까고,왕따 시키고,
에잇!~더럽고 치사해서 버스 안할련다!~~
그렇게 때려쳤던 버스를 나는 지금 20년만에 다시 몰고 있다.
물론,지금은"쫄다구"가 아닌 고참으로.
첫댓글 네 그러시군요
너무너무 글을 잘 쓰셔서 잘봤습니다
저도 법인택시운전을 한지가 벌써 5년째네요
택시를 운전한다는게 너무 힘든 거 같습니다
특히 법인택시는 매일 입금을 해야 하고
한 달에 고작 받는 월급도
요즘 말하는 최저임금도 안됩니다
그래서 저도 한달전쯤 대형면허를 시험을 봐서
면허는 취득했습니다
근데 문제는 대형면허 있다고 마을버스회사에서
선뜻 가질 못하네요
요즘 마을버스회사들도 경력이 좀 있어야 되는데
저 같은 경우는 대형면허는 있지만
경력이 없어서요
사실 저도 택시자격증 따기전에 대형면허도
그때도 같이 시험 봤었는데
그땐 대형면허시험은 떨어지고
택시자격시험은 합격한지라
택시라도 해야 되겠다 싶어
하게 된겁니다
근대 막상하고보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피카소님이 말씀하신거처럼
별별 손님들하고 다 겪어봐야하고
그래서 진짜 큰 마음 먹고 대형면허
열심히 해서 따긴 했는데
어디 가서 경력을 쌓아야 할까요
서울 노선 버스 운전을 하는 게 나을 듯 싶은데
그리고 요즘 서울 마을버스는 전기버스로 많이
바뀌더군요
지방쪽은 모르겠지만요
선생님은 글도 잘쓰시고 읽다보면 재미 있어 시간 가는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