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1) (아 2:10-12)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는 말이 있죠. 입춘, 우수, 경칩이 지나면서 봄이 오는 길목에 들어섰어요. 그런데 현실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에요.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죠. 코로나, 산불, 물가․유가․금리 인상, 혼란스런 정계,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국제 사회의 신냉전주의..., 안팎으로 봄은 멀게만 느껴져요.
하지만 마음속 봄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요. 그래서 몇 주 동안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진정한 봄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으면 해요.
첫째로 솔로몬 왕이 쓴 아가서 말씀을 보면서 봄을 맞이해 볼까 해요. 한문으로는 雅歌, 맑고 우아한 노래라는 뜻이죠. 히브리어로 שיר השירים(쉬르 하쉬림), ‘노래들 중의 노래’라는 뜻이에요. 솔로몬이 천 다섯 편의 노래를 지었는데(왕상4:32), 그 노래들 가운데 최고라는 거죠.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길래 최고의 노래라고 했을까요? 사랑이에요. 아가서 전체가 8장인데 ‘사랑’이라는 말이 65회나 반복돼요. 무슨 사랑인가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러브스토리이에요.
솔로몬 왕에게 에브라임 산지에 포도원이 있었는데, 술람미 가족이 소작하고 있었죠.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어머니, 두 아들, 그리고 술람미 딸이 있었어요.
그런데 술람미는 그 가족의 미운 오리 새끼였어요. 콩쥐 같았고 신데렐라 같았죠. 그녀의 오빠들은 그녀를 못 마땅하게 여겨 포도원으로 내 몰았어요. 학자들은 술람미 여인이 오빠들과 이복 형제였을 것이라 해요. 여인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뙤약볕에서 지치도록 일을 했어요. 얼굴이 “게달의 장막”(1:5)같이 검게 그을렸죠.
그러던 어느 날 포도원 주인인 솔로몬 왕이 목동으로 변장을 하고 포도원을 방문해요. 한눈에 술람미를 사랑하게 돼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2:2) 말해요. 검게 그을린 얼굴, 투박한 피부의 여인을 백합화라 해요. 땀 냄새와 흙냄새로 얼룩진 여인, 가시에 찔려 상처가 난 여인을 “향기 나는 여인”이라 말해요.
그리고 술람미에게 관심을 보이자 그녀도 이내 솔로몬 왕을 사랑하게 되는데, 솔로몬이 잠시 궁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여인을 찾아가서 궁으로 데려와요.
그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아가서이죠. 로미오와 줄리엣 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이에요. 때로는 사랑 표현이 강렬하고 농도가 짙고 진솔해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30세가 될 때까지 아가서 읽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 책이 어떻게 성경에 포함되었을까요? 두 사람의 사랑이,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을 비유했다고 해석했기 때문이에요. 어떤 사랑인가요?
먼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찾아온다는 거예요.
8b절에 술람미 여인에게 달려오는 솔로몬의 모습이 있어요.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왕관을 벗어두고, 궁 밖으로 나와서, 쉬지 않고 달려요. 예루살렘에서 포도원까지는 80km의 먼 거리인데, 신하를 보내 여인을 궁으로 부르지 않고 직접 포도원으로 찾아가요.
그런데 이런 솔로몬의 행동은 누가 봐도 이상했어요. 술람미 여인에게 집중하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요. 신분상으로는 결코 성사 될 수 없는 사랑이었어요. 여인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선 가난했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외톨이였죠.
가꾸지도 못하고 일만 했어요. 땀과 먼지로 얼룩진 남루한 옷을 입은 시골처녀였어요. 왕궁에 있는 왕비와 비빈과 궁녀들에 비하면 초라했죠. 여인들조차도 술람미 여인을 흘겨보았어요.(1:6) 그런데도 솔로몬은 그 여인을 만나러 그 멀고도 힘든 길을 달리고 달려서 찾아가요. 신하들이 말리는데도...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솔로몬이 궁전을 버리고 여인을 찾아 나섰듯이, 하나님이 하늘 보좌와 왕관을 놔두고 우리를 찾으러 오셨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사무쳤기 때문에, 그 사랑을 참을 수 없어서, 하늘에서 이 땅까지 멀리 달려 오셨죠.
결코 순탄하지 않은 길이었어요. 솔로몬처럼 골짜기의 위험도 있었고, 산을 넘고 또 넘어야 하는 수고도 있었어요. 마구간으로 가는 길이었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로 가는 길이었어요. 그래서 제자들이 말렸어요.
그럼에도 찾아오신 주님 덕분에 우리에게 생명의 봄날, 영혼의 봄날이 왔어요. 이 주님이 없다면, 우리는 아직도 사망의 동토에 잠자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그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세요. 술람미 여인처럼 가시밭 속에서도 묵묵히 믿음으로 살아내는 우리를 찾아오세요. 외로워도, 억울해도, 사람들이 흘겨보는 눈으로 천대하고 무시해도 우리를 찾아오세요. 일에 지쳐서 초췌해지고, 삶에 찌들어 초라해진 우리를, 알아주시고 꼭 찾아오세요.
술람미 여인을 찾아온 솔로몬이 무슨 말을 하나요?
첫째,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여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다.”(11,12절) 말해요.
봄이 오고 있으니 “일어나라! 나와 함께 가자!”는 거예요. 13b절에서도 “일어나서 함께 가자” 한 번 더 말해요.
왜 이런 말을 하는건가요? 여인이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었기 때문이에요(14a절) 의기소침해서 기가 죽었어요. 사랑하는 솔로몬 앞에 자신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비웃기도 했어요. 그래서 숨었어요.
그러자 솔로몬이 찾아와서 “봄이 오고 있으니 일어나라! 나와 함께 가자! 내 사랑을 믿고 나와 함께 가자!” 말했어요. 봄이 되면 땅 속에 잠자던 씨앗도 싹이 트고 깨어나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는데, 술람미가 은밀한 굴에 들어가 사는 것이 안타깝고 마음 아팠던 것이죠.
우리 주님도 우리에게 "만물이 봄이라고 다 깨어나고 일어난다. 그러니 너도 일어나서 나와 함께 인생길을 걷자! 웅크리고 주저앉아 있지만 말고 내가 함께 할 테니까 내 사랑을 믿고 일어나라! 내가 함께 걸을 테니까 낙심만 하지 말고 일어나라! 봄이 왔으니 일어나라.” 하세요.
성경에서 정한 3대 절기가 있죠.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이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절기 때마다 읽는 성경책이 있어요. ‘유월절’에는 ‘아가서’를 읽고, ‘오순절’에는 ‘룻기’를 읽었으며, ‘장막절’에는 ‘전도서’를 읽어요.
오순절은 칠칠절, 맥추절이라고도 하는데, 이때 룻기를 읽은 이유는, 룻기의 배경이 맥추절 시기였기 때문이죠. 장막절에 전도서를 읽은 이유는, 추수를 하고 장막에 곡식이 풍족할지라도, 이 세상에서의 모든 것은 결국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그렇다면 유월절에는 출애굽기를 읽을 것 같아요. 출애굽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절기니까요. 그런데 의외로 아가서를 읽어요. 왜 그랬을까요?
출애굽의 시작이 사랑이었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조상들이 애굽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사랑에 의지해서 일어나서 계속 출애굽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계절과도 연결성이 있어요. 유월절은 태양력으로 3월~4월이에요 봄이 왔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이제 일어나라는 것이죠.
영적으로 잠자던 자리에서 깨어나서 출애굽 하라는 거예요.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죠. 가나안을 향해 일어나 걸으라는 것이죠.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출 애굽’의 삶을 살라는 거예요. ‘출(出) 낙심’하고 ‘出 원망’하고, ‘出 절망’하고 ‘出 고통’하고, ‘出 슬픔’하라는 거예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주님의 사랑을 믿고 일어납시다! 일어나서 출애굽의 길을 걸어가시길, 그래서 가나안의 행복을 여는 봄날이 되시기를 축복해요.
둘째,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14b) 말해요.
사랑하니까 얼굴을 보고 싶어 해요. 보고 싶어서 80km를 한 걸음에 달려왔어요. 그리고는 “얼굴을 보여 다오.” 애태워요. 만나고 싶고,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모습이 역력해요. 검게 그을린 얼굴, 삶에 찌든 얼굴인데...
겨울도 지나고 봄이 되니, 땅에 새싹들도 얼굴 내밀고, 꽃들도 얼굴을 내밀고, 나무마다 다 새 눈으로 얼굴 내미는데, 사랑하는 사람은 어두운 굴에 있으니 애간장이 녹는 모습이에요.
주님께서도 같은 마음이세요. 우리의 얼굴 보기를 원하세요. 우리에게 말 “애원했던 얼굴, 보고 싶은 얼굴은 너였다!” 말씀하세요. “만물이 다 얼굴 내미는 봄이 되었는데, 네 얼굴도 좀 보자.” 하세요.
무엇으로 얼굴을 보여 드릴 수 있나요? 예배와 섬김이에요. 예배로 얼굴 도장 찍고, 섬김으로 얼굴도장 찍는 일에 좀 더 열심이시길 바래요. 숨어 있는 자리, 어두운 자리에서 예배로 나오시고, 섬김으로 나오시길 바래요.
우리가 너무 오랜 만에 만난 사람에게 장난으로 하는 말이 있죠. “얼굴 잊어버리겠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말을 진심으로 하실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 주님을 아는 척 하는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마7:23) 말씀하 세요. 몰라서 모른다고 하시는 게 아니라, 그동안 너무 서운해서에요. 그동안 도무지 얼굴을 보이지 않아서이죠.
개구리도 겨울잠에서 깨서 얼굴 내미는 경칩도 지났으니, 우리도 주님께 예배로, 섬김으로 얼굴 내미는 일에 더 열심을 낼 수 있기를 바래요.
사무엘에 대한 말씀을 읽을 때 감동하는 것이 있어요.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삼상3:3)
당시는 사사시대 끝자락이죠. 사회도 어둡고 교회도 어둡고 깜깜했죠. 제사장도 잠들었고 타락했죠.
그런데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가 있는 성전에 누웠어요. 당시 제사장이었던 엘리도 자기 처소 침상에 누워있었죠. 그런데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가 있는 성전에 누웠어요. 사무엘만이 하나님께 얼굴을 보이고 있었어요.
하나님이 바로 그 사무엘을 이스라엘의 등불이 되게 하세요. 말씀이 희귀하던 그 시대에 그 사무엘에게 말씀을 맡기세요.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이는 사람을 통해 일하세요. 더 오래 얼굴을 보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것을 맡기세요. 그 주인공이 우리게 되기를, 우리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해요.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이런 말도 해요. “네 소리를 듣게 하라.”(14b절)
겨울도 지나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데, 사랑하는 여인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술람미 네 소리를 듣게 하라.”고 애태워요. “문 닫고 들어가 침묵만 하지 말고 말해봐라.”였어요.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견딜 수 없어 답답해했어요. 사랑하니까 원하는 것을 들어 주고 싶었어요.
이 봄에 우리 주님도 우리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세요. 봄이 오는 소리를 만물이 내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인 우리는 더 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찬양으로 소리를 내고, 기도로 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침묵하던 내 찬양의 소리, 기도의 소리를 하나님께 들리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시는 주님께, 우리 소리를 듣고 싶어 하시는 주님께, 많이 보여 드리고 많이 들려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해요. 그래서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리는 우리가 되길 축원 드려요. 그래서 우리에게 더 맡겨 주시고, 우리의 소원을 더 들어 주시는 은총을 입기를 축원 드려요. 아멘!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