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일기(48) - 구미, 금오산을 걷다
1.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경북 구미는 여유롭고 풍요로운 인상을 준다. 대구 못지않게 세련된 건물들이 많고 도시는 크고 활력이 넘친다. 구미는 또한 성리학 연구의 중심적인 지역이며 오래되고 전통적인 문화가 곳곳에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박정희와 성리학은 한국 사회를 한동안 지배했던 강력한 힘의 상징이다. 힘이 가지고 있던 긍정성과 부정성을 논의하게 앞서 그 자체로 압도적인 주류의 구심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구미는 한국의 오래된 전통과 주류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2. 구미의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추적하는 것과 관계없이 구미역은 ‘역’에서 시작되는 멋진 답사 코스를 가지고 있다. 구미의 대표적인 명산인 금오산을 도보로 답사할 수 있는 길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구미역을 조금 지나면 금오산길이 나타나는데, 이 길은 금오천을 따라 구미의 세련된 음식점과 카페 거리를 지나 금오산 산책길로 이어진다. 길옆에 늘어선 나무들과 최근 유행이 되고 있는 ‘맨발’길을 지나면 금오산 등산을 안내하는 출입구가 나타난다. 약 1시간의 구미역에서 금오산 입구까지의 산책길은 여유로운 휴식을 위해 적절한 거리와 강도를 지니고 있다.
3. 금오산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약 3.3km 정도이다. 코스의 강도에 따라 힘들 수도 있는 거리이다. 방송에 나왔던 연예인들이 6시간 넘게 힘들게 걸었던 지리산 코스도 약 6km가 조금 더 된 거리였다. 산에서 1km는 무척 멀고 힘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금오산은 바위 ‘악’자가 들어가지 않지만 돌이 무척 많은 산이다. 계단으로 만들어진 길 이외에는 대부분 돌밭에 가까운 돌길을 올라가야 한다. 1시간의 가벼운 금오천 산책 후에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했다. 한동안 계속 위로 올라갔다. 평지가 거의 없는 오르막 코스이다. 1시간 30분 정도 오르자 갈림길이 나타난다. 한 쪽은 마애불 방향이고 다른 한 쪽은 정상이다. 마애불 쪽으로 이동한 후에 다시 정상 쪽으로 등반했다. 마애불 이동 방향은 조금 경사가 완만해졌다. 등산을 할 때에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다. 고통 그 자체를 수용할 뿐이다.
4. 정상에 올라왔을 때 쾌감은 컸다. 너무도 좋은 날씨와 거칠 것 없는 구미시의 전경이 반겨주었기 때문이다. 쾌청한 하늘 덕분에 한없이 먼 곳까지도 한 눈에 들어왔다. 호수와 도로 그리고 그 사이에 건설된 도시의 풍경은 무척 정돈된 인상을 주었다. 이런 시원한 기분과 쾌적한 공기를 느끼기 위해 등산을 한다고 하지만, 나는 등산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산을 오를 때의 고통도 크지만, 다만 고통을 이겼다는 단순한 감흥만이 남기 때문이다. 산 정상 입구에 써있는 “오늘의 고통은 내일의 발전을 위한 도전이다.”라는 문구는 분명 설득력있는 말이지만 왠지 상투적으로 들릴 뿐이다.
5. 사실 금오산 등반을 시작한 것은 ‘산’ 자체보다는 그 곳에 금오산성과 금오 마애불이 있기 때문이었다. 산에 숨어있는 산성과 불상 들은 산을 올랐을 때만 바라볼 수 있다. 나에게 산이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그 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산 속에 산성과 불상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시간의 풍파 속에서도 살아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과 불상을 만나게 되면 ‘지속한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존재하는 것은 결국 사라지지만, 돌은 그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웅장하면서도 굳건하게 자신의 정체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산 입구에 단단하게 서있는 성(대혜문)에서 역사의 시간과 현재와의 연결성을 찾을 수 있다면, 자연적인 암석을 깎아 만든 마애불은 우리들의 존재가 사라져도 영원히 남을 이상적인 모습을 꿈꾼 인간의 의지가 담겨있는 듯하였다. 세련되지 않고 표정없이 무뚝뚝한 부처님의 모습은, 존재한다는 것은 세속적인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며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가치에서 찾아야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특별하지 않고 세속적인 우아함이 없을지라도 그 자체로 ‘남아있음’(살아있음)이 ‘존재’의 아름다움이다.
첫댓글 - ‘남아있음’(살아있음)이 ‘존재’의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