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잠 16:1-9)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마을의 농부들이 하나님께 요청을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농사 전문가들입니다. 제발 하나님 마음대로 날씨를 주장하지 마시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년만 날씨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하나님이 농부들의 요구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다음부터 농부들이 비를 원하면 비를 주시고, 해를 원하면 햇빛을 비춰주시고, 바람을 원하면 바람이 불게 해주셨습니다.
그해 가을에, 농부들이 원하는 대로, 곡식이 잘 익었습니다. 풍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탈곡을 했는데, 영양가가 하나도 없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농부들은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농부들에게 “나는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그동안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이 너희 눈에도 좋지 않아 보여도, 다 너희를 위한 나의 배려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농부들은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가장 제일 지혜로운 일입니다.
오늘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할 때, 큰 은혜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을 섭리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계획과 결정, 일의 의도를 판단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또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렘 33:2)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행사와 계획을 인도하시며, 친히 성취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 맡겨야 할까요?
첫째, 모든 계획의 응답은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아멘.
“마음의 경영”은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으로 세운 계획, 목표”을 뜻합니다.
“말의 응답”은 “일의 성취 또는 결과”를 뜻합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 나온다.”는 말은, “모든 계획과 목표의 최종적인 응답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계획을 세우고, 탁월한 지혜를 써서, 일을 성취하려고 몸부림쳐도, 사람이 계획하고, 목적한 바를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생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계획을 세우고, 꿈을 꾼다고 그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재를 하셔야 됩니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갑니다. 일의 성패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성공하도록 돕지 않으면, 아무리 완벽하고, 훌륭한 계획과 목표라도, 결국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일을 계획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계획을 세우되, 계획한 것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잠언 19:21절을 보면,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애쓰고 힘쓰더라도, 몸부림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입니다.
홍수로 인류가 멸망한 후,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다시 세상에 사람이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세상의 언어는 하나였습니다.
사람들은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시날 평지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홍수로 인류가 멸망한 것을 기억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3-4)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 11:6-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불신과 반역을 꺾기 위하여, 세상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고,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셨습니다. 바벨탑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교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우리는 바벨탑을 쌓아서는 안됩니다.
물질에 대한 바벨탑, 명예에 대한 바벨탑, 정욕에 대한 바벨탑 등을 쌓아서는 됩니다.
이것들이 한 순간은 잘되는 것 같지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결국 헛수고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계획의 응답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영국에 윌리엄 카우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여도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32세 때에 죽을 결심을 하고 수면제를 먹고 누웠으나, 이상하게도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어느 날은 테임즈 강에 빠져 죽으려고 마부에게 돈을 주고 역마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떨어져 죽을 장소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화가 나서 마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이번에는 부엌칼을 놓고 그 위에 쓰러져 죽으려고 했는데 칼날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다음날에는 목을 매달았습니다. 이제 진짜로 죽는 줄 알았는데, 깨어나 보니, 목매었단 줄이 끊어져서, 자신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며칠 후, 그의 손에 어떤 책이 잡혔습니다. 그 책은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그는 그 책을 들추어 보았습니다. 로마서를 읽어 보게 된 그는 그제서야 하나님은 신비스러운 능력으로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소홀히 하고 포기하려고 했던 것을 회개하고, 산다는 것에 감사와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때의 심정과 느낌을 표현하였는데, 그것이 옛날 통일찬송가 80장입니다.
“주 하나님 크신 능력 참 신기하도다 바다와 폭풍 가운데 주 운행하시네
참 슬기로운 그 솜씨 다 측량 못하네 주님 계획한 그 뜻은 다 이뤄지도다
검은 구름 우리들을 뒤덮을지라도 그 자비하신 은혜로 우리를 지키네
어둠에서 소경같이 나 헤맬찌라도 주 나를 불쌍히 보사 앞길을 비추리”
여러분!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생명을 포기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계획과 그 응답이 여호와께 달려 있음을 믿고, 자신의 계획에 앞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야 할까요?
둘째, 모든 행사를 여호와께 맡길 때,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아멘.
“맡긴다”는 말은 우선, “굴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일이 여호와께로 가도록 굴린다”와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굴러가게 한다”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는 것은 “무엇을 굴려 버리듯이, 우리의 모든 만사와 계획한 것을 주님께 의탁하고, 주님의 뜻대로 되도록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주님의 뜻대로 굴러가도록 힘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갈 때, 그냥 각자 원하는 대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항하여 굴러가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뜻대로 굴러가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굴러간다는 것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삶의 목표뿐 아니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도,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신앙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거짓을 행하지 않고 진실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더 빨리 성공하기 위해 편법을 쓰지 않고, 주께서 명하신 방법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순리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불신앙과 불순종보다는 신앙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만하기보다는 겸손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맡긴다”는, “굴리다”라는 뜻 외에, “던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맡긴다”는 말을 “소중히 보관한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한 마디로, 내가 무엇을 맡긴다면, 반드시 그것을 다시 찾으러 온다는 개념으로 사용합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는 돈이 있으면, 은행에 돈을 맡깁니다. “은행에 돈을 맡긴다”고 했을 때, 반드시 다시 와서, “그 돈을 찾는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맡긴다”라는 말은, “다시는 미련을 두지 않고, 내어 던져 버리듯이 맡겨 버린다”는 말입니다.
길을 걷다보면, 전봇대 옆이나, 담벼락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라는 글귀를 볼 때가 있습니다. 버리지 말라고 하는데도, 어떤 사람들은 쓰레기를 마구 버립니다. 쓰레기를 불법으로 버립니다. 그 쓰레기 버리는 사람은, 다시 그것을 찾을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다시 꼭 찾으러 오겠습니다”라는 메모를 남길까요?
쓰레기 버리는 사람은, 그것을 다시 찾을 생각을 가지고, 버리지 않습니다.
쓰레기는 미련을 두지 않고 내어 던져 버립니다.
“맡긴다”라는 말은 쓰레기를 쓰레기장에 완전히 던져버리듯이 던져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와서, 그 버린 쓰레기를 반드시 찾겠다는 마음으로 버리지 않습니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그것을 다시 찾을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쓰레기는 아무 미련을 두지 않고, 내어 던져 버립니다. 뒤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아까워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찾아가지도 않습니다. 다시 찾을 생각도 갖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고통을 여호와 앞에 내어 던져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와 짐을 내어 던져 버리듯이 맡겨야 됩니다.
여호와께 맡겨야 여호와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내가 해결하려면 힘이 들고 더 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맡기면 비로소 주님께서 우리 인생에 오셔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의 시작과 과정과 결과를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겨야 합니다.
엘리사 호프만 목사님이 실바베니아에서 목회할 때입니다.
슬픔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을 심방한 호프만 목사님은 낙심하고 있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사정을 모두 털어놓은 후 “목사님, 어쩌면 좋지요?”라고 물었습니다.
호프만 목사님은 “예수님께 모든 슬픔을 맡기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눈을 번쩍 뜨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호프만 목사님은 돌아오면서, 그녀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서재에 앉자마자, 호프만 목사님은 찬송을 써 내려가고, 이어 작곡을 하게 됩니다.
그 찬송은 337장인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입니다.
1절: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2절: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3절: 내 짐이 점점 무거워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내 대신 짐을 져 주시네
후렴: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라고 말하지만, 맡기지 못하고, 그것을 이루고자 몸부림칠 때가 많습니다. 나중에 후회할 때가 많습니다.
“왜 하나님께 맡기지 못했을까?”
지금까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물질을 믿고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라도,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일을 결정하고 난 후, 그 일에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내 뜻대로 결정하고, 행하면,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영국의 스트라칸 목사님이, 어느 날 서재에서 친구와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그의 딸이 들어왔습니다. 딸의 줄넘기 줄이 엉망으로 엉켜 있었습니다. 그의 딸은 아무 말도 없이, 그것을 아버지에게 건네어 주고, 조용히 방을 나갔습니다. 그는 친구와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으나, 무심결에 그 줄의 매듭을 다 풀었습니다. 잠시 뒤에, 그의 딸이 들어와, “아빠, 고마워요!”하고, 줄넘기를 가지고, 깡충깡충 뛰어 나갔습니다.
스트라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이와 같은 태도를 가질 수는 없는지요? 우리의 문제를 주님께 맡겨, 주님께서 그것을 다 해결하게 할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자기의 힘만으로 해결하려고 그토록 애를 씁니까?”
우리는 행사, 계획, 준비,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지혜와 학업 등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학생은 학문의 세계와 지식의 진보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진로를 걱정하는 젊은이는 그 나아갈 길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는 젊은이는 배우자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이는 사업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건강도, 가정의 문제나 대인 관계의 어려움도 모두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야 할까요?
셋째, 여호와는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걸음을 인도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계획한 것을 지도하시고, 이끌어주신다”는 뜻입니다.
다른 스포츠 경기도 마찬가지이지만, 축구를 보면, 축구장에서 열심히 뛰는 선수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독도 있고, 코치도 있습니다. 경기를 하다, 골을 넣으면, 골을 넣은 선수도 보여주지만, 그 순간, 감독의 모습도 자세하게 보여 줍니다. 경기에서 승리하면, 감독의 위상이나, 몸값이 올라갑니다. 물론 골을 넣은 선수도 유명해지지만, 그 팀을 이끈 감독도 유명해집니다. 반대로, 이길 수 있는 경기하고 생각했는데, 형편없이 경기에서 지면, 곧바로 감독을 교체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감독은 경기장에서 뛰는 사람도 아닌데, 시합의 승패에 영향을 받을까요? 감독은 그 팀을 지도하고, 이끄는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히딩크 감독을 기억합니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신화를 기록했습니다.
선수들이 잘 하고 못하고는 지도자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지도하고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선수들은 훌륭한 지도자, 능력있는 지도자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지도자를 잘 만나면, 그만큼 실력이 향상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지도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 큰 은혜를 받은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계획 등,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의 생각대로 하고자,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결정하지만, 일의 결과를 보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삶이 인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죽을 뻔하다가 상인에게 팔려 애굽에서 갖은 미움을 받아 고난을 겪었습니다. 애굽에서 요셉은 보디발의 종으로 일하다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쳐서,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음으로, 요셉은 모든 시련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여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칠년 흉년으로부터 애굽을 건지고, 나아가서 기근으로 고생하는 아버지 야곱과 자신을 팔았던 형들까지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죽을 곳에서 살리시고, 낮은 자리에서 높은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비록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낯선 이국 땅으로 팔려 고난을 겪었지만, 이것은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고 난 후, 요셉이 그들을 벌할까봐 두려워 떠는 형들에게, 요셉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창 50:29)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인생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호와께 맡겨야 합니다.
영국의 허드슨 테일러는 어려서부터 철저한 신앙 훈련을 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단하고 중국의 선교사를 지원하였습니다. 선교회에서 허드슨 테일러를 후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중국에 도착한 테일러는 후원하는 선교회 덕분에, 어려움 없이, 선교 활동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 본부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선교비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기에 후원금을 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본국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테일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선교 활동을 더 하고 싶지만, 중국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테일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던 중에 테일러는 구약성경의 두개의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사무엘이 고백한 “에벤에셀”, 즉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셨다”는 말과 아브라함이 고백한 “여호와 이레”, 즉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는 말이었습니다.
테일러는 성경 말씀처럼 중국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앞날도 준비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중국에 남아 복음을 전하리라고 결심하였습니다.
중국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고 함께 먹고 자면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테일러를 굶기지 않으셨습니다.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더 풍성하게 해 주셨습니다. 동역자도 보내주셔서, 선교사역을 돕게 하셨습니다. 후에, 그는 중국 선교의 아버지로, 중국인들에게 기억되었고, 지금도 많은 선교사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사와 계획들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김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날마다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고,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 지금 이곳에 함께 하여 주시고,
임마누엘의 하나님, 항상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고,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 우리의 육신과 마음의 질병을 치료하여 주시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여 주시고,
여호와 샬롬의 하나님,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시고,
여호와 로이의 하나님,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시니
우리의 모든 생각과 계획을 주님께 모두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