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이반도 시나이사막의 파이란 오아시스를 지나 내륙에 위치한 시나이산은 표고가 2287미터로 그옆에 가타리나산이 보이고 웅장하고 거대한 산들이 쭉주위에 보인다.
양을치던 모세가 오늘의 시나이산인 호헵산에서 출애급사명을받았고 또 여기에서 십계명을 받았으므로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에서는이를 거룩한산으로 여기고 있디.
울통불통 골이진 화강암으로 뒤엉킨 산줄기가 아침 햇살을 받으면 더욱 생동감을 주는데 시간에 따라 그빛깔이 바뀐다. 이루 형언할수없는 장관이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때 서 있었다는 정상지점에 조그마한 모세기념성당이 자리잡고있으며 그리스정교회 소속이다. 일출때는 이곳에서 기념사진들을 찰
각.. 하산은 북쪽 이드로 골짜기를 따라내려오게되는데 (지름길인 3천계단길이 있으나 젊은사람들만이 그루트를택함) 골짜기중간에 가타리나 수도원이 있다 . 잠시
휴식을취한후 수도원안으로 들어갈려고 하였으나 09:00부터 문을개방함으로 밖에서 기다리며 등정한 산에관하여 서로들 이야기하였다.마치 인종전시장 시장터같았다.
이수도원은 콘스탄티누스황제 의 어머니 헬레나가 시나이산을 순례하고나서 기념경당을 짖도록하여 342년에 세워진것이 그모체이다.현재까지 잘보존되고 있는 수도원
건물과 성당은 530년 유스티니아누스황제에 의하여 건립된것이다. 문을개방하자 모두가 줄을서서 차례로 수도원안으로 들어가 모세가 보았다는 가시나무떨기 가 보존
된 곳에서 떨기나무 배경삼아 모두가 기념사진 찰각..
이수도원은 그리스정교회에서 유지되고 있는데 특이한것은 1106년에 세워진 이슬람
사원이 이수도원 뜰안에 함께있었다.
밖으로 나와 조식후 대기중인 차로 아라비안만 해변을 따라 북으로 달려 국경선 타부에 도착한것입니다.
이제부터 국경넘는 이야기을 해야될것 같군요.
이제까지 우리를 태워준 에짚트 차량은 돌려보내고 도보로 걸어서 비무장지대처럼 철조망이 처진 곳의 끝까지 걸어가 에짚트 건물의 문으로들어가 출국신고서와 여권을 제출하였다.
컴퓨터조회와 본인여부확인후에 총을든 경비원앞에서 보안검사를 받고 무사히 통과되자 여권에 츨국확인을 해주었다. 이상하게 입국시보다 더욱엄숙하고 철저하게 검사를 하는것이 이곳국경선이다. 의아스러웠다.
에짚트출국관리소 건물을 통과하면 다시 아스팔트길을 150 미터쯤 걸어가면 이스라엘 출입국사무실이다.
산뜻한 흰색 건물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자국민인 일가족이 앞에서있어서 뒤에 슬근머니 줄을서 순서을 기다렸다.
일단 자국민일지라도 재입국시에는 상당히 업격하게 질문하고 조사하는것이 우리를 약간은 당황하게 했다. 괸리업무 종사자들이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며 입국심사자
들은 여자들이지만 군복을 입고근무하여 부위기가 엄숙하였다.
차례가 되어서 여권과 입국신고서를 제출하자 우선영어를 잘 하느냐고 질문한다.
더듬거리자 한참동안 주시하고 여권을보고 켬푸터로 입력하고 하드니 입국신고서에 돌아 가신 아버님 성명을 기입하도록 하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상부에 전화로연
락하여 지침을받고서야 내여권에 빨간색 팁을끼워돌려준다.이제 휴대품보안검사실로 이동하라는것이다. 힌색,노란색,빨간색 3가중 내여권에 끼워준 빨간색 팁은
개인이 특별검사실로 들어가 조사를받어야 되는것으로 알고있었기에 ....잠시 기분이 불쾌했다. 뭐 조금전 이짚트 출극시 철저히 검사를 한터고 나름대로 준비하였기
에 안심은 돼었지만 너무 이곳에서 시간이 오래걸릴것만같아 조마조마 하였다.
뒤를 흘깃돌아보니 몇몇사람은 거의다 일반적검사인 노란색 팁이다.
빨간색팁이 끼워진 여권을 들고 다음검사실로 들어가니 휴대품은 그대로 엑스레이 투시기에 올려놓고 옆으로 가서 보안기로 몸수색을 하는 일반 검사후 이상이 없자
오케이다.이상하게 너무간단하였다 후에 안일이지만 주기적으로 이제도를 변경하여 외부인이 알지봇하도록 하는것이다. 빨간색팁은 검사가 필요없는 무사통과란 의미란
확실이 보안검사는 어느나라보다 철저하고 세밀하게 조사한 느낌이었다.이런검사는 안전과생존에 관한사항이라 우리가 협조해야할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처럼 철저하게 검사해야만 모두가 안전하게 생활할수있으니 기분 상한일이 아니라 감사하고 수고하는구나하여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드디어 마즈막 심사장에서 여권에 입국허가 사증을 내주었다. 여권을 돌려받아들고 통로를 따라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아카바만의 바다바람이 시원하게 머리를 식혀준다.
이제부턴 이스라엘땅이다. 활짝핀 이름모를 꽃들이잘조화를이루고 집들이 질서있게 지어진 도로를 따라 자동차는 시원스럽게 달렸다.
1시간즘 달리니 오른편 길가에 아일랏공항입구 표말이보이고 비행기들도 보였다.이곳에서 조금더 북쪽으로 달려 가니 사해가 나왔다.
다아시겠지만 사해는 길이가75km 폭16km,수면면적이 900평방km이고 최대수심은 380m정도 된다. 지중해해면보다 390m낮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지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어떤생물도 존재하지 않기때문에 죽은바다.즉 사해하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의 바다물은 세계에서 가장 짠물로되어 있는데 보통바다물의 염분 농도가 4~6%인데 비하여 부려 5배나 많은 26%의 염분농도를 가지고 있다. 짜다는표현보다 쓰다고 할것이다.
요르단강을 비롯한 여러지류들로부터 황과질소 성분을 함유한 수만톤의 물이 쏟아져 들어와 다른곳으로 흘러가지 않고 이 곳에 고여 있기 때문에 고농도의 화학물질이 풍부하다.그리고 요르단계곡의 폭염에 노출되어있는 이물은 계속되는 증발로 인해 화학물질 침전현상이 생겨난다. 이러한 풍부한 광물질이 포함된 사해는 병의 치료에 독특한 효험을 나타낸다.이곳에는 10억미터톤에 달하는 엽화칼슘과 마그네슘, 나트륨, 칼륨,등이 용해되어 있다고 한다.이곳의 비중은 1166으로호써 사람의 몸이 물 속에 가라않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혀 몸동작을 하지않아도 물 위에 떠서 휴식을 취할수 있다. 허지만 수영은 금지된곳이고 물속에선 주의를 요한다. 어쩌다 잘못하여 눈에 물이 들어가거나 물을먹게 되면 고통은 매우 심하다. 즉시 밖으로 나와 설치된 샤워물로 씻어내야 한다.
국가에서 철저하게 관리하여 광광자원으로 활용하고 또한 이곳의 부산물을 가공하여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니,죽은바다로 봉이김선달마냥 앉아서 관광수입을 올리는 노다지 바다인셈이다. 이곳 시설로는 사해 해저에서 퍼낸 입자가 고운 머드로 전신팩을 한후 일광욕을 한후에 머드가 마를쯤 바로 옆에 있는 샤워에서 씻어낸다.특히 주의할 사항은 머드를 바륺후에는 절대로 웃거나 이야기를 많이 하면 안된다.많은 이용자들이 해수온천물로 샤워을 노천에서 할수있도록 설치해 놓아 새까만 몸둥이들이 금새 금발,황인종의 원색수영복으로 현란하다.
샤틀카를 타고 실내온천장으로 이동하여 유황과카리움이 풍부하게 함유된 온천에 몸
을 담구면 모든 여행피로가 말끔하게 풀린다. 물론 실내온천물도 짠물이다.유럽인들은 햇빛부족으로 생긴 피부병과 관절염등을 치료하기위하여 노년의부부들이 이곳에서만 20여일씩 휴양을 보낸다고 한다.
인근의 꿈란 유적지에서는 이곳의 개발가공 특산품인 비누,각종 화장품류들을 팔고있습니다.
꿈란 유적지는 1947년 사해 서쪽지역에서 길잃은 양을 찾아 헤매든 한 베두인 사람이 이시대 최대의 발견인 그 유명한 사해두루마리를 발견했다. 모하메드 에디브라는 이 아랍 양치기는 잃어버린 양을 찾던중 어떤 동굴에서 무심코 돌을던졌다.그러자 무었인가 깨지는소리에 놀란 이양치기는 이동굴에 마귀가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서워서 도망쳐버렸다. 다음날 그의 사촌과 같이 다시 동굴에 들어간 양치기는 그안에서 8개의 항아리를 발견했는데 그중 몇개는 뚜겅이 덮혀 있었다.이것을 밖으로 가져와 금이들어있기를기대하며 열어보았으나 그들이 이해할수없는 글자가 쓰여진 가죽뭉치만 있는것을 보고는 실망해 버렸다. 총7개의 두루마리가 들어 있었는데 , 양치기는 그것을 칼힐칸도라는 시리아정교인에게 가지고가서 팔아넘겼다.칸토는 그중 4개의 두루마리를 예루살렘에사는 시리아정교회 대주교에게 보였다. 재주교는 4개의 두루마리가히부리어로 쓰여졌다는것을 발견하고 즉각 사들였으며두루마리가 매우 귀중한 것이라는것을 깨닫고 미국으로 건너가 이겔 아딘이라는 교수에게 25만달러을 받고팔았고, 그후 이스라엘로 옮겨졌다. 이거래는 아딘의 아버지인 엘리자 슈케닉교수가 베들레헴에서 나머지 3개의 두루마리를 이미 사들인후였다.이두루마리들은 현재 엘루삼렘에있는 이스라엘 박물관에 있는 고문서고에 보관되어 있다.
이들중 가장 유명한것은 세로0.3m. 7.2m 인 이사야의 두루마리이다. 이후 요르단 왕국 암만박물관장 헤딩교수와 성서 연구소장 드보신부와 많은 베두인 사람들은 두루마리의 높은가치를 알고 사해의 서쪽지역을 뒤지기 시작했다.1952년 이지역 30개가 넘는 동굴에서 900개가 넘는 두루마리를 발견하였으며 꿈란에서 90m밖에 떨어져있지않는 4호 동굴에서 가장 많은 필사본을 발견하였다. 그중에는 가죽과 파피루스에 쓰여진 두루마리외에 구리에 쓰여진 것도 두개 있었다.
사해의 두루마리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에쎄느파 사람들이라고 한다.에쎄느파 사람들은 당시의 부패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사해 주변의 뜨거운 사막으로 이주했던 종교적 집단이었다.그들은 엘루살엠을 버리고 이곳 사막에서 기도와 학습, 명상과 자선, 시 등에만 몰두하는 엄격한 생활을 했으며, 모든 재산을 수도원에 헌납하고 완전한 집단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이들을 가르켜 요세푸스는 "완벽한 공동채"라고 묘사했다.
기원100 여년 전에 꿈란지역에 정착한 그들은 B.C. 31년에 있었던 지진으로 이지역이 파괴되어 이곳을 떠나야 했다. 30년이 지난뒤 다시돌아온 그들은 작은 마을을 재건하고 재정착했다. 이들은 A.D. 68년 엘루살렘에서 일어난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진격하전 티루스의 군대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말았으며 로마 군대가 몰려왔을때는 그들의 소중한 보배인 성서를 주변 동굴에 급히 숨겨야만 핶다.어떤것들은 사람의 발길이 잘닿을수 없는 절벽동굴에 숨겼는데 1947년 우연히 발견될때까지 뜨거운 사막이 그들의 비밀을 2000년동안 지켜주었던것이다.
아라드시가지는 해발420미터의 고원지대에 있었다.사해와의 표고차는 무려 8백여미터나 되는곳이다. 때문에 숙소인 임페리얼호탤의 아침공기는 매우차가운 기분이다. 다시 자동차 여행은 시작되었다.북으로북으로 소돔과고모라의 불바다가된 소돔에서 잠시내려 소금산과 소금돌덩이를 깨어보았다 모든돌들이 소금덩이다.
소돔이 유황불로 불바다가 될때 계시를 어기고 뒤를쳐다보다 그자리에서 돌화석이되었다느 웹의아내 전신상 의전설이 있는 바위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찰각.
드디어 갈리레아 호수가보이는 티베리아스에 도착하였다, 갈릴레아호수 서쪽에 자리한 이곳은 지중해면수면보다 205m낮으며 A.D. 26년에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세워졌는데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티베리아로 명명되었다. 헤로데왕은 이곳에 아름다눈 궁전과 극장, 금과 대리석으로 빛나는 성전을 지었으며 병을 치료하는 탁월한 효험으로 전 로마제국에 이름나 있던 이곳 온천위에 공중목욕당을 세웠다. 티베리아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로 정평이나 있는곳에 위치해 있으며 요세푸스에 의해 "대자연의 야망"이라고 모사된 곳이기도 하다.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유대인들에게 성스럽게 여겨져 왔었다. 바르 코흐바의 반란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이곳으로 이주하여 제2의 에루살렘을 건설하였고, 이후 위대한 율법학자들이 활동하게 되었다. A.D 200년에 미슈나가 편찬되었고 4세기말경에 예루살렘탈무드가 완성되었으며 히브리 언어에 모음과 구두법이 소개된곳도 바로 이곳이다. 많은 율법학자들이 이곳에 묻혀있다. 기적을 행했던 사람으로 정교회 유대인들에게 크게 존경받고 있는 2세기경의 율법학자 메이르도 이곳에 붇혀 있으며 이외에 율법학자 호로비치를 포함한 많은 랍비들이 여기에 묻혀있다.
몇백년 나이를먹은 거목숲터널을 지나 산중턱에 자리잡은 로얄프라자 호텔에서의 갈릴레아 호수의 풍광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이호수는 남북길이가 21km,폭11.2km,깊이 39~47m,호수둘레51.2km정도 되는 호수로 지중해면보다 206m아래에 위치해있다.갈릴레아 호수는 티베리아호수로 불리워지며 또한하푸모양처럼 생겼다고해서 히브리어로 하프라는 뜻인 키네레트 호수로도 불린다. 이호수에는 잉어, 민물정어리,메기,숭어가 풍부하여 지금도 물고기를 어망으로 잡는다. 수면은 깨끗하고 고요하다. 예수시대때는 모든 교통의 중심지로 교통이 편리하고 땅이기름졌으며 아름다운 경치와온천이 있었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었고 또한 많은 사건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이호수 주변에는 9개의 도시가 있다.1894년 조지 아담스미스는"시원한 물에는 물고기가 풍부하고파란수면은 햇빛에 반짝인다.갈릴레아호수는 식량과식수와맑은공기를 제공하며 ,눈을 편안하게 해주며가슴을 시원하게 터주고 세속으로부터 피신처를 제공해준다. 과거에는 지금 나무가없는곳에 숲이 울창하였고 늪이있는곳에 아름다운 공원이 있었으며, 이따금 배가보이는곳에 선단이 보였다."
호아드 신부는이렇게 묘사하였다." 세상에 이보다 매혹적인 주변경관을 가진 아름다운 호수들은 있겠지만, 더황홀한 호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깊은잠에 빠져잔물결 하나 없는 저 담청색 호수물, 마치 화폭에 담긴듯 수면에 떠있는 조각배들, 바람 한점 없어 고요한수면은주위의 산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시간가는줄 모르고 깊은 명상에 잠기는 기쁨을 안겨준다."
자연의 야망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아름다운 호수가의 언덕과 생동하는 골짜기에서 예수가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치기 시작한 곳이기도하다. 예수가 성서에서 기록한 대부분의 활동과가르침, 그리고 기적을 이곳에서 행하였다. 베드로,안드레아,요한과 그밖의 제자들을 부른곳도 이곳 호수가에서였고배드로의배에서 군중을 가르쳤고, 풍랑을잠재우고, 호수위를 걸으시고, 많은사람의 병을고친곳도 이곳이었다.또 예수가12사도를 뽑은곳도 호수가까이에 있는 산에서 였다.
이곳에선 성서에 나오는 유혹의산,막달라,가파르나움, 산상수훈기념성당,타브카,베싸이다,가르멜산,가이사리아등을 두루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여리고 지방은 북쪽 헤르몬산과 남쪽 아카바만 사이 450km달하는 거대한 지역에 땅의 균열로 생겨난 요르단계곡에 있다.요르단 계곡 중간에 태양이 내려쪼이는 갈색사막의 한가운데에 카페트처럼 자리잡고있는숲이 있는곳이 예리고 이다. 예로부터 이곳은 비옥하고 기름진 땅으로 오랜지,바나나,대추야자가 풍성한곳으로 이름나있으며 종려나무도시로 불렸다. 이곳은 여름에는 매우 무덥고 건조하지만 봄에는 각종꽃들로 향기가 진동한다. 땅이 기름진 이곳은 B,C, 7000내지 B.C. 10000년대 문명의 요람지였으며,지금까지 발견된 도시중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도시로 생각되고 있다.발굴된자료로 볼대수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도시의 잔해가 계속쌓여 높이 24m넓이가약12,000평이나되는 TELL이라는 언덕을 구축했다. 이곳은 여호수아가 요르단강을 건넌후에 처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에의해 정복된도시이다. 여호수아는 예리고성을 불태우고 함락시킨후 후세에 이곳을 재건할 사람들에 대해 저주를 내렸다.
이곳 예리고에서 예수가 소경을 눈뜨게했고, 키가작은 세관장이 예수를 보기위해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있는것을보고 예수가 자케오 얼른내려오시오 오늘내가 당신집에 머물러야 하겠습니다. 라고 말한곳도 이곳입니다.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으로 주위를 불도져로 성처럼 둔덕을만들어 놓고 군인초소가있어서 출입을 통제하였다.
요단강은 상황이 좋았다. 눈덮인 헤르몬산 아래에서 시작하여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요르단 강은 특이한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다.강의 직선거리는 104km밖에 되지않지만 꼬불꼬불돌아 흐르기 때문에 총길이가 256km나된다.이강은 헤르몬산 4곳에서 지하수가 솟아 요르단강이 형성되기 때문에 알 우르단(내려오는강)이라는 뜻을 가진 요르단이라는 이름을 갖게되었다.평균폭이30m되는 요르단강은 구약시대뿐만아니라 신약시대에서도 성스럽게 여겨졌다. 요한이 나타나 설교를 하고 세레를 주고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갈릴레아아로부터 요르단강으로 찾아오셨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곳은 예리고에서 8KM 떨어진 곳이라 전해지고있다. 예수가 이강에서 세례를 받았기때문에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성스러운 강이되었으며 예로부터 그리스도교인들이 경건한 마음과믿음으로 이강에서 몸을 씻었다.수많은 순레자들이 요르단강에와서 하얀가운을걸치고 목욕을한뒤 이옷을 그들의 수위로 사용하기위해 집으로 가지고 간다.에언자 엘리야가 불수례를 타고 하늘고 올라간곡도 이근처이다.
남으로 시내를돌아 흘러가는 요단강은 우리가 상상하는 큰강이아니다. 다만 성서에서 상징적인 의미로서강이다. 발원지의 요단강의 강폭은 10 미터쯤되고 물이맑으며 수심은 그다지 깊지않아 바닥이 보인다. 강가의 거목들이 그림자를 드리고 메기들과 오리떼가 한가로이 다니고 있는데 미국의 침례교인들이 직접그곳에서 침례의식을 하고있어서 모든관광객들이 숨을죽이고 구경한다.
오후엔 예수가 베드로에게 고기가 많이 잡히도록한 기적의 바위에 가보고 직접 그당시의 관광용으로 제조된 목선을 빌려타고 갈릴레아호수의 가장깊은곳까지 가보았다.
아마 베드로가 그곳에서 그물을 던졌을것으로 생각하며 모두들 사색에 잠겨있었다.
막달레아의 마을. 나둠의마을,등 여러곳을 구경하고 다녔으나 한꺼번에 너무많은곳
보아서 자세한 기억이 없을뿐아니라, 성서에 기초가 빈약하고 무지하여 다이해하지못하고 돌아와 정확하게 전달할수없음을 죄송하게생각합니다.
차는 이즈르엘 계곡을 지나간다. 계곡의 구릉지에는 노란겨자꽃과 빨간 아네모네꽃이름모른는 짙은 보라색야생화들이 절정이다.계곡의들과 산에는 아름다운 야생화천국이다.
몇개의 유적지를 순례후에 예루살렘으로 들어왔다
이곳역시 유대인거주지역과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유대인 거주지역 가운데서도 종교인의 거주지역은 절대로 외국인을 받아들이지 않을것처럼
유대인 거리는 적막감마져 들었습니다.이상하게도 이들중 여유가있는가정은 안식일날은 온가족이 호텔에 투숙하였습니다.아마 호탤에서는 율법을 조금어겨도 죄가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우리처럼 외국인은 몹시 불편하였습니다.
우선 렐리메이터을 유대인전용으로 가동하기에 함께탈수가 없구요, 식사시간도 그들
과 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대인 보호를위하여 경비원이 기관단총을 들고 호탤복도를 왔다갔다하고, 켑을쓰고 검은색바지에 희색샤스를입은 유대인은 등허리에
권총을 차고 아무일없다는듯이 식사를 하지만 우리에겐 부담스러웠습니다.
시온산과 올리브동산에서 많은유적지를 보고 ,엘루살렘성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끌려가는 십자가의 길을 그대로 고행해보기도하고, 에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진
바위구명과 시신을 엄한곳,그리고 예수님의 무덤동굴등을 손으로 만져보며 2천년전으로 돌아간 감상에 젖어보았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것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공동묘지가 엘루살렘 대성전 건너편 올리브동산에 위치하였습니다.돈많은 갑부들은 이곳에묻혇다가 대성전에서 종이울리면 가장 먼저 깨어나 천국으로 가기위함이라한다.
에류살렘의동쪽 키드론계곡 의 건너편에 올리브산기슭에 예수가 즐겨찾았던 게세마네동산이있고 이곳에는 그시대의 2500년된 올리브나무가 수십그루가 그대로보존되어 있으며 아직도 이곳은 개발이나 변화가없어 그시대의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성서에나타나는 많은 유적지가 이근방에 있다. 나자렛,시온산,엘루살렘등 그리스도교의 성지는 대부분이 팔레스탄인의 거주지역에 분포되어 있기때문에 순레는 그들 거주지역과 시장등을 지나거나 그들속에 들어갈수밖에 없다. 관광객을 상대하여 활발한 장사을 하고 있얶다. 이슬람의 예배시간에는 코란경전읽는 소리가 마이크를 통하여 격렬하게 울려퍼지고 잇었다. 서울의 민방공훈련처럼 느껴졌다 .처음듣는 우리들이나 외국인들에겐 전율을 느끼고 바짝 긴장감이들며 움츠려들게하엿다
유대인의 성지라고 할수있는 서쪽벽(통곡의벽) 은 누구나 들어갈수는 있으나 이곳도 보안검사를 한후에라야 출입이 허용된다ㅣ.보안검사후에 광장통로를 따라많은사람들이 오고갔다. 벽쪽에 다달으면 벽의 중간을 담장처럼 마가아놓았다. 오른쪽은 여자들만 출입하고 왼쪽은 남자 전용 출입이다. 남자 출입구에는 들어가는입구에 책상위에 필기구와사인책이 놓여있고, 안으로 쭉들어가 벽쪽에는 책상위에 경전을 올려놓아 쉽게이용하도록 되어있었다.많은 유대인과 랍비들이 벽을향하여 손을대고 기도하고 있었다. 여자는 율법상 제약이있고 남녀의 구별이 분명 있었다.
이스라엘에서의 5일은 정말정신없이 다녔다 볼것은많고 시간은 없고 허지만 분명 그들은 부지런하고 황무지를 옥토와하여 기계화영농으로 부를축척하며 자기맡은바를 충실하게지키며 열심이 사는사람들이구나하는 생각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