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나무를 등, 참등이라고도 하고 여름에 뙤약볕을 피해 그늘을 만들기 위해 흔히 심는 나무 덩굴이다. 야생 상태인 것도 있으나 사찰과 집 근처에서 흔히 자라며 오른쪽으로 감으면서 올라간다.
잎은 어긋나고 홀수 1회 깃꼴겹잎이며, 13∼19개의 작은 잎으로 된다. 작은 잎은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끝이 뾰족하며 잎의 앞뒤에 털이 있으나 자라면서 없어진다.
꽃은 5월에 잎과 같이 피고 밑으로 처진 총상꽃차례[總狀花序]로 달리며, 연한 자줏빛이지만 흰색도 있다.
열매는 협과로 부드러운 털로 덮여있는 꼬투리로 기부로 갈수록 좁아지고 겉에 털이 있으며 9월에 익는다.
알맞게 자란 등나무 줄기는 지팡이 재료로 적합하며 꽃말은 ‘환영’이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등(for. alba) 이라고 한다.
등나무의 생약명은 다화자등(多花紫藤)이고 사용 부위는 뿌리와 씨앗으로 씨앗은 가을에, 뿌리는 가을 이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서 사용한다. 등나무의 맛은 시고 성질은 약간 차가우며 약간의 독이 들어있다.
● 등나무의 성분
등나무 껍질에는 wistarin 성분이 들어 있고, 열매에는 cytisne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 등나무의 효능
등나무는 살충, 지통, 해독의 효능이 있어 뿌리는 근육과 골격의 동통을 치료하고, 종자는 완만한 설사를 일으키며 음식물 중독, 복통, 토사, 근육과 뼈아픈데, 관절염, 심장강화, 변비, 근육통, 통풍 등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 등나무 식용법
등나무의 연한 잎을 나물로 해먹을 수 있으며, 꽃을 "등꽃나물" 이라고 해서 꽃을 따 소금물에 술을 넣고 한데 버무려 시루에 찐 뒤, 식혀서 소금과 기름에 무쳐서 "등화채"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고 한다.
★ 민간에서는 등나무에 생긴 혹을 동종요법으로 피부암을 치료하기 위해 달여서 먹는다고 한다.
■ 등나무 전설
1.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 종종32년(1537) 11월 15일조에 홍문관 김광진 등이 올린 상소문에, (대체로 소인들은 등나무 넝쿨과 같아서 반드시 다른 물건에 의지해야만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 종종34년(1539) 10월 20일 전주 부윤 이언적이 올린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상소문에서(군자는 소나무나 측백나무 같아서 홀로 우뚝 서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지만, 간사한 사람은 등나무나 겨우살이 같아서 다른 물체에 붙지 않고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
▶ 인조14년(1636) 5월 4일 부수찬 김익희가 올린 상소문에서(빼어나기가 송백과 같고 깨끗하기가 빙옥과 같은 자는 반드시 군자이고, 빌붙기를 등나무나 담쟁이같이 하고 교결하기를 뱀이나 지렁이와 같이 하는 자는 반드시 소인일 것이요.)하여, 등나무와 담쟁이덩굴을 가장 멸시하던 소인배와 비유하고 있습니다.
▶ 알맞게 자란 등나무 줄기는 지팡이 재료로 적합한데 영조41년(1764) 11월 27일 조에 보면(임금이 담으로 당기는 증세가 있어 걷기가 자못 전과 같지 않았다.
여러 신하들이 지팡이를 붙들고 다니기를 청하니, 임금이 처음에는 어렵게 여기다가 후에 내국에 지팡이를 구하여 바치도록 명하였다.
심수가 장계군 이병의 집에서 등나무 지팡이 하나를 얻어서 바치며, 아뢰기를, "이 등나무는 이름하여 “만년등”이라 하는 것입니다.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2. 신라시대 한 농가에 열 아흡 살과 열 일곱 살 된 두 처녀가 있었는데 바로 그 옆집에는 씩씩한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 자매는 얼굴도 예쁘고 복스러웠을 뿐 아니라 마음씨도 착해서 마을 사람들의 칭찬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혼삿말이 자주 오갔으나 자매는 모두 내노라하는 신랑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두 자매는 마음속으로 각기 옆집 청년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매끼리도 서로 비밀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청년이 싸움터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떠나는 날 언니는 장독대에 숨어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때 동생도 담 밑에서 흐느껴 울다가 언니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매는 한 남자를 둘이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남달리 다정한 자매였 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양보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청년이 싸움터에서 전사했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청년의 전사 소식을 들은 두 자매는 용림의 연못가로 달려가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둘이 꼭 껴안은 채 물 속에 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연못가에는 두 그루의 등나무가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옆집 청년이 훌륭한 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청년은 자기 때문에 세상을 등진 자매의 애닮은 이야기를 듣고,
‘나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니.
아! 내가 몹쓸 짓을 했구나.
앞으로 그 정도로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청년은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 연못 속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연못가에는 한 그루의 팽나무가 자라났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청년의 화신이라 했습니다.
봄이면 두 그루의 등나무가 탐스러운 꽃을 터뜨려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팽나무를 힘껏 껴안듯이 감고 올라갑니다.
3.『계림유사』에는 신라에 등포가 난다고, 『고려도경』에는 종이가 모두 닥나무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등나무 섬유를 써도 된다고 나와 있듯이 옛날부터 생활용품으로 등나무가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출처:오리지날산약초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