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 김석수
‘경쟁’이라는 글감을 받고 글을 쓰려고 넷플렉스에서 ≪오징어 게임≫을 다시 봤다. 게임에 참가하면 큰 빚을 지고 실패해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꾐에 뼈져서 온 사람이다. 최후의 승자가 받는 상금은 456억 원이다. 게임에서 지면 목숨을 잃는다.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역)은 빚쟁이며 경마 도박 중독자다. 그는 딸이 하나 있는데 이혼하고 양육권을 포기해서 어머니와 따로 살고 있다.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낯선 남자를 만나 딱지치기 게임을 한다. 그는 기훈에게 ‘게임’에 참가해 보라고 권유한다.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기훈은 고민 끝에 그곳으로 가기로 한다.
첫 게임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이다. 술래 역할을 하는 로봇이 뒤를 돌아봤을 때 움직이면 총으로 사살된다. 참가자의 과반수가 이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중단된다. 첫 게임이 끝나고 다음 게임의 진행 여부를 놓고 투표한다. 반대가 반수 이상이 나와서 게임을 중단하고 참가자를 돌려보낸다. 하지만, 주최 측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다. 두 번째는 ‘달고나 만들기’다. 설탕을 녹여 만든 과자에서 원, 삼각형, 별, 우산 네 가지 모양을 부서지지 않게 떼어 내는 게임이다. 세 번째는 ‘줄다리기’다. 네 번째는 ‘유리 다리 건너기’이며 다섯 번째는 ‘구슬치기 게임’이다. 마지막은 ‘오징어 게임’이다.
게임에서 주최 측이 강조하는 것은 공평과 평등이다. 참가자는 불공정한 사회에서 낙오된 자여서 공평하게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사실과 다르다. 1번 참가자 오일남(오영수 역)이 주최자라는 사실이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밝혀진다. 이 게임은 오일남이 즐기려고 계획했다.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며 즐겁게 놀고 싶어서 시작했다. 그는 진행 방식과 규칙을 사전에 알고 있다. 따라서, 공평한 게임이 아니다. 오일남의 행동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게임에서 로봇은 오일남이 움직이는 것을 잡지 않는다. 그는 움직이는 다른 사람이 총으로 맞고 쓰러지는 것을 보고 즐긴다. 소름이 끼치는 장면이다. 얼핏 생각할 수 있지만 ‘그가 뇌종양으로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그는 다른 사람이 총격으로 쓰러지는 것을 즐기고 있다. 게임 중단을 결정하는 투표 방식도 문제다. 456번부터 역순으로 진행해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오 엑스(ox)를 누르도록 한다. 사람들은 큰 결정을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한쪽으로 투표하기 쉽지 않다. 마지막 투표자 오일남이 투표 결과를 결정하도록 하게 된다. 이는 사전에 계획된 것으로 그는 게임을 끝내기로 한다.
줄다리기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오일남은 예전에 경험으로 여자와 외국인을 격려하면서 자기 팀이 승리하도록 한다. 참가자들이 자는 곳에서 밤에 난동이 일어나 서로 죽이는 일이 일어나자 몰래 안전한 장소로 피신한다. 그는 구슬치기 게임에도 관심이 없다. 예전에 살던 동네를 재현해 놓은 게임장에서 옛날을 회상하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다른 참가자들은 게임에 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서 두려워한다. 종소리가 울리고 사람이 죽는 와중에도 그는 자신의 추억과 낭만에 빠져 있다. 이는 우리 사회 기득권층이 다른 사람의 고통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구슬치기 게임에서 오일남은 늙은 노인이라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해 깍두기로 남고자 했다. 성기훈이 손은 내밀어서 각본대로 되지 않았다. 그 게임에서 지고 죽는 것으로 위장해서 현장을 빠져나와 브이아이피(VIP)들을 맞이하러 간다. 평등을 강조한 ‘오징어 게임’은 불공평한 게임이다. 목숨을 건 참가자들의 위험에 비하면 오일남의 위험은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다. 주최 측이 주장한 ‘모두가 평등하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참가자 누구도 주최 측과 맞서서 저항하지 않고 상금만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며 죽어 간다.
우리 사회는 상상을 초월한 경쟁 사회다. 사교육과 성형수술 열풍, 입시와 취업 전쟁 등이 한국 사회의 오늘날 자화상이다. 경쟁에 뛰어들어 승리해야 한다는 동기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경쟁에서 이기면 대접받는다. 명문 대학 합격자, 미스 코리아, 슈퍼스타 케이 우승자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승리한 사람을 우러러본다. 우리 사회에서 경쟁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앞서야 하는 상대적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상대 평가제를 시행하는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는 늘 경쟁자다. 직장에서도 동료보다 앞서지 못하면 내가 뒤처진다.
≪오징어 게임≫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경쟁 문제를 ‘빚’을 초점에 두고 다루면서 공감을 많이 끌어냈다. 지금 우리는 빚을 둘러싸고 희비가 엇갈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빚을 내서 집을 사고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해서 돈을 벌기도 하지만 몰락한 사람도 많다.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은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한 무한 경쟁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경쟁 현상을 풍자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