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서호(西湖) 구경 / 김석수
사오싱에서 항저우까지 승용차로 한 시간 걸렸다. 숙소는 서호 근처에 있는 민박집이다. 옹 선생이 마중나왔다. 그는 예전에 내 수업을 들었던 저장성 사람이다. 지금은 항저우 관광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짐을 방에 놔두고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저장대학교 근처로 갔다. 대학 주변이라 젊은이가 많다. 항저우 전통 요리 맛집이라고 알려진 곳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산둥성 출신인 서 선생도 우리를 반겨 주려고 왔다. 아내는 사오싱 요리보다 항저우 음식이 입에 맞는다고 좋아한다. 넷이 53도 바이주(白酒) 한 병을 비우고 산책하러 밖으로 나왔다. 시진핑 주석이 저장성 성장으로 근무하면서 자주 걸었다는 산책로를 따라 한 시간쯤 걸은 뒤 돌아왔다.
다음 날 서호 구경하려고 일찍 일어났다. 서호는 첸탄강 해안 포구였는데 진흙과 모래로 막혀서 호수로 만들었다. 이태백은 “맑은 날 서호는 서시(西施)의 화장한 얼굴과 같다.”라고 했다. 중국 화폐 1위안짜리 뒷면에 서호의 그림이 있다. 이곳에는 두 개의 제방이 있다. 백거이가 축조한 백제(白堤)와 소동파가 조성한 소제(蘇堤)다. 소제는 서호 10경 중 하나로 소제춘효(蘇堤春曉: 봄에 복숭아꽃이 많이 피어서 소제에서 봄이 깨어난다)라는 말이 나온 곳이다. 경치가 아름다워서 선남선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길로 유명해서 정인교(情人橋)라고도 부른다.
숙소 밖으로 나와 10여 분 걸으니 식물원이다. 이른 시간이라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 나무와 꽃이 많다. 아내와 나는 동화에서 숲속 길을 거닐고 있는 주인공 같다. 온 세상이 연푸른 나뭇잎과 화려한 꽃으로 가득 차 있다. 휘늘어진 수양버들과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 곳으로 갔다. 연못에는 잉어가 떼 지어서 천천히 헤엄치고 있다. 나이 든 여자가 작품 사진 찍으려고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렌즈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곳저곳 경치 보고 쉬다가 유람선을 타려고 소제 입구로 갔다. 표를 산 뒤 배 타는 시간이 남아서 아내와 함께 소제 길로 나왔다. 대부분 젊은이가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거나 산책하고 있다. 20여 분 걷다가 승선 시간에 맞추어 선착장으로 갔다.
사람이 예상보다 많지 않아서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어서 좋았다. 배가 호수 중앙으로 가니 건너편 쪽으로 항저우 중심가 고층 건물이 보인다. 970년 첸탄강의 역류를 방지하려고 세운 육회탑이 왼쪽 멀리 보인다. 오른쪽으로 송나라 시절에 왕비가 득남한 것을 경축하려고 세웠다고 해서 황비탑이라고도 불리는 뇌봉탑이 우뚝 솟아 있다. 유람선은 뇌봉탑(雷峯塔) 아래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배에서 내리자 서호의 경치를 스케치하는 황빈홍 상이 눈에 띈다. 많이 만져서 옷깃과 수염은 구릿빛 색깔로 변했다. 그는 중국 현대 미술의 대가로 시문과 산수화에 뛰어났다.
다음은 뇌봉석조(雷峰夕照)와 백사전(白蛇傳)의 전설로 유명한 뇌봉탑(雷峰塔)으로 갔다. 남쪽 난핑산에 있는 탑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옛터가 있는 1층이 나온다. 이곳은 원탑의 돌과 흙이 있고 유리 칸막이 너머로 지폐와 동전이 쌓여있다. 많은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줄을 서 있다. 내 앞에 있는 50대 여자는 쓰촨성 청두에서 가족과 함께 왔다고 한다. 이곳에 오는 사람은 대부분 국내 관광객이다. 엘리베이터로 최상단으로 올라가니 서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돌아가면서 주위를 감상할 수 있다. 아름답고 고즈넉하다. ‘맑은 날 서호, 비 오는 날 서호보다 못하고, 비 오는 날 서호, 밤 서호보다 못하며, 밤 서호, 인상 서호보다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인상 서호는 중국의 유명한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謨)가 서호를 배경으로 연출한 수상 공연이다. 정직한 서생과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 이야기인 ‘백사전’과 민간 설화인 ‘양산백과 축영대’를 소재로 만든 작품이다. 공연은 백사전부터 시작하는데 만남과 사랑, 이별과 추억 그리고 인상 5부로 구성돼 있다. 컴컴한 서호의 실경 세트장에서 레이저 쇼와 함께 펼쳐지는 공연을 보려고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몰려온다. 어둠에 묻혀있던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이 조명으로 드러날 때마다 관람객 대부분이 손뼉 치며 탄성을 지른다. 음악이 경쾌하게 흐르다가 갑자기 구슬프게 나오기도 한다. 레이저 불빛 아래 비파와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추는 백조의 호수 발레가 환상적이다. 천국에 와 있는 착각이 든다.
서호 인근에 있는 영은사 구경을 하고 있으니 이 선생이 저녁을 함께하자는 연락을 해왔다. 그는 항저우 출신으로 저장성 산학 기술 연구소에서 국제교류 업무를 하고 있다. 서호에서 유명한 ‘녹차 식당’으로 안내했다. 그 식당은 용정 차밭 언저리에 있다. 이 선생은 우리를 차밭 구경을 시켜주려고 이리저리 차를 몰아 골목길을 지나 주차한다. 식당 앞에 인공 호수가 있다. 호수에 배를 띄워서 식탁을 놓아둔 것이 특이하다. 주문은 위쳇을 사용해서 테이블 위의 큐아르(QR) 코드로 신청한다. 처음에 소동파가 만들었다는 동파육이 나왔다. 고기가 부드럽고 맵지 않아서 좋다. 당면, 새우, 마늘로 만든 새우 요리도 주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북경 오리도 시켰다. 강남 녹차 전과 오징어볶음도 바이주와 곁들어 먹으니 더욱 맛있다.
아침 일찍 이 선생이 ‘서시 호텔’ 뷔페식당에서 조식을 함께하자고 찾아왔다. 뇌봉탑 아래 있는 서시 호텔은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명인 서시(西施)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곳은 그녀의 고향이다.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나라 왕 구천은 서시를 오나라 왕 부차에게 보낸다. 서시의 미모와 기교에 사로잡힌 부차는 정사를 돌보지 않아서 망했다고 한다. 이곳은 2016년 9월 지이십(G20) 정상회의가 개최된 장소다. 회담 장소와 카페, 잘 정돈된 정원을 둘러봤다. 중국 역대 왕조 황제 별장이 있다. 숲과 호수가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전경이다. 군사지역으로 중국인민군이 항상 주둔하고 있다. 이 선생 아버지도 군인으로 복무할 적에 이곳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그는 서호 남쪽에서 북쪽으로 차를 몰아서 우리를 ‘보석산(寶石山)으로 데리고 갔다. 20여 분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정상이다. 도중에 아담한 서점이 있다. 화강암 바위가 붉은 색깔이다. 햇빛이 비치면 흐르는 무지개처럼 반짝이는 빛이 나며 비취와 마노같이 보여서 보석산이라고 한다. 산 정상에는 보숙탑이 있다. 멀리 단교(斷橋)와 백제(白堤)가 아름답게 보인다. 겨울이면 단교잔설(斷橋殘雪)이 유명하다고 한다. 산과 물이 어울린 서호는 풍경이 아침과 저녁, 맑은 날과 흐린 날, 사계절에 따라 다양하다.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 환경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蘇州)와 항주(杭州)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抗).”라는 소동파의 말을 실감했다.
첫댓글 선생님의 여행지는 생소하나 언급하신 인물들은 귀에 익어 정겹습니다. 중국의 소동파는 영국의 세익스피어 만큼이나 귀히 여기는 문인일까 생각해 봅니다. 하기사 큰 땅덩이라 인재들도 많곘지만요. 동파육이 소동파가 만든 음식이라니 새롭습니다. 저에데는 항저우 서호 구경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하
네, 고맙습니다. 소동파가 송나라 신종 때 장쑤성 수저우 지사로 부임한 여름 홍수가 난다. 그는 병사들과 함께 70일 동안 밤낮으로 제방을 쌓아서 그 지역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막는다. 홍수가 지나가고 백성이 기뻐하며 돼지를 잡아 그에게 바친다. 그는 예전에 집에서 요리하던 방식으로 돼지 고기를 요리해서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 백성들은 그 돼지 고기를 동파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편으론, 소동파는 바둑 두는 것을 좋아했는데 친구가 방문하면 돼지 고기 구우면서 바둑을 두곤했다고 한다. 고기 타는 냄새가 나면 음식을 꺼내 먹어서 그곳 사람들은 시커멓게 탄 돼지 고기를 동파육이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튼, 동파육은 소동파와 관련된 돼지 고기 요리인 것 같아요.
@중산 아이들 읽는 음식, 요리 책에
소동파 동파육 이야기는 안 빼고 나와요.
선생님 글에서 보니 반갑고 더 재밌네요.
잘 읽었습니다!
@황선영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서호, 보고 싶네요.
맑은 날, 비 오는 날, 밤, 인상 서호 다요.
네, 고맙습니다. 참고로 '인상 서호'는 유트브(YouTube)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나중 모임 때 중국 여행기 들려 주세요. 유튜브도 보겠습니다.
네, 기회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글 읽는데 무협지가 생각납니다. 정작 무협지는 읽어보지도 않았는데요. 하하.
항저우와 무협지, 글쎄요? 잘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여행도 많이 다니시고 영어, 중국어도 회화가 가능하시니 넘 부럽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가본 곳이 서호라서 이 글이 반갑습니다. 여행 잘 마치고 돌아오세요.
고맙습니다. 항저우 서호에 언제 가보셨는가요?
@중산 2019년에 갔습니다.
선생님 중국 여행기에 나오는 음식 소개 재밌습니다. 선생님의 맛 평가도 좋구요.
글에 쓰인 데로 여행 가도 되게끔 자세히 써 주셔서 중국 여행 도전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가는 데마다 친구가 있으시고, 장기간 여행할 만큼 건강하시고, 같이 다녀 주시는 사모님도 계시고 선생님은 천국에서 사십니다.
덕분에 앉아서 서시의 고향도 가고 여러 음식도 먹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직도 여행 중이실까요?
함께 여행하는 맛이 그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