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머리말: 비평 언어의 매혹
제1장 문학이론이란 무엇인가
제2장 신비평
제3장 러시아 형식주의
제4장 구조주의
제5장 바흐친 학파
제6장 마르크스주의
제7장 포스트구조주의
제8장 탈식민주의
제9장 독자반응비평
제10장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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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페미니즘
인권운동으로서 페미니즘의 역사는 길다 가령 1792년에 출판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 옹호론』은 인권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 이론의 역사를 연 기념비적 저서이다. 그녀는 프랑스대혁명의 와중에서 군주제를 옹호했던 에드먼드 버크에 맞서 공화정을 옹호하며 열렬한 이론적 투쟁을 벌였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하여 여성을 국가와 집안의 장식물이 아닌 ‘인간’으로 대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녀는 여성이 열등해 보이는 것은 여성들이 교육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며 공화정의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여성에게도 동등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창하기도 했다. 울스턴크래프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8세기 페미니스트들은 프랑스 대혁명의 열기와 영향 하에서 ‘천부적 인권’으로서의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고 이런 생각은 프랑스대혁명의 주 무대이었던 유럽뿐만 아니라, 그 영향권에 있었던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페미니즘 초기 운동은 18세기를 지배했던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정신, 그리고 18세기 후반의 프랑스대혁명과 미국 혁명(독립)정신이 갖고 있었던 보편적 ‘인권 선언’이라는 큰 맥락 속에서 가동되었다. 265
‘전체’로서의 세계가 가부장제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남성 중심 혹은 남근중심주의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세계의 한 ‘부분’인 문학이 그것으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문학 텍스트 안의 성차별과 남근중심주의를 읽어내고, 텍스트를 여성의 입장에서 다시 읽어낼 것을 목표로 한다. 266
여성에 대한 폄하와 왜곡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수많은 남성작가들과 사상가들이 여성에 대한 그들의 편견을 글로 남겼다. 가령 플라톤은 “노예로 태어나지 않은 것과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신께 감사한다”고 했으며,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남성은 본질적으로 우수하며 여성은 본질적으로 열등한다. 남성은 지배하고 여성은 지배 받는다. 여성은 능동적인 남성의 원리에 의해 형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물질이다”고 하였다. 중세의 대표적 신학자이자 사후에 성인으로 추앙받은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성을 “실로 불완전한 남성… 우연히 말들어진 존재… 잘못 만들어진 남성”이라고 정의하였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 역시 “여성은 신의 아름다운 작품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영광과 품위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하였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영국의 위대한 천재 셰익스피어는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이다”라고 하였다. 여성에 대한 이런 폄하는 현대에도 계속 이어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제인 오스틴의 책이 단 한 권도 없는 도서관이야말로 훌륭한 도서관이다”라는 말로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소설가를 조롱했다. 이런 언사들은 (마크 트웨인을 제외하고) 대부분 ‘특정한’ 여성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여성 ‘일반’에 대한 폄하와 왜곡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요한다. 266~267
수많은 페미니즘들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모계 사회 이후 세계는 여전히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것의 사회적 시스템인 가부장제의 지배하에 있다. 세계 안의 모든 것은 남근 중심의 앵글에 의해 해석되고 평가되어왔으며, 문학 역시 예외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시각에서 문학 텍스트의 생산과정, 텍스트 해석, 문학의 역사 등을 다시 조명함으로써, 남성 중심주의에 의해 왜곡된 문학관을 교정하고자 한다.
둘째, 생물학적 성으로서의 ‘섹스(sex)’와 문화적 성으로서의 ‘젠더(gender)’ 개념을 구별하여야 한다. 젠더는 가부장제 사회가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성개념이며, 페미니스트들에게 주로 문제가 되는 것, 그리고 도전과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젠더로서의 성 개념이다. 가령 1세대 페미니즘의 대표적 기수 중의 한 명인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했을 때의 ‘여성’의 개념은 정확히 젠더적인 것이다.
셋째, 여성의 글쓰기는 남성의 글쓰기와 다른 고유한 영역이 있다. 남성적 글쓰기가 분석, 분류, 구성, 규범을 지향한다면, 여성적 글쓰기는 비결정성(indeterminacy), 해체, 전복(subversion)의 언어를 지향한다. 특히 포스트구조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적 글쓰기의 탈규범성, 혁명성을 강조한다. 267~268
버지니아 울프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생각을 확대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성을 중심으로 문학의 전통을 살펴보고 여성의 문학사를 다룬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평론가이다. 1929년에 발표한 그녀의 『자기만의 방』과 1938년에 나온 『3기니』는 이런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요한다.(…) 『자기만의 방』은 “메리 비턴”, “메리 시턴”, “메리 카마이클”이라는 가상의 화자들을 등장시켜 여성이라는 존재와, 여성 작가가 쓴 픽션, 여성에 대해서 쓴 픽션 등을 대하며 비교적 느슨한 문체로 쓰인 산문집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 책은 1960~70년대 이후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현대 페미니즘 논쟁의 이론적 진원지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페미니즘의 핵심적 이슈들을 두루 건드리고 있다. 이 책의 외피는 ‘여성과 픽션’에 관한 것이지만, 이 책은 문학생산의 과정에 있어서 주로 여성이 처해 있는 사회적 조건을 성찰하고, 궁극적으로 “양성성(androgyny)”의 개념을 들고 나옴으로써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의 글쓰기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268~269
『자기만의 방』의 초반부에서 울프는 이미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데, 이는 글쓰기의 물적 조건에 대한 언급이면서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막는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담고 있다.(…) 울프에 의하면 여성은 전통적으로 교육과 물적 기반을 쌓을 수 있는 전문직에서 배제되어왔으며 비(非)교육, 무경험, “자기만의 방”도 가질 수 없는 무(無)자본의 상태에서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울프에 의하면 여성이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을 갖는 것은 부모가 대단한 귀족이 아닌 이상, 영국에서는 19세기 초까지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269
울프는 『자기만의 방』의 3장에서 셰익스피어에게 셰익스피어와 다를 바 없는 재능을 타고 난 “주디스”라는 누이가 있다고 가정하고 이 문제를 설명해나간다. 울프가 볼 때 남성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여성인 주디스 셰익스피어는 바로 남성/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게 된다. 윌리엄은 문법학교에 다녔을 것이고 그곳에서 라틴어를 배워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의 원문을 읽었을 것이다. 게다가 문법 원리, 논리학까지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만큼이나 모험심이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세계를 알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차”있었을 주디스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을 것이고 호라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읽을 기회는커녕 문법과 논리학을 접할 기회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만에 하나 오빠 윌리엄의 책이라도 집어 들고 몇 쪽을 읽을라치면 “그녀의 부모님이 들어와서 양말을 꿰매거나 국을 끓이는 데 신경을 쓰라고, 책이나 논문 따위를 붙들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말했을 것이다. 윌리엄은 남성이었기 때문에 “출세의 길을 찾아 런던으로 갔고, 연극을 좋아해서 무대 출입구에서 말을 돌보는 시중으로 연극 생활을 시작했다. 곧 그는 극장에서 일거리를 찾게 되었고 성공적인 배우가 되었으며 우주의 중심에서 살았다. 모든 사람을 만나고 모든 사람을 알게 되었으며 배우로서의 기술을 익히고 길거리에서 재치를 발휘하고 심지어 여왕의 궁전에 접근하기도 했다.” 주디스 역시 “오빠와 똑같은 재능 즉 단어의 음조에 대한 예리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무대 출입구에 서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고, 남자들은 그녀의 면전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그들은 여자가 연기를 하는 것은 푸들이 춤추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내뱉고는 어떤 여자도 배우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녀는 그러다 어떤 배우 감독의 동정심을 빠져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어느 겨울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지금은 엘리펀트 앤 캐슬 바깥쪽의 버스 정류장 근처 교차로 어딘가에 묻혀 있다.” 269~270
『자기만의 방』 마지막 장에서 울프는 대안으로 소위 ‘양성성’의 개념을 들고 나온다. 그녀는 “두 성이 협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하면서 “두 종규의 힘 즉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힘이 우리 인간의 내면세계를 관장하고 있다. 남성의 두뇌에서는 남성적인 것이 여성적인 것보다 우세하고, 여성의 두뇌에서는 여성적인 것이 남성적인 것보다 우세하다. 그 두 가지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정신적으로 협력할 때 우리는 정상적이고 편안한 상태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 울프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인 콜리지를 끌어들이는데, 그에 의하면 “위대한 마음이란 바로 양성적인 것”이다. 웊르는 양성적 마음이란 “타인의 마음에 열려 있고 공평하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감정을 전달할 수 있고, 본래 창조적이고 빛을 발하며 분열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며 “실제로 양성적인 마음, 여성적 남성의 마음을 보여주는 전형으로 셰익스피어의 마음을 들 수 있다”고 말한다. 270~271
울프의 양성성 개념은 후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논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그 하나는 울프에 대한 비판적인 것으로 울프가 남성/여성의 대결을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정공법으로 해결하지 않고 “양성성”의 개념으로 도피했다(대표적으로 엘레인 쇼월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울프를 옹호하는 것으로, 울프가 양성성의 개념을 끌어들임으로써 전통적인 남성/여성의 고정된 이분법을 해체했다고 보는 입장(대표적으로 토릴 모이)이다. 217
버지니아 울프가 1920년대 후반, 문학에 있어서 최초로 페미니즘 논의를 이끌어낸 논자라면, 시몬 드 보부아르는 울프의 뒤를 이어 2차 대전 이후 보다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이론을 체계화한 논자이다.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문학적 허구를 빌린 비교적 느슨한 형태의 페미니즘 산문집이라면, 1949년에 출판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자기만의 방』보다 훨씬 더 학문적인 체계를 갖춘 방대한 분량의 이론서이다. 이 책은 수많은 문학작품들 뿐만 아니라 심리학, 철학, 역사학, 사회학, 생물학 등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여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어떻게 ‘만들어져왔으며’, ‘제2의 성’으로 전락해왔는지를 이론적, 실증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272~273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여성들이 자신들을 규정할 때 항상 ‘나는 여자다’라고 선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이는 남성들이 보편적 의미에서 ‘인간’을 대표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규정할 때 자신의 ‘남성성’을 밝힐 이유가 없는 것과 비교되는 것이다. 남성들은 특정한 ‘성’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인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보부아르는 이 책의 서문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방다의 “남성은 여성이 없이도 생각될 수 있지만, 여성은 남성이 없이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며 “여성이란 남성이 규정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힌다. 보부아르에 의하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절대적인 주체’는 항상 남성이며, 여성은 남성에 의해 규정되는 “타자(the Other)”이다. 남성은 스스로를 동일자(the One)로 간주하고 주체로서의 자신을 확립하기 위해 타자를 필요로 하는데, 이때의 타자가 바로 여성인 것이다.(…) 보부아르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는 바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에 의해 타자로 규정되는 여성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273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개념을 중심으로 남아와 여아가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다르게 설명한다. 프로이트의 설명에 의하면, 남아는 어머니를 향한 성적 욕망을 아버지의 ‘거세 위협’ 때문에 포기한다. 이리하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거세 불안’의 결과로 생긴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아는 자신의 몸에 아버지와 남자형제가 가지고 있는 페니스가 부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빠진다. 그리하여 여아는 ‘남근 선망(penis envy)’을 되고, 남아들이 갖게 되는 ‘거세 불안’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거세당했다는 열등감, 즉 ‘거세 콤플렉스(castration complex)’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이런 설명은 현존/부재의 기준을 남성의 성기인 페니스에 둠으로써, 여성을 출발부터 결핍의 존재,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이다. 보부아르는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이 여아가 자신에게 페니스가 없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거세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끌어들인다. 게다가 페니스의 부재에 대한 애석함 역시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부아르에 의하면 “아버지를 신처럼 숭배하는 것이 여성의 리비도는 아니다. 어머니 또한 그녀가 아들에게 유발시키는 욕망에 의해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부아르는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아버지 중심주의’, 즉 “아버지의 우월성은 사회적 질서의 한 사실에 불과하며 프로이트는 이 점을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즉 아버지를 중심에 내세우는 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가 만든)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274~275
보부아르는 아들러의 이론을 빌려 프로이트가 인간 생활의 발전을 단지 성욕만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보부아르에 의하면 가령 어떤 콤플렉스, 즉 열등감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페니스가 없다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황 전체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상황 전체”란 성애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즉 “여아가 페니스를 선망하는 것은 오로지 그것을 남성에게 주어진 특권의 상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점유하는 지위와 남성 존중의 일반적인 문화, 그리고 교육 등 모든 것이 남성이 우월하다는 관념을 여성에게 확신시키기 때문인 것이다.”(…) 보부아르의 관심은 항상 타자로서의 여성성이 형성되는 ‘사회적’ 과정에 대한 설명에 있다. 여성의 열등성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사회적 현상으로 설명될 때, 그것은 수정(교정)되거나 거부될 수 있다. 275
케이트 밀렛은 자유분방하며 열성적이고도 실천적인 미국의 페미니스트이다. 1970년에 출판된 그녀의 『성의 정치학』은, 메리 엘만의 『여성에 대하여 생각하기』(1968), 일레인 쇼월터의 『그들만의 문화』(1977), 길버트와 구바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1979) 등과 더불어 울프와 보부아르 이후 70년대의 2세대 페미니즘을 이끈 대표적인 저작이다. 276~277
이론적 정초를 세운 후, 밀렛이 하는 작업은 D.H.로렌스, 헨리 밀러, 노먼 메일러, 장 주네 등 남성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본격적 고찰이다. 밀렛은 이 과정을 통하여 특히 로렌스, 헨리 밀러, 노멀 메일러의 작품에 어떻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재현되어 있는지를 정교하게 파헤친다. 말하자면 이들 작가들은 밀렛에 의해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 가부장제,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라는 ‘성의 정치학’의 화신으로 비판받는다.(…) 『성의 정치학』 마지막 장에서 밀렛은 장 주네의 작품들을 분석하는데, 로렌스, 밀러, 메일러에 대한 비판과 달리 “장 주네는 소설에서 동성애적 지배 질서를 묘사하고 드러냄으로써, 동성애라는 비껴가는 각도에서 성적인 위계라는 문제에 접근하고 있으며… 희곡에서 성적 억압의 주제를 강조함으로써, 급진적 변혁을 추구하는 프로젝트라면 반드시 성적 억압을 깨끗이 없애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칭찬한다. 279~280
밀렛의 『성의 정치학』은 출판 직후 찬반의 격한 논쟁에 휘말렸는데, 그 논쟁의 중심은 주로 위에서 언급한 네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관계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밀렛의 분석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첫 번째는 밀렛이 분석한 대상으로 선택한 작품들이 과연 60년대의 정전으로 대표성이 있는 작품들인가 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밀렛이 문학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상상적’, ‘중의적’, ‘다의적’ 표현의 방식을 무시하고 남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가부장적 요소들만을 ‘임의로’ 부각시키고 무차별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280
일레인 쇼월터는 『그들만의 문학』(1977)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이후 최근까지 ‘여성중심’의 페미니즘을 선도해온 이론가로 유명하다. 쇼월터는 기존의 문학사가 주로 남성 연구자들에 의해 집필되면서 수많은 여성 작가들이 문학사에서 사라진 점에 주목한다.(…) 쇼월터는 한편으로는 문학사에서 사라진 여성 작가들을 찾아내어 문학사를 다시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해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로지 여성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여성적 글쓰기의 모델을 탐구하는 과업을 수행해왔다.(…) ‘그들만의 문학’이란 바로 ‘여성만의 문학’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의 작업이 주로 ‘여성 중심적’인 코드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여성을 사유의 중심에 놓은 페미니즘을 일레인 쇼월터는 “여성중심비평(gynocriticism)”이라고 부른다. 281
쇼월터는 『그들만의 문학』에서 여성 문학의 전통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첫 번째는 “여성스러움의 단계(the feminine phase)”로 1840~80년대에 출판된 샬럿 브론테, 조지 엘리어트, 조르주 상드 등의 작품들이 이 단계에 해당된다. 여성스러움의 단계는 여성 작가들이 독립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성 작가들을 모방하고, 가부장제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스러움’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두 번째 단계는 “여성주의의 단계(the feminist phase)”로 1880~1920년대의 엘리자베스 로빈스, 『아프리카 농장 이야기』로 유명한 남아프리카 작가인 올리브 슈라이너 등의 작품이 이 단계에 해당된다. 이 단계에서 여성작가들은 급진적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을 폄하하고 억압하는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가부장제에 맞설 수 있는 여성들만의 분리주의적 유토피아의 건설과 강력한 동맹을 주장한다.
세 번째 단계는 “여성의 단계(the female phase)”로 1920년 이후의 레베카 웨스트, 캐서린 맨스필드, 도로시 리차드슨, 도리스 레싱 등이 주도한 단계를 말한다. 이 단계에서 여성 작가들은 1단계의 수동적 ‘여성스러움’이나 2단계의 남성에 대한 적대적 관계에서의 페미니스트의 단계를 넘어서서, 여성만의 경험에 토대한 독립적인 여성적 글쓰기의 성취에 성공한다. 이 단계야말로 여성들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자유롭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단계이다. 283
페미니즘은 1970년대 이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등장한 포스트 구조주의적 사유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으며 그로부터 많은 자양분을 얻게 된다. 이리하여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이라 부를 만한 일련의 이론가들이 탄생하는데, 우리는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의 대표 주자 중의 하나로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284
우리의 주목을 요하는 부분은 크리스테바가 기호계를 “여성적인”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징계는 통사론이 지시하는 바 사회적 ‘법’의 언어이고 남성의 언어이다. 크리스테바는 말라르메의 ‘글 속에 깃든 신비’에 나오는 “그 텍스트 밑에 깔린 선율 내지는 노래”라는 대목을 인용하며 이 “노래”의 기능을 여성과 연관시킨다. 크리스테바의 논리가 페미니즘과 연결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여기에서 완성된 “텍스트”란 바로 남성 지배의 상징계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 아래 억압되어 있는 “선율 내지는 노래”는 바로 기호계의 여성 언어를 지칭하는 것이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여성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기호계이어서 무의식의 언어이고 욕망의 언어이며 몸의 언어이다. 그것은 상징계의 남성 담론에 굴복하지 않으며 통사의 법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전복의 언어이다. 286
뤼스 이리가레가 말하는 여성과 남성의 ‘성적 차이’란 무엇인가?(…) 『하나이지 않은 성』의 제목에 드러나는 것처럼 이리가레는 여성성의 특징을 남성적 ‘고체성’에 반대되는 개념인 “액체성(fluidity)”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무형이거나 혹은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액체처럼 “하나이지 않은”, 규정 불가능한 성이다. 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