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시작하는 ‘山만한 랭킹’은 아웃도어와 연관된 모든 주제를 가지고 기자 마음대로 순위를 매겨보는 코너다. 정확한 데이터로 순위를 매기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여러분은 산행의 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누구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이라고 답할 것이며, 누구는 힘들게 걸으면서 땀 흘리는 개운함이라고 말할 것이다. 혹자는 명산을 차례대로 오르는 도전 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제 각각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엄지 척’을 하는 원초적인 즐거움이 있다. ‘먹는 재미’이다. ‘山만한 랭킹’ 첫 번째 주제는 ‘산에서 안 먹고는 못 배기는 음식 BEST 6’이다.
6 산채비빔밥
기자는 아직도 울릉도 성인봉을 오른 후 나리분지의 한 식당에서 먹은 산채비빔밥 맛을 잊지 못한다. 울릉도 산등성이에서 채취한 부지깽이며 취나물, 참고비 등의 나물을 아낌없이 넣고 고추장에 쓱쓱 비벼 먹는 맛은 도시에서 먹는 그것과는 ‘클라스’가 달랐다.
산 아래에는 으레 산채비빔밥을 내는 식당이 있기 마련. 이런 곳의 특징은 주변 산에서 채취한 나물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같은 나물이라도 그 지역에서 나는 자연산 제철 나물을 사용하면 맛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대개 산채비빔밥은 고추장으로 비벼먹는다. 하지만 진주나 안동의 헛제사밥처럼 간장을 넣고 비벼먹어도 별미다. 고추장으로 비빈 것보다 나물 각각의 향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 ‘프로 비빔밥러’들은 고추장보다 간장을 더 선호한다. 굳이 식당에 가지 않더라도 집에 있는 나물반찬 몇 가지와 밥, 고추장을 준비해 배낭에 넣고 가 비벼 먹으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5 닭볶음탕
산행 후 술로 달려볼 심산이라면 닭볶음탕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일본어의 잔재냐 우리말이냐에 논란이 있지만 개인적으론 ‘닭도리탕’으로 부를 때 술이 더 당기는 기분이다.
고추장을 풀어 뭉근하게 졸인 닭볶음탕은 그야말로 소주 안주다. 소주의 쓴맛을 화끈한 매운 맛으로 잊게 만들어 폭음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산 밑 식당에서는 토종닭을 쓰는 곳이 많아 도시 식당과는 씹는 맛 또한 남다르다. 간이 쏙 밴 감자도 일품이다.
고기를 다 건져 먹은 후에는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야 한다. 배가 부르다고? 걱정할 것 없다. 우리의 신체는 아무리 배가 불러도 볶음밥 들어갈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찬밥에 송송 썬 김치, 김가루를 버무려 적당히 눌러 붙게 볶는 것이 관건. 진짜 닭볶음탕 맛집은 볶음밥이 맛있는 집이다. 이 볶음밥까지 다 먹어야 닭볶음탕산에서 하산할 수 있다.
하산길이 지루하고 멀게 느껴진다면 날머리에 있는 식당에 닭볶음탕을 주문해 두자. 없던 체력이 솟아나고 다리가 저절로 움직이는 기적이 일어나리니.
4 도토리묵
다람쥐가 좋아하는 도토리는 산꾼들도 좋아한다. 산행 후 가볍게 술 한 잔 하거나 요기하는 데 도토리묵이 최고다. 산에 널린 게 도토리니 산 아래 식당에선 으레 주변 산에서 채취한 자연산 도토리를 사용해 직접 묵을 만든다. 중국산 도토리묵가루로 만든 묵과는 비교불가다.
도토리묵을 갖은 채소와 함께 새콤하게 무쳐낸 도토리묵무침은 막걸리 안주로 최고다. 고기류와 달리 도토리는 열량이 낮아 산에서 땀을 뺐더라도 그나마 신경이 덜 쓰인다. 다이어트를 위해 산행하는 경우라면 도토리묵을 추천한다.
도토리묵밥은 든든한 식사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식히고, 겨울에는 뜨끈하게 데운 멸치육수에 탱글탱글한 묵을 넣고 밥을 말아 먹으면 수분과 허기를 동시에 채울 수 있다.
3 치맥
힘든 산행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은 ‘보약’이다. 맥주 첫 모금의 희열을 극대화하기 위해 하산하는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다는 산꾼도 있다. 식사하기에는 어중간하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막걸리 냄새를 풍기기 싫다면 치킨&맥주가 답이다. 바삭바삭 튀김옷을 입은 프라이드치킨이 정석, 매콤달콤한 양념치킨과 짭짤한 마늘간장치킨은 소주 안주로도 제 격이다.
전국에 걸쳐 소문난 ‘산 아래 치킨 맛집’이 여럿 있다. 서울 인왕산 아래 부암동에는 옛날식 통닭 마니아의 성지라 할 ‘계열사’가 있다. 튀김반죽을 얇게 입혀 튀긴 통닭은 인기가 좋아 줄을 서야 한다. 북한산 아래 우이동 솔밭근린공원 인근엔 ‘오늘통닭1977((구)삼성통닭)’이 유명하고, 관악산 아래 사당역 인근엔 ‘계성치킨’이 등산객이 즐겨 찾는 치킨 맛집이다.
지리산에 간다면 구례 산동면에 있는 ‘중동구판장’을 가보라. 동네 슈퍼마켓처럼 생긴 곳에서 30여 년 동안 닭을 튀긴 달인 노부부의 ‘통닭 내공’을 입으로 느낄 수 있다. 메뉴는 오직 프라이드치킨 하나. 다른 양념 없이 오로지 깨소금에 찍어 먹는 진짜 ‘옛날 통닭’이다.
2 닭백숙
등산 후 보양을 논한다면 단연 닭백숙이다. 닭백숙은 남한산성 아래 성남 단대동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산기슭에서 뛰어노는 토종닭을 잡아 마늘, 인삼, 대추, 밤 등을 함께 넣어 3~4시간 푹 고아낸 것이 백숙의 시작이다.
오래 끓여야 하는 만큼 등산객이 산에 올라갈 때 미리 주문을 받고 내려오는 길에 음식을 내놓곤 했다. 지금도 성남 단대동에는 백숙 식당 20여 곳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백숙이 인기를 얻자 산 밑 식당에는 으레 닭백숙을 내는 식당이 한두 곳은 꼭 있게 되었다.
닭백숙은 물에 닭만 넣어 끓여 먹는 것이 정석이지만 요즘은 각종 한약재나 누룽지 등을 넣어 풍미와 영양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닭고기 본연의 담백하고 감칠 나는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최소한의 재료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음식전문가들은 말한다.
보통 산 아래에 닭백숙 식당이 많지만 약수터 주변도 많다. 청송에는 달기약수가 있고, 이 약수에 넣어 끓인 닭백숙이 유명하다. 약수터 주변 식당에서 내는 닭백숙은 약수에 닭을 넣고 그대로 끓여내는 것이 특징이다. 물이 좋기에 따로 향신료나 양념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 주왕산을 오르거나 외씨버선길 1코스를 걸을 일이 생기거든 꼭 약수닭백숙을 먹어보라. 세련되진 않았지만 시골 닭백숙 본연의 맛을 알게 될 것이다.
1 파전
대망의 1위는 산꾼들의 소울 푸드 파전이다. 파전&막걸리는 산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혹자는 ‘산행 후 파전&막걸리는 즐거움이 아니라 갈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등산 싫어하는 사람도 파전&막걸리는 마다하지 않을 정도여서 산에 데리고 가기 딱 좋은 ‘미끼’다. 산 밑 식당에선 으레 파전을 부쳐 내는데, 실한 파에 갖은 채소와 오징어를 넣어 두툼하게 기름에 부쳐내 한 끼 식사로도, 술안주로도 손색없다.
파전에 어울리는 술은 누가 뭐래도 막걸리다. 파전의 기름진 맛과 가장 잘 어울린다. 하지만 맛만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파전&막걸리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이 제격이다.
비가 내리는 날엔 배낭 메고 산 밑 파전집으로 가 보자. 꼭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파전에 막걸리 한 병이면 기분 좋게 주봉酒峰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자매품 김치전을 곁들이면 히말라야급 주봉에 오를 수 있다. 단, 집으로의 하산을 조심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