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핀 꽃 / 이동실
잠결에 왼쪽 발등이 가려웠던 모양이다. 손톱으로 발등을 벅벅 긁어대다 눈을 뜬 것이다. 무심결에도 손이 닿기 쉽게 다리를 엉덩이 쪽으로 당겨놓고, 발목은 바깥쪽으로 비틀어 놓은 상태다. 팔을 뻗어 얼마나 세게 긁었는지 가시덤불에 좍좍 긁혀버린 것 같은 아림이 몰려온다.
어둠 속에서 손끝 감각을 곧추세워 살살 만져본다. 마치 살에다 좁쌀을 꼭꼭 박아놓기라도 한 듯 도돌도돌한 게 발등 전체로 퍼져있다. 가려움은 쓱쓱 긁으면 시원한가 싶었는데, 긁으면 긁을수록 손을 뗄 수가 없다. 흉악한 벌레 놈이 피부 속을 꼬물꼬물 돌아다니면서 균을 퍼뜨리는 것 같은 그 찜찜하고 끔찍스러운 느낌 때문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불을 켰다. 발진은 흩뿌려져서 피어난 붉은 야생화처럼 눈곱만한 게, 발가락에서부터 허벅지까지 뒤덮여 있었다.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 그것은 손을 댄 곳을 시작으로 콩알만 한 두드러기로 변해 종아리와 허벅지 엉덩이까지 뭉텅뭉텅 무리 지어 울룩불룩 올라왔다. 오싹하다.
병원을 갔다. 의사는 바짓가랑이 걷어 올린 내 다리에 돋은 두드러기를 보는 둥 마는 둥 눈길 주는 시늉만 하더니 진단과 처방을 내린다. 봄철 알레르기 피부염이란다. 대수롭지 않다는 것일 수도 있고, 이런 환자들이 많으니 말 만들어도 알겠다는 뜻일 수도 있겠지만, 무성의해 보이는 의사의 행동은 정말이지 못마땅했다. 환자의 고통 따윈 안중에도 없는 의사는 약을 먹고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만 한다.
고집스레 올라오던 놈들이 주사 한 대를 맞고 나니 금방 맥없이 스러져버린다. 속이 시원하고 신통방통하다는 생각도 잠시, 두드러기는 사태가 심각할 때 일단 후퇴를 했다가 다시 진격해 오는 적군들 같기도 하고, 약 기운이 떨어지니 고개를 쳐들고 피어나는 마법에 걸린 꽃처럼 발긋발긋하게 피어올라 나를 괴롭혔다.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특별한 원인도 없고 이러다 멈추기도 한다는 미봉책에 불과한 약물 처방만 내렸다. 나는 믿음이 사라진 의사의 처방전과 씁쓸한 마음만 안고 병원을 나섰다.
봄이 되면 눈이 가려운 사람도 있고, 재채기하는 사람도 보았다. 기도가 좁아져 숨을 쉬기 힘든 천식 환자도 늘고, 후각 기능 감퇴 현상으로 알레르기 체질인 사람들이 겪는 질환이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지만, 이렇게 심한 두드러기까지 알레르기 증상이라는 말인가. 갈수록 자연환경의 변화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도 늘어나고 있다고 하더니 슬그머니 걱정스럽기도 했다.
옛말에 ‘병은 자랑해야 낫는다’라고 했다. 그래야 약이 먼 데서도 듣고 처방하러 온다는 뜻으로, 널리 알려야 도움을 받을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답답해 친구들에게 두드러기를 보여주었다. 알고 있는 상식들을 다양하게 열거하기 시작이다, “신경을 쓰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올라온다, 먹고 있는 약이 많으면 약물중독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영양실조다, 과로하거나 몸이 허해져서 오는 반응이다, 새우나 꽃게를 먹으면 올 수 있다, 환경오염으로 몸도 오염이 된 것이다. 먼지 진드기다. 이럴 땐 술을 실컷 마시고 푹 자고 일어나면 낫는다”라고 하는 농담까지 표정들만큼이나 보이는 반응들도 제각각이다.
뚜렷한 대안이 없는가 보다. 무엇이 좋다거나, 무엇을 먹거나 어떻게 해보라는 시원한 대답은 들을 수가 없으니 그 말들을 유추해 본다. ‘과로를 피하고, 청결히 하며, 약을 조심하고, 잘 먹어야 하고, 신경을 쓰지 말고 공기가 좋은 곳에 살면 된다’라는 결론이지 않은가. 세상없는 한량(閑良)인 셈이다. 한량(閑良)은 일정한 직업 없이 놀고먹는 양반 계층이라는 의미에 비추어 보면 나는 분명 좋은 팔자를 타고난 것임이 틀림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관리를 잘 못 한 내 탓이다.
인간의 욕망은 조절하고 제어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사회를 망가뜨리는 이기심이 될 수도 있지만, 적극적인 동인(動因)으로 삼게 되면 세상을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애면글면하지 말고 일단 걷기를 시작했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할 수가 없지 않은가. 건강이 소중하다고 여기면서도 운동을 게을리한 나에게 스스로 커다란 깨달음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보이지 않게 피어나 건강을 함부로 여긴 따끔함을 가르쳐 준 내 몸에 핀 꽃이 곱게 지기를 다스려 줄 일이다.
첫댓글 피부에 피었다가 지는 꽃을 다스릴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좋은 글을 잘 읽고갑니다.
아픔을 꽃이라 생각하는 여유를 부린 작가는 앞줄 어디쯤에 계신지? ㅋㅋㅋ
힌트는 꽃무늬원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