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배움이다/윤용혁
칠월이 되면
무더운 여름날에
선후배들과
젊음을 바쳤던
하계봉사가 늘 생각난다
신용의 상징
버들표 유한양행의
생산부 주사제 제조담당으로
다니던 시절 이야기다
공장이 일제히
일주일간 여름휴가를
들어가기에 강릉으로
놀러 갈까 하던 참
약총후배들이 영월로
하계봉사인
투약봉사를 간다며
이번에도 형님이
꼭 같이 가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기에
청을 마다 못하고
따라나섰다
첩첩산중의 영월군
수주면에 소재한
아담한 분교ᆢ
운학이라고
구름이 학이 되어 날아든 듯 산마루에 걸렸고ᆢ
학창시절에도 봉사로 매년
왔던 산골 학교였다
교실 두 개를 빌려
하나는 진료실로
댜른 한 개는 여름학교용으로
개설했다
환자들은 해가
꺼지기가 무섭게
칠 팔십명씩 몰려드는데
주로 관절 등
신경통을 호소하고
위장병 그리고 피부질환자들이
주를 이뤘다
등짝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고ᆢ
가져간 약들이 동이
날 정도로 환자들이
넘쳐났다
파평 윤씨 성을 가진 분틀은
내가 종친인걸 알고
무척 반가워했다
약값이라며
자두와 비슷한 고야를
한 바구니 내밀었고
찐 옥수수도 주시고
한 할머니는
감자도 쪄먹으라고
소쿠리에 담아와
부끄러워하며 내미셨는데
참 훈훈하고
정겨웠다
이리 안하셔도 되는데ᆢ
야심한 밤에
산동네 젊은
아낙들을 모아놓고
피임에 관한 강의를
했는데 멀쩡하게
생긴 총각놈이
피임 어쩌구 저쩌구하니
이놈아 너나 잘하라는 듯
시큰둥하며 반응들이 신통치가 않았다
낮에 농사일로
다들 힘들었는지
닭병아리 졸듯
꾸벅거리는 분들도 많았다
하긴 총각인 내가
피임에 관해 얼마나
뭘 안다고 주절거렸고 ᆢ
유독 빨간 입술을 한
젊은 아주머니가 질문을
자주 던졌는데 총각으로서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황당한 질문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내 얼굴은 뻘개지고ᆢ
이 젊은 여자분은 화장을
짙게하고
봉사하는 학생들에게
국수를 끓여준다고
다른 분들과
불을 지피며 수고를
하던 중 그 분의 아들
하나가 따라와
자기도 국수를 달라고
떼를 쓰자 학생들 앞에서
잘 보이려는데
창피하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자신의 고무신짝을
벗어 애를 팼다
우는 아이를 보니
내 어릴적 생각이
떠올라 애를 달래고는 가엾어서
옆에 와 국수를 먹도록
하였다
매일 감자와
옥수수만 먹다가
얼마나 먹고 싶었겠는가ᆢ
투약봉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생전 약을 안 먹다가 위장약을 지어간
한 아주머니가
내가 지어준
약을 먹고 다 죽어간다고
딸아이가 울면서
달려왔다
혈압기를 들고
황급히 달려가 보니
정말 여자분이 안방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옆에 계신 할머니께
좌초지종을 여쭈니
약사님이 조제해주신
약이 너무 잘들어
빨리 나으려고
한 번에 서너 봉씩
입에 털어넣었다는
것이다
앗뿔싸!
그렇게도 복약지도를
철저히 해드렸겄만ᆢ
상태가 더 안 좋아지시면
원주의 큰 병원으로
모실 것을 권하고
먹다남은 약을 회수하니
그 여자분의 시어머니이신
할머니가 그 잘 듣는
약을 왜 가져가냐며
안 주시려했다
다음날 저녁
주민위안의 밤 잔치가
있었는데
무대에서 막춤을
잘 추는 여자분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어제
다 죽어가던 여자분이
완쾌해 신나게 흔들어
대고 있었다
살아나셨다
다행이었다
봉사가 거의 끝나갈 쯤
진료실 봉사
여학생 후배들에게
소시적 이야기로
썰을 푸는데
갑자기 진료실
문이 드륵 열리며
마을 청년들이
웃통이 벗겨진 군인을
우당탕탕 마루바닥에
고목처럼 누이고는
약솜을 집어들고
황급히들 뛰어나갔다
화들짝 놀라며
뉘여진 군인을 바라보니
얼굴의 살갗이 벗겨져 광대뼈가 드러나고
왼쪽 젖가슴이 찢어져
덜렁거리며
선혈이 낭자했다
위생병 출신 친구와 함께
칸막이 하얀 천을 찢어
가슴의 출혈을 막는데
상처가 너무 깊어
어려움이 많았다
바닥의 피로 내 양말은
질퍽하였다
군인은 누워
괴로움에 버둥거리며 헛소리를 하였고
물물하며 물을 찾았다
가까스로 지혈을 하고
마침 분교 근처에서 훈련 차
야영을 하던 군부대에
연락을 취해 심각하게 부상당한
군인의 치료를
부탁하였다
황급히 달려온
안과출신인 군의관은
그자리에서 상처를
봉합하겠다며
어렵사리 지혈시킨
압박한 천을 푸니
피가 다시
솟구쳐 군의관은
놀라 지혈대로 누르고 압박붕대로
칭칭감은 다음
원주 국군통합병원으로
속히 후송시켰다
밤을 꼬박 세고
아침을 맞으니
경찰들이 들이 닥쳤다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캐묻고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았다
사건의 개요는
이러했다
산골동네에 여대생들이
나타나니 동네 청년들이
들떠 술판을 벌이다가
휴가나온
군인과 시비가 붙어
술병을 깨 군인을
찔렀던 것이다
아! 올해 하계봉사는
너무나도 힘들게
진행되었다
차라리 강릉으로
놀러나 갈걸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보다도 이번 사건에
말려 내 겨우 딴
약사면허증도 개업 한 번
못해 보고 날라가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도 잘 넘어갔고
그 후로도 몇 번 봉사를
더가 건 7회에 걸쳐
하계봉사를 갔는데
막상 남을 돕는다고
갔지만 순진한
어린이들과
실제로 순박한
산골분들을
보고 느끼면서
겸손과 낮춤
나눔과 희생등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