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 어떻게 전도해야 성공할까?
기독교는 2천년간 수많은 핍박과 어려움에도 성장해 왔다. 성장의 주체는 성령님이셨고, 하나님께 붙잡혀 복음을 전했던 전도자들에 의해서 교회는 생명을 이어왔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어떻게 전도했을까? 무슨 내용을 전했는가? 어떤 방법으로 전했는가? 저들의 실패와 성공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것은 큰 유익이 될 것이다.
Ⅰ. 전도 훈련방법의 역사적 고찰
먼저 예수님은 어떻게 전도훈련을 시키셨을까? 초대교회는 어떤 전도방법이 있었을까? 해방 이전의 한국교회는 어떻게 전도했을까? 그들의 전도방법과 전도훈련이 교회 성장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전도방법을 평가해보고 계획을 세우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한 목표를 갖고 부르셨다(마 4:19). 그리고 훈련을 시키셨다(마 10:1-2). 그리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 간절히 부탁하셨다(마 28:18-20, 막 16:15). 그리고 영원토록 함께 계심을 약속했다. 승천하시면서도 또 부탁하셨다(행 1:8). 주님도 실제로 전도하셨고 훈련시키면서 명령하셨다. 예수님의 이 방법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전도훈련을 시켜야 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예수님의 훈련방법을 살펴보자
1. 예수님의 사역에 나타난 전도 훈련방법
1) 사람을 선택하시는 방법이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셨다. 주님은 우리의 완전한 모본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들의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말씀하셨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주님은 목적이 분명했다. 주님은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믿어 자기 백성을 하늘에 있는 영원한 처소로 인도하러 오셨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시기를 원하신다. 그런 목적으로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죄로부터의 구원을 베풀기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주께서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신 것을 의미한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오신 이유를 설명했다.(막 1:38)
예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었으며 또 우리처럼 결함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그 시대의 평범한 직업을 갖고 생계를 꾸려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녔고, 부활을 목격했으며, 교회교리의 기초를 세웠으며, 교회를 세우는 기초를 확립하였고, 이사와 기적을 행했으며 이들만이 사도로서 인정이 되었다.
로버트 콜먼은 제자들의 특징을 가리켜 배우기를 열망하는 이들이었다고 했다. 이것이 그들을 위대한 사도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인간적인 수많은 약점과 결점들이 있었지만 위대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들은 변화가 되었다. 그 이유는 주님께 배우기를 원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수에게 집중하셨다. 대중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12명의 제자에게 전폭적인 기대와 훈련을 시켰다. 오순절 이후 그들은 당시 예루살렘과 로마를 뒤흔드는 사람들이 되었다. 결국 예수님의 전도훈련이 성공하였다는 뜻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지켜야 하는 원리이다.
오늘날에는 어떤 기준으로 사람들을 택하여야 할까?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는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은 삶의 기초가 올바른 사람, 즉 성령의 은혜를 받고 복음의 핵심을 이해하며, 복음대로 살려는 사람이며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 상대방을 이해하며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본인의 의견으로는 말씀을 갈급해하는 사람, 언제든지 마음이 변치 않는 충성된 사람, 그리고 사명감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충성된 사람이란 하나님이 성경에서 제시하신 삶의 목표를 자신의 목표를 받아들이는 사람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삶에 이루어지도록하기 위하여 어떤 값이라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 종의 마음을 가진 사람,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 협력할 줄 아는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쓴 뿌리의 올무에 걸리지 않는 사람, 자기의 생활을 훈련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2) 주님의 훈련방법은 제자들과 함께 동거하는 일이었다.
제자들은 훈련이 끝나감에 따라 더욱 가까워지셨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예수님은 단지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도록 하셨다. 이것이 바로 그의 훈련프로그램의 진수였다(눅 6:13-17).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것은 이러한 사귐을 통해서였다. 안다는 것은 함께 지내는 것이다.
주님은 열둘을 택하시고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사 전도를 하게 하시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주셨다(마 10:1-2). 오늘날 전도훈련이 실효성이 없는 이유는 요즈음 전도훈련은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개념을 알고 원리와 방법도 알지만 막상 전도를 시켜보면 모두 두려워한다.
3) 헌신과 순종을 가르치셨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훈련이었다. 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했다. 유다는 탐욕으로 제외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종할 때 전도자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능력있는 도구가 된다(눅 14:33).
4) 전도파송을 하셨다.
주님은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내보냈는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와 병고치는 은사도 주어서 내보냈다(마 10:1-2). 전도자의 발걸음을 하나님은 아름답게 보신다. 구체적인 전도방법도 가르쳐 주셨다. 12명이 나갈 때에는 전도보고가 기록이 안되어 있지만 그후 70명이 전도한 후에는 귀신들도 항복하는 기적을 체험하고 기뻐서 보고하기도 했다.
예수전도협회 이유빈 회장은 전도지만 뿌리고 나서 하나님이 거두시겠다고 자위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5) 사역을 보고케 하시며 점검하셨다.
전도자의 보고를 통해서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전도의 용기를 얻으며 사역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를 만들면 곧 예수 믿을 사람과 시간이 필요한 사람, 아주 마음 문이 닫힌 사람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본인이 담임하는 은평교회는 전도하면서 마음 문이 열려 있지만 아직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랑의 전도편지를 매주 보내는데 아주 좋은 결과를 보고 있다.
6) 재생산하는 일꾼을 만드시는 것이었다.
재생산의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이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다는 말은 재생산에 대한 언급이다. 추수할 일꾼을 재생산하는 사람이다. 주님이 하셨던 정도방법은 사람을 찾고 훈련시켜서 재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바운즈의 말처럼 "사람이 하나님의 방법이다"라는 말은 진리이다. 더 나은 방법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다. 주님은 사람을 찾으셨다. 대중을 무시하지 않으셨지만 언제나 소수에게 집중하셨다. 그리고 함께 거하시면서 순종과 헌신의 본을 보이셨고 훈련을 시키셨다. 그리고 권위와 권능을 부여하셨다. 그리고 사역을 보고케하여 점검하셨고 재생산할 수 있는 전도자가 되도록 훈련하셨다.
Ⅱ. 초대교인들의 전도의 어려움
1) 초대교회 당시 역사적 배경
초대교인들 가운데는 로마와 대항하려는 열심당원 시몬도 있었고 세리 마태도 있었다. 이들은 서로 융합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또한 문화적인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전해 내려온 고대 문화가 없었다.
그들은 배후에 전혀 조직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 로마의 황제들은 어떤 목적으로도 15명 이상 모이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만 섬기며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며 안식일은 절대로 일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유대인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살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 "제 삼의 족속"으로 살아 나갔다.
또한 계층의 장벽이 있었다. 못가진 자와 가진 자 사이의 장벽이 있었다. 주인과 하인, 노예와 노예 주인과의 엄격한 구분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임할 때까지는 불가능하였다. 또한 다신론적인 종교의 벽이 있었다. 로마인들은 한 나라를 정복했을 때 그 나라의 신을 찾아내어 신들을 그리이스 만신전(萬神殿)의 일원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배타적이었기에 황제들은 기독교인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했다. 또한 타락한 사회의 장벽이 있었다. 정치적인 의심의 장벽이 있었다. 네로나 하드리안 같은 로마 황제들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가이사가 하나님인 것을 거부했다. 뿐만아니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에도 어려움은 있었다. 우선 그들은 학문도 재물도 권력도 지위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
유대교는 그들과 강한 대립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가 금하는 돼지고기도 먹었고 이방인과 식사도 했다. 또 유대교의 전통인 할례를 행치 않았다. 그들은 당시에 유대인과 로마인들이 보기에 완전히 실패한 사람을 메시야로 선포했다. 나무에 달려 죽는 자마다 저주 아래 있다고 구약은 말했기 때문이었다(신 21:23). 민족을 해방시키고자 애쓰는 민족주의자들은 그들을 멀리했다.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사람들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2) 초대교회의 전도방법
초대교인들이 영향력있게 전도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들은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행 2:45).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행 4:37). 모두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제 재물을 조금도 제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행 4:32).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고(행 4:19), 인내했으며 진심으로 영혼을 사랑했다(행 4:12). 온 교인이 사역에 헌신했다. 불신자와 가난한 자에 관심을 가졌다. 아름다운 교제가 있었다. 예배에는 활력이 있었다. 말씀을 강조했다. 성도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사도들은 가르치는 일에 주력했고 규칙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또한 기도에 전념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명령, 그리고 성령은 그들을 전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의 엄청난 회심과 전도의 기쁨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의 전도방법은 전교인 전도였다(행 4:31). 중심에부터 밖으로 뻗어나가며 일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집중하였다. 가정에서의 모임을 많이 가졌다. 구약의 말씀을 많이 인용했다. 선교여행을 많이 다녔다. 무엇보다도 성령의 강권하심에 그들이 전폭적으로 순종한데 전도의 비결이 있었다. 성령은 죄를 책망하신다(요 16:8). 주님을 증거케 하신다(요 15:26).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의 능력과 인도를 항상 구해야 한다. 초대교회는 성령을 거스리지 않았다(행 7:51). 소멸하지 않았다. 성령을 근심시키지도 않았다(엡 4:3). 성령을 두려워하며 멸시하지 않을 때, 성령을 의지하고 귀하게 모시고 사모할 때, 성령은 강권적으로 전도케 하신다.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헌신 그리고 성령의 음성에 전폭적으로 순종한 이 모든 것들이 초대교회의 전도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초대교회는 환경으로나 숫자로나 지금의 상황보다는 훨씬 어려웠다(행 1:14). 그러나 그들은 자기를 위해서 생명을 주신 주님의 사랑과 권능을 믿었고 그 말씀에 순종했다(행 5:29). 수많은 고난도 따랐지만 기쁨으로 인내했다(행 5:40-42). 그들은 제자훈련과 전도훈련을 동시에 받았고 양적인 성장과 질적인 성장이 함께 있었다(행 2:42-47, 9:31). 전도와 능력이 항상 함께 역사했다(행 13:7-10). 전도 받은 사람마다 변화되었던 것이다.
초대교인들의 전도훈련자는 성령님이셨다(행 8:29, 13:2-3). 동기는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시작했지만 진행자는 성령이셨고 교인들은 어떤 음성에도 명령에도 순종했다(행 13:3-14). 성령으로 변화된 그들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복음으로 다가오게 되었다(행 2:43, 21:30).
지금도 추수할 것은 많다. 일꾼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마 9:37). 지금도 초대교회와 같은 능력있는 전도와 회심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까? 도날드 매크레오드는 초대교회의 성령의 역사를 단회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존 윔버같은 이는 성령의 역사는 특정 사회에만 국한될 수 없는 것이며, 모든 사람에 적용되어져야 하고 체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초대교회처럼 회심의 역사 치유의 역사, 방언의 역사, 구제의 역사등은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본인도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우리도 초대교인들처럼 성령 받기를 사모한다면 성령에 취한다면, 복음전파에 준비만 되었다면 그런 기적은 지금도 일어난다고 확신한다. 능력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히 13:8)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마 28:20).
Ⅲ. 한국교회 초기에 나타난 전도
한국교회가 100년 남짓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양적으로 세계가 놀랄만한 성장을 이루게 된 배경과 원인은 무엇일까? 성장은 절대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성장을 하게 하심 즉, 강권적인 역사가 있어야 한다. 또한 성장을 이루시는데 준비된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양적 성장은 질적인 성장이 따를 때 수반된다. 한국교회는 어떻게 무슨 요인이 성장을 가져오게 했을까? 적어도 해방 이전의 한국의 초대교인들은 어떻게 전도했을까?
1. 교육을 통한 전도
선교사들은 미션학교를 세워 선교활동을 펴나갔다. 아펜셀러는 배재학당을 언더우드는 예수학당(현 경신중.고등학교), 정신여학교를 그리고 평양에는 숭실학교를 세웠다. 다시 호남지방에도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부에서 학교를 세웠다. 선교사들만 학교를 세운 것이 아니라 지방에 교회가 세워지면 지역에 봉사키 위해 학교를 세워나갔다.
1909년까지 장로교만도 6백개의 학교와 14,708명의 학생이 있었고 감리교회에서도 200개의 학교 외 6.423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그 중에 3,000여명이 여학생이었다고 한다. 지역교회에서 학교를 세울 때마다 많은 청소년들이 몰려오고 있었고 그들은 구주를 영접하고 졸업한 후에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2. 의료선교를 통한 전도
한국 최초로 입국했던 선교사는 알렌의사였다. 1884년의 갑신정변으로 개화파의 습격을 받고 생명이 위태해진 민영익을 치료해준 후 그는 정부의 도움으로 왕실의사가 되고 최초로 서양병원을 개원하였다. 이 병원이 제중의원이 되었다가 오늘날의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다.
감리교 선교부에서는 시병원을 세웠고 평양에서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으로 평양기독교 병원을 세웠으며 대구에서는 기독병원, 부산의 일신병원, 전주 예수병원, 광주 제중병원등 이렇게 해서 세워진 병원에는 의사 선교사, 간호원 선교사들이 와서 선교를 이루어 나갔다. 의료관계 종사자들은 모든 장애를 극복하면서도 의료분야와 사회적으로 복음전파 사업으로도 놀랄만한 기여를 했다.
그리엄슨과 오웬은 장로 목사로, 스크랜튼은 감리교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의료전도는 자연히 위대한 의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3. 성도들의 삶을 통한 전도
초대 한국교회의 전도는 생활로 보여주는 전도였다. 선교사 게일은 "우리의 손이 미치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났고 주정뱅이가 개과천선하고 노름꾼이 구원받고 어른들과 어린 아이들은 불결한 습관이 고쳐졌다"고 보고했다.
양반들은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첩을 버리고 열심히 일했다. 룻기서를 배우고 나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한꺼번에 회개했으며 노름과 술을 금하고 검소한 생활로 애국하는 사람이 되었다. 애국운동의 중심은 교회였다 따라서 일제는 강제로 출애굽기 설교를 못하게 했다. 이처럼 교회는 사람뿐 아니라 민족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변화된 모습,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전도야말로 가장 확실한 전도방법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4. 한국에 적절한 전도방법
그것은 네비우스 선교방법이었다. 네비우스의 선교정책은 네비우스 선교사가 주장한 선교이론으로 모든 교회는 자립, 자전, 자치, 자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스스로 독립하며 스스로 전도하며 스스로 처리해가며 스스로 교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따라 모든 선교사는 순회 개인 전도자가 되어야 하며 모든 평신도는 배우며 가르쳐야 하며 사역자의 생활을 책임져야 하며 조직적인 성경공부를 해야 하며 성경의 교훈에 따라 엄격한 훈련과 처리를 하도록 했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외부의 도움없이 일어서려고 노력했다. 최초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이수정씨가 그랬고 최초로 세워진 소래교회도 순전히 한국인의 힘으로 지어진 교회였다. 1880년에 이르러 188개의 장로교 가운데 186개는 완전히 자립교회였다. 감리교는 처음부터 자립을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립할 수 있는 교회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1898년도에 126곳 중 69개 교회가 자체적으로 건물을 지었다.
이는 선교에도 영향을 미쳐서 1912년 9월 첫 총회를 열 때 해외 선교회를 조직하고 한국인 목사 세가족을 중국의 산동지역으로 파송함을 결의했다. 복음을 받아들인지 25년만에 선교사 44명, 목사 52명, 장로 125명, 38개 교회, 989명의 세례교인, 1900명의 학습 강좌교인, 7만 여명의 신자를 갖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교회에서 보내는 교회로 탈바꿈한 것이다.
5. 회개운동과 말씀운동을 통한 전도
1907년 하디선교사의 회개가 기폭제가 되어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부흥사경회를 통해 900명에게 회개의 영이 임하고 이는 곧 성경공부 사경회로 이어졌고 한국교회의 기초를 반석 위에 세워 놓는 결과가 되었다.
이 회개 운동은 장장 6개월간 전국 교회와 학교를 휩쓸었고 그 여파로 100만명 구령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 새벽기도회이다. 1910년에는 수만명이 신자가 되었고 사경회에는 수천명씩 모여서 말씀공부를 했으며 그들의 숫자는 세례교인의 두배에 달하였다. 이 성령운동, 곧 회개운동은 교회 성장의 초석이 되었다.
6. 전도를 통한 교회 성장
초기 선교사들은 철저하게 전도운동을 전개했다. 초신자는 의례 전도를 사명으로 갖도록 가르쳤다. 1905년에서 1910년까지 매년 70%로 성장했다. 1905년에 3만의 신도가 1910년에는 15만명으로 증가했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지도 얼마 안되었지만 폭발적인 교회 성장은 바로 평신도들이 사명을 갖고 복음을 증거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명관교수는 평신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그것을 전하는 것과 직결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조국을 당면한 위기에서 구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 민중각성의 시대에 있어서 만인제사장적인 자급전도의 형태는 거의 필연적이었다.
김수진 목사는 그의 저서에서 핸트리(M. Hentry)와 존스(G. H. Jones)의 글을 빌어서 "한국교회의 성공한 이유는 선교정책,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지리적, 심리적 요인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개종한 순간부터 제자가 되어 전도자로 나서며 새신자를 증식시켰기 때문이다"고 했다.
개종자 수는 교인 수보다도 더 많았다. 출석수는 등록교인 수보다 더 많았다. 이들은 전도하는 일에 있어서는 가만히 있지를 않았고 또 전도하는 일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 등록하자마자 이들은 성경통신강좌를 통해서 철저하게 성경을 공부했다. 성경을 배운 이들은 학습교인이 되었고 적어도 세례교인은 전도의 열매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성경 말씀은 곧 그들의 생활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곧 전도하러 다녔다. 1985년 마펫은 이렇게 썼다.
"20여명 이상이 되는 신자들이 성경책을 갖고 다니면서 이 마을 저 부락에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며 안식일마다 정기적으로 모여서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가르치려고 한다."
또한 교회 앞에 십자가 표시 깃발을 걸어 놓아 교회가 있다는 표시를 했다. 이것은 교회의 표시이기도 했고, 전도의 표시이기도 했고 교인의 표시이기도 했다. 정령숭배에 젖어있던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이 나가고 악귀들린 자가 고침을 받는 것을 보고 집단적으로 가족 전체가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의례이 전도하는 것이 전통화되고 있었다. 세례 받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겠다는 서약을 예수 믿겠다는 증거로 요구했다. 문답시에 전도한 사람의 이름을 대지 못하면 반드시 전도할 약속을 했다.
김활란씨도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다. "어머니는 기독교로 개종한 그날부터 개인적으로 전도하러 다니셨다 …… 어머니 스스로가 바울같은 유형의 경험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신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다니시면서 전도하는 권서(전도) 부인을 통해서 만나셨다. 그랬기 때문에 어머니도 자신의 신앙을 남들에게 전하러 다니셨다. 그 후로 남은 생애 매주 동안 주일마다 한사람씩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시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세례 받을 때마다 완전히 변화된 생활의 모습이 있어야 했고 전도 증거가 있어야 했다. 마치 미국의 초대교회가 교인들 앞에서 자신의 구원간증과 체험을 목사와 교인 앞에서 간증해야만 세례를 주고 멤버로서 인정했던 것과 같은 형식이었다. 세례 받기를 원하는 사람마다 더욱 엄격한 규범을 요구했다.
Ⅳ. 지금까지 우리가 논한 전도 훈련방법의 역사적 고찰을 요약.
한국교회의 초대교인들의 전도는 초대 예루살렘의 모습과 아주 흡사했다. 정치적, 경제적, 영적인 배경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교육과 의료 선교가 있었다는 점이다.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희생과 철저하게 자립, 자치, 자전을 추구하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더 헌신적인 교인이 되게 하였다.
한국의 평신도 전도인과 사역자를 양성한 것도 큰 성장의 힘이 되었고 첫 총회에서 선교사 파송을 결정한 것은 정말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성장의 요인은 교인들의 변화된 삶이었다. 모든 가치관과 사회가 붕괴되어 왔던 가운데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민족의 암울한 시기에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었다. 모든 교인들이 날마다 전도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알고 순종했다. 엄격한 세례교인의 기준도 한국교회를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놓은 초석이 되었다. 1907년부터 시작한 성령의 회개하게 하심은 100만 구령 열정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지금의 민족 복음화 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초대 한국교회의 전도훈련은 누가 시켜서라기보다는 철저하게 성경에 충실하게 살려는 믿음이 저절로 전도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성령의 강권적인 회개와 변화시키심 역사하심이 그 어려운 시기에 새벽기도, 주일성수, 십일조, 주초문제 금지, 축첩금지등의 좋은 전통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지켜지게 하는 영향력이 되었다(요 15:7). 왜 전도가 어려운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왜 전도가 되지 않는가? 우리의 삶에서 변화된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포기하지도 않고 드리지도 않기 때문이다(마 19:22). 한국 초대교회처럼 철저하게 성경을 배우고 성경말씀대로 순종한다면 다시 한번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리라고 확신한다.
Ⅳ. 현 한국교회의 다양한 전도방법 중 가장 획기적인 전도전략 몇 가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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