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을 떠난 후 제가 그를 다시 본 것은 90년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학교에 다닐 때 2년을 같은 캠퍼스에서 생활하였었지만 그 기억은 별로 없군요. 하나, 그와 같은 반이었던 우리 동기 주영희는 그를 일컬어 크래스에서 늘 앞 자리에 앉아 진지하게 공부한 모범생이었다고 말 하더군요.
그때가 91년도 쯤이던가?
저가 늦게 서울 온 탓으로 처음에는 서울에, 서울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 많은 서울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기가 무서워 당췌 정이 들지 않더니, 시간이 흘러 감에 따라 가까스로 동서남북을 조금씩 파악하게 되고, 동기들과 간간이 연락도 하게 되고... 그러다 동기회를 다시 주선하게 되었지요. 초창기에는 동기들이 제법 많이 모였었다는데 시간과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빠지게 된 동기들이 많아졌고 그러다 예닐곱 명의 동기들만이 끝까지 남아서 20 여 년간 동기회라기 보다는 친목회 정도의 구실을 하면서 남아 있는 그 당시의 실정이었지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동기들을 불러 모아 20 여명의 동기들이 다시 모였는데 우리는 그때 황수관을 동기회장으로 뽑았었지요.
그때도 그는 참 열성적이었습니다. 꼭 시간을 지켜 제 때에 나와서는 동기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기고 반듯하게 동기회를 이끌어 나갔었지요. 한참을 그러다 어느 날 아무래도 너무 바빠서 동기 회장 일을 그만 두어야 겠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그 무렵 전후해서 서울 역 앞에 " 황수관 스포츠 건강센타 " 라는 연세대 외래 클리닉을 마련 하였지 않나 추측이되는군요.
동기회 일을 맡을 때 워낙 성실히 일 했었고 그토록이나 동기들을 세세하게 보살폈던 사람이기에 우리는 선뜻 그의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니까요.
사람 살아가는 일이 결코 호락호락하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저가 황수관만을 생각 할 겨를이 없었기에, 나름대로 자기 앞에 주어진 生 이라는 과제에 충실하려고 안간힘 쓰면서 애쓰고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또 몇 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는 " 신바람 박사 황수관 " 이 되어 우리들 앞에 나타났었지요.
우리는 그의 성공에 놀랐었고, 그의 유머러스한 강연에 흥분했었고, 생(生)을, 삶을, 웃음으로 풀어가는 그의 생활 철학에 고개 끄덕이며 동조하게 되었었지요. 불확실한 시대는 항상 우리들에게 크게 혹은 작게 고민거리를 안겨 주었고, 그 고민거리들과 씨름하다 보면 어느덧 우리들의 미간엔 깊은 표정 주름이 잡히게 되고 그러면서 우리는 차츰 늙어가게 되지요.
어차피 다가올 일들 그리고,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일들이라면 이왕이면 즐겁게, 기쁜 마음으로 풀어나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일이겠지요. 우리들이 미처 느끼지 못했을 때 그는 그것을 터득하였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의관을 가즈런히 정제하고 어허엄~ 하고 큰 기침을 하여 자신의 면모를 근엄하게 가꾸어 타인 앞에 군림하여 왔던 유교시절의 풍습을 과감히 깨고, 있는 그대로 소탈하게 웃으며 우리들 앞에 다가온 그를 대중들은 박수치며 환호하여 맞이 하였던 것이지요.
얼마전,
교대3회로 넘어 온 재경 동문회 회장직을 두고 저희 교대3회에서는 총 비상이 걸렸습니다. 수석 부회장으로 있던 동기가 여러 가지 사정상 회장직을 맡을 수 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루 하루 정기총회 날짜는 다가오는데 등에 식은 땀이 흐르더군요. 그러다 마침내 총회 날짜 사흘을 앞두고 우리 황수관 동문이 회장직을 수락하였었지요. 그렇게 바쁜 그도 재차, 삼차 권유하는 동기들의 부탁을 외면 할 수가 없었던가 봅니다.
너무나 일정이 바쁜 그였기에 동문회 사무국 일선에서 떠났던 저가 다시 후배들을 뒤에서 도우게 되면서 아닌게 아니라 걱정이 많았습니다. 저의 걱정은 그가 회장 이름만 걸어놓고 일년을 보내게 되면 동문님들께 죄송하여 어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저의 걱정이 기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회장직을 맡더니 그는 모든 일정을 동문회의 일정에 맞추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하더군요. 지난 1월28일에는 임원 이사회를 열어 참석하신 40명의 임원 이사님께 신고식인 상견례를 하였지요. 상견례를 마치고 돌아간 날 밤에는 다시 전화를 하여 일 년간 수고할 사무국 임원을 따로 만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저께는 우리 동문회의 산 증인이신 사범5회 이인기 고문님과 달구벌산악회를 구성하여 오늘이 있게 하신 사범9회 김창수산악회지도고문님을 모시고 사무국팀들이 만났었지요. 더구나 동문님 하나하나의 근황을 예사로 보아넘기지 않고 이번사무국 팀의 만남은 '예사랑' 으로 하자고 해서 정말 그리하였습니다.
"예사랑"
사범9회 조명웅선배님께서 평생의 꿈을 걸어 개관하신 예사랑은 일반 카페가 아니고 글자 그대로 예술을 사랑하는 갤러리 더군요. 옅은 오렌지색의 아늑한 분위기에 그 어느 콘스트홀 같기도 하고, 천정을 높게 처리하여 한 공간 안에 복수층을 만들어 아랫층과 윗층이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며, 아래 위층에 돌아가며 전시 된 작품들이 예사작품이 아님은 저희 같은 문외한에게도 단번에 느낄 수가 있었지요.
각 테이불 밑에는 조그만 풍경을 달아 주인장을 부를 때 초인종처럼 쓰게 되어 있고, 홀 안 구석구석에 은은한 커피향처럼 스며있는 소품과 진열품들의 멋스러운 아취는 그 자리에 잠깐 앉아 있다가 나오는 것 만으로도 우리들에게 삶의 격조를 아름답게 높여 줄 것 같았지요.
온 정성을 다한 해물 찌개의 구수하고 들큰한 맛과 마지막으로 나온 ' 제대로 된 차' 의 그 농익고 함축된 맛은 이루 말로 다 표현 할 수가 없더군요. 아무튼 우리들만 가지기엔 너무나 아쉽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우리의 그 황수관은 저에게 살며시 쪽지 한 장을 쥐어 주더군요. 거기에는 이런 글짜가 찍혀 있었지요.
정금자 부회장님!
이분 동문들을 한 자리에 모이도록 주선 좀 해주세요.
우리 동문들을 기쁘게 하시는 너무나 귀한 분들입니다.
제가 자리를 마련해 볼까 싶습니다.
저는 어두운데서 건네 받은 그 쪽지를 집에 와서 살펴보고 가만히 웃었지요. 그가 초청하고 싶어하는 동문들 중에는 고문님도 계시고, 본명과 닉네임이 서로 중복 된 분도 있고, 경북에 계신 분도 있긴 하지만 동문들 하나 하나와 만나고 싶어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나 고마와서 말입니다. 삶에 대한, 인생에 대한 해학적인 해석을 그는 무척 소중히 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 달구벌 카페의 유머 코너에 글을 올리신 분들과 따로 한 자리를 갖고 싶은가 봅니다.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언제 자리를 주선 해 보지요. 아마도 경북의 장극조는 한 걸음에 달려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ps.
<일전에 그는 저에게 전화하여 울면서 말하더군요. 제 언니 병문안을 하고 싶다고요. 저는 남자가 전화로 제게 눈물 흘리며 말하는 것을 처음 경험했기에 정말 황당하였었지요. 그는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박세옥후배 위로하다 우연히 제 슬픔까지 뱉어낸 글을 그가 읽었는가 봅니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까요? 다른 이의 아픔에 같이 맘 아파 울 수 있는 남자가 과연 요즘 세상에도 있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너 같이 바쁜 사람이 오면 안 된다고, 정말 많이 아파 죽을 지경이 되면 오라고 한사코 말리던 언니가 황수관이 오겠다는 것을 제가 사양했다고 하였더니 " 아이고, 그 어른이 온다면 만나야지..." 하는 것이었지요. 저는 너무나 놀라 기가 막혔습니다. 그는 자리 보전하고 앓아 누운 사람까지 벌떡 일으켜 세우는 재주를 가졌나 봅니다. 황수관의 위력을 그날 저는 새삼 실감하였습니다. 이만 총총.>
첫댓글가까이서 뵌 황수관 회장님의 모습은 너무나 자상하시고 ,웃음 속의 조용함, 겸손함 등 정말 내적인 충실함이 더욱 돋보이는 분이셨습니다. 1년동안 몇번 뵐 수 있을지는 몰라도 뵐때마다 무엇인가 느끼게 되리라 생각되어 지금부터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답니다. 선배님도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 는 노래 가사...
조용히 건네 받은 <저 보세요, 그래도 웃잖아요.>라는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긴 한 권의 소중한 책을 읽어보렵니다. 성공한 사람들중에는 남다른 고충과 힘들고 어려운 나날들이 있었겟지요.인생철학이 담긴 책이라 생각되며 앞으로 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이 되네요. 감사합니다.^0^
첫댓글 가까이서 뵌 황수관 회장님의 모습은 너무나 자상하시고 ,웃음 속의 조용함, 겸손함 등 정말 내적인 충실함이 더욱 돋보이는 분이셨습니다. 1년동안 몇번 뵐 수 있을지는 몰라도 뵐때마다 무엇인가 느끼게 되리라 생각되어 지금부터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답니다. 선배님도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 는 노래 가사...
조용히 건네 받은 <저 보세요, 그래도 웃잖아요.>라는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긴 한 권의 소중한 책을 읽어보렵니다. 성공한 사람들중에는 남다른 고충과 힘들고 어려운 나날들이 있었겟지요.인생철학이 담긴 책이라 생각되며 앞으로 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이 되네요. 감사합니다.^0^
정선배님, 정말 오랜만에 들어와 보니 많은 이야기들이 있네요. 신년회때 참석하지 못해서 이사회엔 참석하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선배님 옆 동에 사는 제 딸 산 후 조리로 한참 묶여 있었습니다. 어제 밤 늦게 되돌아 가고 나니 오늘부터 제 생활을 찾았습니다.
곁에서 대화를 해 보니 예의 바르고 또한 인간미 가 너무나 좋은 사라이라는 생각 이 드네요 회장 재임 동안 많은 협조를 해 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