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전도방법 : 우정전도
1.오늘 우리에겐 우정전도가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다양성과 대중성 그리고 그속에서의 익명성으로 특징지워지는 사회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즉 많은 만남과 접촉들이 있지만, 진정으로 인격적이며, 인간적인 만남들의 부재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늘날의 현실은 더욱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잃어버리고 심지어는 자기 중심적 환경속에서 나름대로의 방어벽을 쌓아 놓고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까지 드러나곤 한다.
여기에 다양한 문화 매체의 발달과 신세대들의 진리에 대한 개념의 왜곡, 상대주의의 만연, 자기 중심적 자유주의 등의 영향으로 점점 이전에 효과적이었던 복음전도에 있어서의 다양한 방법들이 조금씩 그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는 다양한 관심의 변화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대처가 부족한 가운데 계속해서 과거의 틀과 방식을 고수하려는 어리석음 때문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복음을 듣게될 우리 친구들의 관심의 변화와 성향의 변화는 오늘날 캠퍼스에서 복음을 더욱 효과적이고도, 능력있게 증거하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가져다 준다. 오늘날 상황속에서 과연 능력있고, 진정으로 회심을 낳는 전도의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바로 이런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우정전도라는 것이다.
이 우정전도는 변화되는 상황 가운데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전도방법은 아니다. 우정전도는 과거 예수님의 사역하시던 모습 가운데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지상 사역을 위해서 신적인 권능과 권위로 사람들을 압도함을 통해서 자신의 사역을 완수하려 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과 죄인들과 병든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시며, 그들의 아픔과 부족과 문제들에 대해 실제로 함께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며, 슬픔의 눈물과 기쁨을 나누기까지 하셨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의 동화를 통한 우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정한 문제 곧 죄사함과 구원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주셨다. 이것이 진정한 예수님이 보여주신 참된 우정을 통한 전도의 본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캠퍼스를 돌아보고, 우리 주변의 믿지 않는 친구들을 돌아볼 때마다 우리 마음에 드는 생각이 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는 해야겠는데 어떻게 전해야 할까?” 우리는 주저하다가 대학생활을 마치고 그 친구와 헤어져 살아가게 되는 자신의 모습에 후회를 하곤 한다. 여기에는 우리의 전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부담감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사단의 교묘한 술책일 수도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먼 곳에 나가서 열심히 복음을 증거할 만한 용기나 은사가 없을런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속한 학과, 캠퍼스, 그외의 생활 영역 가운데서 빛과 소금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통해서 불신 친구를 사귀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도울 수는 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고, 오늘날 잃어버려 가는 인격성과 인간성 속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에게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도록 하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고 확신한다.
2.만남을 가지라!
우정전도의 첫걸음은 의미있는 만남을 갖는데서 시작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셨듯이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일부러 나설 필요 없이, 학과, 동문모임, 강의실에서 만난 친구, 동아리 가운데서 늘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그들과 함게 커피 숍에 간다든지 식사를 같이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어느 한 지부에서는 최근 전 멤버들을 대상으로 삶의 우선권과 행사일정에 대한 연구를 한 적이 있었다. 모든 멤버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전도라고 인정은 하면서도, 대부분이 지부와 각 그룹의 일정에 매여서 불신자들과는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두 주동안 큰모임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을 취소하기로 했다. 그 대신 각자가 자기 학과에 가서 그 나머지 시간을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는 일을 위해 시간을 활용했다. 어떤 멤버는 학과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같이 먹으며, 여유있는 시간을 보냈다. 점심식사 시간이 다 지나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각자 도서관으로 떠난 후에 한 친구가 남아서 “오늘 함께 점심을 먹으며 너랑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런데 너의 삶에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애.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전하며 아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다. 우정전도, 아니 친구들과의 우정은 바로 만남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만남을 통해서 서로가 알아가고, 서로를 이해하며,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바쁘다. 학과 공부, 취직준비, IVF 활동, 교회 봉사, 취미 생활, 아르바이트 등 실로 잠깐의 시간도 짬을 내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 게다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불신 친구와 함께 지내는 것보다는 같은 그리스도인들끼리 함께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끼리 함께 공부하고, 신앙을 나누는 것은 참으로 유익하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캠퍼스와 학과속에 우리를 남겨두신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런 생각들이 편협된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실제 우리 IVF 멤버들의 대부분은 ‘땡돌이’들이다. 우리 불신 친구들의 눈에는 강의 시간 마치는 ‘땡’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안보이다가, 강의 시작 시간이 ‘땡’하고 울리면 어느새 자기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는 이상한(?) 사람들로 보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의 시간과 관심을 불신 친구들과 나누고, 만남을 가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런 우리들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만남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몇가지를 제안하려고 한다.
◉ 우정의 목적은 사랑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의 불신친구들과 더욱 친밀하게 사귈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만 사귀어야 한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내가 전하는 복음을 네가 만일 듣지 않는다면 넌 나의 친구가 될 수 없어!”하는 식의 모습은 올바르지 않은 것이다. 나의 불신 친구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관계가 시작되어야 한다.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관심을 나누며,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나누는 우정이다.
◉시간과 관심을 나누라.
만남을 가지고 서로 우정을 쌓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공동의 관심사를 찾고, 함께 이를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태도, 신념, 행동이 불신 친구들과 다를 수 있다. 실제로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과 대화를 하고,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복음서를 통해서 우리는 실제 예수님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셨으며, 대화를 나누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나의 불신 친구가 가지는 관심사에 대해 함께 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 친구가 농구를 좋아한다면 함께 운동장에서 농구를 할 수 있다. 콘서트에 가고 싶어하는 친구를 위해 함께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다. 함께 영화를 보러가는 것도 물론이다.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며 리포트를 서로 도와 주는 것도 할 수 있다. 언젠가 한 자매가 찾아와서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한다. “간사님! 제 친구가요, 예수 믿는 사람도 이런 것 하니? 난 예수 믿는 사람은 고리타분하고 함께 할만한 친구가 못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널 보니깐 그렇지도 않네.”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
실제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는 고민과 어려움으로 힘들어 한다. 겉모양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 같고, 우리들보다 더 뛰어난 것 같은데도 대부분은 그들만의 심각한 고민을 한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 보통의 친구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문제는 가정 문제와 개인의 성격과 취업에 대한 고민들이다. 우리는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을 도와 줄 수 있다. 우리가 직접적인 해결을 이루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을 통해서 그들을 도울 수 있다.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자기가 가진 것은 없지만 구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것을 통해서 앉은뱅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았던가! 그렇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할 수 있는 것은 모든 문제의 해결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친구들에게 반드시 도움을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때론 그들을 도우는데서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인격적인 관계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진정한 우정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는 어려움과 걱정, 그리고 답답함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론 우리의 이런 연약함이 그들로부터 더욱 깊은 우정의 신뢰와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는 자리까지 이끌기도 하기 때문이다.
3.우정전도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한 번에 한 사람씩 집중하라.
우리가 자신-마음과 감정, 시간과 돈-을 많은 사람과 교제하는데 내어 놓기 보다는 몇 사람에게 집중하거나 한 사람에게서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수님은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의 대부분의 시간을 열두명의 제자들과 보내셨다. 또한 그 중에서도 특별히 세명에게 집중하시고, 종종 개별적인 만남을 갖기도 하셨다. 우리는 만인의 친구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많은 복음을 전해야 할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특별히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한 사람은 학과에서 가장 친한 나의 단짝일 수도 있고, 노방전도에서 만난 친구일 수도 있다. 이제 눈을 감고 생각해 보라. 우리의 친구 중에 성실한 섬김으로 집중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친구를 위해 기도하라.
이제 대상을 정하고 그 친구에게 집중하기로 했다면 먼저,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특별히 그 친구를 위해 매일, 정기적으로 경험을 통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친구를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고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의 증거가 약하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친구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해 주신다. 기도를 통해서 점차적으로 친구에게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할 기회에 대해 민감하게 되고,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있도록 하는 담대함이 더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친구에게 말하라.
친구에게 친절하고도 정중하게 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정은아, 중요한 일에 관해서 너와 얘기하고 싶어. 지금 시간있니?” “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니?” “예수님에 대해서 넌 어떻게 생각하니?” “만약 오늘 죽음이 닥쳐온다면 넌 어떻게 하겠니?” “넌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니?” 이 외에도 상황에 맞는 적절한 질문을 고안해 낼 수도 있다. 요점은 친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도록 도울 수 있기 위해 그가 영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제 친구가 질문에 대답을 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복음에 대해 할 수 있는한 분명하고 설득력있게 말해야 한다. 한 번의 단순한 제시가 우리의 친구에게 복음을 이해하는데 불충분하다면 함께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해보자고 제의를 할 수 있다.
언젠가 한 자매에게 친구가 찾아와서 “성경을 좀 보여줄 수 있겠니? 성경을 한 번 읽어보려고 하는데 지금 성경이 없거든.”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자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자신이 가진 성경책을 빌려주고는 그 이후로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진지하고도 신중하게 우리의 친구에게 복음에 대해서와 영적인 관심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그리고 함께 성경에 대해 공부할 것을 제의할 수 있어야 한다. 전도 성경공부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다음 장에서 소개하고 있다.
◉책을 빌려주라.
좋은 전도용 책자의 강점은 처음에는 명확히 이해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다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그 친구의 주위에 있지 않을 때 조차도 메시지는 전달되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친구의 마음 문을 여는 좋은 수단이 된다. 만일 오늘 소책자를 빌려주고 내일 간단한 줄거리를 물어본다면 친구에게서 영적인 관심이 있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책이나 소책자를 주는 것보다 빌려주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나중에 간단한 설명을 해보도록 질문하거나 친구를 다시 만나서 물어보기가 보다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지나치게 두꺼운 책이나 어려운 내용의 책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그 친구의 관심사와 관련해서 책을 권할 필요가 있다. 과학에 대해 관심이 많은 친구일 경우 정서와 관련된 책보다는 오히려 과학과 기도교에 대해 조명한 책들을 소개한 것이 도움이 된다. 소개할만한 책과 관련된 정보를 따로 소개하고 있다. 이를 활용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그리스도인과 함께 만나라.
하나님은 한 영혼을 당신의 품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도 한다. 한 사람이 말씀을 심고, 다른 사람이 물을 주고, 또 다른 사람이 추수를 하기도 한다(고전 3:5-9;요 4:37-38). 이처럼 내가 우정전도를 위해 계속해서 준비하며, 기도하고, 복음을 소개하기도 했던 관계를 가져왔던 친구를 때론 공동체 내의 선배들이나, 동기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교제하도록 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은 아주 유익하다. 우리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제한점-신앙적, 성격적, 생활적-들에 대해 보완을 해줄 수도 있고, 친구에게 폭넓은 복음의 이해를 경험하게 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론 큰모임이나, 작은모임, 동기간의 모임 등에 함께 참석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실제 계속적인 복음 소개와 우정전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되지 않던 친구가 우연히 동아리방을 찾았다가 IVF 선배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회심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보곤 한다. 이는 우리에게 없었던 논리적 변증이나, 친절함, 공동체의 분위기와 같은 만남과 대화가 회심의 계기가 되곤 하기 때문이다.
◉우정에는 기간이 없다.
친구가 살아있을 동안은 계속해서 우정이 지속되어야 한다. 우정은 무조건적인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친구에게나 혹은 복음에 대하여 재빨리 응답을 하는 친구들만 편애해서는 안된다. 항상 우리의 친구로 남아있고 우리는 여전히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다른 친구들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지불되어야만 하는 빚이고 다른 친구들도 그것을 들을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한 자매는 한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1학년 때 결심을 하고서 계속해서 노력해왔다. 그러다 결국 3학년 2학기 ‘행복에의 초대’ 행사에 참가한 뒤 회심하게 된 경우도 있다. 이 자매는 계속해서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편지를 쓰며, 모임에 초대하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행복에의 초대’ 행사의 단골손님(?)이기까지 했던 이 친구는 공동체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사람만을 바라보면서 그의 회심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계속적인 우정은 이어가되 복음에 대한 구체적인 제시는 때론 유보하고 다음 기회를 선용할 줄 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우리의 친구과 계속적인 우정을 쌓아가는 가운데 추구자 수련회로 초대를 한다든지, 엽서를 지속적으로 보낸다든지, 기타 여러 가지 관심과 사랑의 표현들을 계속해야 한다. 이러는 가운데 진정으로 우리의 친구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전도성경공부를 시작하라.
복음을 전하고, 전도 성경공부를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고 결심한 때로부터 가급적이면 한달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대체로 이 한달이란 기간은 우리가 캠퍼스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사일정 가운데서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달이상의 기간이 흐를 경우 중간고사, 학교 행사, 기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대체로 만남을 지속하기 어려워지고, 처음 다짐했던 마음이 누그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2주 안에 전도 성경공부를 마치고(이를 위해서는 한주에 두 번 이상의 만남을 가져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양육과 관련된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든지, 다른 교재나, 방법을 활용하든지 하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 말라.
우리는 전도에 대한 많은 이론을 배우고 열정에 가득차서 대화 기술을 익히고, 실습한다. 그리고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전도에 있어서 실패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우정전도를 통해서 복음을 소개하고 깊이있는 우정을 통해 인격적인 그리스도를 체험하도록 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불신자로 남아있을 수 있다.
우리는 복음을 불신자에게 전하고, 복음을 잘 이해하고,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구원받도록 그들을 회심시킬 만한 아무런 능력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오직 구원은 그리스도께 있고, 성령께서 불신자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하시는데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가 전한 친구가 복음을 통해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사랑과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때론 우리의 성급함 때문에 열려졌던 친구의 마음이 닫혀져 버리는 경우를 보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 평생에 한번도 우리 눈 앞에서 내가 전한 사람이 복음을 통해 회심하는 것을 보지 못할런지도 모른다. 우리 눈 앞에서 회심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구원을 받을 기회를 영원히 놓쳐 버린 것은 아니다. 우리의 안타까운 마음과 영혼을 향한 그 열정은 하나님께서 보상하실 것이다. 그리고 회심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고 해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무성의 하게 전해서는 더 더욱 안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는 우리 자신과 불신자 그리고 삼위의 하나님 모두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4.하나님 나라의 투시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우리가 앞으로 하게될 우정전도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란 관점에서 사고하고 계획을 세우고 비젼을 소유해야 한다. 내가 복음을 전한 나의 친구가 그리스도를 알게되고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그의 삶의 전영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올바른 기독 지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모습을 한번 그려 보라. 얼마나 감격적인가? 또 나의 이 친구가 다시 다른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를 통해서 또 다른 그리스도인이 탄생하고, 성장해서 또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면 그 이상 감격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나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노력을 다른데서 찾지 않는다. 우리의 삶 한가운데서 조용히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드러내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전투에서 가장 최 전선에서 싸우는 전투병일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많은 군사들 중에서 일당 백을 해내는 특공대일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눈에 보이지도 않을 조그마한 사역, 복음전도를 통해서 한사람을 회심케 하는 것은 장차 그 사람을 통해서 확장되어질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고백했던 것과 같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라는 고백과 같이 전도를 한다는 것은 미련해 보이고 그리 뛰어난 사역을 하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우정전도보다 더 위대한 사역은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정전도를 해야 할 이유이며, 지금 친구를 만나기 위해 멈추어 서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아닐까?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