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나트랑과 달랏 여행(4)
기억을 간직한다는 것, 물건을 간직한다는 것. 그 둘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삶의 과정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은 끊임없이 기억을 다독이며, 쌓고, 건드리며 존재한다. 평생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발견하곤 나 역시 그들이 걸었던 길을 걸어야 함을 절실하게 의식할 때가 있다. 안 계신, 없는 분들과 공유한 시공간 중에도 함께 한 여행 기억은 더 아련하게 한다. 부모님도 그랬다. 부모님을 모시고 국내 여행은 여러 번 했어도 해외여행은 한 번도 못 했다. 부모님이 젊었을 때엔 으레 당신들이 평생 계실 것으로 생각했고, 또 스스로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날 것으로 생각했다. 만약, 지금 당신들이 살아계셔서 해외여행을 한다면 어디로 모시고 가야 할까? 달랏역 부근 식당으로 이동하며 세상에 안 계신 부모님을 생각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가는 넴느엉(Nem nuong Phuang) 식당은 달랏역 가까이 있었다.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달랏역 외관을 보며 기억이란 것, 기억을 끌고 가야 하는 육신의 행로가 결국은 기억을 오랫동안 끌고 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함을 상기했다. 기억은 본 것이고, 냄새로, 입으로, 귀로, 손발로 체험한 것으로 결국 희로애락의 응집이란 것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식당 들어가는 1층 오른쪽에서 요리를 한다. 들어가는 입구 밖에선 숯불에 넴느엉에 사용되는 고기를 굽는데 고기를 대나무에 꿰어 굽는다. 그 냄새가 코를 자극하며 기억의 층을 두텁게 쌓는다. 3층 의자에 앉아 기다려야했다. 1층과 2층엔 이미 손님이 만원이다. 1층은 현지인, 2층은 현지인과 여행객, 3층은 여행객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았다. 야채와 양념장 그리고 얇은 종잇장처럼 구겨진 라이스페이퍼를 미리 주면서 붙어 있는 라이스페이퍼를 떼어 놓으라고 한다. 라이스페이퍼 떼는 일이 쉽지 않다. 얇은 종잇장처럼 만든 그것을 하나하나 떼는데 시간이 걸렸다. 라이스페이퍼 서너 장이 얇은 종이 한 장처럼 붙어 있기 때문이다. 고기가 접시에 담겨 나왔다. 대나무에 꿰어 굽던 고기다. 대나무를 뺀, 소시지 모양으로 잘랐다. 펼친 라이스페이퍼 위에 쌈을 싸듯 고기와 야채를 넣은 후 소스를 찍어 먹는 달랏 전통음식이다. 생각 외로 맛있다. 특히 소스가 입맛을 돋운다. 붉은 빛 소스에 매운 고추 빻은 것을 넣어 매운 농도를 조정하는데 매운 것에 자신 있으면 많이 넣으면 된다. 2인분에 110,000동이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인 3천 정도다. 참 싸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나온 후 후식으로 옆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보카도 아이스크림(kem bo’)을 시켰다. 그것 또한 달콤하면서 맛있기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포만감을 유지한 채 달랏역으로 향했다. 달랏역은 달랏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짜이맛(Trai Mat)끼지 일일 편도 4회 운행하는데 그 운행 자체가 부정기적이라고 한다. 광장쪽 입구 정면 위쪽으로 베트남 국기가 펄럭인다. 삼각형 지붕이 연속으로 세 개 이어져 있는데 그 중 가운데에 정확하지 않은 대형 시계가 붙어 있다. 딜랏역은 종점역이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 자체가 철로를 가로막고 있다. 대게 역사는 철로와 역 건물이 평행으로 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달랏역은 역 건물과 철로가 직각으로 되어 있어 조형물 같은 느낌을 준다. 열차 운행은 관광객이 많아야만 운행하는 비정기선이라고 할까? 하지만 멈춰 있는 열차와 증기기관차는 충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방문객들은 열차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도 역사와 철로를 배경으로 다시 사진을 찍는데 표정들이 밝고 아름답다. 특히 나이든 한국 여행객들은 예전 보았던 증기기관차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역사 안쪽으로 기차 카페도 있고, 다육이 가게, 인두로 나무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도 있다. 나오는 길에 입구 왼편 커피숍에 들러 둘러보다 달랏 커피 1킬로그램을 구입했다. 달랏은 고산지역으로 베트남 어느 지역보다 커피 재배지로 알려졌기 때문에 나로서는 나트랑에서 구입하는 커피보다 의미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찾은 곳이 바오다이 황제 여름 궁전(별장)이다. 어느 나라든 패망한 왕조에 얽힌 이야기가 슬프듯 바오다이 황제(Biet Dien Quoc Truong) 역시 베트남 역사에서 슬픈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국민의 민심과 동떨어진 통치로 결국 패망한 왕조의 마지막 황제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표를 파는 입구에서 별장까지 들어가는 100여 미터 길이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아름답다. 길 양쪽으로 자리잡은 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주변 곳곳에 꼿꼿하게 자란 소나무 역시 달랏이 타 도시에 비해 시원하다는 기후 조건을 말해준다. 소나무는 더위에 약한 식물이다. 별장 내부엔 덧신을 신고 들어가게 되는데 1층에는 집무실, 회의실, 전시실이 있고, 2층은 황제의 가족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침실 세 칸과 부속실이 있다. 그 중 두 번째 방 벽 앞에 책장이 놓였는데 책장을 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비밀통로가 있다고 한다. 슬며시 책장을 밀고 비밀통로를 따라 가고 싶지만 그것은 여행객에게 반칙이라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