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11 - 코리아타운이 펼쳐진 신오쿠보역에서 의인 이수현을 회상하다!
신오쿠보 에서 코리아타운 을 구경하고는 이케부쿠로 에 돌아가기 위해 신오쿠보역 으로
가는데.... 2,016년 1월 26일 바로 여기 신오쿠보역 에서“의인 이수현”
15주기 를 맞아 이수현의 아버지 이성대씨와 어머니 신윤찬씨가 현장을 찾았다고 합니다.
한국 고교생 20명과 와세다대 학생등 추모객들 은 유학중이던 이수현군 이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고 죽은걸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는데, 어머니는 15년이란 시간이 지났어도
현장을 찾아와서 헌장비에 꽃 을 바치고 나면 한결 마음이 밝아진다고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예로 부터 부모에게 있어 "자식의 죽음은 가슴에 묻는다" 고 했으니..... 일행은
근처 주부회관에서 이수현을 기리는 다큐멘터리 영화, 누구라도 국적과
민족을 떠나 국가와 민족을 잇는“가케하시 架橋(가교) 시사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온후 최근 신문에 보니 이수현군의 어머니 신윤찬 씨는 일본 아사히
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는데...... " 한국과 일본은 이웃 이다. 단절 등은 절대로
있을수 없다. 상호간에 다양한 사람과 계속 교제 해야 한다" 라는 발언이 실렸습니다.
부산에 거주하는 신씨는 매년 아들의 사고현장을 찾아 추모 한다는데 신오쿠보역
관계자들은 신씨가 아들을 위령 할수 있도록 북적이는 인파를 통제 하며...
신씨를 배려한다고 합니다. 신씨는 인터뷰에서 "사고가 나기 전에 일본을 방문
한적이 없다. 역사인식 문제등에서 일본인에게 반감을 가진 흔한 한국인 이었다" 며...
"사고후 많은 일본인들을 만난 덕분에 중립적으로 사물을 볼수 있게 됐다" 신씨는
한일관계 개선 을 위해 일본 정부에 "징용노동자와 위안부 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점을 인정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사과 하기를 바란다" 고 촉구했다.
그는 "진지한 마음이란 공식 기자회견에서 준비된 원고를 읽는 것이 아니다" 라면서
"아들의 기일 에 사고 현장에 온 동년배 일본 여성 3명 이 색종이에
적었던 위로의 말 처럼 인간미를 느낄수 있는 행동 이었으면 좋겠다" 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를 향해 "일본기업이 징용 노동자들 에게 손해를 배상하는 사태를 막아줬으면
한다" 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에 따는 일본의 경제지원 은 한국 정부가
국가 발전에 사용 했다. 이것을 한국인이 앞다퉈 요구하면 수습이 안된다" 고 밝혔다.
이는 사상 최악에 처한 현 시점의 한일관계를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 6억불은 포항제철,
울산공업단지, 경부고속도로, 소양감댐, 항만시설, 석유 철광석 고무 목재등 원료 수입 )
그는 "지인이 작년 겨울 한일교류 행사에 참여했더니 40대아들 부부로부터 "이런 시기에
참가해선 안된다" 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 며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등으로 한국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것" 이라고 해석했다. 신씨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일본인과 일본 정치가의 태도에 너무 큰 차이가 나서 곤혹스럽다고 털어놓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사고와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에도, 한국에도 부족한 점이 있다고 깨달았다" 면서 "한국인들
사이에 일본에 대한 피해자 의식 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 접촉할수록
서로의 마음속에 간직한 생각을 알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 강조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날 신오쿠보역 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쿄 지요다구 중의원회관 에
휠체어 를 타고 나타난 한국 위안부 할머니 두분이 있었으니....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정부협의를 규탄 하고 70여년 전의 고통 을 생생히
증언 하며......“아베, 무릎꿇고 사죄하라”고 절규했습니다.
열여섯 나이에 남의 집 식모살이중 심부름 갔다가 돌아오다가 남자 둘이
앞 뒤로 서더니.... 아무말도 없이 팔을 한쪽씩 붙잡고 끌고 갔답니다.
매일 40~ 50명의 남자를 받아야 하는 짐승 같은 생활에 맞고 찓기고 피를
흘렸는데... 도망가려면 건방지다고 칼로 다리를 찔렀다고 합니다.
"아베 신조 총리 는 우리를 보러 한번도 오지 않았다,
왜 자기 입으로 직접 사죄 하겠다는 약속 을 지키지 않는가?"
아베는 얼마전에도 일본 정부나 군이 개입한 증거는 없으며 강제연행한 적도 없다는데
다른 자민당 의원은 저 협정 후에도 "위안부는 매ㅊ부"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군이 월남전에서 양민을 학살했다는데 정부는 우리 군의 기록에는 없다는 말 처럼?)
일본 자민당 이 서울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결의안 을 채택한데 대해 할머니는
우리를 죽여놓을지, 소녀상을 없앨지 둘중 하나로 말하라고 분해 합니다.
이게 다 시간에 쫃겨 어슬프게 타협한 업보 인가요? 일본은“잃은 것은 10억엔 뿐이다”
라며 소녀상 철거 와 국제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 언급 중단 을 요청하네요?
북한 핵위협에 대해 한미일공조 를 해야할때라 미국이 애가타서 양국 등을 떠민 것이라?
작가 미즈키 시게루 는 1922년생으로 필리핀 라바울 전선 에서 22살의 나이로 미군의
폭격으로 왼팔을 잃고는... 1,958년 만화가 로 데뷔하여 팔 하나로 만화를 그립니다.
대표작으로는 게게게의 키타로, 갓파의 산페이, 악마군 등이 있는 일본 요괴 만화 의
1인자 인데, 종군 위안부 관련 만화 코믹 에세이 "종군위안부(従軍慰安婦)" 도 그립니다.
일본군 병사들은 종군 위안부를 "삐(ピー)" 라고 불렸으니.... 오키나와 출신 위안부는
“나와삐(ナワピー)”, 조선인 위안부는“조선삐(朝鮮ピー)”라는 멸칭으로 불렀습니다.
“삐”는 "여성의 생ㅅ기" 를 가리키는 한자 인 "비(屄, bī)" 의 중국어 발음 이니...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전에 조선 에서 "퇴계 이황 이 죽으면서 자식
들에게 노비 367口 를 남겼다".... 노비 를 사람인(人) 자가 아닌 입구(口) 자로 불렀듯!
그래도 일왕 아키히토 는 조금 나은게..... 2,015년 8월 15일 열린 전몰자 추도식 에서
아베 신조 총리의 우경화를 견제 라도 하듯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 일왕은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 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으며
"무령왕의 아들 성왕 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주는등 한국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고
2004년에는 일왕의 당숙 아사카노미야가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제사 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아키히토 일왕 부처는 2,005년 미국령 사이판 의 80미터 “만세 절벽”을 찾아
항복을 거부하고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 를
외치며 높은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죽은 일본인들을 위해 묵념 했습니다.
이어 기자들에게 배포된 사전 행사 일정에는 없었던 "한국인 희생자 추념 평화탑" 을
방문해 묵념하면서 위령의 뜻 을 표시했는데, 사이판전투에서 일본인은 5만 5000명
(민간인 1만 2000명 포함), 미군은 5000명 그리고 우리 한국인은 1천명 이 숨졌습니다.
그러고는 83세라는 고령 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을 방문해서는 일본군과 미군의 전쟁으로
필리핀인들이 죽은걸 일본인들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며 마음에 새긴다고 말했습니다.
아키노 대통령과의 만찬에서는 일본인은 과거의 잘못을 기억해야 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는데 필리핀은 174명 중에서 70명이 생존해 있다고 합니다.
2017년 9월 20일 아키히토 일왕 부부는 사이타마현 고구려마을의 고려신사 (高麗神社) 를
참배했으니 궁사인 고마 후미야스 는 고구려의 역사, 고려신사 계보 등 일왕의 질문에
답하면서 안내했는데, 참배를 마친 뒤 점심 까지 같이 한후 고려 옛집 등을 돌아보며
3시간 반가량 머물렀는데 이어 석산화 가 피어있는 고구려 마을길 을 30분간 산책했습니다.
아키히토 일왕은 곧 나루히토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줄 예정이니 퇴위를 앞둔 일왕이
고구려신사 를 방문한건 한국 측에 "반성과 화해" 의 의미라고 해석되는데 1989년
즉위 때 부터 “방한 기회가 된다면 친선관계 증진에 노력 하겠다” 고 말해왔던
것으로 보아 퇴위 전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은 의사 를 한번 더 표했다는 추측이 강합니다.
백제가 망하자 왜국은 3만2천을 금강에 보내 백제부흥군 을 도왔으니 고구려가 멸망하기
직전인 666년에 사절단 으로 일본에 온 고구려 왕자 약광(若光) 은 고국이 망하자
돌아가지 못하고.... 왜국 조정의 도움 으로 고구려 망명객과 유민 1,800명 을 모아
716년 당시에는 변방이던 도쿄 북쪽에 있는 사이타마현에 고려군 을 설치해 다스렸습니다.
제철을 다루는 기술, 기마술, 농업기술, 건축, 미술 등의 고구려의 선진문물 을 원주민에게
전하고 발전시키면서 함께 살아갔으니 약광왕 은 유대인들에게 모세와 같은 존재였는데
후대 백성들은 신사를 세워 그의 위덕을 기렸고 고려명신 으로 우러러 오늘에 이르렀으니
1300년이라는 긴 세월 당당하게 고구려 후손임을 밝히면서 조상을 섬겨온 고구려 땅 입니다.
우린 2003년 8월 이케부쿠로역에서 사철인 세이부 이케부쿠로선 으로 한노역 에서 환승해
히타카 日高 (일고)시 "고려역" 에 내리니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이 보이고...
안내판에는 한글로 ‘고향보도’ 라 되어 있는데, 택시로 고려신사 에 도착하니 70여년전
고종황제 아들 ‘이은’ 공과 ‘방자여사’ 가 식수한 나무도 보았는데 신관은 48대손이라더군요?
회상 에서 깨어나 신오쿠보 新大久保(신대구보) 역에서 야마노테센 소토마와리
外回り 전철을 타고는 3정거장인 이케부쿠로역 (池袋駅) 에 내립니다.
그전에 전철 노선도를 보며 마눌이 다음역은 메지로(目白 めジろ) 라고 말하기에
아냐, 그건 메구로 (目黒, めぐろ) 가 맞다고 정정해 줍니다.
그래도 마눌이 고개를 갸웃 하기에 보니, 메지로(目白 めジろ) 역이 맞는데.....
1,867년에 개교한 왕족과 귀족들이 다니는 가쿠슈인 대학이 있는 부촌 이라고 합니다.
그런 왜 메구로역 이라고 생각했느냐 하면.... 오래전에 일본어를 배울때 일본어
교재에“전철을 타고 메구로에 갑니다”라는 문장이 있어 그게 아직도 뇌리에 남은 것이라?
메지로(目白 めジろ) 글자를 보면서 메구로 (目黒, めぐろ) 라고 읽은건 사람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과 편견 이 무섭다는 뜻이라? 이케부쿠로역 북구로
나와서는 네거리에서 북쪽으로 뻗은 분카도리 文化通り(문화통리) 를 걸어
여섯번째 블록 왼쪽에 도요코인 東橫イン 이케부쿠로 키타 구찌 No2 로 돌아옵니다.
도쿄 밤거리를 걸으면서 문득 떠오르는게 있으니 재일교포의 애환 을 다룬“두더쥐”를
만든 영화 감독 소노 시온 이 부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 작품“리얼 술래잡기”를
출품했는데, 시온은“자살클럽”,“신주쿠 스완”등 잔혹하고 거침없는 연출로 유명합니다.
공포, 스릴러, 애로물등 개성이 강하며 진지하게 생각하지않고 성실하지 않는게 비결이라나?
“노리코의 식탁“, “두더지”등 병든 일본 을 그리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현재 일본에서는“평화”를 이야기만해도 좌익 으로 모는 그런 분위기가 싫어서 그랬다나요?
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도 싫증이 나니 후쿠시마원전 인근에서 촬영한“소곤소곤 별처럼“
에서 보듯 직설적 이 아니라... 은유적인 메시지 를 담는 영화에 주력할 것 같다나요?
일본은 “망가(漫畵· 만화)의 나라”이니 도쿄 시내 서점이나 편의점에서 만화를 펼쳐든
성인 을 쉽게 볼수 있으며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는 스마트폰으로 만화 를 봅니다.
그런데 10명중 예닐곱명은 한국기업이 만든 코미코 혹은 라인망가 앱 을 사용하는 것이라?
고단샤나 소년점프로 히트를 친 슈에이샤 및 쇼가쿠칸 만화 앱을 사용하는 이는 소수며,
NHN의 코미코 와 네이버의 라인망가 앱 은 연간 1200만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으니
만화앱 중에 공동 1위인데 한국 웹툰 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서 읽을수있기 때문에 편합니다.
NHN 엔터의 일본법인 NHN 코미코는 2013년 10월 일본에서 가장 먼저 스마트폰 만화 플랫폼
코미코 를 내놨는데, 세로 스크롤 을 채용해 스마트폰에 최적화 시켰으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장을 넘기는 일본인들은 초창기엔 생소해했지만 이제는 따라합니다.
작가가 웹툰 을 올리면 독자 평가 에 따라 도전 만화, 베스트 도전, 정식 작품 등
단계별로 승격 하는데, 정식 작품 단계 에서 활약하는 작가가 138명이며....
NHN코미코는 웹툰이 성공하면 단행본을 내고 캐릭터 컵, 티셔츠 등 상품도 만들어 팝니다.
첫댓글 아, 이수현
이렇게 보고 들어야 생각을 하게 되고
그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보니
또 가슴이 저려옵니다.
탈도 말도 많은 한일관계
좀 더 좋아지기를 바라봅니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아까운 청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