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가지 싫어요. 엄마 아빠가 저를 이미 팔았어요" 지난 28일 오후 동완(东莞) 석배(石排)진 경찰이 아무리 설득해도 량산(凉山)에서 구출된 이 여자애는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량산에 대해 잘 알고있는 중앙민족대학 서부발전연구센터의 후원고(侯远高) 교수는 이 사건에 대해 "빈곤이 진정한 원인이다"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량산에서 한 아동공의 어머니를 취재하면서 "당신의 아들은 2~3일에 밥 한끼 밖에 먹을수 없다"고 말하자 "2~3일에 밥 한끼를 먹을수 있다니?" 하며 놀라움과 기쁨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28일 '량산 아동공 조사'라는 글이 남방도시보에 실리자 사회 각계의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동완시위 서기 류지갱(刘志庚)은 이 사건에 대해 특별히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날 오전 동완시위 상무위원이며 시공안국 국장인 최건(崔建)은 공안국 직속 관련 단위 주요 지도자들을 모여놓고 사업 포치에 대해 연구하고 특별 사건처리팀을 조직했습니다.
광동성 로동 및사회보장청에서도 인원을 둥관에 파견해 감독처리하게 했으며 동완시 노동감찰부문은 관련지역과 공장에 대해 조사를 전개했습니다. 동완시 총공회는 남방도시보 기자를 통해 상세한 상황을 료해했으며 보도에 실린 각 진 구에서도 신속히 반응해 나섰습니다.
석배진은 불법노동력시장을 단속하는 특별행동지도팀을 신속히 뭇고 진장이 팀장을 담임했습니다. 지난 28일 오후부터 저녁까지 이 진에서는 경찰을 출동해 부분 혐의직공장에 대해 통제하고 아동공을 공안국으로 데려가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40명 아동공 행장 들고 '이전' 대기
지난 28일 오후 2시경 기자는 석배진 석흥(石兴)로 277번지에서 약 13세 나는 어린이들이 행낭을 지고 행장을 들고 스싱시장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곳으로 굽어 들어가는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몇몇 어른들과 소매점앞에 모여있었는데 약 40여명 정도 있었습니다.
이 소매점앞에서 월서(越西)현에서 온 두 아동공은 기자에게 그들은 곧 창안공장으로 가서 일하게 되므로 일용품을 사려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창안의 어느 공장에 가서 일을 하게 되는지는 "좌장이 잘 알고 있다"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뒤이어 기자는 또 석흥로 327번지에 있는 진(陈)씨 임대집과 그 옆의 안안임대집 앞에서도 같은 정경을 보았는데 역시 이전을 대기하고 있는 량산 아동공들이였습니다.
임대집 문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그들은 남자애들은 담배를 피우고 녀자애들은 사탕수수를 씹으면서 "전자공장의 대우가 괜찮다. 완구와 복장공장은 모두 좋지 않다"고 한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시간당 3위안 보수를 받는 일에 아주 큰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기 싫어요. 엄마, 아빠가 저를 팔았어요"
지난 28일 오후 5시 30분즘 기자는 한 백화점 문앞에서 두 여자애가 바닥에 앉아 있는것을 보았는 데 그들은 여러명 경찰이 다가와 둘러싸자 놀라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기 싫어요. 엄마, 아빠는 이미 저를 팔았어요" 한 라사기(罗思琪)라고 부르는 여자애는 울면서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경찰이 어떻게 설득해도 라사기와 그의 동료는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으며 어린 두손으로 자기들의 행장을 꼭 붙잡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라사기는 기자에게 그들은 모두 웨시농촌에서 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가정형편이 아주 어렵고 두 남동생과 녀동생 하나가 있는데 여기 온지 벌써 4개월이 넘었으며 여러 공장을 돌면서 일하는데 보통 한달에 한번 일자리를 옮긴다고 합니다.
기자가 나이를 묻자 라사기와 그의 동료는 이구동성으로 18세라고 대답했지만 그들은 12~13세 정도밖에 안되 보였습니다.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자 그들은 모두 집에 두고 왔다고 대답했으며 누가 그들의 주인인가고 묻자 여자애는 다 머리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약 반시간 설득시켜 오후 6시즘에야 라사기는 동료와 함께 경찰차에 올랐습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들의 얼굴은 눈물투성이로 되여있었습니다.
전문가 "빈곤이 진정한 원인이다"
아동공사건에 대해 중앙민족대학 서부발전연구센터의 후원고 교수는 "빈곤이야 말로 진정한 원인이다"고 분석했습니다. 후원고는 량산 이족자치주 미고(美姑)현 출생이며 중앙민족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에 남아 교편을 잡으면서 줄곧 고향의 발전문제에 대해 관심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후원고는 량산 희덕(喜德)현 대리현장 곡무오우(曲木伍牛)의 '량산이족지구 빈곤문제 연구'란 문에 따르면 량산주 관할의 17개 현 시, 11개가 국가의 빈곤부축개발사업의 중점현이라고 말하면서 량산에는 경작지 토지가 특히 적은데다 인국가 많아 토지에 의거해서는 기본 생활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어린이들은 7, 8세에 가정의 주요 노동력으로 돼 고강도의 노동압력을 받고 있으며 모두 외지에 돈벌이를 나가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후교수는 "연해지역의 사람들은 이런 어린아이들이 매일 13~14시간씩 일하는것은 아주 인도적이 못된다고 여기지만 량산의 많은 가장들로 보면 아무일도 아니며 감독이 매달 그들 집으로 몇백원씩 돈을 부쳐보낸다면 그들은 감지덕지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연변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