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현립 대마역사 민속자료관(長畸縣立 對馬歷史 民俗資料館) 정문 입구에서 라멘(らめん:라면) 집까지 가는 길에서의 풍경 §
☞ 382번 도로상(道路상)에서 오늘 산행한 아리아케야마(有名山:558m)와
‘淸水山城跡(청수산성적)’ 을 바라다 보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移動)합니다.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오전 11:59:28 상황)
☞ 長崎縣廢棄物再生事業認定(장기현폐기물재생사업인정) 對馬中間再生處理場(대마중간재생처리장) 아래 주유소(注油所)에 닿습니다.
○ 라멘(らめん:라면) 집 ○
※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에서 유명한 라멘(らめん:라면) 집의 모습입니다.
→ 라멘(らめん:라면) 집 입구 유리(琉璃) 창문에 ‘麵處(면처) 子龍(자룡)’ 이라고 적혀 있네요.
※ 大好評(대호평) 夏季(하계) 限定(한정) 메뉴(menu)를 소개해 놓은 안내판(案內板)도 보이네요.
→ 라멘(らめん:라면) 집 내부의 모습입니다.
라멘(らめん:라면)의 종류(種類)가 여러가지인데 취향(趣向)대로 골라 먹습니다.
국물을 사골로 만들어 엄청 인기(人氣)있는 집이랍니다.
§ 라멘(らめん:라면) 집에서 수선사(修善寺:슈젠지)까지 가는 길에서의 풍경 §
☞ 점심식사를 한 후에 도보관광(徒步觀光)의 첫 지점인 쓰시마(つしま, 對馬島/津島:대마도) 교류센터(交流center)
이즈하라(嚴原) 쇼핑센터(shoppingcenter) 티아라(TIARA) 앞에서 내려 면세점(免稅店)까지 걸어서 쇼핑(shopping)하러 갑니다.
☞ 이즈하라(嚴原) 쇼핑센터(shoppingcenter) 티아라(TIARA) 앞 건널목을 건너 우측으로 조금 걸어오다가
골목 길을 들어서자마자 우측을 바라보니 浜殿神社(빈전신사)가 나타납니다.
☞ 골목 길을 쭉 따라오다가 도로(道路) 좌측에 자리잡고 있는
깔끔하면서도 잘 꾸며진 자그마한 ‘今屋敷(금옥부:이마야시키)’ 공원(公園)을 들여다 봤습니다.
☞ 도로(道路) 좌측 도로반사경(道路反射鏡)과 전신주(電信柱) 사이에
‘←今屋敷(금옥부:이마야시키)の防火壁(방화벽)’ 이라고 표기된 안내판(案內板)이 눈에 띕니다.
이즈하라(嚴原)의 골목 길을 다니다 보면 문화재(文化財:Cultural Heritage)로 등록(登錄)되어 있는 돌로 쌓은 높은 담장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축조(築造) 날짜까지 새겨진 이 석벽(石壁)은 화재(火災)가 옆집으로 옮겨 붙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1844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 골목 길을 빠져 나와 뒤돌아 보니 면세점(免稅店) 건물(建物) 벽면(壁面)에 ‘PLAZA ICHIRAKU’ 라고 씌여진 간판(看板,sign)이 붙어 있네요.
● 면세점(免稅店) ●
☞ 면세점(免稅店)에서 물건을 구입(購入)한 사람들이 일행(一行)들을 기다리느라 입구가 붐빕니다.
면세점(免稅店)에 들어갔는데 공항(空港) 면세점(免稅店)보다 작고 아담하며 물건 종류(種類)는 다양(多樣)하지 못하더군요.
내부(內部)는 사진촬영(寫眞撮影, photography shooting)이 금지(禁止)되어 있어서 사진(寫眞)을 찍지 못했습니다.
☞ 日本觀光公社(일본관광공사)에서 면세점(免稅店) 입구 좌측에 ‘Welcome to JAPAN’ 이라고 쓴 대형 광고판(廣告板)을 붙여 놓았네요.
※ 수선사(修善寺:슈젠지) 가는 길에서 防火壁(방화벽)을 만납니다.
→ 집 앞에 卍(만)자가 새겨진 자그마한 건물(建物)을 지어 불상(佛像)을 모셔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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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선사(修善寺:슈젠지) ●
☞ 백제(百濟)의 비구니(比丘尼)인 법묘(法妙) 스님이 창건(創建)했다는 수선사(修善寺:슈젠지) 입구 우측에는
‘圓盛山(원성산) 九品院(구품원) 淨土宗(정토종) 修善寺(수선사)’ 라고 쓴 비석이
嚴原町敎育委員會(엄원정교육위원회)에서 세워 놓은 ‘陶山 訥庵の 墓’ 안내판(案內板) 앞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 수선사(修善寺:슈젠지) 돌계단을 올라서서 우측을 바라보니 붉은 옷을 입혀 놓은 불상(佛像)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 수선사(修善寺:슈젠지) 편액(扁額)을 넣어서 기념사진(記念寫眞)을 한장 남깁니다.
수선사(修善寺:슈젠지) 편액(扁額)에 쓰인 ‘修善(수선)’ 이라는 글씨는
조선말 판서(判書)를 지낸 김학진의 친필(親筆)로써 지금도 낙성관지(落成款識,sign and seal)가 선명(鮮明)하게 남아 있습니다.
→ 수선사(修善寺:슈젠지) 본전(本殿)을 배경으로 한컷...
※ 측면에서 본 수선사(修善寺:슈젠지) 본전(本殿)의 모습입니다.
→ 납골당(納骨堂,のうこつどう,노우고츠도우) 입구에서 본 수선사(修善寺:슈젠지) 본전(本殿)의 모습입니다.
☞ 수선사(修善寺:슈젠지) 본전(本殿) 옆의 대형 납골당(納骨堂,のうこつどう,노우고츠도우)에는
‘百世無窮 納骨堂’ 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자물쇠가 잠겨져 있습니다.
☞ 수선사(修善寺:슈젠지) 본전(本殿) 우측에 위치한 납골당(納骨堂,のうこつどう,노우고츠도우)의 모습입니다.
☞ 수선사(修善寺:슈젠지) 본전(本殿) 좌측에도 납골당(納骨堂,のうこつどう,노우고츠도우)이 있습니다.
○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선생(先生) 순국 기념비(殉國記念碑) ○
☞ 수선사(修善寺:슈젠지) 본전(本殿) 우측 납골당(納骨堂,のうこつどう,노우고츠도우) 입구 앞 우측에
1986년 한일양국(韓日兩國)의 유지(有志)들이 세운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선생(先生) 순국 기념비(殉國記念碑)가 서 있습니다.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 선생(先生)의 유해(遺骸)는
수선사(修善寺:슈젠지)에 며칠 동안 안치(安置)되었다가 부산항(釜山港)으로 이송(移送)되었습다고 합니다.
☞ 황수영(黃壽永) 박사가 글을 쓰고 1986년 8월 3일 건립된 "大韓人崔益鉉先生殉國之碑 (대한인최익현선생순국지비)" 와
비석(碑石) 옆에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선생(先生)에 관한 이야기를
일본어와 한국어로 새겨놓은 안내(案內) 비석(碑石)을 디카 한장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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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 선생(先生)은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전라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켜 대항하다가 1906년 피체되었습니다.
징역(懲役) 3년을 받고 대마도(對馬島)로 끌려온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선생(先生)은
74세 고령의 나이임에도 적이 주는 음식(飮食)이라 거절하며 단식(斷食)하다가
1907년 1월 1일 이즈하라쵸에서 순국(殉國)하였습니다.
※ "大韓人崔益鉉先生殉國之碑 (대한인최익현선생순국지비)" 옆에서...
→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선생(先生)에 관한 이야기를
일본어와 한국어로 새겨놓은 안내(案內) 비석(碑石)을 가까이에서 쳐다 봅니다.
§ 수선사(修善寺:슈젠지)에서 장기현립 대마역사 민속자료관(長畸縣立 對馬歷史 民俗資料館)까지 가는 길에서의 풍경 §
☞ 골목 길을 빠져 나와 뒤돌아 보니 우측 담벼락에 한글로 ‘한국인 손님 환영합니다~~~!!!’ 라고 씌여진 광고판(廣告板)이 눈길을 끕니다.
우리나라 노래방과 비슷한 가라오케, 한 곡당 200(円:¥)이라고 하니 무지 비싸네요.
☞ 골목 길을 걸어 나오다가 담벼락 너머로 가정(家庭) 집의 정원(庭園,garden)을 살짝 들여다 봅니다.
☞‘居酒屋(거주옥:이자카야)’ 을 한자(漢字)로 써 놓으니 ‘술(酒)이 머무는 집’ 이란 뜻을 금방 알겠네요.
☞ ‘佐野屋橋(좌야옥교)’ 옆에 수선사(修善寺:슈젠지) 가는 두갈래 길을 가리키는 안내판(案內板) 두개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합니다.
※ 十王橋(시왕교)’ 입구 좌측에 十王橋(시왕교)라고 적힌 비석(碑石)과
‘明治三十八年(명치삼십팔년,1905년)’ 이라고 씌여진 비석(碑石)이 두개 나란히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자그마한 건물(建物)에 불상(佛像)을 모셔 놓았네요.
불교(佛敎)에서는 열 명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열 개의 지옥(地獄)을 관장(管掌)한다고 전해지는데
이들 염라(閻羅)를 두고 십전염군(十殿閻君) 혹은 줄여서 시왕(十王)이라고 합니다.
→ 자그마한 건물(建物)에 모셔진 불상(佛像)의 모습을 디카에 담았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시왕전<十王殿:명부전(冥府殿),지장전(地藏殿)>이라고 한다면
가운데 계시는 주불(主佛)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이며
그 좌우에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脇侍)로 봉안(奉安)한 듯 합니다.
※ 고기 ‘肉(육)’ 자가 적힌 푯말이 붙어 있는 소박한 재래시장(在來市場) 골목 길을 한번 쭉 둘러봅니다.
→ 골목을 따라 양옆으로 가게들이 줄지어 있네요.
● 고려문(高麗門) ●
☞ 도로(道路) 우측을 바라보니 고려문(高麗門) 앞에 ‘高麗門’ 이라고 씌여진 표석(標石)이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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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문(高麗門) 옆에는 ‘棧原館の高麗門(舊棧原城門)’ 이라고 씌여진 안내판(案內板)도 보입니다.
본래는 대마도주(對馬島主)가 기거하던 ‘사지끼바라죠(棧原城)’ 의 제3문(조선통신사 맞이문)으로 세워진 것을
朝鮮國通信使之碑(조선국통신사지비) 옆으로 옮겨 1989년에 다시 복원(復原)해 놓았다고 합니다.
→ 고려문(高麗門) 입구(入口)의 모습입니다.
☞ 對馬觀光物産協會(대마관광물산협회) 건물(建物) 옆에 對馬市嚴原町市街地案內圖(대마시엄원정시가지안내도)가 서 있습니다.
☞ 對馬市嚴原町市街地案內圖(대마시엄원정시가지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우측 뒤로 보이는 건물(建物)이 엄원정(嚴原町) 자료관(資料館)인데 굳게 문(門)이 닫혀 있습니다.
※ 資料館(자료관) 푯돌과 ‘ 嚴原町 資料館(엄원정 자료관)’ 이라고 씌여진 안내판(案內板)이
엄원정(嚴原町) 자료관(資料館) 앞에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 자세히 쳐다보니 嚴原町 鄕土館(엄원정 향토관) 현판(懸板)이 걸려 있고
그 아래 유리 창문(窓門)에는 管內撮影禁止(관내촬영금지)라고 씌여진 글귀가 보이고
드나드는 출입문(出入門)에는 ‘閉館(폐관)’ 이라고 쓴 팻말만 덜렁 걸려 있습니다.
☞ 고려문(高麗門)을 들어서서 우측을 바라보니 ‘성신지교린비(誠信之交隣碑)’ 을 기리는 비(碑)가 시야에 들어 오네요.
☞ 조선시대(朝鮮時代) 후기 한일간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의 친선교류(親善交流)에 공로(功勞)가 컸던
일본의 유학자(儒學者) 아메노모리호슈(雨森芳洲:1668∼1755)가 주창한
외교원칙(外交原則)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 을 기리는 비(碑)가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고
그 좌측에는 雨森芳洲先生顯彰碑建立贊助金御芳名錄(우삼방주선생현창비건립찬조금어방명록) 비(碑)가 서 있고
우측에는 아메노모리호슈(雨森芳洲:1668∼1755)에 대해 기록해 놓은 비(碑)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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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유학자(儒學者) 아메노모리호슈(雨森芳洲:1668∼1755)에 대해 기록해 놓은 비(碑)를 자세히 읽어 봅니다.
→ 雨森芳洲先生顯彰碑建立贊助金御芳名錄(우삼방주선생현창비건립찬조금어방명록) 비(碑)도 자세히 읽어 봅니다.
○ 珠丸遭難者慰靈塔(주환조난자위령탑) ○
☞ 長畸縣立 對馬歷史民俗資料館(장기현립 대마역사 민속자료관) 옆 珠丸遭難者慰靈塔(주환조난자위령탑) 앞을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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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國通信使之碑(조선국통신사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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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國通信使之碑(조선국통신사지비) 앞에서 기념사진(記念寫眞)을 한장 남깁니다.
朝鮮國通信使之碑(조선국통신사지비)는 1m 정도 높이의 돌로 쌓은 기단(基壇) 위에
길이가 약 2m 정도의 자연석(自然石)을 세우고 朝鮮國通信使之碑(조선국통신사지비)라는 비문(碑文)을 새겨 놓았습니다.
→ 심비디움님은 朝鮮國通信使之碑(조선국통신사지비)와 珠丸遭難者慰靈塔(주환조난자위령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記念寫眞)을 한장 남기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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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國通信使之碑(조선국통신사지비) 옆 직사각형의 검은 돌로 만든 비(碑)에는
한글과 일본어로 朝鮮國通信使(조선국통신사)에 대한 설명(說明)을 덧붙여 놓았습니다.
● 장기현립 대마역사 민속자료관(長畸縣立 對馬歷史 民俗資料館) ●
☞ 珠丸遭難者慰靈塔(주환조난자위령탑) 옆 계단을 올라서면서 앞을 바라보니
건물 정면(正面) 벽면에 장기현립 대마역사 민속자료관(長畸縣立 對馬歷史 民俗資料館) 현판(懸板)이 붙어 있네요.
장기현립 대마역사 민속자료관(長畸縣立 對馬歷史 民俗資料館) 내(內)에서는
사진촬영(寫眞撮影)이 금지(禁止)되어 있어 좋은 자료(資料)들을 찍지 못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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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현립 대마역사 민속자료관(長畸縣立 對馬歷史 民俗資料館) ♣
민속자료관(民俗資料館)에는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와 관련된 역사(歷史)를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17m 길이의 통신사(通信使) 행렬 두루마리 그림, 한반도(韓半島) 관련 토기와 불상(佛像) 등이 소장(所藏)되어 있습니다.
또 야마네꼬(산고양이), 대마도 사슴, 물수리 등 일본의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로 지정된 동물 박제와
옛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인의 생활상(生活相)을 엿볼 수 있는 포경어업(고래잡이) 그림 등이 전시(展示)되어 있습니다.
민속자료관(民俗資料館) 입구에는 비운(悲運)의 삶을 살다간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德惠翁主)의 남편이었던
소 다케유키(宗武志) 백작(伯爵)이 그린 바다 위의 파도에 부딪치는 넙적바위의 유화가 한폭 걸려 있습니다.
§ 장기현립 대마역사 민속자료관(長畸縣立 對馬歷史 民俗資料館)에서 금석성(金石城:킨세키죠)까지 가는 길에서의 풍경 §
☞ 對馬市立嚴原幼稚園(대마시립엄원유치원) 정문(正門)에서 뒤돌아 보니 ‘高麗門’ 이라고 씌여진 표석, 고려문(高麗門)이 보입니다.
※ 도로를 건너 대마시청(對馬市廳) 앞에 세워 놓은 嚴原城下町案內圖(엄원성하정안내도)를 들여다 봅니다.
→ 다리 주변에 물레방아를 만들어 운치(韻致)를 더해줍니다.
※ 對馬市立嚴原幼稚園(대마시립엄원유치원) 정문(正門) 우측 벽면에 ‘對馬市立嚴原幼稚園’ 라고 씌여진 안내판(案內板)이 부착되어 있네요.
→ 對馬市立嚴原幼稚園(대마시립엄원유치원) 정문(正門)을 들어서면 우측 언덕 앞에 조각상(彫刻像)이 세워져 있습니다.
☞ 對馬市立嚴原幼稚園(대마시립엄원유치원) 맞은편에 대마시청(對馬市廳) 청사(廳舍)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 덕혜옹주(德惠翁主) 결혼봉축기념비(結婚奉祝記念碑)가 세워져 있는 곳을 가기 위해
對馬市立嚴原幼稚園(대마시립엄원유치원) 앞 보도(步道) 블럭을 따라 걸어갑니다.
→ 보도(步道) 블럭을 따라 걸어 오다가 우측으로 꺽어 다리 앞에서 좌측을 바라보니
‘李王家宗伯爵御結婚奉祝紀念碑, 이왕조종가결혼봉축기념비→’ 라고 쓴 안내판(案內板)이 서 있습니다.
● 금석성(金石城:킨세키죠) ●
☞ 1669년에 소오요시자네(宗義眞)가 건설한 역대(歷代) 대마도주(對馬島主)들의 거처(居處)였던
이즈하라(嚴原)의 금석성(金石城:킨세키죠) 성곽(城郭)의 문(門)이자 망루(望樓)인 櫓門(노문:야쿠라문)으로 들어 갑니다.
※ 금석성(金石城:킨세키죠)의 櫓門(노문:야쿠라문)으로 들어서서 뒤돌아 본 풍광(風光)인데
櫓門(노문:야쿠라문)으로 올라가려면 우측에 보이는 돌 계단(階段)을 이용해야 합니다.
→ 櫓門(노문:야쿠라문)으로 들어서니 우측에 자그마한 수영장(水泳場) 벽면에
덕혜옹주(德惠翁主)의 부군(夫君)인 종무지(宗武志:소 다케유키)의 수필집(隨筆集) ‘춘정락’ 에서 발췌한 水六訓(수육훈) 글귀가
안내판(案內板)에 적혀 있어 디카에 담았습니다.
- 水六訓(수육훈) -
1. 물은 모든 생명체에 생명력을 준다.
2. 물은 자기의 진로를 정해놓고 흐른다.
3. 물은 장애를 극복하는 용맹심과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화합성을 가졌다.
4. 물은 항상 자신을 깨끗하게 함으로서 남의 더러움을 씻는다.
5. 물은 동력, 빛, 생활에 무한히 봉사하지만 어떠한 보답도 바라지 않는다.
6. 물은 구름, 비, 눈이 되어도 본질은 잃어버리지 않는다.
→ 드나드는 출입문(出入門)을 열고 수영장(水泳場)을 들여다 봅니다.
→ 어린 학생들이 수영(水泳)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 수영장(水泳場)과 櫓門(노문:야쿠라문)을 디카 한장에 담아 둡니다.
☞ 우측을 바라보니 이즈하라(嚴原) 체육관(體育館, gymnasium) 너머로
방금 올랐던 아리아케야마(有名山:558m)와 지나온 길 그리고 ‘淸水山城跡(청수산성적)’ 이 보입니다.
‘淸水山城跡(청수산성적)’ 은 1592∼1598년 임진왜란(壬辰倭亂)기간동안에는
전방 병참기지(兵站基地)로 전략적(戰略的) 가치가 높은 성(城)으로
1591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6∼1598) 명(命)에 의해 대마도(對馬島)를 경유(經由)해
조선반도(朝鮮半島)를 침략(侵略)하기 위해 세웠다는 기록(記錄)이 있습니다.
○ 덕혜옹주(德惠翁主:1912년 5월 25일∼1989년 4월 21일) 결혼봉축기념비(結婚奉祝記念碑) ○
☞ 덕혜옹주(德惠翁主:1912년 5월 25일∼1989년 4월 21일) 결혼봉축기념비(結婚奉祝記念碑)에
'李王家 宗伯爵家 御結婚奉祝記念碑(이왕가 종백작가 어결혼봉축 기념비)' 라고 적혀 있습니다.
덕혜옹주(德惠翁主) 결혼봉축기념비(結婚奉祝記念碑)는 당시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에 거주(居住)하고 있던 조선인단체(朝鮮人團體)인
‘상애회’ 회원들이 고종(高宗:1863∼1907 재위)의 딸 덕혜옹주(德惠翁主)의 결혼(結婚)을 축하(祝賀)하기 위해 성금(誠金)을 모아 비(碑)를 세웠으나
1955년 이혼(離婚) 후 이를 쓰러트렸다가 2001년 대마도관광 여행선인 ‘씨플라워호’ 취항(就港) 이후
한국인(韓國人) 관광객(觀光客)이 늘어나자 다시 세워졌습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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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王家 宗伯爵家 御結婚奉祝記念碑(이왕가 종백작가 어결혼봉축 기념비)' 옆에서
각자 기념사진(記念寫眞)을 한장씩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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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王家 宗伯爵家 御結婚奉祝記念碑(이왕가 종백작가 어결혼봉축 기념비)' 옆에
덕혜옹주(德惠翁主:1912년 5월 25일∼1989년 4월 21일)에 관한 이야기를
한국어(韓國語)와 일본어(日本語)로 적어 놓은 안내비석(案內碑石)이 있습니다.
비록 기울어가는 조선이었지만 일국의 황녀가 일본의 일개 번주(藩主)와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의 왕래가 활발하던 에도(江戶) 막부 시대에
쓰시마(つしま,對馬島:대마도) 도주(島主)는 알아주는 권세가(權勢家)였지만
에도(江戶) 막부 말기에는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가 일본(日本) 본토(本土)에 들어가지 못하고
쓰시마(つしま,對馬島:대마도)에만 머물 정도로 쇠락(衰落)한 집안이 됩니다.
○ 구(舊) 금석성(金石城:킨세키죠) 정원(庭園) ○
※ ‘舊金石城庭園(구금석성정원)←’ 라고 적힌 안내판(案內板)이 지시(指示)하는 방향으로 이동(移動)합니다.
→ 嚴原町敎育委員會(엄원정교육위원회)에서 인조(人造) 나무판에
영어(英語)와 일본어(日本語)로 ‘金石城跡(금석성적)’ 에 대하여 설명(說明)해 놓은 안내판(案內板)이 서 있습니다.
※ ‘舊金石城庭園(구금석성정원)←’ 라고 적힌 안내판(案內板)이 서 있는 곳에서
방금 올랐던 아리아케야마(有名山:558m)쪽을 바라다 봅니다.
→ ‘舊金石城庭園(구금석성정원)←’ 라고 적힌 안내판(案內板)이 서 있는 좌측에는
‘幕府使者 上使 小笠原大膳正 宿館跡(막부사자 상사 소립원대선정 숙관적)’ 이라고 씌여진 표석(標石)이 세워져 있네요.
※ 앞을 바라보니‘舊金石城庭園(구금석성정원)’ 매표소(賣票所)가 보이고 그 앞에 ‘庭園入口→受付’ 라고 쓴 팻말이 서 있습니다.
‘舊金石城庭園(구금석성정원)’으로 들어가려면 입장료(入場料)를 지불해만 합니다.
→ ‘구 가네이시성정원 名勝 舊金石城庭園’ 이라고 씌여진 안내도(案內圖)가 매표소(賣票所) 옆에 자리를 지키고 서 있네요.
‘舊金石城庭園(구금석성정원)’ 은 평성(平成:헤이세이:Heisei) 19년 2월6일 명승(名勝)으로 지정(指定)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평성(平成:헤이세이:Heisei) 일본이 현재 쓰는 연호(年號)로 1989년 1월 8일부터 사용되고 있으니
평성(平成:헤이세이:Heisei) 19년은 서기(西紀) 1907년에 해당됩니다.
☞ 1669년에 소오요시자네(宗義眞)가 건설한 역대 대마도주(對馬島主)들의 거처였던 舊金石城庭園(구금석성정원)은 아주 작은 평원식의 정원(庭園)입니다.
정원석(庭園石)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것이 보이고 그 뒤로는 아리아케야마(有名山:558m) 산등성이가 길게 펼쳐져 있습니다.
☞ 이즈하라(嚴原) 체육관(體育館, gymnasium) 주변에는 일본 전통(傳統)의 2층 주택(住宅)들이 꽤 많이 모여 있습니다.
☞ 금석성(金石城:킨세키죠)을 들러보고 나오면서 금석성(金石城)의 櫓門(노문:야쿠라문)으로 배경(背景)으로 한컷...
(2010년 10월 1일 오늘, 오전 11:35:55 상황)
§ 금석성(金石城:킨세키죠)에서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까지 가는 길에서의 풍경 §
☞ 금석성(金石城:킨세키죠)에서 육로(陸路)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이 섬의 북쪽과 남쪽을 이어 주는 폭 40∼65m, 길이 210m의 아치형(arch形) 철교(鐵橋)인 만관교(萬關橋:만제키바시)가 나타납니다.
●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 ●
☞ 도로 우측을 바라보니 烏帽子岳登山道(오모자악등산도) 가는 길을 가리키는 이정목이 서 있고
그 옆에는 대형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 안내도(案內圖)가 서 있네요.
☞ 烏帽子岳頂上(오모자악정상) 60m 지점에 설치해 놓은 쉄터에 닿습니다.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오후 3:50:26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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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쉄터에서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로 올라가는 계단 길에서 한컷...
→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오름 계단 길에서 한컷...
☞ 까마귀가 모자를 쓴 형상과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에는
일본어, 한글, 영어로 豊玉町觀光案內(풍옥정관광안내)에 관한 소개,
현위치, 烏帽子岳展望所(오모자악전망소)에서 조망되는 주변 위치와 지명을 상세하게 표시한 그림 그리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음성 안내가 되는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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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에서 바라다본 전경(1) ★
☞ 神山(上對馬町), 長崎鼻(장기비), 淺茅山(大山岳), 호수처럼 고요한 濃部淺茅灣(농부아소만), 遠見山, 白嶽(백악)이 조망(眺望)되는데
바다 위에 제각각 크기로 흩어진 섬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탄성(歎聲/嘆聲)을 자아내게 만드는 최고의 비경(祕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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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에서 바라본 풍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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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에 설치되어 있는 망원경(望遠鏡)으로 보는 경치(景致)는 일품(一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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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에서 바라다본 전경(2) ★
☞ 白方崎, 草島, 佐保浦, 佐志賀(사시까:Sashika), 貝口浦, 仁位港, 仁位淺茅灣,糖浦, 和多都美神社, 豊玉町이 조망(眺望)이 되는데
많은 섬들에 싸여있는 호수 같은 바다, 맑은 햇살에 비쳐지는 푸른 물과 파란 녹색의 섬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感歎/感嘆)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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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 仁位淺茅灣(인위아소만)을 배경(背景)으로 기념사진(記念寫眞)을 한장 남깁니다.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오후 4:00:26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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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淺茅灣(아소만)을 사방(四方)으로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有名)한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에서
시라타케야마(白嶽山:519m)를 배경(背景)으로 한컷...
→ 淺茅灣(아소만)을 360도로 둘러볼 수 있는 유일한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에서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 내에서 유일하게 360°동서남북(東西南北) 사면을 모두 조망(眺望)할 수 있는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에서 심비디움님도 한컷...
※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 바로 아래에는
豊玉町移動通信用鐵塔施設 仁位基地局(풍옥정이동통신용철탑시설 인위기지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좌측 앞을 바라보니 ‘基本測量’ 이라고 적힌 사각(四角) 나무 말뚝 옆에 삼각측량(三角測量)을 위한 삼각형(三角形)의 꼭지점으로 선정(選定)된
위치(位置, location) 및 높이의 기준점(基準點)인 삼각점(三角點,trigonometrical point)이 박혀 있는데 깃발이 꽂혀 있네요.
※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에서 주차장(駐車場)으로 내려오는 내리막 길은
철제난간(鐵製欄干)이 처져 있고 바닥에는 인조(人造) 통나무 조각을 깔아 놓았습니다.
→ 烏帽子岳頂上(오모자악정상)에서 120m 내려온 지점에 이정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에서 조망을 마친 산님이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 주차장에 대기 시켜놓은 버스를 타기 위해 주차장(駐車場)쪽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에서 세워놓은 주변관광지(周邊觀光地)와 함께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 지도가 그려진 대형 대마시관광안내도가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 주차장(駐車場)에 세워져 있습니다.
☞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 주차장(駐車場)에서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쪽을 내려다 봅니다.
☞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 주차장(駐車場)에서 바라다본 仁位淺茅灣(인위아소만) 주변 풍광(風光)입니다.
☞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 주차장(駐車場)에서 방금 다녀온
烏帽子岳(오모자악:에보시타케:176m) 전망소(展望所)를 뒤돌아 봅니다.
●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
☞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입구에는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영어 등 4개국어로 豊玉町觀光案內(풍옥정관광안내)에 관한 소개(紹介),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의 위치와 주변 건물배치(建物配置)를 상세하게 표시한 그림 그리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음성 안내가 되는 시설물(施設物)이 설치(設置)되어 있습니다.
이곳의 지명(地名)은 토요타마쵸(豊玉町)라 불리워지는데 바로 ‘토요타마히메(豊玉姬)’ 의 이름에서 따온것이라 합니다.
☞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입구 우측에는
자연석(自然石)에 황금색(黃金色)으로 ‘和都多美神社’ 라고 새겨진 신사(神社, jinja) 표지석(標識石)이 세워져 있습니다.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는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 ‘토요타마쵸(豊玉町)’ 의 상징(象徵)인 해신(海神) 신사(神社)로
일본(日本) 건국신화(建國神話)의 주역(主役)인 하늘신 ‘히고호호데미(彦火火出見)’ 노미코토와
용왕의 딸 ‘토요타마히메(豊玉姬)’ 노니코토를 기리는 해궁(海宮)으로 바닷신 신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神社)이며
가야(伽倻/伽耶/加耶)의 김수로왕의 자손이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로 건너와 세웠다는 설(說)과
장보고(張保皐) 장군의 소가(小家)였다는 설(說) 등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본전(本殿) 정면의 5개의 도리이(とりい,鳥居) 중 2개가 바다 속에 세워져 있습니다.
특히 도리이(とりい,鳥居) 방향(方向)은 과거 서라벌(徐羅伐) 방향(方向)과 정확히 일치(一致)하고
이 신사(神社)가 과거 ‘도해궁(바다를 건너온 궁)’ 으로 불리웠다는 기록(記錄)도 남아 있어
한반도(韓半)에서 건너온 신(神)을 모신 것 아닌가 하는 추측(推測)도 제기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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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전(本殿) 정면의 바다속에 서 있는 도리이(とりい,鳥居)에는 ‘平成(평성) 16년 9월 吉일’ 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만조시 2m정도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파도(波濤)가 잔잔한 아소만(淺茅灣/淺海灣)과 어우러져 신화의 세계를 연상(聯想)케합니다.
본전(本殿) 앞 갯벌에는 이쿠와라(磐座:신이 거처하는 장소, 주로 바위를 가르킨다)가 있습니다.
※ 바다 속에 세워져 있지 않는 도리이(とりい,鳥居) 하나를 4개의 석등(石燈)이 애워싸고 있네요.
→ ‘鳥居建設寄附者御芳名(오거건설기부자어방명)’ 표지석(標識石) 옆에서
바다 속에 세워져 있는 2개의 도리이(とりい,鳥居)를 쳐다 봅니다.
※ 바다 속에 세워져 있는 2개의 도리이(とりい,鳥居)를 배경(背景)으로 사진 한장 찰칵!
→ 심비디움님은 ‘鳥居建設寄附者御芳名(오거건설기부자어방명)’ 표지석(標識石)을 배경(背景)으로 사진 한장 찰칵!
☞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스모(相撲, sumo) 장(場) 옆에 있는 우물의 모습입니다.
※ 신화(神話) 속의 산실(産室) 모습입니다.
‘다까미무스비(高皇産靈)’ 의 외증손(外曾孫)으로 지상(地上)에 강림(降臨)한 ‘니니기(彌微藝)’ 의 아들 ‘히고호호데미(彦火火出見)’ 가
잃어버린 형의 낚시 바늘을 찾아 헤매다가 용궁(龍宮)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용왕(龍王)의 딸‘도요다마히메(豊玉姬)’와 결혼(結婚)하여 3년을 보낸 후 낚시 바늘을 찾아가지고 나왔는데,
그 때는 아내가 아기를 배어 만삭(滿朔)이 되었으므로 같이 뭍으로 나오지를 못하였습니다.
며칠 뒤 풍랑(風浪)이 심한 어느 날 풍랑(風浪)을 타고 여동생 ‘다마요리히메(玉依姬)’ 를 데리고 남편을 찾아 뭍으로 나왔습니다.
해변(海邊)에 손수 산옥을 짓고 ‘절대로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 고 남편에게 당부를 하였으나
이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결국 큰 뱀이 괴로워 나뒹구는 꼴을 엿보임 당했다고 화가 난 ‘도요다마히메’ 는
낳은 아이를 해변(海邊)에 그대로 버려 둔 채
우나사까(海坂, 용궁으로 드나드는 문으로 이곳을 헤집으면 나타나고, 이곳을 메우면 사라진다는 곳)를
다시 메워서 용궁(龍宮)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고사기(古事記)에 써 있습니다.
이 때 낳아서 버린 아이가 별명(別名)을 이소라(磯良)라고 하는 ‘우가야후기아에즈(?茅葺不合)’ 신(神)이고,
그 신이 다시 용궁(龍宮)의 차녀, 즉 이모인 ‘다마요리히메’ 신(神)과 결혼(結婚)하여
처음으로 인격화(人格化)된 천황(天皇 )‘진무덴노(神武天皇)’ 을 낳으니,
이 사람이 바로 사람으로서의 초대(初代) 천황(天皇)이라는 것입니다.
→연분홍꽃이 자태(姿態)를 한껏 자랑합니다.
☞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입니다.
☞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입니다.
☞ 두번째 도리이(とりい,鳥居)를 들어서면서 바라다본 우측 풍광(風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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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祝 皇太子德仁親王殿下 御成婚 記念婢 平成 5年 6月9日
(봉축 황태자덕인친왕전화 어성혼 기념비 평성 5년 6월 9일)’ 이라고 씌여진 비(婢)를 배경으로 한컷...
☞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본전(本殿) 좌측의 풍광(風光)인데 신사(神社)에 운영비를 헌금(獻金)한 사람들의 표찰(標札)이 걸려 있습니다.
☞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본전(本殿) 우측의 풍광입니다.
공중전화(公衆電話)처럼 생긴 물건은 신사(神社)마다 있는 오미쿠지(おみくじ:御神籤)입니다.
동전(銅錢)을 넣고 산통(算筒)을 흔들면 점괘(占卦)가 나와 길흉사(吉凶事)를 점쳐보는 것인데 일종의 ‘부적’ 을 판매(販賣)하는 곳이라고 하네요.
☞ 좌측에서 바라다본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본전(本殿)의 모습입니다.
신사(神社) 뒤로 돌아가면 토요타마히메(豊玉姬)의 석관묘(石棺墓)가 외롭게 서 있고
주위엔 울창(鬱蒼)한 숲과 산책로(散策路)가 잘 정비(整備)되어 있습니다.
※ 마지막 도리이(とりい,鳥居)에서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본전(本殿)을 바라다 봅니다
→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에 대한 설명이 세세하게 기록(記錄)되어 있는 비석(碑石)이 마지막 도리이(とりい,鳥居) 좌측에 서 있습니다.
☞ 마지막 도리이(とりい,鳥居)에서 바다 속에 세워져 있는 두개의 도리이(とりい,鳥居)를 배경으로 한컷...
☞ 마지막 도리이(とりい,鳥居)를 들어서서 바라다본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본전(本殿)의 모습입니다.
쓰시마(つしま,對馬島:대마도)에서 아주 귀한 수백년 묵은 해송(海松)이 신전(神殿) 뜰에 심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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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본전(本殿) 내부(內部)의 모습입니다.
☞ ‘祝 和多都美神社古式大祭(축 화다도고식대제)’ 라고 씌여진 간판(看板)이 붙어 있는 건물(建物)이 우측에 자리잡고 있네요.
☞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에 스모(相撲, sumo)를 할수 있도록 지름 4.6m의 씨름판을 만들어 놓았네요.
☞ 심비디움님 뒤로 바다 속에 세워져 있는 두개의 도리이(とりい,鳥居)가 보이네요.
§ 와타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 에서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 까지 가는 길에서의 풍경 §
☞ 和都多美神社(와타즈미신사)에서 4.3km 지나온 지점을 통과(通過)합니다.
☞ ‘交通安全宣言都市(교통안전선언도시)’ 라고 씌여진 대형 입간판(立看板)이 서 있는 곳을 지나갑니다.
☞ 국도(國道) 382번 도로(道路)상에 뚫여 있는 濃部터널을 빠져 나갑니다.
오후나코시(大船越) 철교를 지나 2.5km정도를 가다 보면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가 나타납니다.
☞ ‘對馬 美津島町’ 이라고 씌여진 대형 안내판(案內板)에는 현재지 위치와 함께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영어로 ‘女護島(메고시마,Megoshima)’ 에 관한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해군의 함대를 통과시키기 위해 판 만제키세토에서 바위와 토사가 대량으로 버려져 바다를 매운 결과 이 집락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이 지역의 지하에는 만제키의 토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 대형 안내판(案內板)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아치형(arch形)인 다리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를 쳐다 봅니다.
→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 부근에 피어 있는 ‘하쿠운키스케’ 꽃을 근접촬영(近接撮影)을 해봅니다.
‘하쿠운키스케’ 꽃은 대마도(對馬島)와 조선반도(朝鮮半島)에만 분포(分布)하는 백합과(百合科)의 식물로서 여름에 개화(開花)한다고 합니다.
●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 ●
☞ 국도(國道)인 382번 도로(道路) 우측을 바라보니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 난간(欄干)에 세워져 있는
대리석(大理石)에 ‘まんぜ きばし’ 라 쓴 동판(銅板)을 붙어 놓았습니다.
☞ 국도(國道)인 382번 도로(道路) 위에서 바라다본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의 모습입니다.
☞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 위에서 바라다본 좌측 풍광(風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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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 아래로 만제끼운하(万關戶)가 흐르고 있고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 미우라만(三浦港)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 위에서 바라다본 우측 풍광(風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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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 리아스식 해안(ria coast) 아소만(淺茅灣/淺海灣)쪽 풍광입니다.
만제끼운하(万關戶)의 조류(潮流)는 소용돌이가 어지럽고 소름 끼칠 만큼 무서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 위에서‘萬關橋’라고 적힌 동판(銅板)을 배경(背景)으로 한컷...
→ 심비디움님도 한컷...
※ 도로 좌측 앞을 바라보니 ‘대마만제키휴식광장’ 이라고 씌여진 도로안내판(道路案內板)이 서 있습니다.
→ ‘대마만제키휴식광장’ 의 모습인데 화장실(化粧室) 옆 뒤로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가 보이네요.
○ 대마만제키휴식광장 ○
☞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 구스보(久須保) ·메고시마(女護島) 지구 및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 주변 지도와 안내를 해놓은 대형 안내도(案內圖),
현재지(現在地)가 표시된 미진도정(美津島町:미쯔시마쵸우) 관광안내도, ‘萬關○戶開削之碑’ 를 디카 한장에 담았습니다.
☞ ‘대마만제키휴식광장’ 에서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를 배경(背景)으로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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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비디움님도 한컷...
-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의 역사(歷史,history) 사진 -
원래 하나의 섬이었던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는 만제끼운하(万關戶)의 개통(開通)으로 인해
상대마(上對馬), 하대마(下對馬)로 나뉘게 됩니다.
일본(日本)은 1904년 2월 8일 개전 된 러일전쟁(Russia日戰爭) 중
만관교(萬關橋:만제키바시) 밑 운하(運河)에 수많은 군함(軍艦)을 숨겨두고
영국(英國)의 수에즈운하(Suez運河) 통과 거부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서쪽 끝에 있는 곶인 희망봉(喜望峯)을
돌아오느라 지칠 대로 지친, 러시아(Russia) 발틱 함대(艦隊)를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에서 협공하여 전쟁(戰爭)에서 대승(大勝)을 거두게 됩니다.
이후 일본(日本)은 대륙(大陸)으로 나아가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을 일으키게 되듯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는 우리에게 한(恨)이 어린 역사(歷史,history)의 다리가 됩니다.
☞ 초대만관교(初代萬關橋)의 사진인데 明治(명치) 33년(1900년), 橋長(교장) 80.0m,
폭 5.5m, 높이 약 36m이며 일본해군(日本海軍)에 의해 건설된 철교(鐵橋)입니다.
일본(日本) 明治(메이지) 천황이 1868년 9월부터 일세일원(一世一元)을 결정하고, 연호를 明治(메이지)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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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二代目萬關橋(이대목만관교)의 사진인데 昭和(소화) 31년(1956년), 橋長(교장) 81.6m,폭 5.5m, 높이 약 30m이며
아치형(arch形) 철교(鐵橋)로 이 다리의 완성(完成)됨으로 버스가 섬을 연결(連結)하는 중요한 교통수단(交通手段)이 됩니다.
일본(日本) 昭和(소화,쇼와) 천황의 재위 기간인 1926년 12월 25일부터 1989년 1월 7일까지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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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代目萬關橋(삼대목만관교)의 사진인데 平成(평성) 8년(1996년), 橋長(교장) 210.0m, 폭 10m. 높이 약 00m이며
平成時代(평성시대,헤이세이 시대)는 일본(日本) 아키히토(繼明仁)가 즉위한 1989년 1월 8일부터 현재까지를 가리킵니다.
섬 전체의 도로망(道路網) 정비와 함께 남북(南北)을 연결하는 심리적 거리(距離)도 가까워졌습니다.
☞ ‘萬關○戶開削之碑’ 옆에서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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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비디움님도 한컷...
☞ ‘萬關○戶開削之碑’ 주위(周圍)를 맴도는 고양이가 사람도 겁을 내지 않고
오히려 포즈를 잡으면서 사진(寫眞)을 찍어달라고 하네요~
☞ ‘대마만제키휴식광장’ 에는 이시야네(石屋根:돌지붕) 쉼터와 ‘쓰시마(つしま)에 어서 오십시오.’ 라고 쓴 대형 안내판(案內板)도 보입니다.
§ 만제키바시(Manzeki Bridge,만관교:萬關橋)에서 쓰시마(つしま, 對馬島/津島:대마도) 공항(空港)까지 가는 길에서의 풍경 §
● ‘VALUE’ 대형 할인점(大型割引店) 쇼핑(shopping) ●
☞ 일본의 자스코! AEON계열의 가격이 저렴한 ‘VALUE’ 대형 할인점(大型割引店)의 전경입니다.
※ 심비디움님이 장바구니를 들고 쇼핑(shopping)에 나섭니다.
→ 맥주 코너(corner)에 더 많은 관심(關心)을 보이는 요산...
※ ‘VALUE’ 대형 할인점(大型割引店)의 특색(特色) 있는 코너(corner)를 디카에 담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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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ALUE’ 대형 할인점(大型割引店)에서 물건을 구입(購入)하고
물건을 계산대(計算臺)에 올리고 가만히 있으면 양방향 컴퓨터의
계산서(計算書)에 합계금액이 나오면 엔화(円貨)로 계산(計算)하면 됩니다.
‘VALUE’ 대형 할인점(大型割引店)에는 한국어에 능숙한 점원이 도와주고 있어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 ‘VALUE’ 대형 할인점(大型割引店) 밖에는
수생 식물을 전문(專門)으로 파는 곳도 있구요~ 야생화(野生花) 전문점(專門店)도 있습니다.
☞‘VALUE’ 대형 할인점(大型割引店) 옆에는 대형주차장(大型駐車場)을 갖춘
의약품(醫藥品)을 중심으로 일용잡화(日傭雜貨), 식료품(食料品) 등의 관련 상품(商品)을 파는 상점(商店)인 Drugstore ‘MORI’ 가 위치해 있습니다.
● 쓰시마(つしま, 對馬島/津島:대마도) 공항(空港) ●
☞ ‘VALUE’ 대형 할인점(大型割引店)에서 쇼핑(shopping)을 마치고 쓰시마(つしま, 對馬島/津島:대마도) 공항(空港)에 도착(到着)합니다.
(2010년 8월27일, 18:17 상황)
☞ 쓰시마(つしま, 對馬島/津島:대마도) 공항(空港)에 도착(到着)해서 입구 좌측을 바라보니
한·일(韓·日) 양국기(兩國旗)가 그려져 있고 ‘Welcome To Tsushima 환영, 歡迎’ 이라고 적혀 있는 안내판(案內板)이 눈에 띕니다.
※ 쓰시마(つしま, 對馬島/津島:대마도) 공항(空港)에 도착해서 공항(空港) 청사(廳舍)를 배경으로 각자 기념사진(記念寫眞)을 한장씩 남깁니다.
☞ 쓰시마(つしま, 對馬島/津島:대마도) 공항(空港) 청사(廳舍)에서 바라본 좌측 풍광(風光)입니다.
☞ 쓰시마(つしま, 對馬島/津島:대마도) 공항(空港) 청사(廳舍) 우측에는
大阪航空局 對馬空港出張所(대판항공국 대마공항출장소), 氣象廳 對馬空港出張所(기상청 대마공항출장소)가 있습니다.
☞ 長崎縣(장기현:나가사끼껜)에서 捕獲禁止地域圖(포획금지지역도)를 벽에 붙여 놓았네요.
☞ 쓰시마(つしま, 對馬島/津島:대마도) 공항(空港) 부근에도 이시야네(石屋根:돌지붕)가 있네요.
‘對馬の石屋根’ 이라고 적혀 있는 안내판 뒤로 보이는 말(馬)은
진짜 같은 착각(錯覺)을 일으킬 정도로 잘 만든 인조(人造) 말입니다.
★ 쓰시마(つしま, 對馬島/津島:대마도) 공항(空港)에서 바라다본 전경 ★
☞ ‘對馬の石屋根’ 과 우리가 산행한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의 시라타케야마(白嶽山:519m)·아리아케야마(有名山:558m) 능선(稜線)이 조망(眺望)됩니다.
☞ 대마도(對馬島/津島, つしま:쓰시마)의 시라타케야마(白嶽山:519m)를 다시 한번 쳐다 봅니다.
☞ 우리가 김포공항(金浦空港)까지 타고 갈 KEA(Korea Express Air)편이 쓰시마(つしま, 對馬島/津島:대마도) 공항(空港)에 대기하고 있고
승무원(乘務員)들은 승객(乘客)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심비디움님이 여권(旅券,passport)과 탑승권(搭乘券)을 들고 출국절차(出國節次)를 밟기 위해
보안검색장(保安檢索場)으로 들어가려고 하네요.
→ 배정(配定)된 좌석(座席)에 앉아서 KEA(Korea Express Air)편 내부(內部)의 모습을 디카로 담아 봅니다.
※ “기내(機內)에 계신 승객(乘客) 여러분께서는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방송(放送)이 나간 후
활주로(滑走路)를 따라 우리가 탑승(搭乘)한 KEA(Korea Express Air)편 비행기(飛行機)가
쓰시마(つしま, 對馬島/津島:대마도) 공항(空港)에서 이륙(離陸)합니다.
→ KEA(Korea Express Air)편 기내(機內)에서 창밖을 내려다 보니 서울올림픽대로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 김포공항(金浦空港) ●
※ 2박3일을 함께한 일행(一行)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 입국장(入國場) 출구(Exit)를 빠져 나갑니다.
(2010년 8월27일, 20;29 상황)
첫댓글 드디어 5편도 마무리가 되었네요. 정리된 기록들 1편에서 5편까지 겁게 잘 봤답니다.
“요산의 산행기”때문에 대마도 현해탄 뱃길이 다시 붐비겠어요.
역사유적 탐방에다 등산 등등으로 섬이 인산인해가 될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잘
예쁜걸님 어렵사리 기록 다섯편 마무리 했습니다.
대마도 가는 비행기표가 없을 정도로 좌석 구하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구요.입니다.
열정을 좋게 봐 주신 것 같아 기분이
가이드 없이도 대마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자세한 기록들...
5편까지 마무리 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요산님 덕분에 앉아서 대마도 여행 참으로 잼나게 했습니다.
내심 단풍산행기도 기대가 큽니다.
설레임님
보다 아름다운 단풍 산행기편을 기대하세요.
가이드들은 뭘 먹고 사나욤
댓글 주셨으니 앉아서 편히 구경하실 자격이 있는 줄 아뢰오.
이번 주에 지리산 뱀사골의 단이와 풍이 만나러 갑니다.
쓰시마 관광이 이제 끝나는군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등산과 역사탐방 관광을 모두 끝나고 보니 허전해지네요.
암턴 즐겁고 알찬 대마도 여행을 함께하면서 알차고 보람된 여행이어서 고마웠습니다.
좋은 여행을 함께하면서 믿음과 신뢰가 쌓여가는것 아닐까요?
반야님
하대마도를 섭렵하셨으니 아쉬움을 상대마도에서
바쁘게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의 일탈...
짜릿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여행은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다음 여행을 기대하면서
요산님 시작은 새로운 희망이 아닐까요.
한마음 내킬때 더나는 여행(산행)도 아름답지요
반야님. 박희진님께서 모처럼 울 카페를 찿아 주셨네요.
우리의 호프..
박희진님과 인사도 나누고 그러세요.
안 녕하세요 ^*^ 정말로 잘보았습니다 자주 대마도 다녔어도 이렇게 자세히 보니 새로운 곳을 보는 것 같습니다 . 항상 감사드리며 행복하세요~~~~~
박희진님 바쁘실텐데... 울 카페에서 모습을 이리 볼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울 카페 잊지 마시고 시간나시면 꼬
카페에서 뵈온지 오래된것 같습니다, 박희진님 무탈하신지요. 맨날 좋은일로 충만하시겠지요. 인연이 닿아 여행길이 열리면 좋으련만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