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
카미노 첫째날, 5월 18일 화요일 맑음, 남은거리 : 818.230km
파리의 오스테르리쯔(Austerlitz)
바욘(Bayonne)
생장피드포르(st.Jean-Pied-De-Port) 해발 146m
오리손 (Orrisson) 8km 해발 792m
파리의 오스테르리쯔(Austerlitz) 역을 출발한 열차는 밤새 달렸나 보다.
바욘(Bayonne)역에 도착하기 20분 전에 차장의 노크 소리에
짐을 꾸려 내리니 새벽 6시 30분이다.
이제 카미노 시작이라는 느낌에 긴장된 몸으로 바욘 역사에서
첫 프랑스식 아침(커피+크라상)을 먹는다.
바욘 역 시계 탑 아침 7시 18분 이네~
바욘 역에는 한국인 4명이 같이 내렸나 보다.
청년 2명, 아가씨2명,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아마 내가 제일 미지의 카미노에 대한 불안감이 제일 컷기 때문이었으리라.
11시간의 비행기, 7시간 반의 밤열차, 서울을 떠나 단숨에 달려온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인터넷에서 본 바욘 역사이다.
그들은 파리에서 3일 정도 머물렀다 온 것이란다.
그래 그런지 그들은 외지에 적응이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주부춘군과 박주원군 우리는 훗 날 산티아고에서 작별인사를 할 때까지
만났다 헤지기기를 반복 한다.
기차표로 기차가 아닌 버스를 타고 (손님이 적을 땐 기차 운행을 안함)
생장피드포르(st.Jean-Pied-De-Port)에 도착했다.
생장피드포르 역
낮 설지 않은 배낭이다
젊은 이들과 배낭을 진 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따라가니
산티아고 행 도보 순레자를 위한 협회 사무실이다.
39번지 밑에 조개가 이상적이다
간단한 절차를 끝내고 이 길을 걷는 목적을 묻는 란에 종교적 이유에
동그라미를 치고 순례자 증명서(Credencial )에 첫 스템프를 받고,
의미도 모를 조개를 하나 집어 들었다.
물론 2유로 동전을 기부용 나무통에 넣었다.
까미노 후에도 이 조개의 의미를 알기 위해 애쓴다.
사무실 벽에 있는 스페인 북부를 횡단 산티아고 까지의 지도
빨간선으로 표시된 길이 그 유명한 까미노 프란세스
스페인 북부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는 오늘 부터 걸을 코스다
프랑스 생장피드포트에서 첫 스탬프를
크리덴시알 델 페레그리노 (순례자 수첩)에 받았다.
스탬프를 찍고 날짜를 수기해 준다.
대충 남들이 하는 대로 조개를 배낭 옆구리에 달고 도보 순례 길에 오른다.
크리덴시알은 80년대 초 첫 해외 여권을 받았을 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배낭 깊숙이 소중히 밀어 넣었다.
순례자 사무소 앞
인터넷 검색 사진으로 본 거리 모습이 낮설지 않음이 그나마 위안이다.
고풍스런 마을골목을 나서니 성당이 보인다.
조용히 밀고 들어가 무릎을 꿁는다.
주모경으로 시작한 기도는 30 여일의 걸을 길(까미노)
“시작과 끝”을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길 빌며
무사히 시작 할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와 앞으로 발자국 발자국에
주님의 축복을 전구 해주시길 성모님께도 청했다
그리고 성당 문을 나서며 힘차게 첫발을 내디뎠다
생장피드포르 성당 을 떠나며..
카미노 데 산티에고(Camino de Santiago)
프랑스 서북쪽 생장피드포르 조그만 마을에서
스페인 국경과 맛 다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쪽 산티에고 시까지 8백여 킬로미터의 길이다.
몇 년 전부터 성당 교우들 사이에 회자되며,
술자리에선 듣는 사람마다 한번쯤 걸어보겠다고
곧 실행에 옮길 것 같은 분위기가 다음 날이면
이런 저런 이유로 흐지부지 되어버리던 카미노 데 산티에고 도보 성지 순례이었다.
나 역시 그런 저런 이유로 미루던 카미노 데 산티아고
2009년 10월1일, 누구와 같이 걸어야만 될 것 같은 막연한 계획이
곧 실행의 걸림돌임을 깨닫고, 혼자 걷기로 결심하고,
인터넷 검색과 문고에 들러 스페인 까미노 데 산티에고에 관한 책들 중
몇권을 훌터보다 5월에서 6월 중에 걸은 여행기 한 권과
“연금술사”( 작가 파울로 코엘료)를 구입 해 단숨에 읽었다.
그뒤로 부터 시작 된 나의 카미노는 5월 17일에 이륙하여
5월 18일 피레네 산맥 자락을 오르기 위해
지금 까미노 데 산티에고의 시작을 위한 관문에 서 있다.
오늘은 순례자 협회사무실에서 예약한 숙소 오리손 알베르게(Alberge) 까지
약 8 킬로미터만 걷기로 한다. 알베르게는 순례자 전용 숙소로
순례자 증명서를 가진 이들만이 이용이 가능하다.
유스호스텔 숙소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니베 강변의 생장
생장 협회사무실에서 준 프린트 물 중엔 피레네를 넘을 때
주의사항이 한글 판이 있음을 보고 반갑기도 하고
한편 카미노가 이렇게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 지고, 많이 이들이
벌써 이 길을 걸었음에 조금은 용기가 생긴다.
인쇄물 중 또하나,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34일짜리 일정표인 참고 자료가 있다.
하루에 걸을 거리와 고도 그리고 알베르게가 있는 도시 이름이
적혀있는 실제 걷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도표이다.
그런데 이 도표 첫 날 목표가 27.1킬로미터의
론세스발레스 (Roncevaux 불란서 표기)까지 이다.
한글을 발견한 주군
"악천우시 2번 길 우회" 하라는 한글도 있는 안내판
날씨가 좋아 1 번 루트로 직진한다.
아직 불란서 땅이기에 까니노 데 산 티에고가 Chemin de St JACQUES로
불란서어로 표기 되어 있다.
오리손으로 향하는 언덕
몸과 마음에 열기가 언덕 만큼이나 오른다. 오르막에 대비해서 윈드자켓을 벗는다.
떠나기 전 날까지 물리치료 받은 왼쪽 무릎을 생각 해
처음부터 무리를 하지 않키로 해서, 오리손(생장에서 약 8 km 지점)을
목표로 정 했는데, 청년 두 사람도 순례 사무실에서 오리손에서 1박을 같이 예약했다.
화살표나 조개표 말고 길가 돌 무덤의 희고, 붉근 두줄도 길(까미노) 표시이다.
바욘부터 일행이 된 아가씨들은 생장에서 하루 묵고, 내일 출발 한단다.
청년 둘(박군,주군)과 어울려 피레네산맥을 오른다.
생장을 잠깐 둘러보고 오리손에 오르는 길은
포장된 완만한 오르막이었지만
조금씩 오를수록 주위 경관은
와~하는 감탄사를 저절로 내 뿜게 한다.
여행을 떠나며
산길 알기 어려우매
멀리 보이는 저 나무(하느님?)
눈에 담고 가면 좋아
헤맬 것 같음 눈 들어 보렴
저 나무 향해 가면
언젠간 꼭 닿을 수 있으므로
눈에 담는 것 아득한 게 좋아
높은 게 좋아
먼길 갈 때엔
미쓰하라 유리 지음, 유시찬 신부 옮김 길 중에서
이정도 높이에 경치가 이러니, 내일 피레네의 정상은 어떨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드디어 만나게 된 화살표 그리고 조개 무늬 사인
앞으로 820km 내내 나의 친절한 안내자 역활을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린 바로 저 화살표와 조개무늬에 의지 해
8백 여 킬로미터를 걸어 산티아고에 도달 할 것이다.
첫 기착지 오리손이 손에 잡필듯 보인다.
줄이고 줄이느라 몇 번을 다시 싼 배낭(11Kg)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한다.
생장에서 구입 해 매달은 조개가 순례자임을 증거한다.
숨도 차 오르고, 꽉 조인 허리와 어깨 끈이 늘어지는 것 같아
다시 한번 조여 보지만 어깨를 짓 누르는 무개 감은 배낭 속 물건 하나 하나를
다시 머리 속에서 용도가 적은 물건을 찾아 버릴 생각으로 바쁘다
오리손 알베르게
Refuge Orisson. Uhart-Cize
두 시간 만에 도착한 오리손은 별장 같은 모습이었다.
잠시 쉬고 떠나는 이들을 보며, 같이 피레네산맥을 넘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두 번째 스템프를 찍으며, 방 배정을 기다리는 데,
어이 없이 우리한테 배정된 숙소는 건물 뒤 동산의 텐트란다.
카미노의 모든 알베르게는 예약을 안 받는다.
도착한 순서대로 침대를 배정 받는데, 오리손 만은 순수 알메르게라기 보단
순례객과 피레네 등반객들 등 하루쯤 쉬고가는 이들을
인터넷 예약으로 받는 것 같다. 텐트에 짐을 풀고 보니,
텐트의 얇은 천을 사이에 두고 대자연 속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나무 빠레트 위에 두꺼운 메트레스를 깔아서 잠자는데 크게 지장은
없는 것 같아 조금은 기분이 가라 안자,
코인으로 5분동안 만 작동되는 샤워를 하느라, 군대에서 목욕하던 실력을 발휘해 마치고
첫 손 빨래를 적당히하고 대충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피레네산맥 중턱에 위치한 알베르게 앞 전망대에서 경치를 즐겼다.
저녁은 모든 순례객들이 함께 한단다.
만찬다운 푸짐한 음식과 거부감 없는 맛에 처음 맞는 프랑스식(?) 음식이지만
맛있게 푸짐이 먹었다.
식사 후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란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영어로 40여명이
자기가 가능한 나라 말로 국적과 이름 그리고 간단한 소개하는 시간이다.
생각지도 않은 봉사자의 이벤트성 행사에 내 순서가 다가오니
긴장되고 당황스러워 진다. 다행이 예전에 영어로 자기 소개서라는 걸
작성 해 본 경험이 생각나 머리에 쥐가 나도록 기억을 되살려,
그 중 간단한 인사말을 대신했다.
Good evening Ladies and Gentlemen, Brothers and Sisters.
How do you do and How are you.
I am glad to meet you.
My name is Dong Joon Choi. Choi mean's high.
I'm came from SEOUL KOREA.
I'm very happy to be here this evening.
That's all!
Thank you very much.
God bless you!
Buen Camino!
("좋은 길 되세요"란 스페인 어로 순례자들끼리 인사 말)
그런데 박주원군 차례가 되자 여유있는 웃음과 한국 말로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더니, 곧이어 영어로 다시 또박또박 하는게 아닌가?
너무나 대견스럽고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내 나이 63 세, 나는 왜 이 길을 걷는가?
63세의 나는 그런 자리에서 생각한 말을 틀리지 않기만을 바라고
조심스럽게 마친 것에 안도하고, 겨우 다른 이가 눈치 못차릴 정도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당당한 우리나라 젊은 이들과 같이 있는 이 순간
얼마나 그 자리에 있는 내가 뿌듯하고 박군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분위기에 잘 먹지도 못하는 와인을 마음 껏 마시고
텐트로 향하는 내 발거름은 콧노래와 함께 흥겹고 가벼웠다.
보기보단 텐트 내부는 잠자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서울서부터 쉬임없이 달려온 일정에 지쳐 먼저 잠들었다
생리현상이 급해 깨어보니 옆에는 뒤 늦게 잠자리에 든 박군이
피곤한 몸을 마음 껏 잠 속에 마끼고 곤히 잔다.
텐트를 비집고 나와 두어 발자국 걸어 영역표시를 하려는데,
센서에 의해 건물 쪽으로 작은 표시 등이 켜진다.
알메르게 내의 화장실을 향하는 안내등이다.
문득 하늘을 본다.
80년대 미국 조카가 잠시 방문했을 때, 모든 가족들과 함께 같이
무주 구천동에서 야영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밤 하늘,
"별이 쏟아진다"는 시 구절을 실감했던 그야말로 별이 비처럼 내리는
하늘을 본 이후 그 정도는 아니지만, 혼자 보기엔 아까운
별이 촘촘히 박혀있는 밤하늘을 오늘 오리손에서 오랫만에 또 만났다.
아마 텐트가 아니었으면 이런 좋은 하늘은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기분 좋게 화장실에서 영역표시를 끝내고 텐트로 돌아오며
눈길을 밤하늘에서 뗄 수 없었다. 주님 고맙습니다.
첫 날부터 이런 은총을 주시다니요.
자리에 누우니 이번에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워낭 소리에 기분 좋은 잠을 설치고 있었다.
근처 목장에 망아지 목에 매단 워낭소리 같았다. 크지도 작지도 요란스럽지도
않은 소리에 어느새 자연의 품에서 눈이 스르르 감긴다.
주님~ 당신이 만드신 자연이 이런 모습이어야 맞습니다.
자연의 일부가 된 오늘 하루 감사합니다.
오늘 걸은 길 7.716km 생장피드포르-오리손 남은거리 810.514km
오늘 쓴돈 점심 8 + 저녁, 숙소, 아침 24 +내일 점심 3.5= 35.5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