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0일 전파를 타기 시작한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이 1월 23일 우여곡절 끝에 방송을 마쳤다. ‘우여곡절 끝에’라고 말한 것은 권상우(박태용 역)와 함께 극을 이끈 배성우(박삼수 역)가 구랍 11일 음주운전으로 입건돼 중도하차했기 때문이다. 뜻밖의 악재를 만난 SBS는 12회 방송(2020.12.12.) 후 수습책으로 3주간 드라마를 중단했다.
대타로 정우성 출연 소식이 알려졌고, 새해 1월 1일 방송을 재개했다. 이미 촬영해둔 13~16회분에서 배성우 출연 부분을 최대한 편집하겠다고 밝혔지만, 애시당초 말 안 되는 소리다. 극중 비중이 높은 주인공중 한 명이라서다. 가령 13회의 경우 14차례나 배성우가 등장했다. 배성우 대신 정우성이 박삼수로 나온 건 17~20회 4회분이고, 그렇게 어렵사리 종영한 것이다.
드라마 방송도중 주연 배우가 교체된 일이 벌어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까운 예로 2019년 방송된 TV조선 ‘조선생존기’를 들 수 있다. 드라마 주인공인 한정록을 연기한 배우 강지환이 성폭행 혐의로 긴급 체포되면서 서지석이 투입됐다. 2017년엔 SBS ‘리턴’의 고현정이 제작진과의 불화로 중도하차하고, 박진희가 대신해 극을 마쳤다.
건강상 문제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그러나 위에서 말한 제작진과의 불화나 음주운전ㆍ성폭행 등 배우의 어떤 범죄로 인한 중도하차 및 교체는 일어나선 안될 일이다. 배우라는 공인(公人)의 자세에서 이탈했을 때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시청자가 피해를 입지만, 주연배우 중도하차는 그보다 더 크고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예컨대 드라마 제작사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어느 PD는 “주연배우가 물의를 빚어 중도에 하차하면 앞서 해외 판매 계약이 이뤄졌다 하더라도 해지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제작사와 방송사뿐 아니라 그 작품에 출연하는 동료 배우가 입는 피해도 커 수습이 어렵다”(한국일보, 2021.1.18.)고 말했다.
어쨌든 ‘날아라 개천용’은 1회 1부 4.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로 출발, 최종회 시청률 6.2%를 찍었다. 최고 시청률은 2ㆍ7ㆍ9회 각 2부에서 찍은 6.7%다. SBS 어떤 금토드라마들보다도 낮은 시청률이다. 배성우보다 더 톱스타인 정우성이 무려 8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라는 화제성도 시청률을 견인하진 못했다.
일견 의아한 일이다. ‘날아라 개천용’의 비교적 저조한 시청률이 의아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박상규ㆍ박준영 공저 ‘지연된 정의’를 원작으로 한 ‘날아라 개천용’이 삼례 나라슈퍼 강도살인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등 재심에서 무죄 판결된, 없는 자들의 억울한 감옥살이를 꽤 재미 있게 그려낸 드라마여서다.
이미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재심’(2017년 2월 15일 개봉)이 242만 넘는 관객으로 손익분기점 160만 명을 훌쩍 넘긴 흥행 성공과도 대비된다. 영화 ‘재심’의 흥행에 대해 나는 이렇게 썼다. 세상이 요지경이고 똥통이고 아수라장이어도 진실과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이니까 ‘재심’의 흥행이 흐뭇하기만 하다.
‘날아라 개천용’의 비교적 저조한 시청률이 의아한 이유는 또 있다. 무엇보다도 ‘날아라 개천용’이 극적 재미가 있는 드라마여서다. 드라마에선 박태용 변호사와 박삼수 기자의 어릴 적 고단했던 시절 회상이 동기에 대한 구체화로 이어지곤 한다. 가령 살인자의 아들로 살아온 삼수 이력이 김두식(지태양) 재심을 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식이다.
극적 재미는 재판 승소 과정에서도 느껴진다. 잘못한 경찰ㆍ검찰ㆍ법원 모두가 한통속으로 부인하는 상황에서 이루어낸 재심 승소라 그렇다. 가령 최동석(류연석) 판사가 두식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장면에서 콧등이 시큰해지기까지 한 것은 그래서다. 물론 “왜 판사들은 힘 없고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실수합니까?” 같은 태용의 강변이 뒷받침되기도 해서 그런 것이다.
캐릭터 설정도 극적 재미에 한몫한다. 가령 “가진 것이 없으면 멋이라도 있어야지”라며 삼수가 하는 기자로서의 일을 팍팍 격려해주는 동거녀 이진실(김혜화)이 그런 인물이다. 단순한 동거녀가 아닌 동지 같은 배우자다. 삼수가 태용과 함께 재심을 맡아 무죄를 이끌어낸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단, 왜 동거 5년 만에야 삼수가 장인을 보러 가는 지는 의문이다.
또한 이유경(김주현) 기자와 전직 형사 한상만(이원종)이나 검사 출신 변호사 황민경(안시하) 역시 아직도 살만한 세상임을 깨닫게 해주는 인물들이다. 다만, 두식이 무죄 판결후 미국으로 떠나간 상만의 거취와 달리 민경을사립학교 비리 밝히기로 본격 접어들면서부터 종영까지 나오지 않게 한 것은 좀 아쉽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날아라 개천용’의 가치는 경찰 포함 법조계 검은 커넥션을 보여주는 일이다. 실제 인물과 사건에 허구를 가미했다곤 하나 진범을 놔두고 은폐는 물론 그들과 결탁까지 해가며 오심을 가리려는 경찰ㆍ검찰ㆍ법원의 흑역사를 까발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한 ‘날아라 개천용’이기에 비교적 저조한 시청률이 되게 아쉬운 것이다.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봐야 맞지만, 김형춘(김갑수) 같은 인물이 “대통령도 임기 못채우고 내려오는 시대”에 존재하는지 오싹할 지경이다. “재심이 자꾸 열리면 법적 안정성이 흐트러져 나라가 무너집니다” 따위 말같지 않은 말을 내뱉으며 대법원장 조기수(조성하)와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의 서울시장 강철우(김응수), 국내 최대 로펌의 고문 김병대(박지일)를 쥐락펴락하며 무릎까지 꿇게 하는 그런 비선 실세가 지금도 있는지 궁금하다.
혹 대통령이 전화에서 비선 실세에게 “선배님”이라 부르며 역할해줄 것을 부탁하는 일이 없는 시대이기에 대중일반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한 건 아닐까? 하긴 요 몇 년 사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실제상황으로 벌어져 드라마가 대중의 시선을 새삼스럽게 끌 일이 없어진 세상이다. 비선 실세가 존재했던 시절에 방송했더라면 이보다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흥미로운 건 장윤석(정웅인) 검사의 살아남기다. 시즌2를 염두에 둔 결말이 아니라면 단죄를 예견한 시청자 기대감을 배반한 다소 의외의 구도여서다. 태용의 계획은 종로 선거에서 맞붙어 윤석을 낙선시키는 것(사실은 이것도 형사처벌과 엄연히 달라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인데, 그렇지 않아서다. 어쩐 일인지 재심을 맡는 변호사로 돌아갈 것 같은 결말이니 의아하다.
이런 끝냄은 역설적으로 추미애 법무부장관과의 대립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현실의 윤석열 검찰총장과 맞물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 “검찰은 지지율 1위 대권주자는 치지 않습니다”라든가 “대한민국 검사가 못하는 게 뭡니까?” 같은 대사들도 그런 느낌을 돕는다. 다름 아닌 무소불위 검찰에 대한 은근 슬쩍 까발리기다.
재심 전문에서 후반부 사립학교(승운공업고등학교) 비리 까발리기로 옮겨간 것은 느닷없지만, 철우를 날리기 위한 결정적 증거 확보의 장치라는 점에서 일종의 보너스라 생각할 수 있다. 현재 특성화고 학생들이 겪는 현장실습, 나아가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소리없이 당하는 현실을 환기시킨 점만으로도 그 의미가 만만치 않다.
그 과정에서 윤석 아내인 강채은(김윤경) 이사장과 인사 나눈 배성우 대신 정우성으로 바꿔 재촬영한 회상 장면 등 그런 노고(勞苦)도 정당히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이와는 다른 얘기인데, 앞에서 말한 “가진 것이 없으면 멋이라도 있어야지”(13회) 말고도 인상 깊게 와닿는 기억해둘만한 대사들이 더 있다.
“머리가 악세사리냐”(1회), “모두의 잘못은 누구의 잘못도 아냐”(10회), “기자들은 밥보다 단독을 좋아한다더니”(12회), “울 줄 아는 사람이 멀리, 사심없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거야”(13회), “가슴이 웅장하네요”(15회), “늘 배신이 공기처럼 흘러”ㆍ“정권 바뀌어도 사립학교는 안 변해”ㆍ“똑똑한 머리는 우직한 몸을 이길 수 없으니까”(이상 20회) 등이다.
가장 큰 불만은 태용과 삼수 모두 너무 우스꽝스럽고 호들갑 떠는 캐릭터로 그려진 점이다. 무죄를 밝혀내는 법정드라마라 너무 딱딱하거나 건조한 흐름이 될 걸 우려한 극적 재미 차원의 설정인지 몰라도 두 주인공 희화는 진실 밝히기며 정의 구현 등 모든 게 장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특히 희화된 태용은 너무 어색하게 다가온다.
가령 조기수에게 한 방 먹인 태용이 대법원장 집무실에서부터 복도로 나와서까지 율동과 함께 노래하는 모습이 그렇다. 삼수만 코믹 캐릭터로 했더라면 조화로웠을 것 같다. 정우성이 배성우의 그런 점을 의식해 망가지고 웃기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너무 티가 나는 등 어색해 보인 게 아닐까 싶다. 한 마디로 대타 투입은 실패다.
그 외 7~9회에서 날짜와 장소도 표기되지 않은 이상한 플래카드가 등장하는가 하면 학교 이름만 있고, 전화번호나 주소 등이 없는 난생 처음 보는 대봉투(16회)가 나오기도 해 의아하다. 발음상 오류도 있다. “창꼬(고)”(3ㅚ), “다 비시(빚이→비지)예요”(3회), “기술 가르켜(쳐) 주시면”(11회), “눈비시(눈빛이→눈비치) 반짝반짝하시네”(12회)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