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월간문학 9월 수필평
수필은 格物致知의 五感 문학
金 洪 殷 (수필가)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사물의 理致를 깨닫고 난 후에야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안다는 것은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고, 깊고 얕음의 차등이 있다고 하겠다.
사물에는 어떤 이치가 있으니 그 이치를 깊이 연구해 내야한다. 이치를 깨닫는데는 여러 가지방법이 있겠으나, 우선 문헌을 통하여 밝혀 내던가, 교육으로부터 터득하거나, 혹은 사물을 직접 체험하여 알 수 있다. 이 같은 방법은 인생에 있어서 삶의 응용이고 꾸밈이며, 수필문학으로 향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의 열망은 음악처럼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소리는 아름답고 자연스럽다. 음악은 겉으로 들어내지만 수필은 속으로 들어내는 五感의 문학이다. 수필문학은
하나를 알면 열을 이해할 수 있고, 한 알의 씨앗을 심으면 꽃을 피우고 마는 게 아니라 열매를 맺는 성숙된 인생의 문학이요, 자연철학의 예술이다.
수필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되, 품위를 지닌 멋과 율동을 담은 우아한 춤이며, 달관된 인생의 노래요, 향기로운 인간의 道다. 그래서 수필가는 다른 사람 앞에 자기를 높이지도 않고 굴하지도 않는다(不自高 不自屈). 다만 우주속의 道에 內在되어 人性을 닦는다.
이러한 작가들이 써놓은 글은 읽고 나면 오래도록 감동을 받게된다.
월간문학 8월호에는 수필이 8편 실려있다.
崔重鎬의 「충정으로 피어난 혈죽(血竹)」의 작품은 역사성을 지닌 수필이다. 충정공 민영환 선생의 묘소에 가면 혈죽이 있을까 하여 경기도 용인으로 찾아갔지만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박물관에 찾아가 유품을 보고 느낀 감정을 적어 놓고 있다.
「혈죽을 보는 순간 가슴이 울렁거리며 얼굴이 상기되어 옴을 느꼈다. 풍전등화 같은 참담한 나라의 운명을 울분으로 삭여야 했던 선생의 자결순간이 내게로 전이되어 오는 것일까. 어쨌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혈죽은 표지 옆에 길게 네모진 상자 안에 남보라색 융단을 깔고 누워 있었다.
90여 년을 말없이 지내 온 혈죽은 갈색으로 변해버린 대나무 가지와 마른 잎들이었다. 이 혈죽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그들의 가슴에 독립의지를 심어 주었던 것이 아니던가.」
한편의 글을 쓰기 위해 현지를 찾아간 노력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간추린 국사」 책을 보고 호기심에 책자를 넘기다가 충정공 민영환 선생의 유서(遺書)에서 그만 시선이 머물고 말았다’ 는 부분 이후의 역사적 내용이 절반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보다 함축이 되었으면 했다.
李正林의 「호숫가의 고독」은 5월 초이틀 글벗들이 화자의 멋진 생일을 축하하는 기쁨을 담아 놓았다. 그러나 자기들의 생일을 쓸쓸하게 보내면서 남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뒤바뀐 풍경 앞에 화자는 그들의 맑고 순수한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고독을 느끼었다.
「나는 서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처음 나온 외계인처럼,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들의 모습, 어울리며 양보하는 성숙한 마음, 남을 위해 나를 굽히는 겸손한 자세― 사람들의 이런 아름다운 모습에 서툴기만 한 내가 숨을 수 있는 곳은 단 하나, 그것은‘홀로 있음’이다. 혼자 있다는 것은 모태(母胎)처럼 편안하다. 거기에는 갈등도 없고 불화도 없다. 또 행복도 없고 불행도 없다. 양수(羊水)처럼 편안한 그 곳에서 사람들의 세상으로 나올 때, 나는 되레 거북해지고 외롭고 고독을 느끼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를 묻히지 않고 사는 인생의 고고함이 청아한 물소리처럼 들린다. 낯을 내고 떠벌리는 생활보다는 자신을 지키는 값진 여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름다움은 고독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라는 이 한마디는 화자의 겸손이 문장에 조용히 배어있다.
金宰亭의 「白姿 한 点」은 姿(瓷)의 誤字가 아닌가 한다. 白瓷 한 点의 작품을 읽으니 조용한 대청마루위로 달빛이 쏟아져 오는 가을밤에 조선 여인의 몸맵시 같은 품위를 닮은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백자(白瓷).
언제 보아도 다정다감한 느낌, 우아한 모습, 어머님 품 같은 포근한 정, 이런 것들은 모두 나에게 정신적으로 유익할 뿐 아니라, 가르침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백자엔 우리 선인들의 혼이 스며 있고, 넓고 크고 깊은 조상들의 기(氣)와 얼이 살아 숨쉬고 있다.
고아롭고 우아한 백자여!
기린 목처럼 길게 뻗은 줄기 밑으로 이어진 타원형 몸체는 어찌 그리도 조화로운 맵시로 보는 이의 눈길을 멈추게 하고, 정중한 듯하면서도 단정한 모습은 보이는 이의 마음을 어찌하여 송두리째 빼앗아 버릴까.」
감칠맛 있는 문장으로 백자를 그려놓았다. 은은하면서도 날렵한 백자의 곡선미의 몸체를 보는 듯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는 세속의 온갖 풍진을 훨훨 날려버리고 무사무념(無思無念)으로 정좌한 모습은 불타(佛陀)와 무엇이 다르랴’ 하고 찬양하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문헌을 인용하여 역사 속 우리의 도자기 문화도 함께 들려주고 있다.
李錫龍의 「고향의 소리」는 잃어간 고향의 소리를 되찾아 듣는 것만 같은 즐거움을 느끼게한다. 점점 잊혀져 가는 지난날의 고향의 소리들을 떠올리고 있다. 수구초심(首邱初心)이란 말이 있듯이 하물며 우리 인간인들 어찌 고향이 그립지 않으며, 이 또한 고향의 소리가 듣고싶지 않겠는가?
「소리란 반드시 귀로 들을 수 있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눈으로 읽을 수 있고 피부로 감촉 할 수 있고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은 소리의 개념으로 포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선인들은 싸늘한 감촉으로 가을의 소리를 느낄 수 있고, 연인의 정다운 눈빛으로 사랑의 소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듯 세상에는 다양한 빛깔의 소리가 있다. 나뭇잎을 스쳐가는 바람처럼 무심코 주고받는 말 가운데에는 快와 不快를 나타내는 소리가 있고 正과 邪를 혼돈시키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소리 가운데 언제나 다정한 속삭임으로 다가오는 것은 영원토록 싫증나지 않는 추억의 소리요, 고향의 소리이다.」
그러나 작품의 말미 부분의 ‘요즘 세상·····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차마 제정신으로 듣지 못할 흉악한 소리나 건물 무너지는 끔찍한 소리·····. 참으로 안타깝다.’ 의 내용은 그리운 고향의 소리에는 왠지 옥의 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현재의 세태를 논하는 것도 좋겠지만 순수한 고향의 아름다운 소리만 듣고 싶다. 말미의 ‘우리는’ ‘보자’의 표현으로 다른 사람을 통한 동요보다는 자신에게 끌어들이는 문장으로 이끌었으면 하였다.
강혜경의 「나의 빈자리」는 환절기에 감기로 성가대에 참여하지 못하고 자기자리를 바라보는 감정을 그려 놓았다. 그러면서 빈자리로 하여 4년 전에 세상을 떠난 언니의 자리와 정년퇴직을 한, 남편을 함께 복합구성으로 묘사하여 놓았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자신도 자리를 비워줘야 할 때가 올 것을 마음에 준비하고 있다.
「언니처럼 세상을 떠나면서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있지만 살아있으면서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건강상의 이유로 자리를 물러나는 사람도 있고, 후진(後進)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 주는 경우도 있다. 아니 억울하게 자기 자리를 빼앗기는 사람도 있다.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들 중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도 많다. 극심한 좌절감이나 울화를 삭이지 못해 병을 얻는 사람도 있고 긴장이 풀린 탓인지 한꺼번에 늙어 버리는 사람도 있다. 직장 일에만 몰두했던 사람들 중에는 어울릴 친구가 없어 폐쇄적(閉鎖的)인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심한 경우에는 술이나 오락에 빠져 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간의 생, 노, 병, 사는 막을 길이 없는 것인가. 원효대사의 소설 속에서도 ‘죽지말을진저 낳기 괴로워라. 낳지말을진저 죽기 괴로워라.’ 라는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생사는 괴로웠나보다.
초로같은 인생의 단편을 되 뇌이게 하지만, 인생의 허무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주변의 슬픈 삶을 은근히 이야기하며 세월의 무심함을 들려준다. 그러나 화자는 남은 인생의 책임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수필문학은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울림이 있어야한다. 이는 작가의 심성이 닦아져 있을 때 생각의 표현들이 감동을 준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글은 재미가 없다. 어디까지나 五感을 흔들어 깨우는 의미를 담고 있어야 살아 있는 글이 된다. 고통을 쏟은 만큼 그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첫댓글 공부하고 갑니다.
교수님 공부 잘 하는 학생 되어 보려고 공부하고 가니다 . 감사함니다.
오감이 욕심을 가지게 하는 근원이 되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오감 마저도 비우고 살려는 노력을 하는데요.... 그럼 글이 막대기가 되겠지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통을 쏟은만큼 그 가치를 지닐수 있는..어렵기만 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할것입니다.
어디까지나 5감을 흔들어 깨우는...
이정림의 호숫가 고독 문구들은 나 자신과 너무 닮아 두렵기도 함니다.
불자고불자굴 수필가는 다른 사람앞에 자기를 높이지도 않고 굴하지도 않는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