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부쉐(Robert Bouchet, 1898-1986)
로베르트 부쉐는 프랑스의 신인상파의 화가로써, 프랑스 파리의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하지만, 그는 클래식 기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생의 후반 약 35년에 걸쳐 약150대의 악기를 남긴 꿈과 재능이 풍부한
장인이었다.
그가 악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파리에서 클래식 기타를 제작하고 있었던 Julian Gomez Ramirez 와도 친한 관계였기 때문에,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자주 관찰할 기회가 있던 중에, 자신만을 위한 기타를 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악기가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그가 미술교수로써 활동을 하면서 참여를 했던 파리 클래식 기타 협회인 Les de la Guitare에서 자신을 위하여 1964년에 제작하기 시작한 악기를 시작으로 Les de la Guitare의 활동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몽마르뜨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그림과 기타 제작을 병행하게 되었고,
점차 그의 악기는 널리 알려져서 프랑스를 벗어나 세계의 클래식 기타 연주가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게 되었다.
그의 악기는 줄리안 브림, 에밀리오 푸쉐르 같은 당시 유명 연주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는데,
특히 줄리안 브림은 1957년, 1962년, 1964년에 부쉐가 제작을 한 세대의 악기를 소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윤추구가 목적이 아니었던 부쉐는 매우 적은양의 악기를 제작을 하였으며,
세계에서 기타 연주자들이 그의 기타를 구하고자 방문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기가 매우 어려웠다.
부쉐는 다른 기타 제작가들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독자적으로 기타를 제작하였기 대문에,
스승으로부터 기타 제작에 대한 트레이닝을 받지는 않았지만, 토레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스페인식 기타 제작방식을 채용하였으며, 상세한 작업에 있어서는 독특한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하였다.
스페니쉬 네크의 제작과정
부쉐가 사용한 전통적인 스페인식 제작방식은, 네크와 뒷판을 연결할 수 있는 접착면이있는 스페니쉬 네크에 홈을 파,
옆판을 네크의 파여진 홈에 접착을 하였다.
이렇게 고정이 된 옆판에는 미리 잘라 놓은 작은 블록들을 틈틈이 이어서, 전면과 뒷면과의 접착면을 넓혔다.
특히 부쉐는 아이디어가 많은 제작가였기 때문에, 기타를 만들기 위한 독자적으로 공구 와 도구들을 고안하여 사용을
하였는데, 대표적인 공구로써는 전면의 부채살(Fan brace)을 붙일 때, 한번에 동일한 압력으로 붙일 수 있도록 고안한 도구, 브릿지를 붙일 때 사용을 하는 공구, 그리고 기타에 사용이 되는 모자이크를 만들기 위한 공구들이 대표적이다.
그의 악기 제작에 대한 열정에 대한 일화는 많으며 그중에서 대표적인 이야기로는 유명한 그라나다의 기타 제작가인
안토니오 마린 몬테로와의 공동 작업이다.
부쉐보다 연하였던, 몬테로는 부쉐의 악기를 보고 감탄을 하여, 파리에 있는 부쉐의 작업실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
이때, 기타 제작에 대하여 토론을 한 것을 계기로 이 두 제작가는 친분을 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남들보다 좋은 악기를 만들기 위한 실험과 연구에 열성이었던 부쉐는 1977년 그라나다의 몬테로를 방문하여 공동으로
기타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하였다.
이 작업에서는 부쉐는 기타의 울림통과 부채살(Fan brace)에 대한 상세한 디자인을 하였고,
전판은 스푸르스를 사용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전에 부쉐는 미송을 전판으로 이용, 몇대의 기타를 제작하였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공동작업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부쉐는 악기의 설계를 담당하였고, 몬테로는 실질적인 제작을 수행했는데,
당시 몬테로의 말에 의하면 부쉐는 기타를 제작할 때, 몬테로의 작업 방식에 비하여,
매우 섬세하고 세밀한 작업방식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공동 작업에 의하여 탄생된 악기는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두 제작가의 관계는 더욱더 친밀해 졌다.
2년후 몬테로와 부쉐는 다시 프랑스에서 2개월간의 공동작업을 하였다. 이때, 그들은 4개의 악기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 공동작업에서 몬테로는 부쉐의 악기에 디자인, 브릿지, 모자이크와 사운드홀의 상감,
헤드와 라벨의 디자인에 대하여 공헌을 하였다.
이 당시의 몬테로의 말에 의하면
“나는 부쉐의 작업실에서 그가 연구중인 악기를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항상 만들던 5개의 부채살(Fan brace)을 사용한 악기가 아니고,
7개의 부채살(Fan brace)을 사용하는 악기였습니다.”
라며, 부쉐의 좋은 악기를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연구열에 감탄을 하였다.
부쉐의 친한 친구인 호세 로마니우스는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부쉐는 매우 꼼꼼하게 아름다운 악기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토레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는 최고의 기타를 만들기 위하여 스페인 기타의 원형을 채용하였지만, 전판이 갈라지기 쉬운 단점이 있기 때문에,
토레스의 방식을 사용하여 악기를 제작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면에서 토레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실제 부쉐는 기타제작 35년간에 있어서 몸체의 형태와 버팀목의 양쪽에 변화를 주는 매우 많은 분량의 실험을 하여
좋은 악기를 만들어 내었다.
특히, 부쉐의 기타는 외관적인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매우 큰 음량과 청명한 음에 매우 유명하며,
소량만이 제작이 되었기 대문에 그의 악기들은 현재까지도 매우 구하기 어려운 명기로 평가를 받고 있다.
부쉐의 악기
부쉐는 스프루스 전면을 사용하여 최고의 결과를 냈기 때문에, 대부분의 악기는 이 스프르스를 사용하였다.
그는 후대의 제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버팀목에 대한 혁명적인 디자인을 완성하였지만,
사실은 이러한 디자인들은 토레스가 실험하고 있던 것들을 완성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을 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궁형버팀목이 양쪽으로 2개가 걸쳐 있는 것과 같이 아치형태로 전판에 접착을 하는 하단의 하모닝바(상목)는
지금까지는 부쉐의 고안이라고 여겨져 왔지만, 이 아이디어는 실제 1883년에 제작된 토레스의 기타에 적용이 되었던
기술이다. 부쉐는 1883년에 토레스가 제작을 한 기타의 수리의뢰를 받았었고,
부쉐는 이 기타를 수리를 하면서 토레스의 버팀목의 사용법에 대하여 면밀하게 검토를 하여 자신의 악기에 채용을 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토레스의 악기에는 악기의 상부 바디에 2개의 짧은 지지대를 사용을 한 것을 보고, 자신의 악기에도 채용을 하였다. 이것은 횡판에 커브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부쉐는 로마니우스와의 편지에서 자신의 악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을 했다.
“내가 최초로 기타를 만들 때, 최고의 감명을 받은 토레스의 악기에서 배운 버팀목구조를 채용하였습니다.
그리고 3번째인지 4번째인지의 기타부터는 토레스식의 하부 하모닝바(상목)사용법을 채용하였습니다.”
1956년까지의 부쉐는 모양이 좌우대칭의 버팀목 구조를 사용한 7개의 부채살(Fan Brace)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하모닝바(상목)은 위에 기술한 것처럼 토레스의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러던 부쉐는 1956년의 악기에서는 부채살(Fan brace)의 개수를 5개까지 줄이고 좌우 대칭의 디자인을 채택하였으나,
전판의 많은 영역이 충분한 힘을 받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어, 몇 년 후에는 다시 7개의 부채살(Fan brace)을 사용하는
설계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는 위에 기록한 것과 같이 하단이 열려있는 형태의 하모닝바를 채용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악기는 일부에 불과하였으며, 대부분의 악기들은 일반적인 방법이었던 하모닝바(상목) 사용법을 채택하였다.
부쉐는 전면판의 최적의 상태를 얻기 위해서, 두께를 바꾸기보다는 여러가지 바나 버팀목의 붙이는 방법을 변경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실험하였다.
그는 보통 전면판은 일정한 두께로 돔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버팀목의 위치나 방향이 음질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