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투구와 갑옷. 원래 조선 후기 러시아와 외교관계를 맺고서 고종에 의해 선물로 보내진 것이라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없고 러시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 나라의 왕이 다른 나라의 왕에게 선물로 보낸 것이다 보니 세공들이 소박하기만 하던 조선의 그것인가 싶을 정도로 무척 화려하다.
흔히 비단에 털가죽이나 두르고 둥근 못대가리 드러나도록 통통 박아넣은 것이 뭐 그리 대단하겠느냐 하겠지만, 원래 두정갑의 저 두정들은 모두 겉감 안쪽에 철판을 고정해놓은 흔적들이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천으로 되어 있지만 저 겉감을 드러내면 철판이 나타나는 구조인 셈. 결코 가볍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다. 아니 오히려 그 무게에서 어떤 것들은 유럽의 플레이트 아머에 필적하는 것들도 있다고 한다. 하기야 철판만도 무거운데 그 위에 저리 비단에 가죽에 덧씌워놨으니 무거울 밖에.
조선의 갑옷이 저런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은 조선의 주적이 여진인 때문이다. 아다시피 저기 위쪽 함경도로 가면 겨울이면 무척 춥다. 생철로 갑옷을 해 입었다가는 한겨울 싸우다 말고 살갗이 얼어 떨어져나갈 정도다. 그래서 저렇게 비단으로 겉감을 씌우고 털가죽으로 둘러 방한대책을 한 것이다. 더불어 활을 주무기로 삼는 여진에 대해 아무래도 저러한 형태가 방어에 더 유리하기도 하고. 플레이트의 경우는 한 점에 힘이 집중되었을 때 뚫리는 경향이 있는데, 천과 철, 그리고 돌출된 두정의 복합구조는 뾰족한 화살을 방어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할 수 있다. 덕분에 오히려 유럽의 플레이트보다도 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갑옷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하기야 17세기, 18세기를 지나면서 조선의 군에서 화약무기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과 함께 이러한 중갑주 역시 가볍고 말랑말랑한 것으로 바뀌기는 한다. 사냥꾼들조차 활 대신 화승총을 들고 돌아다니는 시대에 무겁고 거추장스럽기만 한 중갑주란 이미 효용가치가 다 했다 할 수 있으니. 유럽에서 플레이트 아머가 쇠퇴한 과정과 같다. 그러면서 두정갑의 안에 받치던 철판이 사라지고 단순히 의장용으로서 두정만이 남게 되는데, 이때에 이르면 두석린갑 역시 거의 사라지고 두정갑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아마 19세기에 만들어진 위 갑옷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일 게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미테이션으로 방송용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서는 이제는 고인이 되신 김무생 아저씨가 "노인 죽일 일 있느냐?"며 무겁다고 소품담당에게 호통을 치셨다고 하니 아무리 가벼워지고 편해졌어도 갑옷은 갑옷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걸 입고 말타고 칼 휘두르던 조상님들의 체력에 그저 후덜덜해 할 뿐.
아무튼 이러한 갑옷과 투구 역시 중국의 그것과도 다르고, 만주의 그것과도 다르고, 몽골의 그것과도 전혀 다른 조선만의 독특한 양식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전술적 전략적 환경이 다르고 사용하는 무기나 전술 역시 다르니 방어구 역시 이리 다르게 발전할 밖에.
무비에 등한했다고는 하지만 조선 역시 위로는 여진에, 아래로는 왜에 위아래로 위협적인 적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끊임없이 투쟁하고 궁리하고 연구하며 스스로를 단련하고 연마해 왔었다. 비록 역시나 전성기에 이른 일본에, 만주족에, 왜란으로 호란으로 이리저리 치이는 모습만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한때는 수십의 기병으로 수천의 여진기병을 쫓아 괴멸시키며 여진부락에 원망어린 곡성이 끊이지 않도록 했던 것이 조선군이었다. 결국 그 끝이 안 좋게 끝나 지금에야 그저 우습게 여겨지고 있는 하지만 말이다. 뭐든 끝이 좋아햐 하는 법인데.
아래는 국내와 국외의 박물관에 소장중인 갑주의 사진들이다. 우연히 인터넷 돌아다니다 눈에 띄는 게 있길래 주워모아봤다. 아마 눈에 익은 것도 있고 생경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서양의 플레이트 아머나 일본의 오오요로이는 알아도 우리 갑옷에 대해서는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니. 어쩌겠는가? 그리 망해버린 탓인 것을.
어쨌거나 멋지다. 조선시대로 돌아가면 장군 한 번 해 보는 것도 좋을지도. 우리집안은 원래 문신집안이라 안 되려나? 그 전에 무과에 급제해야 할 텐데 몸치인 나로서는... 그래도 장군 한 번 해 보고 싶기는 하다. 갑옷도 투구도 멋드러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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