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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 성균관 향교 스크랩 순흥향교 봄향사, 엄숙 봉행되다.
이장희 추천 0 조회 63 14.06.11 22: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순흥향교(전교 이갑선) 봄향사가 2012.2.26.(일) 09:00-13:30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소재 순흥향교 대성전에서 향교 및 유림 관계자

지역기관단체장, 영주문화유산보존회 등 100 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봉행됐다.

순흥향교는 5성위(공자, 안자, 자사, 증자, 맹자), 10철(민손, 염옹, 단목사,

중유, 복상, 염경, 재여, 염구, 언언, 전손사), 6현(주돈이, 정이, 장재, 정호,

소옹, 주희), 우리나라 18현(설총, 안향,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공자를 비롯한 39현의 성현들에게 제사를 올린다.

이날 순흥향교에서는 점차 우리 주변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선현들의 지혜와

유림정신을 계승하고 보존하는 일을 돕기 위해 영주문화유산보존회가 동참했으며

본회는 향교와 서원의 전통 정신과 제례와 음식에 대해 올 해 말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순흥향교는 창건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340년(고려 충렬왕 30) 순흥부(順興府)

북쪽 금성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순흥은 1413년(태종 13)에 도호부가 되었다가,

1457년(세조 3)에 부사 이보흠(李甫欽)과 금성대군의 단종복위사건으로 부가 혁파되자

이때 향교도 혁파되었다. 이후 수차에 걸친 복설 상소가 있었으나 복설되지 못하다가

1683년(숙종 9)에 부가 회복되면서 향교도 다시 건립되었다.

 

교중잡록(校中雜錄)에 의하면, 이때에 부사가 파견되면서 府(부)의 북쪽 金城(금성)에

터를 잡아 본격적으로 향교건립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향중유림(鄕中儒林)과

서원·서당 등의 인적·물적인 지원이 컸다고 한다. 1685년(숙종 11) 8월에 공사가 완료되었는데

그 규모는 대성전 9칸, 전사청 3칸, 명륜당 12칸, 동·서재 각 6칸이었다.

이후 향교터가 습하여 일부 건물이 허물어지자 1718년(숙종 44)에 부남(府南) 5리의

옛 순흥교기(校基)로 옮겼다가, 1750년 영조(英祖 26) 수해로 인해 석교촌(石橋村)으로,

다시 1790년 (정조 14)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순흥향교 전경

 

순흥향교 명륜당

 

 

순흥향교 대성전

 

시도/헌관, 제관 등 참석자들을 명부에 등록

 

의관정제/제례 복장과 관을 쓰는 일

 

상읍례/참여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일

 

집사분정/제례 담당자를 정하는 일 

 

집사분정표 게시

 

진설(상차림)/이 상은 원위(공자) 제례상으로 전통 진설도에 의해 차려짐

 

진설도(상차림 그림)/500여년 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됨

 

 

초헌관과 대축이 진설을 살펴보는 예

 

제주봉 예/제주(술)를 항아리에 담아 봉인한 후 준소(술 보관소)로 옮겨 오는 예

 

각취위/헌관, 제관, 참례자들이 배위(절하는 장소)로 나아가는 일

 

삼상향/초헌관이 향을 세 번 올림

 

 

초헌례/초헌관이 잔을 올림

 

독축/대축관이 축을 읽음

 

축문

 

아헌례/아헌관이 두 번째 잔을 올림

 

종헌례/종헌관이 세 번째 잔을 올림

 

음복례/초헌관이 젯상의 음식과 술을 덜어내어 먹는 예

 

4배/절을 네 번함

 

망예례/축을 땅에 묻는 예--------------제례 끝

 

헌관 일동

 

인터뷰/순흥향교 총무 박종섭---순흥향교의 연혁과 특색 설명 

 

헌관, 제관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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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700년 전 세워진 순흥향교와 500년 전 세워진 소수서원이 있는 고장으로

수 많은 명현· 거유를 배출하였음은 물론 충, 효, 예, 학이 살아숨쉬는

학문탐구의 요람입니다.

그래서 영주를 「선비의 고장」이라고 합니다.

 

  

좋은 소식 GNπ http://blog.daum.net/lwss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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