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을 들고 필드에 나설 때면 으레 챙겨 입게 되는 골프웨어, 골프웨어는 언제 생겨난 것일까? 푸른 그린 속에서 골퍼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골프웨어의 역사를 알아보자
1880년대
1890년대
1900년대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골프가 역사 속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457년부터이다. 그렇다면 이때부터 골프웨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 정확한 문헌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지만 당시의 삽화를 참고 한다면 특별히 골프를 치기 위한 옷을 제작했다기보다는 일상복을 입고 골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17,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럽의 귀족들에게 골프가 성행했지만 그들 또한 입었던 화려한 옷 그대로 골프를 즐겼다. 치렁치렁 레이스가 달린 긴 치마의 여성들과 승마 복장과 비슷한 남자들의 의상이 삽화로 남아있는 당시의 모습이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코르셋과 긴치마까지 갖춰 입고 클럽을 들고 있는 여성의 모습과 조끼와 체인 달린 시계까지 차고 있는 남성의 사진은 당시의 일상 복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를 보여준다. 20세기에 이르러 사진 속 골퍼의 의상에 변화가 생긴다. 무릎아래서 묶는 반바지인 니커와 재킷, 타이가 남자들의 표준 의상으로 등장한다. 1920년대의 조이스 웨더레드의 사진은 이전보다는 많이 짧아진 치마길이를 확인 할 수 있다. 이렇게 여성들의 치마가 짧아지고 거추장스러운 장식이 줄어들면서 골프를 칠 때 입는 골프웨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삽화에선 갤러리들의 의상과는 다른 골퍼들의 복장이 들어난다. 그러나 이렇게 당시의 일상복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거듭하던 시기에도 특별히 골프웨어라는 옷의 종류에 대한 기록은 없다. 개인이 스스로 만들거나 수선해서 입는 수준이었다. 1930년대의 월터 헤이건의 모습처럼 당시에는 무릎길이의 반바지와 타이 그리고 넥타이와 스웨터가 남성들의 골프웨어였다. 1950대에는 이전에 비해 더욱 치마의 길이가 짧아진 옷을 입고 자유롭게 스윙을 하고 있는 베이브 자하리아스의 모습을 통해 달라진 골프웨어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남성복도 맞춰 입은 바지와 짧은 소매 셔츠 복장의 아놀드 파머의 모습은 현대적인 형태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 시기에 이르러 골프가 하나의 스포츠 산업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골프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는 만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회가 중계되고,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선수가 탄생했다. 1970년대의 로라 바우는 짧은 치마 패션을 선보이며 시선을 끌었다. 선수의 모든 것에 열광하는 팬이 생겨나면서 스포츠스타의 의상 또한 대중들에게 어필하게 된다. 그로인해 유명선수들의 이름을 딴 골프웨어 브랜드가 출시되기 시작했다.‘잭 니클라우스’와 ‘아놀드 파머’가 그것이다. 스타선수의 인기와 인지도를 등에 업고 탄생한 이들 골프웨어 브랜드는 순식간에 대중들 사이로 파고들었으며 시장을 개척하고 전세계로 그 범위를 확대해갔다. 1970년대 이후 각 선수들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복장으로 팬들에게 어필했다. 연녹색으로 위아래를 맞추고 하얀색 벨트로 마무리한 톰 왓슨, 1980년대의 페인 스튜어트의 대담하면서도 독특한 니커 반바지, 미셸 맥건이 1990년대에 선보였던 챙 넓은 모자와 밝은 컬러 의상, 그리고 그렉 노먼의 온몸을 휘감은 상어 무늬가 그것이다. 국내 골프웨어의 성장 1924년 사단법인 경성골프구락부가 출범하고 경성이외에도 대구와 원산에 9홀 규모의 골프장이 생기면서 골프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러 사회적 어려움으로 인해 골프가 정착하는 데는 그 이후로도 50여년 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때문에 골프웨어의 역사도 그 만큼 늦어졌다. 1979년‘슈페리어’를 시작으로 82년 ‘아놀드 파머’가 국내에서 출시되기 시작했고 85년에는 ‘잭 니클라우스’가 론칭했다. 슈페리어의 김혜영 대리는 “골프웨어의 태동은 이들 브랜드들이 생겨나던 시기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초기에는 평상시 옷으로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하나의 성인 캐주얼의 이미지가 강했다. 또한 주로 중·장년층이 즐겨 입었기 때문에 ‘아저씨 옷’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그는 또한 “국내에서는 골프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자연히 골프인구의 연령도 청년층 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중·장년층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때문에 폴리 소재의 정장 바지 스타일로 골프웨어가 시작된 것이 그 이유”라고 설명한다. 또한 “일부 브랜드는 청년층에게‘물 건너온’ 해외 브랜드라는 이유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교복 자율화가 시작되면서 학생들에게도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8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소득이 높아지면서 한층 높아진 소비자들의 안목을 충족시키기 위한 업체들의 발걸음도 점점 빨라졌다. 그 결과 86년 ‘아스트라’와 87년 ‘블랙앤화이트’, 88년 ‘이동수골프’를 비롯해 89년 ‘먼싱웨어’등이 런칭하며 골프웨어의 시장이 특정한 영역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초에도 새로운 골프웨어 브랜드의 신규출시가 더욱 가속화됐다. 90년 ‘엘로드’, 91년에는 ‘던롭’, ‘울시’, 그리고 ‘임페리얼’ 등이 생겨났으며 92년 ‘링스’, 93년에는 ‘피지에이투어’ 등이 출시되면서 골프웨어 시장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을 계속했다. 90년대 중반까지 승승장구 하던 골프웨어 시장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IMF를 겪게 된다. 업체들에게는 생존을 위해 각기 세분화된 타깃과 독특한 컨셉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게 된 것. 그러나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일부 업체들이 시장에서 탈락하고 생존한 업체들도 거품을 걷어내는 구조조정을 통해 골프웨어 시장의 발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96년‘레노마스포츠클럽’과 97년엔 ‘닥스골프’등이 생겨나면서 시장을 확대시켰다. 98년부터는 박세리 선수가 미LPGA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면서 골프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는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나이키골프의 김지영 대리는 “박세리 선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웨어뿐만이 아니라 골프산업 전체가 급격하게 성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이후 꾸준한 성장을 지속하며 나이키골프와 김영주 골프, 보그너, 트루사르디골프 등 해외 유명 브랜드들도 골프웨어 시장에 뛰어드는 등 골프웨어 시장은 국내 브랜드와 라이센스 및 직수입 브랜드들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렇게 치열해지고 있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위해 골프웨어 업체는 나름대로의 특성을 개발하고 새로운 소비자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골프웨어의 특징, 기능성으로 말한다 더욱 더 편한 것을 찾게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기본 심리일 것이다. 골프웨어가 독자적인 부분으로 성장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일상복과 달리 골프에 적합한 옷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골프웨어의 대표적인 트렌드로 각 업체의 디자인 관계자들은 기능성을 꼽는다.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신축성과 방수, 방풍 그리고 보온에 이르기까지 골퍼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기능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능성이 초기부터 대세를 이룬 것은 아니다. 나이키 골프 김지영 대리는 “국내에서 골프웨어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성장을 했던 시기인 80년대와 90년대 중반까지는 화려함이 가장 큰 트렌드였다”고 말한다. 당시 부를 상징하는 골프의 특성상 화려한 의상은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당시의 주된 소재였던 폴리는 색상을 착상하는데 편리한 특성이 있어 화려한 색상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기술에 의한 다양한 소재가 개발되고 IMF를 겪으면서 사회적으로 실용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게 된다. 그 결과 기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2000년 이후부터는 기능성이 골프웨어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김덕미 빈폴골프 디자인 실장은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실리주의의 젊은 층이 골프인구에 가세하고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웰빙 바람을 타고 좀더 쾌적한 환경을 원하는 골퍼들이 많아졌다는 것. 슈페리어 김혜영 대리는 기능성이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이유에 대해 소재의 다양성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다양한 기능성 소재가 개발되면서 ‘소재의 디자인화’를 이루게 됐다”고 말한다. 각기 다른 소재는 그 감촉과 외관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하나의 디자인이 될 수 있었다는 게 김대리의 설명이다. 뉴서티의 등장과 여성골퍼의 증가 뉴서티란 기존의 386세대와는 달리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 학번을 갖고 있는 30대를 말한다. 원조 엑스(X)세대였던 이들이 30대가 되면서 기존의 30대와는 다른 차별화가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으로 그 이전에 비해 풍족한 생활을 누렸으며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뉴서티의 특징이다. 이들이 30대가 되면서 골프인구로 유입되어 골프웨어 업계에도 중요한 고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높은 안목과 구매력을 갖춘 뉴서티는 앞으로도 수십 년간 업체들에게 효자 고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골프웨어 시장에도 이들을 위한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김덕미 빈폴골프 디자인 실장은 이러한 상품의 특성에 대해 “기존의 화려함보다는 젊은 감각으로 표현되는 각각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디자인과 다양한 취향을 맞추기 위해 라인이 세분화 된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뉴서티와 함께 골프웨어의 변화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은 바로 여성이다. 여성골퍼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여성의 시선을 끌기 위해 업체들이 절치부심하고 있다. 특히 남성이 직접 골프웨어를 구매하는 경우보다 여성이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업계가 여성들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다. 신옥길 엘르골프 홍보 담당자는 “여성 소비자들을 위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색상과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엘르골프’와 ‘보그너골프’ 등이 바로 여성을 타깃으로 한 대표적인 브랜드로 여성스러움과 귀여운 스타일의 디자인 그리고 화사한 색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골프웨어 시장, 이제는 포화상태 골프웨어 시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다. 매년 새로운 브랜드가 시장에 진입하고 이들 브랜드의 총 매출도 급격히 늘어났다. 이 여파로 현재 골프웨어 브랜드는 70여 개에 이른다. 79년 슈페리어를 필두로 시작된 골프웨어 시장은 한국패현협회 자료에 따르면 IMF직후에는 5천억 규모의 시장을 형성한 이후 2002년에는 공개된 업체들의 매출 총액이 1조 990억원이었다. 5년 사이에 두 배의 성장을 이룬 것이다. 또한 2003년에는 1조 4천58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 골프웨어 시장은 예년처럼 밝지 못하다. 각 업체 담당자들은 골프웨어 시장이 이제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한국패션협회의 자료 분석을 담당했던 현상민 IF네트워크의 주임은 “경기 불황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된 반면 브랜드는 지속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수직 상승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IMF때처럼 시장에서 탈락하는 기업이 많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공론화 되고 있다. 슈페리어 김혜영 대리는 “2004년 시즌은 성장보다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포화상태의 시장이 이제는 정리가 될 시점이라는 것이다. 주요 골프브랜드 탄생 연도 1980년대 1990년대 전기 1990년대 후기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서울경제골프매거진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