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운사 | |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선운사는 금산사와 더불어 전라북도내 조계종의 2대 본사이다. 선운사에 보존되어 있는 사적기에 의하면, 창건 당시 한때는 89 암자에 3,000여 승려가 수도하는 대찰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본사와 도솔암, 참당암, 동운암, 석상암 만이 남아 있다. 참당암은 신라 진흥왕의 왕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현재, 선운사에는 보물 5점, 천연기념물 3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9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2점 등 총 19점이 있다. | |
- 상사화 | |
수선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 이름은 석산(꽃 무릇, 상사화), 비늘줄기는 넓은 달걀 꼴, 잎은 줄 모양, 꽃줄기가 마른 뒤에 나와서 월동, 다음해 봄에 마른다. 추분 무렵에 꽃줄기가 나오며, 흩어진 모양으로 5∼6개의 진홍색 꽃, 옆쪽으로 피는 갈라진 꽃덮이 조각은 거꿀바소꼴, 선운사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꽃. 상사화가 자생하는 조건은 응달, 습기가 충분해야 하며, 눈 속에서도 푸른 잎을 유지하며, 9월 말경 선운산 계곡을 중심으로 3Km 군락을 이룬다. 상사화는 중국에서 홀씨가 날아와 가까운 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생장이 적당한 곳에 뿌리를 내렸는데 선운산이 조건이 잘 맞아 집단 분포된 것 같다. 상사화를 항상 추석 전후로 해서 피는데, 특히 선운사 골짜기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녘에 붉게 피어오른 상사화 순간 핏빛으로 착각할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잎과 꽃이 만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꽃. | |
- 고창 읍성 | |
조선 단종 때(1453년) 왜침을 막기위해 축성한 성곽인 고창읍성은 고창시내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봄이면 벚꽃이며 철쭉이 만발해 최고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성의 둘레는 약 1.7km로 높이 4~6m의 성곽 위를 도는 답성놀이가 유명한데, 음력 윤달에 머리에 돌을 이고 성곽을 돌면 무병장수 하고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있어 지금도 여인네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성을 도는 모습을 흔히 볼수 있다. 무병장수를 바란다면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해볼 만도 하다. 4월 말~5월 초에는 성곽 아래를 빙 둘러 나있는 철쭉이 만발하여, 발 아래 꽃분홍 철쭉 구름이 깔린 듯 예쁘다. | |
- 고창 모양성제 | |
고창 모양성제는 유비무환의 호국정신으로 총화축성한 고창읍성(모양성)의 얼을 계승하고 향토문화의 우수성을 선양하고자 1973년부터 매년 음력 9월9일(중양절)을 전후로 열리는 행사로, 민간단체인 사단법인 모양성제전회 주최, 각 사회단체 주관으로 전국 유일의 답성놀이, 전통혼례식, 수령부임행차재현, 성쌓기 재현, 각종 전시회 및 축하공연, 보릿골 난장 등 화합의 한마당 잔치로 축제 분위기를 돋우어 꾸준히 발전되어 오고 있다. 답성놀이 고창읍성에는 여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으면 무병장수하고 죽어서 극락에 간다는 전설과 독특한 성밟기 풍속이 전해온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저승길이 환히 트여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성밟기는 윤달, 그 중에서도 윤삼월에 해야 효험이 많다고 한다. 특히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 등 여섯수가 든 날은 저승문이 열리는 날이라 하여 더욱 많은 여자들이 다른 먼 지방에서까지 모여 들었다. 성을 다 밟은 후에는 머리에 이었던 돌을 성 입구에 쌓아두도록 되어 있다. 이 성을 여자들이 쌓았다는 전설을 재현하기라도 하는 듯한 이 성 밟기는 겨우내 얼어붙은 성을 다지고 유사시에 대비하려는 슬기가 밴 풍습이다. 요즘에는 주로 음력 9월9일에 열리는 모양성제 때에 한다. | |
- 고창 고인돌마을 | |
고창 읍내에서 북서쪽으로 약 10킬로미터 남짓한 지점에 자리한 고창읍 죽림리와 아산면 상갑리 일대에는 ‘고인돌 떼무덤’이 몰려 있다. 죽림리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조선 초에서 최근까지의 묘지 10여 기도 함께 있어 선사시대와 현대의 묘지 모습을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 있다. 고인돌은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약 1.8 킬로미터 범위 내에 분포되어 있다. 해발 150미터 야산 남쪽 기슭의 밭뙈기나 숲 속에 수 십 기의 크고 작은 고인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그야말로 이 마을의 바윗덩이 거의 모두가 고인돌이라고 보면 된다. 굄돌 없이 땅 위에 덩그마니 앉혀 놓은 것 같은 남방식 고인돌이 대부분인데, 그중 다른 것들의 서너 배는 됨직한 고인돌이 매산마을 밭 가장자리에서 눈에 띈다. 가로 6.5미터, 세로 5.3미터, 높이 약 2미터인 한반도 최대의 남방식 고인돌이다. 이 곳에서는 수 차례의 발굴 결과 447기의 고인돌을 확인했으며, 매몰된 108기를 합하면 555여 기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분실되거나 파괴된 고인돌을 합하면 대략 천 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15개 지점에서 23개 소의 고인돌 상석 채굴지가 발견되었다. 한 마디로 이 일대는 선사시대인의 대규모 공동 묘지인 셈이다. 방사성탄소연대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 지역 고인돌은 지금부터 2,500여년 전인 청동기시대로,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 약 500년 동안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