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형제 33편 // 황톳길
수혁의 결심을 따라 막상 산을 내려오기는 했으나 짝귀와 명식,갑성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싸움엔 날고 기는 수혁이라해도 네명의 인원으로 양철환 수하의 수많은 조폭들을 대적하여 싸운다는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를바 없으니 겉으로 드러내어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똥쭐이 타들어갈 밖에....
그런데....지리산을 내려와 함양읍내에 도착한 수혁이 짝귀에게 돌연한 한마디를 건넨다. "짝귀형님~!! 태수씨한테 전화걸어서 나를 좀 바꿔주이소." 도대체 수혁은 태수에게 무슨말을 하려는걸까? 의아스런 마음으로 짝귀가 전화를 걸어 건네어준 수화기를 받아든 수혁이 태수에게 전한 통화내용은 이러했다
"태수씨....나 수혁임니더...조직원들한테 은밀하게 내가 시방 하는 말을 퍼뜨리시소... 수혁이가 지금 양철환과 망치를 치러 쳐들어 가고 있다고....." 태수에게 전하는 수혁의 통화내용을 듣고서야 짝귀는 대충 감을 잡는다. 수혁은 사전에 양철환의 조직을 흔들어 놓으려는 생각이라는 것을.... 태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수혁이가 온다"는 한마디는 조직원들의 가슴에 전률을 일으키며 입에서 입으로 은밀하고도 신속히 퍼져나갈 것이고..... 그러잖아도 조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어 있는데다 양철환에 대한 불만이 점차 높아가는 터에 수혁이가 온다는 자체의 의미만으로도 양철환의 동조세력들에게는 극심한 불안감을.... 양철환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조직원들은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할 것이기에..... 수혁은 하산을 결심할때에 이미 예상했던것이다. 이번 싸움은 힘으로 맞부딪쳐서 결판낼 싸움이 아니라는것을.....
수혁일행이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을때는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 있었다. 우선 식당에 들러 배를 든든히 채운 수혁일행은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역전파 사무실로 향한다. 사무실 인근에서 택시를 내려서자 주위에서 얼쩡거리던 조직원중 한놈이 수혁일행을 발견하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채 사무실로 뛰어들어가며 큰소리로 외친다. "큰형님!! 수혁이가 왔습니다!! " "뭐....뭐라고?? 수혁이놈이?...." 소스라치게 놀란 양철환이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사무실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잠시후 "쾅~~!!" 사무실 문을 걷어차고 거침없이 들어서는 수혁의 눈매에서 쏘아내는 서슬퍼런 살기에 사무실을 가득 메우고 있던 조직원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길을 터준다.
이윽고 양철환의 전면에 우뚝 멈추어선 수혁은 양철환을 향해 걸쭉한 한마디를 토해낸다. "양철환씨!! 수혁이가 왔심더...덕분에 저승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심더.... 그동안 잘 기셨심니꺼~~!!" "너....너...이 찰거머리같은놈... 기어이 뒈지고 싶어서 다시 기어들어왔냐?" "그건 지가 할말임니더~!! 인자라도 용서를 빌고 곱게 물러나신다카믄.... 목숨만은 보존해 디리겠심더!!" 도대체 수혁은 무엇을 믿고 이토록 거침없는 호언장담을 마구 토해내는것일까? 수혁의 뒤를 주춤주춤 따라 들어오기는 했으나 바짝 긴장하여 정신이 혼란스러운 상태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버티어 서있는 짝귀와 명식,갑성의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수혁의 배짱이 의아스러울 뿐이었다.
"네놈이.... 뒈졌다가 살아오더니....미쳐서 돌아왔구나....야~!!뭣들해? 저새끼 당장 잡아서 매달지않고...." 양철환의 명령에 수혁의 가까이에 있던 대여섯놈의 조폭들이 달려 들었지만 수혁이 몸을날려 한바퀴 휘두른 발차기 한방에 줄줄이 나가 떨어지고....
그 모양을 지켜본 다른 조직원들은 발길이 얼어 붙은듯 움직임이 없다 양철환의 명령에 칼같이 움직이던 예전처럼 파상적인 공격이 이어지지 않고 맥이 끊긴다는건 조직원들의 마음에 동요가 있다는 뜻이고... 동요가 있다는건 사전에 태수를 통해 조직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수혁의 심리전술이 먹혀 들었다는 의미일 것이었다.
때를 놓치지않은 수혁의 우렁찬 목소리가 사무실을 또 한번 흔들어 놓는다. "여러 동지들~~!! 단디 들으소....조직을 위해 몸바쳐 일한 식구들을 실컷 부려먹다가 제 기분에 따라 손목짤라 쫒아내고 산채로 끌어묻길 밥먹듯하는 저런분을 큰형님으로 계속 모셔야 하는지...내는 여러 동지들한테 묻고싶소!!...." 수혁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사무실내에는 숨막힐듯한 긴장과 정적이 감돌고....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양철환은 마치 발악을하듯 거칠게 소리친다. "야! 이새끼들아~~ 뭣들해?? 저새끼 잡아서 족치라니까...." 그러나 뭔가 모를 팽팽한 분위기에 압도당한 조직원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마음의 갈등속에서 쥐죽은듯 서로간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수혁은 가슴을 파고드는 짜르르한 전률로 절감한다. 이제 목숨을 건 한판 도박의 카드를 꺼내들 때가 되었다는것을.... "여러 동지덜~~!! 인자 여러분들의 분명한 태도를 취해주기 바랍니더.... 계속해서 양철환씨를 따르겠다는 동지들은 양철환씨편에 서고....앞으로 나와 짝귀형님을 따르겠다는 동지들은 내편에 서시소...."
자신의 명령이 먹혀들지 않으면서 분위기가 야릇하게 흘러가자 양철환은 급격히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자신의 책상 뒤편 벽의 칼걸이에서 날이 시퍼렇게 선 일본도를 뽑아든 양절환은 긴장된 표정으로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조직원들을 향해 증오에찬 욕설을 퍼부어대기 시작한다 "야~!! 이새끼들아....내 말이 안들려? 거지발싸개같은 놈들을 그동안 거둬주고 키워줬더니....이제와서 쥐새끼들 같이 할끔할끔 눈치를 살펴? 이 새끼들을 그냥~~!!" 흥분해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양철환의 결정적 실수였다. 순간 사무실내에는 얼음을 끼얹은듯 싸늘한 살기가 번득인다. 다만....수혁의 얼굴에만이 의미를 알수없는 야릇한 미소가 서서히 번져갈 뿐....
팽팽한 긴장으로 타들었던 수혁의 가슴에서 엷은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오는 순간... 얼어붙은듯 미동도 않고 상황을 지켜보던 조직원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이전에 수혁의 수하에 있던 행동대원들로부터 시작됐다. 한사람....또 한사람씩 수혁과 짝귀의 뒤편으로 모여들었다.... 행동대원들의 뒤를 이어 여타조직원들의 대열도 서서히 일렁이기 시작했다. 군중심리란 마치 벌떼와 같은 속성이 있다. 어떤 흐름이 형성되면 마치 자석에 끌리듯 그 흐름의 물결에 함께 동조하게 되는.....
그렇게 심장이 타들어가는듯 초조한 시간이 한참동안 흐른뒤..... 드디어 대세는 결정되었다. 오래전부터 양철환의 친위조직으로 양철환의 특별한 비호를 받아온 일부 조직원을 제외한 대다수의 조직원들이 수혁의 편에 줄을 선것이다. 수혁은 양철환을 향해 마치 철없는 개구장이를 타이르듯 느긋한 한마디를 던진다. "양철환씨!! 상황은 끝났심더~! 더 이상 추한꼴 보이지 마시고 곱게 물러나이소!!" 그러나....양철환은 곱게 물러나지 않았다. 팟다발같은 세월을 만고풍상을 겪으며 오른 오야붕의 자리를 호락호락 물러날 양철환은 결코 아니었기에..... 일본도를 꼬나쥔채 눈에 독을 품고 상황을 지켜보던 양철환은 음산한 외마디 고함과 함께 일본도를 곳추세우고 수혁에게로 산불맞은 멧돼지처럼 짓쳐 들어온다.
그러나...절망적 상황에 처한 양철환의 이판사판식 공격을 수혁은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바람을 가르며 내려치는 양철환의 일본도를 날쎄게 피한 수혁의 오른발이 양철환의 가슴에 내려 꽂히자 맥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그 모습을 당황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양철환쪽 패거리들이 한사람씩 무릎을 꿇다가 마침내 모든 패거리들이 수혁을 향해 무릎을 꿇는 순간.....
뒷편에 서있던 짝귀가 수혁에게 다가와 나즈막히 되뇌인다. "수혁아~!! 이제부터 너가 오야붕이다. 조직을 접수해라!" 당황한 수혁이 "짝귀형님.... 와 이카능교?~~당연히 행님이 오야붕을 맡아야지예...." 하고 짝귀를 제지하려 하지만..... 짝귀는 아무말없이 수혁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이와 동시에 수혁의 편에섰던 조직원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한목소리로 외쳐댄다. "수혁이형님!! 저희들의 오야붕이 돼주십시오~~!!"
모든 상황은 이렇게 끝났다. 피 한방울 흘리지않고 수혁이 역전파 조직을 접수하는 순간이었고..... 맨주먹쥐고 상경한 부산촌놈 수혁이 불과 일년여만에 거대한 폭력조직의 오야붕으로 추대되는 획기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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