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준경 (拓俊京, ? ~ 1144년 음력 2월)은 고려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이다. 본관은 곡산(谷山)이며,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척위공(拓謂恭)의 아들이다.황해도 곡주(谷州: 황해북도 곡산군) 출신이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武人이다. 武術이 얼마나 뛰어 났는지는 高麗史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역사에 기록된 最古의 황씨를 說함에 있어서
척준경이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고려인종 1104년 윤관장군의 2차 여진토벌에 나선다.
척준경의 활약으로 승리는 하였지만 상당히 많은 고려군이 전사 한다.
인종은 이 책임을 물어서 황유현, 송충,왕공윤, 조규등을 파면한다. 이 전투로 인해 척준경의 세상에 이름을 날리게 된다.
黃兪顯
1095년(숙종 즉위년) 공부상서가 되고 이듬해 응양군상장군 호부상서(鷹揚軍上將軍戶部尙書)가 되었다. 1098년 태자를 세우고 첨사부 좌춘방 연경궁사(詹事府左春坊延慶宮司) 등을 갖추고 소태보(邵台輔)로 태사(太師)를 삼을 때 시위(侍衛)가 되었다.
1104년임간(林幹)과 함께 병마사 좌복야(兵馬使左僕射)로서 여진의 침입군과 정주성 밖에서 싸우다가 패하여 파면되었으며, 이듬해예종이 즉위하자 흥위위상장군 호부상서(興威衛上將軍戶部尙書)에 복직되었다
이상이 다음 백과사전에 기재된 사항이다.
정확한 사실은 좀더 조사를 해봐야 할 것이나,
黃兪顯 이 어른을 평해, 장수, 창원 그 어디에서도 조상으로 모시고 있는 곳은 없다.
또 한명의 등장하는데
척준경의 부인이 黃씨다.
척준경이 이인겸을 몰아내고 인종의 복위를 도우자 인종은 척준경에게 벼슬을 하사한다.
그에 따라 그의 부인 黃氏도 1126년 제안군 대부인이란 직함을 받는다.
族譜의 기록은 年代가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으나 고려사에 기록된 것은 팩트다.
대상공파 5世 諱 裕 할아버지 1,308녀 문과 등재를 근거로 년대를 추측해 본결과
5世 1283년
4세 1258년
3세 1244년( 諱 石柱)
2세 1208년
1세 諱 亮冲 1183년 경으로 출생년도를 잡아 보았다.
黃忠俊이 고려 성종때 인물이다. 고려 공민왕때 인물이다. 라는 역사적 근거 없는
기록들 보다는
척준경과 같은 시대에 사셨던
黃兪顯 이분에 대한 연구를 더 해볼 필요성을 가진다.
장수황씨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927~935년)의 부마 황경(黃瓊)이 시중을 지냈고, 장수군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전확한 년대는 알수 없다.
많은 성씨들이 경순왕과 관련 있다고 족보에 인용한다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