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 경보도 없었다.
그런것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고 살았다.
지금 같았으면 아마 기상청의 몇사람은
목이 날아갔을지도 모를 그런 호우..
내가 살아오면서 그런 호우는 본적이 없었다.
내가 그 날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것은
그날이 아버님의 생신 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생신은 음력 팔월 초 닷샛날이라
절기가 빠른 때에는 햅쌀을 먹을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해에는 햅쌀을 먹을 수가 없는
가을의 문턱에 접어드는 계절이라 어정쩡 했었다.
집에는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 하기위해서
아버지의 작은 어머니 두 분이 와 계셨다.
그해에는 절기가 일러서인지
들판의 벼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고
더러는 벼를 베어 깔아놓았거나
더 부지런한 사람은 걷어서 쌓아 놓은 사람도 있었다.
올벼들이었다.
마당가 김장밭에는 가을김장배추가
손바닥 두개를 펼쳐놓은 것 크기로 자라
예쁜 꽃밭처럼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고
애써 지은 농사들이 풍작을 맞고 있었다.
형수는 하루종일 생신 장만 하느라 분주하게 땀을 흘렸고
마을사람들을 초대해서 생일 잔치가 끝났다.
작은할머니들은 하루쯤 더 묵어가시려고
그냥 집에 남아계시고
마을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의
여유로움 마져 있었던 저녁이었다.
낮의 더위와 저녁의 시원한 바람이
가을을 연상시키고 있었던 때
갑자기 검은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예상치 않은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곤 밤이 되자
천둥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드러 붓는 것이었다.
계세요?지금 우리집이 떠내려가요
누군가 대문밖에서 소리를 질렀다.
형님은 밤중에 일어나 뒷산의 나무를 잘라다
떠내려가는 집을 건지기 위해 나무를 대 주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도와 주었지만
그 집은 반 정도가 떠내려갔다.
번개를 칠 때마다 방안에 불덩이가 들어와
핑핑 맴을 돌았다.
할머니들도 잠을 못주무시고 일어나
불을 켜고 앉아 계셨다.
무슨 사단이 날것 같았다.
다섯시간이나 비가 내렸을까?
아침의 풍경은 전혀 달랐다.
우리 마당가 김장밭에는
그렇게 아름답게 자라던 배추들이
골짜기에서 내려온 사태가 덮쳐서
흙더미가 돼 버렸고
어느 집은 행낭이 떠내려가고
어느 집은 집이 반쯤 떠내려가고
들판의 곡식들도 떠내려갔다.
논 가운데로 개울이 터져 벼들이 모두
묻히거나 떠내려 가고 말았다.
아침의 개울에도 검은 흙탕물이 흘렀고
간간히 위에서 떠내려오는 볏단과
논바닥채 떠내려가는 벼들이 보였다.
폭우였다.
무서운 폭우가 내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