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가 지켜야 할 세 가지
본문 : 이사야 21장 1-12절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이방나라 10개국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하고 있는데, 오늘 말씀은 일곱 번째인 ‘바벨론’과 여덟 번째인 ‘에돔’과 아홉 번째인 ‘아라비아’에 대한 예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나눠보면, 1-10절에선 ‘바벨론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으며, 11-12절에는 ‘두마에 대한 경고’인데, 두마는 에돔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13-17절에선 ‘아라비아가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 21장 전체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기록한 목적은 무엇이며,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1.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말씀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이 말은 ‘이사야 선지자가 환상으로 본 것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럼, 이사야가 본 것이 무엇일까요? 1절에 나오는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입니다. 여기서 ‘적병’이란 ‘메데 바사 나라의 군사들’을 말하고, ‘네겝 회오리바람’이란 ‘남방에서 불러오는 뜨겁고 강한 돌풍’을 말합니다. 따라서 지금 이사야가 본 것은 ‘남방에서 불러오는 뜨겁고 강한 돌풍과 같이 몰려오고 있는 메데 바사 군사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절에서 나오는 저들의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쉽게 말해서, 메데 바사의 왕이 자기 군사들에게 “엘람의 군사들이여, 메대의 용사여. 너희들 마음껏 공격하여 속이고 약탈하고 바벨론을 멸망시켜라”는 말입니다. 그 환상을 보고, 저들의 소리를 듣는 순간, 이사야가 너무 놀라 마치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고통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으로 인해 심히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5절에 어떤 말씀이 나옵니까?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자 여기서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는 말은 ‘바벨론의 벨사살 왕이 고관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먹고 마시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무엇을 보았다고 했어요? 메대 바사의 군사들이 남방의 회오리바람처럼 쳐들어 올 텐데, 지금 바벨론 왕과 고관들이 먹고 마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것은 적군이 오는지 지켜야 할 파수꾼을 엉뚱하게 잔치자리에 세워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저들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말을 합니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이 말은 ‘지금 너희들이 잔치나 하고, 먹고 마실 때가 아니라, 빨리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르고, 전쟁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들도 바벨론 왕 벨사살과 같이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곧 메데 바사 군대가 쳐들어 올 텐데, 먹고 마시고 있다니, 전쟁 준비를 하지 않는다니, 어리석은 것 아닙니까? 특별히 오늘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가 남 유다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저들과 같이 될 것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5절 말씀이 바벨론과 남 유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주신 말씀이라 생각을 합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대비하며 방패에 기름을 바르듯이,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단장을 해야 하는데, 혹시 우리가 세상의 것에 취해 먹고 마시고 있지 않는가?’ 말입니다. 주님은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지옥의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시는데,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에 빠져 있다면,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단장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2.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 본문에 ‘파수꾼’이란 단어가 무려 6번이 나오는데, 파수꾼이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적군이 오는지 살펴보아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일’입니다. 자 7절입니다.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를 보거든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라 하셨으니” 자. 파수꾼이 하는 일은 마병대가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가 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귀 기울여 저들의 동향을 잘 살펴,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을 파수꾼이 보았습니다. 그러자 파수꾼이 어떻게 해요? 8절과 9절의 ‘쌍쌍이 오나이다’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자 여기서 보면, 파수꾼의 역할을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낮에 늘 망대에 있어야 합니다. 또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을 사자 같이 부르짖어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파수꾼이 있을 곳은 잔치의 자리가 아닙니다. 망대에 있어야 합니다. 왜 ‘늘’이라는 단어를 썼고, ‘밤이 새도록’ 말을 하고 있을까요? 이 말은 ‘시간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사명’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파수꾼이 해야 할 일은 온 종일 지키고, 살피고,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다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파수꾼들이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기에, 결국 메데 바사의 군대들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떤 말씀일까요?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을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뭐 하라고 불러주셨을까요? 이 시대에 일어나는 징조를 잘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살리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 어디에도 마병대가 쌍쌍이 온다고 해서 파수꾼이 도망쳤다는 말이 없습니다. 또 파수꾼이 ‘나는 내성적이라 큰 소리로 말을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자 같이 부르짖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끼리 믿고 우리끼리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저들도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바뻐서 못하고, 나는 성격상 전도를 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사명이기에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파수꾼의 사명을 주셨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낮에도 늘, 밤이 새도록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일도 하지 말고, 가정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디에 있든지,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파수꾼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과 그런 인식도 없이 사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엄마다, 가정주부다’는 인식을 가지고 살 때에, 자기 일을 하면서도 늘 가정과 자녀들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파수꾼으로 불러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도다.” 칭찬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3. ‘나의 영적 상태가 밤이 아닌가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12절을 읽겠습니다.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더라.” 여기서 ‘아침’은 ‘평안의 아침’을 말하고, ‘밤’은 ‘환난의 밤’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는 말은 ‘지금은 밝은 아침이 오는 것처럼 평화스러운 것 같지만, 곧 환난의 어두운 밤이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두마 즉 ‘에돔’이란 나라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이라 파수꾼이 말하고 있습니다. 또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볼지니라.” 말을 하는데, 여기서 ‘물으려거든 물으라’는 말은 ‘혼자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께 간구하라’는 말이고, 또 ‘너희는 돌아올지니라’는 말은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께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는 말입니다. 정리를 하면 이런 말씀입니다. 바벨론뿐만 아니라, 남 유다와 에돔에게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인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환경이 밝은 아침과 같다고, 평화롭다고 안심한 것이 아니라, 곧 환난의 밤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설령 그런 환난의 밤을 맞이하였을 때에라도 혼자 끌탕을 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11절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묻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이 말의 뜻은 ‘환난의 밤을 맞이한 바벨론과 남 유다와 에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묻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환난의 밤을 맞이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입니까? 과연 우리에게 아침이 올 수 있습니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는 말은 ‘너희 영적상태는 어떠하느냐?’로 해석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영적상태가 아침이 되어야 하는데, 한 낮 같이 밝아야 하는데, 혹시 깜깜한 밤이 아닌가?’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물었다고 했어요? 파수꾼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성령님입니다. 자기 믿음, 영적상태 분별할 수 없기에 수시로 하나님께 나의 영적상태는 어떤지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영적상태가 밤은 아닌지?’ 성령님께 묻고, 말씀에 대조해 보고,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늘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적상태가 정말 밤이 되었다면, 속히 하나님을 찾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여기서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는 말은 그동안 저들이 수없는 착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에 의해 고난을 당하다가 바벨론에 의해 고난이 끝나면, 아침이 된 것으로 안심을 하고 다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어때요? 다시 바벨론에 의해 밤이 온 것입니다. 또 회개를 하고 아침을 맞아했지만, 또 안일한 삶을 살다가 또 메대 바사라는 밤을 맞이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 번 하나님을 찾고 회개를 한다고, 영원히 평안한 아침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교회에 다닌다고, 지금 믿음이 좋다고, 영원히 좋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항상 나의 영적상태가 어떠한지 수시로 확인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벨론과 에돔과 아라비아 세 나라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이 세 나라에게 공통적으로 주시는 말씀이 있는데, 첫째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는 ‘수시로 나의 영적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 이사야 말씀이 어떤 말씀이라고 했어요? 앞으로 일어날 것을 미리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이 이 세 가지를 잘 지킨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알려주었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요? 예언대로 멸망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도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고,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수시로 나의 영적상태를 점검하게 될 때에 계속해서 아침의 축복이 있게 될 줄 믿습니다. 하여 오늘 여러분도 이 세 가지를 다 행하여 아침의 축복을 평생 동안 누리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