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찍은 하늘에서 본 지구(?)--제주도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해 기체의 각도를 기울일 때 찍었다.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선을 타고 처음 하늘에 올라 지구를 내려다보았을 때 '오 마이 갓' 했다네. 이게 뭔 소릴까. 산다는 게 뭔지 몰랐는데 녹색의 초록별을 보는 순간 또는 지구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별들을 보고 막혔던 무엇인가가 뻥 뚤리면서 도道와 이理를 깨달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스스로가 아주 보잘 것 없는 먼지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뜻일까, 그도 아니면 그냥 단순히 기가 막혔다는 뜻일까.
내가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 아니 지상에서 비행기가 이륙했을 때 지상과 연결된 안전고리 같은 것이 순간적으로 풀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당혹감이었는데 그것은 공중에서 뭔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속수무책 束手無策일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테러리스트나 사고로 비행기가 공중폭파 된다면, 그래, 우리는 먼지처럼 흩어져도 어쩔 수 없을 테고 땅에서는 약간의 동요(?)가 있겠지만 하늘에서 보면 세상은 '뭔 일 있었어...?' 하고 무심히 흐르는 구름처럼 시치미를 떼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늘에서 본 지구' 의 사진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은 어땠을까, --Yes! 바로 이거야! 이걸 사진으로 찍는 거야! 당장 카메라 사러 가야지! 했을까...? 그가 하늘에서 내려다본 광경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이 나는 내내 경이롭다.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고 사진을 찍으려면 비행기를 내 맘대로 부릴 수 있어야하는데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냔 말이다. 애드벌룬에 카메라를 매달면 어떨까 싶어 알아보니 풍선에 한 번 들어가는 가스비용이 수십 만원이라네. 카메라를 풍선에 매달았다 치더라도 피사체에 대한 겨냥은 어떻게 할 것이며 셔터는 어떻게 누를 것이며 등등을 생각하니 아, 역시 그는 대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사진을 찍는다는 한 사진가가 있는데 서울에서도 그랬다고, 그의 사진활동이 한 티비에서 방영된다는 소식을 황병철 님이 게시판에 알려왔다. 산에는 티비가 없는 터라 얼마 전 누님이 오셨을 때 연속극을 꼭 봐야한대서 저 아래 농장댁에 마실을 가 본 것처럼 나는 두 번째로 티비를 시청하러 농장댁에 마실을 간 거였다. 그가 바로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이라는 사람이었고 얼마가 지난 후 나는 모모님으로 부터 그의 사진전을 보러가자는 제의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 코엑스로 달려나갔다. 대문짝만한 그의 사진들, 등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이어도 우리는 그의 작품 앞에서 내내 소름이 돋았다. 지난번 세종문화회관 앞 큰길에서 열렸던 매그넘 사진전에서 느낀 것처럼 나는 이런 '대형 사진전'을 볼 때마다 '위대한 대한민국 사진작가협회'에서는 이런 행사 기획 한 번 안 하고 뭐하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돈이 없다면 사진작가협회를 공중분해 시켜버리겠다고 공갈이라도 쳐서 스폰서를 구해야할 것이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그나마 이처럼 '위대한 사진전'을 기획하고 볼거리를 제공한 기획사에게 나는 감사의 박수와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의 사진은 하나같이 35 미리판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놀라운 사실이다. 흔들리는 헬리콥터에서 삼각대도 없이 손에 들고 촬영을 하려니 중형 카메라보다는 36 컷짜리 필름을 손쉽게 갈아 끼울 수 있으며 다양한 렌즈를 구사할 수 있는 35 미리판 이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가 찍는 '하늘에서 본 지구' 의 장르는 얼핏 단순히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풍경사진 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하나씩 대하면서 그는 처음 하늘에서 우주인이 그랬던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먼저 보았고. 지구는 우리가 알기에 하나뿐이라는 것, 거기에 우리가 얹혀 살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프레임을 구성했을 것이라는 추측, 그것이 바로 환경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사진가가 아니더라도 금방 눈치챌 수가 있음 직했다.
초심자가 건너 뛰어야할 것들 중에 하나가 'A'를 통해서 'B'를 발견하는 일이다. 나아가 그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일이다. 사진은 그 자체가 언어가 되어야한다. 며칠 전에는 또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던 세계 보도사진전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느낀 것은 '설명'이 너무 길다는 것이었다. 장황한 설명은 '친절' 일 수도 있지만 갤러리의 사고와 상상을 제한하고 구속하기도 한다. 굳이 '설명'을 붙이려면 세줄 이내에서 그쳐야 느낌이 바로 와 닫는다. 처형으로 미화된 잔인한 살인을 한 후 '죽은 자의 목을 들고 웃고 있는 남자'의 사진에서 '푸른 평원을 평화롭게 달리는 동물'들을 찍은 사진에서 긴 설명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러려면 얀이 처음 하늘에 올라 땅을 내려다보았을 때 그랬을지도 모르는 '그래, 바로 이거야!' 하는 충격이 그 안에 있어야 한다.
공모전에만 매달리는 사람들. 요즘 나는 '지도위원'이라 이름으로 포토랜드 현상소에서 떠나는 사진여행에 나가는 걸 포기했다. 무박 2일 촬영을 가려면 내게는 3일을 소비하게 되거나, 서울까지 트럭을 몰고 나가려면 기름값에 주차료에 만만찮은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 마음이 불순하기 때문이다. 대체 공모전이 뭔가, 최민식이 공모전 출신인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이 공모전 출신인가, 엊그제 타계한 '아담 스미스'가 그런가. 현상소에서 대형버스를 장만하고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등의 비용을 지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익을 내기 위함인가...? 한눈에 보기에도 그건 이익을 내는 일이 아니다. 뻔한 적자다. 누차 말하지만 사진은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나아가 보여주는 일이다. 그러려면 '대형버스'는 '나를 찾아가는 공부'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우리는 가끔 우리를 '하늘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잘하고는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고가의 내 카메라는 제 구실을 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은 되고나 있는지, 카메라 샵이나 배불리는 건 아닌지도 말이다. 나는 촬영을 떠나는 버스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매그넘 사진전을 볼 것을 권했다. 그 후 몇 번을 더.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 한둘만 사진전을 보았노라고 하여 나를 맥빠지게 한 적이 있다. 아니 어쩌면 그 한둘이 희망적인지도 모르지만 이래가지고는 사진계나 개인이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물론 현상소에서 경제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그런 서비스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얀의 사진 앞에 서면 하나같이 35 미리판 카메라 작품이라는 데에 놀란다. 더불어 사진은 무엇으로 찍었느냐보다 무엇을 찍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내 토굴에 오는 분들에게 낮에는 청정 철원평야를 보여주고 저녁이면 슬라이드를 감상하는 게 산중에 크나큰 즐거움이며 보람이다. 말하자면 '정보의 공개' 혹은 '교류'인 셈인데 '얀'은 사진 하나하나에 북위 몇 도 동경 몇 도 하는 식으로 촬영지를 정확하게 기록하여 '정보를 공유' 하고 있는 게 참 고마웁다. 물론 다른 사람이 그곳에 가서 그와 똑 같은 사진을 찍을지는 의문이겠지만 그의 이런 '배려' 에 그의 넉넉한 인품까지 서비스 받을 수 있으니 기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산에 오는 사람들에게 모모님께서 선물한 얀의 사진집을 보여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어떤 분 말마따나 8 만원이 아니라 수십 수백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사진집이라는 데에 이의가 없다.) 어떤가, 훗날 초심자 여러분도 이 만큼은 아니더라도 썩 괜찮은 사진집 한 권 가져보는 꿈을 꾸는 게...? 사진을 찍는 마음이 불순하지만 않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리하여 공모전에는 그 동안 찍어놓은 사진 중에서 우연찮게 맞아떨어지는 내용을 보내는 게 현명한 일,이라고 나는 거듭거듭 잔소리를 해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동차에 사다리 하나, 쯤 싣고 다녀보자. 기자들이 사용하는 일 미터 높이의 사다리(카메라 샵에서는 비싸다. 을지로에 가면 싸게 살 수 있다.)라도 기껏해야 서거나 앉아서 찍는 앵글에 비해 놀라운 앵글의 변화를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랫녘에 내려갈 일이 있어 동해 삼척을 지나다가 삼척항 뒤편에 방치된 타워에 올라가 보았다. 마치 공장 굴뚝에 설치된 것 같은 수직 사다리를 타고 아찔한 곡예를 한 끝에 높은 곳에 설 수 있었는데 높은 산에 올랐을 때 느끼는 성취감처럼 거기서도 위험은 하지만 오르길 잘했다,고 여겼다. 그랬다고 아주 특별한 사진을 얻은 건 아니지만 뭘 좀 해보겠다는, 그런 과정에서 작으나마 교훈 하나쯤 얻어졌다면 족하지 않겠는가. 얀은 '바쁜 공중'에서도 PL 필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렌즈는 70-200 줌렌즈와 300 혹은 400 미리 대구경 렌즈와 28-70 정도의 광각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특별한 장비가 아니지만 그는 세계의 많은 나라로부터 촬영의뢰를 받고 있으며 그의 사진집은 현재 수백만 부가 팔렸다고 하니 부럽기 짝이 없다. 대포로 참새나 잡는 우리는, 좀 부끄럽지 않는가.
어쨌거나 우리는, 가끔은 우리를 하늘에서 내려다볼 필요가 있다.
(숙제가 늦어 죄송하다. 그래도 이 글을 쓰기 위해 한달 넘게 생각하고 오늘 첫새벽에 세 시간 동안 소비했다...-_- ) | |
첫댓글 마음에 확 다가오는 글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