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옮긴 후 몇 번 네게서 전화를 받긴 했지만, 그동안 얼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은 나의 무심함 때문인지도 모르겠구나.
‘선생님, 한 번 담임은 영원한 담임이잖아요. 제가 요즘 무얼 고민하는지 알고 계세요? 애프터 서비스를 끝까지 해 주시는 게 좋은 선생님 아닐까요?’
너는 그런 말을 웃음기 가득한 농담처럼 했지만, 나는 가슴이 찔렸단다. 바쁘다는 핑계로 너를 비롯한 우리 반이었던 친구들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보미야, 너는 장래 희망이 소설가라고 했지. 그래서 너는 참 많은 책을 읽어, 가르치는 나를 기쁘게 했던 아이였다. <태백산맥>을 읽고,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고 독후감을 들려주던 네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런 네가 요즘 <그놈은 멋있었다>는 소설을 읽는다며, 선생님도 읽어 봤냐고, 참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할 때, 나는 좀 당황했었다.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소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요, 한 번 손에 들고나서는 푹 빠져서 끝까지 읽긴 했는데, 이런 책을 읽는 것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될까 고민도 했어요.”
너는 그렇게 말을 맺었지. 너의 그 말에 나는 “그래? 내가 한 번 읽고 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자”하고 얼버무리고 말았지. 그리곤 그날 저녁에 서점에 나가 두 권으로 된 그 책을 샀단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면서, 아이들이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단다.
그리고 그 책, <그놈은 멋있었다>를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첫 장부터 이야기에 빠져들지 못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 소설의 첫 대목에서 낯선 글자(?)에 막혀버렸기 때문이란다.
여름방학도 끝나고 개학이 다가온다. 막판이라고 친구라는 것들은 경포대다, 해운대다, 정동진이다, 저 멀리 훌쩍 떠나 남자들을 하나씩 끼고서 낄낄대고 있는데, 나는 꽃다운 나이 18세에 방구석에 처박혀 인터넷이나 하고 있으니, -_-^ 그나마 사이트란 사이트는 모조리 다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이젠 할 것도 없다. ㅜㅜ 우오옹. ㅜㅜ ㅇ ㅏ! 다모임! 마지막으로 떠오른 나의 다크호스, 다모임! ^0^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문자들인 -_-^와 ^0^(이런 것을 이모티콘이라고 한다며?)에 모음만 적어 놓은 ㅜㅜ, 괜히 떼어놓은 것 같은 ㅇ ㅏ, 이런 부분에 막혀 도무지 이야기에 빠져 들 수가 없었지.
책장을 넘길수록 그런 기호와 파괴적인 글자들과 비문, 맞춤법
을 무시한 글이 가득했으니, 제대로 읽는 다는 것이 무리였지. 결국 내가 찾아낸 방법은 그런 기호나 파괴된 문자들은 무시하고 읽는 것이었단다.
한글 파괴가 인터넷 세대 소통 방식의 특징이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이 정도로 심할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지. 하지만 이 글이 인터넷에 연재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단다.
하여튼 우여곡절을 겪으며 며칠에 걸쳐 이 책을 다 읽기는 했단다. 다 읽고 나서 든 느낌은 마치 한 편의 만화를 본 듯했지.
이 소설은 상고 짱인 지은성이라는 남학생과 인문계의 평범한 여학생인 한예원의 만남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인터넷에 올린 글 때문에 4대 천왕의 한 명인 지은성을 피해 다니던 예원이가 자율학습을 빼먹고 월담을 하다가 밑에서 기다리던 지은성의 품에 떨어져 첫 키스를 하게 된다는 데서 시작하는 이 만남은, 비현실적이면서 비사실적이다.
그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 아옹다옹하면서도 애틋한 사랑이 움트게 되는데, 둘 사이를 가로막는 김효빈이라는 여학생이 등장한다. 효빈은 김한성의 여동생이고, 김한성은 한예원을 짝사랑하며 지은성과 경쟁하게 되는 상고 3학년 짱이지. 여기에 예원의 친구인 경원이와 승표, 정민이의 삼각 관계가 곁다리로 얽혀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렇게 보면 이 소설은 전형적인 삼각 관계의 틀을 학생이라는 집단에 대입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단다.
삼각 관계는 그동안 성인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구성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연애 소설의 삼각 관계 틀을 고등학생이라는 집단에 대입시킨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문제는 그 삼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의 인물이나 사건이 한동안 청소년들에게 유행하던 일본 만화의 틀과 유사하다는 거지. 주인공인 지은성은 상고 4대 천왕이지. 그런데 그는 모든 면에 완벽한 존재야. 뛰어난 외모에, 수많은 아이들과 맞서 싸워서 이기는 싸움 실력에,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주량을 지니고 있지.
“짧게 올려 세운 노란 머리, 쌍꺼풀은 없지만 커다란 눈. 일본 혼혈아처럼 생겼다. 눈 땡그랗고 가스나들 보다 더 이쁜 그런 종류의, 일본 만화에 종종 등장하는 반항아의 전형적인 얼굴”이 지은성의 외모로 묘사되고 있단다.
거기에 어김없이 우수 어린 비밀(여기서는 그 비밀이 탄생과 관련되어 있지. 은성의 아버지가 에이즈로 죽고, 은성 자신도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다고 믿는 것 말이다)까지 만화적이다. 또한,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돈도 많은 집안으로 그려져 있지.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지은성과 그를 사귀게 된 인문계 여학생인 한예원의 관계는 여성을 지극히 남성에 종속적인 존재로 놓아두고 있단다. 실제로 소설에서 보면 한예원은 은성을 좋아하면서 한성에게도 마음이 기울고, 또 다른 현성에게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잖아. 그러면서도 결국은 지은성이라는 한 남학생에게 수동적인 존재로 머물러 있지. 멋진 남자와 그에게 종속된 여자 아이의 이야기야말로 우리가 캔디 이래로 일본 만화에서 많이 보던 틀이라고 할 수 있지.
이 소설이 ‘만화적’이라는 것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에서도 드러난단다. 이 소설의 대부분은 대화체로 이어지고 있지. 인물의 성격에 대한 묘사라든가 배경이나 심리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고, 대화와 대화로 이어지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거든. 즉 만화의 대사 부분만을 주로 모아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거지.
이 이야기가 보미 너희 또래의 많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이런 만화적 요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 너희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그것도 문방구에서 파는 손바닥만한 일본 만화의 번역판을 주로 보며 자란 세대잖아. 그러니 이 소설이 당연히 너희 구미에 맞을 수밖에. 거기에 소위 N세대라는 요즘 중·고등학생의 인터넷 글쓰기 방식을 담아내고 있어서 너희들과 공감이 클 테고 말이다. 인터넷 글쓰기의 특징이 한글 파괴, 어법과 문법 파괴, 이모티콘과 같은 기호의 사용에 있다면, 이 소설은 그런 인터넷 세대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보미야, 지금 내가 있는 남학교 학생들에게 이 소설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단다. 그랬더니 아이들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더구나. 한번 읽기 시작해서 다 볼 때까지 손을 뗄 수가 없었다는 아이부터, 소설도 아니라고, 읽다가 집어치웠다고 불쾌감을 표시하는 아이까지 말이다. 그런데 여학생들은 대체적으로 이 소설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하더라. 순정 만화를 많이 본 여학생들의 감성이 이 소설과 더 가까워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럼 이 소설에 열광하는 아이들은 왜 그럴까? 아마도 학교라는 틀에 갇힌 아이들의 탈출 욕구 같은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고등학생의 이야기이지만, 인물의 행동이나 배경은 학교라는 틀을 벗어나 있지. 어쩌다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나이트에 가서 춤을 추기도 하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거의 조폭 수준의 싸움판을 벌이기도 하고, 오토바이나 자가용을 몰고 다니며, 어른들 사회에나 있을 법한 성적인 음모와 술수도 그려지고 있거든. 심지어 마약을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말이야. 이런 것들이, 현실적으로는 학교라는 폐쇄적 공간에 갇혀 있어야 하는 아이들의 탈출 욕구를 소설로나마 충족시켜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미야,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재미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란다. 재미 속에 세상을 보는 작가의 눈도 있고,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믿음 같은 것들이 함께 담겨 있기 마련이지. 그런 소설의 진정성을 생각한다면 이 소설은 너무 재미라는 한 쪽에 치우쳐 있는 것 같구나.
그런데 요즘 너희들이 이런 재미에 열광하는 것이 꼭 너희들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독일에서는 청소년이 읽을 만한 본격 문학 작품이 ‘성장 소설’이라는 이름 아래 많이 창작되고 있다는구나.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정이 좀 다르지. 요즘 들어 겨우 성장 소설이라는 이름의 책들이 몇 몇 발표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출판 시장은 거의 전무한 형편이지.
어쩌다 눈에 띄는 작품들도 대부분은, 요즘 너희들의 삶에 근거하기보다는 글쓴이가 겪었던 학생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너희들의 입맛과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 문학은 아동문학에서 바로 성인문학으로 넘어간다는 말을 씁쓸하게 되뇌이게 된단다.
그러니 너희들이, 너희들의 감각에 맞는 인터넷 소설에 쏠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문학 창작을 담당하고 있는 작가들의 분발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보미야, 인터넷 소설의 재미도 좋지만, 너무 깊이 빠지지 말고 글을 객관적으로 보면 좋겠다. 재미와 함께 의미를 찾아보는 읽기가 좋지 않겠니? 너희 때야 이것저것 많이 읽고, 그런 과정에서 길을 찾게 되는 법이지만, 그래도 네 삶을 보다 의미 있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제 더위도 막바지구나. 곧 가을이다. 좋은 책 많이 읽고, 가끔 소식도 전해 주렴. 잘 지내고.
선생님 다운 발언 이신데요,제언니는 귀여니소설 아니아니 귀여니님,.소설[꼭 귀여니님 소설만 그렇다는게 아니라 모든이모티콘 소설들을] 아예 이해를 못해요,언니가컴맹?그런쪽인데 외계어라든지 조금씩 바뀐 용어들 있죠 정말사소한 것도 몰른다고 해서 제가, 쫌당황 했었어요..........이예기를왜했니..아니왜했더라a;;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재미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란다 이거 정말 동감.. 재미는 있는데.. 전 외소하고 그래서 그런지 ㅡㅡㅋ 부럽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나라 이야기 같은..그래도 내가 주인공이면 이렇겟다 하는 생각도 하지만..요즘은 별로 읽지도 않고 재미도 별로 없고.....
첫댓글 멋잇어요.'ㅁ'
으아.. 아무런 편견없이 객관적인 3자의 입장에서본 이모티콘 소설! 공감이 갑니다. 이모티콘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갈아치우라고 공격만 할 수도 없는!
만화와 비교했다..라
멋진 내용입니다. 편지체에 대해서 원츄, 선생님이 제자에게 보내는 충고어리고 따뜻한 글체에 반했습니다.
우어엇 +_+!! 멋있어요오~
멋있어요~.>.<
오우- 저 말 끌린다.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재미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후후- 선생님 존경합니다!!
역시 선생님다운 말씀이십니다.
저 선생님 한번 뵙고싶습니다;ㅁ;)b
선생님 다운 발언 이신데요,제언니는 귀여니소설 아니아니 귀여니님,.소설[꼭 귀여니님 소설만 그렇다는게 아니라 모든이모티콘 소설들을] 아예 이해를 못해요,언니가컴맹?그런쪽인데 외계어라든지 조금씩 바뀐 용어들 있죠 정말사소한 것도 몰른다고 해서 제가, 쫌당황 했었어요..........이예기를왜했니..아니왜했더라a;;
=ㅅ =...죄송해요 생각이 안나네 주절주절 쓰다보니;;
현실의 탈출구.....멋지네요^-^
선생님, 사랑합니다아! (하트백만개)
선생님. 멋있네요.
저장해두어서 읽어야지. 너무길다.. 내 꿈이 소설작가인데~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재미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란다.) 라는 부분에서 정말 동감!
무슨 수필집이나 소설책에 나오는 얘기 같아요^^ 멋있어요>ㅁ<
선생님께서 말씀 한 '보미' 라는 분이 이 글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면 좋겠어요 [!!]
선생님 짱 멋있어요. 꼭 한번 뵙고 싶네요.. 멜 친구했으면좋겠어요~
너무나도 멋있어요.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재미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란다} 정말 명언~~
멋있는 선생님이시군요b
오웃- 경문 고등학교로 전근 오십시오-!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재미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란다 이거 정말 동감.. 재미는 있는데.. 전 외소하고 그래서 그런지 ㅡㅡㅋ 부럽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나라 이야기 같은..그래도 내가 주인공이면 이렇겟다 하는 생각도 하지만..요즘은 별로 읽지도 않고 재미도 별로 없고.....
솔직히 연애소설보단 판 타 지 소설이 훨씬 잼잇음 ..하하핫..넘 도배인가? 별 쓸대없이 이상한 소리만 쓰면서..;;ㅎㅏ하핫...도배만하다니..쩌업
아아 멋있습니다.
멋지군요..저도 이모티콘이 너무 많이 들어간 소설을 싫어요...하지만 이모티콘이 적게,적절하게 사용되어져 있는 소설은 좋더군요.자세히 설명해주시는 선생님,존경스럽습니다^-^
꺄오오 멋지군요! 태백산맥을 읽은 사람이 귀여니것을!
…선생님,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