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교회의 기원과 창시자
우리는 나사렛교회의 구성원으로 60여 년 간을 지나온 것이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나사렛교회가 전통적 기독교의 가르침을 쫓는 복음주의에 속하였고 또한 성서의 핵심 교리인 온전한 성결을 강조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선교적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는 생명력 있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생각이 아니라 모든 나사렛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자랑이기도 하다.
나사렛교회란 나사렛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뜻한다(마 2:23). 예수를 믿고 따르는 나사렛사람들은 예수의 인격을 닮고 그의 가르침과 삶을 본 받아 성실하게 거룩을 추구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창시자 브리지 박사는 나사렛교회를 아침에 솟는 태양으로 비유하였다. 21세기는 아침의 교단인 나사렛교회가 그 주역의 일부분을 담당하리라 믿으면서 자랑스런 나사렛사람들의 공동체를 소개하려고 한다
나사렛교회의 역사와 창시자들
미국에서 출발한 나사렛교회
나사렛교회는 1908년10월 8일에 미국 택사스주 파이롯 포인트에서 공식적으로 조직되었다.
19세기 말엽부터 불기 시작한 성결 부흥운동이 마침내 미국 전역에 파급되었고 이 여파로
1)동부에서는 뉴욕을 중심으로 규합한 세력들이 미국 오순절교회 연합회(1896,11,12) 를 형성하였다.
2)남부에서는 택사스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성결교회(1904, 11) 가 조직되었으며
3)서부에서는 로스엔젤스를 중심으로 P. F. 브리지 목사를 지도자로 한 나사렛교회(1895,10)
가 설립되었다.
이러한 성결을 강조하는 교회들이 1907년 10월 10-17일까지 시카고에 모여 우선 동부의 오순절교회 연합회와 서부의 나사렛교회가 통합하여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성서적인 성결을 전파하기 위하여" 하나의 교단으로 손을 잡고 오순절 나사렛교회를 창립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 남부의 그리스도의 성결교회의 대의원들은 시종 방청객으로 참석하였다가 이듬해인 1908년 10월8-14일까지 택사스 파이롯 포인트에서 오순절 나사렛교회 대표들과 같이 총회를 열고 대통합을 이루게 되었다. 마침내 나사렛교회는 미국의 전역을 망라한 전국적인 교단으로 그 모습을 형성하게 되었다. 초창기 나사렛교회는 피니스 F. 브리지(Fhineas F. Bresee), 씨. 비. 저니간(C. B. Jernigan), 씨. 더블류. 루스(C. W. Ruth)
그리고 에이취. 에 프. 레이놀스(H. F. Reynolds), 이. 피. 엘리슨(E. P. Ellyson) 목사등이 중요한 지도자들이었다. 초창기 지도자들이 함께 갖았던 꿈은 웨슬리주의 전통안에서 믿는 자들의 성결과 이웃사랑의 실천을 도모하는 교회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 후 1919년 총회에서는 35개 연회의 청원을 받아드려 교단의 이름을 나사렛교회라고 변경하였는데 그 이유는 오순절이라는 용어와 관련된 새로운 이유들 때문이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교단과 선교단체들 특히 영국과 카나다의 성결교회들이 가입하여 성결교단으로서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단이 되었고 현재 전세계 119개 국가에서 강력한 성결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나사렛교회
*일본은 이미 그리스도의 성결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가 1905년에 선교활동을 시작하고 있 었는데 교단이 1908년에 오순절 나사렛교회와 합동함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나사렛교회의 선교사가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일본 나사렛교회의 역사는 미국 나사렛교회와 같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나사렛교회는 1936년 동부연회 조선부에서 오사카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장성옥(張聖玉)목사를 평양 신양리에 파송하여 최초의 나사렛교회를 한국에 설립하였다. 그 후에 서울 영천에 또 하나의 나사렛교회가 생기게 되었다.
*성결교회 제3차 총회가 1935년에 분열되자 거기서 이탈한 인사들이 1936년 11월 25-29일 까지 평양 상수리교회에서 하나님의 교회 창립총회를 열고 "하나님의 교회 선언문"을 채택하고 새로운 교단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서울 홍파동에 김승일 전도사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교회가 있었는데 이러한 세 개의 성결구룹들이 1948년 4월 사직동에 있는 정남수 목사 댁에서 미국의 나사렛 교회에 가입하여 이 땅에 진정한 성결 복음을 전하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고 대한기독교 성교회(聖敎會)의 창립을 선언하였고 그 해 10월에 국제본부 극동담당 감독인 니스 박사가 중
앙위원회의 위임을 받고 내한하여 필동교회에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만나 정식으로 한국 나사렛교회를 인정하여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때의 조직을 보면 이사장에 정남수 목사, 총무에 서재철 목사, 재무에 안형주 목사, 신학교 책임자에 곽재근 목사, 서기에 승학수 목사 등이었다.
그 후에 한국 동란이 일어났고 많은 교회가 소실되거나 파괴되었으며 이 와중에 영천교회 담임목사인 승학수 목사 가족이 폭격으로 화를 입는 불상사가 일어 났다. 정남수 목사는 미국과 카나다의 여러 교회를 순방하면서 한국 교회의 참상을 알리고 많은 구제품과 선교 자금을 모금하여 어려운 교역자들과 교인들을 도왔고 파괴된 교회당을 재건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1954년 5월에 국제본부에서 최초의 미국인 선교사로 오웬스 목사(Donald D. Owens, 한국명(오은수)를 파송하였고 서울 사직동에 건물을 매입하여 교단본부와 선교사 사택으로 사용하면서 1954년 9월 14일에 그 자리에서 23명의 학생으로 한국 나사렛신학원을 개강하고 초대원장에 취임하여 사역자 양성에 들어 갔다. 그것이 오늘의 나사렛대학교의 전신이다.
그리고 교단은 1955년 5월에 영천교회에서 11개의 교회 대표들이 모여 역사적인 창립총회를 개회함으로 한국에 있어서 정식 교단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초대 감독에 박기서 목사, 총무에 조문경 목사, 재무에 김종수 목사가 취임하였다.
현재의 교세는 5개 연회에 250여 개교회 그리고 4만여명의 신도들이 나사렛사람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필리핀, 카자흐스탄, 타이완, 일본, 이태리, 오스트라리아, 중국, 애급에 1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