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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녀의 결혼식에 갔을때...서울 해군본부 성당에서...
나는 살아오면서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나혼자 많이 꿈꾸워 왔지요.
늙어서는 나보다 못한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고...
지난 60년을 뒤돌아보면서~
참 많이도 후회하면서
바보같이 살았던적이 많았습니다.
어릴적, 제가 낯가림을 많이하고
발표력이 없어서 선생님이 물으시면
목소리가 다 기어들어가고
아무런 말도 안하셨는데,
자주 잘 울었습니다.
어릴적에 우리집은
'아이스케키' 공장을 했습니다.
엄마는 그 원료인 팥이나, 우유를 끓이는 일을
혼자서 하시면서~
(나중엔 사촌이모들이 와서 도와줬습니다.)
저를 대청마루에 앉혀서는 큰소리로
만화책을 읽으라고 하십니다.
엄마는 말이 없으시지만,
너무 엄격하셔서
겁많은 제가 잘 울었습니다.
만화가게에서 한참에 10권씩 빌려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라고
호통을 치시면 나는 죽을만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읽었습니다.그러면,
"더 크게 읽어.내가 들리도록~"
하시면 무서워서
덜덜, 떨었습니다.
옆에서 언니들은 만화책을
엄마 몰래 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얼릉 던져주지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
시계를 모를때에
비가 오는날은,
좀 한가하지요.
탁상시계가 요즈음도 있는,
따르릉~ 시끄러운 시계를 돌리면서...
혼나가면서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산수도 구구단을 큰소리로 읽어라고 해서
엄청~ 혼나면서 배웠던 적이....
그런후에, 제가 4학년 올라갈 적에
1963년 5월 15일날~
엄마는 아기를 낳다가,
하혈을 하셔서~ 시골에서 피를 못구해서
그만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동생은 태어나서 본당신부님의 주선으로
특별히 '대구 살트르바오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1년간 키워서 데려왔습니다.
내가 11살때에
장티부스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면서
일년간 학교를 못가고 겨우 살았습니다.
5학년을 다시 공부했지요.
그러니까, 친구들이 다 바뀌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첫딸을 낳았을때,
포항 성모병원에서 제가 하혈을 해서
피를 10대를 맞고서 겨우 살아났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다시는 아이를 낳지말라는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3년후에 작은딸이 태어나면서
똑 같은 현상이 ...
또 하혈을 했습니다.
그땐 개인병원에서 저를 잘 아시는 의사선생님께서
미리 조치를 해주셔서 수혈을 안했습니다.
그 선생님께서도
다시는 아이를 갖지 않는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 후에 작은딸이 유치원 다닐적에
31가지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는 도중에
자전거 타고 길 건너려고 섰는데,
자가용이 와서 나의 자전거를 쳤습니다.
그때에도 죽음 앞에 갔다가,
몇시간만에 깨어나서 겨우겨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돈벌기보다는 봉사나 하자.
사회복지회에 들어서
노력봉사, 재능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첫번째로 경주문화원에서
가르쳐주는 장구를 배워서
같은 성당자매들과 배워
여기저기 양로원, 요양원등에
사물놀이를 봉사다녔지요.
성당교우들이 아니여도 봉사정신이 있는 분들과
같이 다니면서 우리를 필요로 하는곳에
한달에 2~3번씩 다녔습니다.
그리고, 어버이날은
필히 사물놀이로 어르신들을 위해
음식과 농악을 하러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애들 아빠가 일을 잘못해서
재산을 다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퇴직금 2분의 1만 받고서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애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때가1999년 IMF가 터지고 금방였지요.
작은 수퍼를 차려서 거의 다 손해를 봤습니다.
가까이 대형 이마트가 생겼는데,
알아보지도 않고~ 애들아빠의 친구말만 듣고
차려서 거의 다 날렸습니다.
그런후~ 제가 밑바닥부터 일을 시작했지요.
간병일, 파출부, 식당일...
안해본거 없이....다아~~
그런데, 애들낳고 하혈을 할때마다,
얼음으로 24시간 채워서 허리가 시원찮아서
오랜 지병으로 심한 일을 잘 못했습니다.
그런가운데, 봉사활동은 짬짬히 했지요.
그것도 친구 덕분으로...
대구대교구 국악단장인 제 친구가
장구며 국악무용을 그냥 배우게 해주었지요.
그러다가, 제게 신부님 식복사자리를 소개해 줬습니다.
시골 골짜기라서 숙식을 해야 하고
작은 시골본당이라 봉급이 적은데, 갈 수있냐고 했지요.
전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였습니다.
그것도 제게는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그때가 아이들 대학과 고등학교 다닐적여서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갈 때였지요.
그래서 약 4년 간 일하다가,
신부님께서 외국으로 가시는 바람에
저는 일을 그만 두게 되었지요.
일이 없자, 마음이 초조해서 생기는병~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매일 미사를 다녔지만
내 손에 돈이 없으니, 불안한 겁니다.
그만, 방콕에서 맴돌았습니다.
사람 만나기도 싫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습니다.
큰딸은 외국나가서 통역일을 하고,
작은딸은 청주로 취직을 해서
4식구 모두 다 떨어져 살았습니다.
작은딸이 청주에다가,
아파트를 하나 신청했습니다.
마침, 당첨이 되어 연고도 없지만
낯설고 아는이 없는 청주로 이사 왔습니다.
뭐, 사람사는 동네에 살 수 있겠거니하고
잘 적응하리라고 내마음을 다잡고서~
2010년 12월 마지막날에....
이사를 왔습니다.
처음엔 아무도 아는 이 없으니까
대구에서 혼자 있을때와 뭐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아무하고도 말을 안하고도 지내고,
해서 컴푸터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고스톱'과 '포커'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 방구석에 있는건 똑같으니까~
살만 계속 찌고~
겨우 성당에는 주일만 지키고....
딸애가 '엄마, 운동 좀 다녀~' 노래를 합니다.
근데도 나가는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바보같이
딸애에게 '나 돈벌게 일자리 하나 알아봐줘'
둘 다 할 짓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추스려서 일어나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돈이 안되지만, 봉사하러 가야겠다고
딸애에게 차를 일주일에 한번만 달랬습니다.
'성모꽃마을'에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바람도 쓀겸, 네비로 쳐서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대구에 있을적에 '호스피스'교육을 받아서
나중에 봉사를 할려고 심화교육까지 다 받아서
1년간 봉사를 했었습니다.
무조건 가서 봉사하러 왔다고 했더니
간호사선생님이 너무 친절하시어
무슨일을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할께요."
그래서 약 3개월동안 봉사하면서
일자리가 생겨서 여러가지 일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달 2월말까지 일을 했습니다.
일하던 도중에 재작년에 또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약 한달간 병원신세 졌다가,
아마도 머리가 좀은 시원찮나 봅니다.
정신은 말짱한데, ㅎㅎㅎ
레지오단원으로 3년 정도 하다가,
2월달에 협조단원으로 빠지고서
우리구역에 반장을 아무도 안할려고 해서
시원찮은 제가 반장을 1년 넘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의 건강을 챙기면서
내 소일삼아~ 용돈정도 벌면서
운동과 일을 찾아보는 중입니다.
요양보호사 학원을 찾아가서
자격증을 따서 일해 보는게 어떠냐고 해서
고민중입니다....
봉사도 하고 약간의 수입도 되고...
큰 돈은 안되어도 보람되고 즐겁다는
어느 자매님의 권유로
부활절 지나고 해 보려고 준비중입니다.
7월달에 자격시험이 있다고 하네요.
이제는 뇌세포가 자꾸 노화되어 공부하는데
힘들지 않나 싶어서 열심히 공부하려고요~
성당부지에 7평 남짓한 채마밭을 가꾸면서~
소일삼아~ 시간이 허락되면
미사나 열심히 다니고....
뒷산이나 운동하면서~
즐겁게 즐겁게 지내려구요....
실은, 내가 하고 싶은것은
간병일을 해 봤으니까~
내가 건강이 될때까지
봉사나 하고 살았으면 좋으련만,
애들이 아직은 엄마가
엄마의 용돈은 엄마 스스로 벌어서 쓰라고해서
조금만 더 일을 하다가,
보험료와 내가 쓰는 통신비정도는
마련해 놓고~
걱정없을 정도의 약간의 돈을 벌어 놓고 가려구요...ㅎㅎㅎ
죽음 앞에 몇번을 갔다 왔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좀 더 있다가 오라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오늘도 신나게 잘 살고 있습니다.
2014. 4. 7. 새벽에.....
Vincent (Starry, Starry Night)
Don Mclean
첫댓글 사랑스러운 주님이 딸 화이팅!! 합시다
하느님을 믿기에 남편의 잘못이 공동이라~
6억이라는 거금의 빚을 안았습니다.
참, 많이 후회했지만 지나고 봐도 다시 그 상황이 된다면, 또 그렇게 했을겁니다...
영원한 바보이지요...
그동안 고생하셨고 수고하셨읍니다. 주님을 선택하신 그대의 삶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그럴까요?
감사합니다.
제가 잘 선택한거 맞나요?
아멘,.
우리는 주님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는 몸이 임을....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시고 고통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 지고 있으니 참으로 신비입니다.
주님께서 절 버리시지 않으셨으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남은 삶
봉사하며,잘 살도록 주님,
도와주십시오. 아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2코린1,4)
네... 환난을 겪는자들과 함께 위로할 수 있게
그들에게 보내주십시오 .
꽃동네나 아님 황신부님 생태마을이든지
나를 필요로 하는곳이면 주님과 같이
있는 그곳으로 갈수있게 딸을 설득시켜주어
남은생~ 즐겁고 기쁜삶 되게 하여 주소서. 아멘
주님,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들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감사 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봉사란 꼭히 멀리 갈 필요는 없지요.
그래서 전에 하던 곳 '성모꽃마을'로 가서 도와드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