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방씨(南陽房氏)
남양방씨의 시조 방계홍(房季弘)의 선대는 중국사람 방준이다, 방준은 당나라 8학사 중 한 사람으로 신라에 왔다. 방계홍은 방준의 9세손이다. 방준이 남양에 정착하여 예학을 가르치면서 남양을 본관으로 하사받았다. 남양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의 지명이다.
남양방씨의 인물로는 고려 말에 직제학을 지낸 9세손 방사량이 있다. 그는 우왕 3년 문과에 오른다. 공양왕 3년 중랑장으로 있을 때 조정에 올린 시무11조가 고려사에 전해온다.
방사량은 세 아들을 두었다. 맏이 방구행은 세종 2년 문과에 올라 한림정언에 이르렀다. 둘째 방구달은 태종 14년 문과에 올라 부제학에 이르렀다. 셋째 방구성은 생원이 되고 나중에 정산현감을 지냈다. 한편 다른 후손 가운데 방구영은 해주판관을 지냈고, 방구연은 정종 때 교위, 방구형은 헌릉참봉을 지냈다.
남양방씨의 분파는 10세조를 파조로 하여 7개파로 갈라진다. 10세조는 바로 방구행 등 형제로 9세조 방사량의 아들들이다. 방구행의 후손이 한림공파, 방구달의 후손이 제학공파, 방구성의 후손이 정산공파다. 정산공파는 다시 방구성의 현손을 파조로 하여 갈라진다.
또 다른 10세손인 방구영의 후손이 판관공파, 방구연의 후손이 교위공파, 방구형의 후손이 참봉공파, 방옥심의 후손이 학생공파다.
한편 방사량의 셋째 아들 방구성은 일찍이 전북 남원으로 옮겨가 터를 잡았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남원은 남양방씨의 집성촌을 이룬다. 특히 방구성의 셋째 아들 방순문의 후손들은 전라북도 뿐 아니라 전라남도 일원으로 옮겨가 살면서 여러 곳에 뿌리를 내린다.
첫댓글 성웅 이순신의 부인도 방씨던데.....
묵강님의 가문도 훌륭하시군요. 축하드립니다. 그러니까 묵강님은 셋째아들 방순문의 후손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