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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저녁 대형 피트니스 체육관 주차장의 BMW사 대형 SUV 안에서 미모와 건강, 흰 우유같은 피부를 회복한 솔희는 한 젊은 남성과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고 있다.
“누나, 키스해도 되요?”
“............너두 참, 그런거 허락받고 하는 남자가 어딨니? 몰라!”
용기를 얻은 듯한 K는 조심스레 화분을 받치듯 솔희의 턱을 받쳤고 솔희는 살짝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빙 돌아서 솔희 앞으로 오는 것은 굳이 막지 않았다.
두 남녀의 입술이 맞부딛치는데 사내놈은 계속 입술만 오물조물 거릴뿐이었다.
기다리다 못한 솔희가 살짝 입술을 열고 K의 혀끝을 수용했다.
그 녀석은 욕심이 생겼는지 왼손으로 솔희의 오른쪽 젖가슴을 한손으로 잡아 주물럭거리자 반사적으로 솔희는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그녀는 즉시 가슴을 가리던 블라우스와 안의 브래지어를 바로 잡은뒤 살짝 입술에 손을 대었다.
(어휴, 쑥맥~)
“왜요, 누나 기분상했어요?”
“몰라, 그런건 묻는게 아냐. 그리고 방금 전에 했던 약속 다시 한번 말해볼래?”
솔희는 간만의 남자와의 키스를 경험하였지만 이상하게도 별 다른 느낌도 설렘도 없었다.
하지만 여자에게 키스란 쾌락보다는 약속의 의미가 강하기에 솔희는 K와의 키스의 느낌은 별로 비중을 두지 않았다.
“누나와 인생을 함께 하고 싶다고요. 항상 같이 옆에 있어드릴께요. 누나가 제안한 것 다 그대로 명심하고 실천할께요”
“난 한 입으로 두말하는 남자들한테 너무 상처받았어. 너도 그럴지도 몰라”
"나는 자신있어 누나!"
K에게 꽃다발과 카드를 받은 솔희는 K와 함께 차에 올라 그가 키스를 원하는 눈치를 주자 키스의 조건으로 몇가지 다짐을 받았다.
솔희가 엘에이로 내려와 피트니스 코스를 받는데, 몸매와 볼륨이 아름다운 솔희의 자태를 눈여겨보다가 말을 걸어온 K에게 시간을 허락해 주고 몇 번의 식사와 차를 함께 한 적이 있다.
K는 솔희보다 세 살 연하인 31살로서 은행의 론오피서이며 금융권 쪽에서 뼈가 굵어질 남자로서 비젼도 괜챦았다.
외모도 아이돌을 닮은 키가 크고 슬림한 실루엣에 눈썹이 짙은 미남형이었다.
공부와 일과 운동말고는 여자를 모르는 순진한 남성이기도 했다.
물론 솔희가 매달리고 의지할만한 진득함과 듬직함은 연하남의 특성상 바랄수는 없었지만, 덩치크고 나이많은 아들을 키운다는 느낌은 쏠쏠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전처럼 모든걸 다 갖춘 남자는 포기했고, 포기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지 않기로 맘먹을 정도로 솔희는 달라졌다 생각하고 있었다.
“난 누나한테 상처주지 않을거에요”
“그래, 글구 앞으로 나한테 누나라고 부르지 말고 솔희씨라고 불러. 존댓말같은거 하지말고. 누나라고 부르니깐 내가 늙어 보이는 것 같애, 이제부터는 동등한 사이니깐. 알았지?”
그 이야기를 들은 K는 자기의 약식 프로포즈가 성공한 것 같아 표정이 의기양양해진다.
엘에이로 내려온 솔희는 보스톤에서 느꼈던 성인 여자 홀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고독과 불안, 그리고 비슷한 나이 또래의 기혼여성들로부터 받는 알 수 없는 의심과 견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혼을 서둘렀다.
그녀가 건강뿐 아니라 미모와 몸매를 회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것도 그 이유였다.
특히 보스톤에서 에벌린에게 1차구타를 당하고 유치장에서 나온 날부터 부상과 변비와 싸우며 그녀 홀로 모든걸 다해야 했고 누구 하나 그녀를 도와준다던지, 뭘 대신해준다던지, 빈말로라도 위로를 해준다던지 할 사람이 전무하다는데서 몸으로 느낀 바가 많았다.
(제 아무리 잘났고 돈 잘버는 성인 여자일지라도 家長의 不在란게 그런거였지......아줌마들이 ‘내가 남편도 없는줄 알어?’라는 말이 그런 뜻이었어)
솔희는 스튜디오에서 K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꽃병에 넣고 렛슨을 진행하는 도중에도 중간중간에 꽃병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학생 한명을 스튜디오에서 내보내고 다음 학생이 들어올때까지의 시간이 남아 Miss-call로 잡혀 있던 모르는 전화번호로 리턴 콜을 넣어 보았다.
수화기 넘어 들리는 소리는 족히 60살은 들었을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혹시 민솔희라는 분인가요?”
“네, 저인데요?”
“아, 그렇군요. 난 K의 엄마입니다”
난데없이 K의 모친에게서 온 전화라는 것에 솔희는 올 것이 왔다는 직감이 들었다.
“우리 아들이 여자가 생겼다며 카톡 프사를 보여주더라구요. 아름다우셔서 나도 호감이 있었는데.......알다시피 제 아들은 총각입니다. 더군다나 DINK족을 하자고 제안하셨다지요?”
“.................부인하진 않을께요”
“제 아들은 초혼이라 처녀와 맺어져야 해요. 나이도 있으시다는데 우리 아들은 그래도 좋다지만 남자라는건 시간이 지날수록 2세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에요. 요즘 세상에 집안의 대를 잇는다던지 그런건 진부한 말이지만, 아이가 없으면 부부관계에도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K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걸 모르지만 전 미래가 훤히 보이거든요?”
“어머님이 제게 하고 싶은 말씀은 어떤것인지요?”
“나이만큼이나 노련한 여자분같은데 내 아들의 장래를 막지 말아주었으면 해요. 10살때 미국에 와서 공부와 집과 일 밖에는 모르는 순진한 아이에요. 무례가 되는줄 알지만 애미로서 진짜 입장을 말씀드리는겁니다”
(나이만큼이나 노련한 여자라..........닳고 닳은 X이라는걸 그리 표현한거겠지. 나더러 닳고 닳은 여자라고? 당신 아들은 얼마나 잘났길래!)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독백하며 K의 어머니에게 큰 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솔희도 그 K에 대해서 나쁘지 않다라는 입장이었지 그리 사랑한다던지 그런 감정은 없었고, 그간에 서로 쌓인 것도 별로 없었기에 그 어머니와 통화를 마친뒤 솔희에게 매달리던 K에게 갑작스레 차갑게 결별을 통보했다.
그 직후엔 다니던 체육관도 옮겼다.
그녀는 정균과의 5년간에 걸친 결혼생활을 회상해 보았다.
사실 솔희가 정균을 원래부터 치열하게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고 성공가도와 새로운 사랑을 의식하여 그녀의 의사로 이혼한 것이지 아이가 없어서 그리된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솔희가 영구피임시술을 받자 처음엔 충격에 정균이 길길이 뛰었지만, 정균은 그래도 솔희라면 둘만의 생활을 받아들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건 당연했다.
그러기에 제3자에게 들은 아이가 없으면 부부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도 납득할수 없었다.
K와 결별한 직후 솔희는 국내 결정사로 유명한 D사의 미주지사에 가입했다.
하지만 그녀의 매칭 대상들이 하나같이 아이를 둔 나이차 많이 나는 이혼남이나 사별남이라는 것을 알고는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솔희의 나이, 이혼경력, 피임수술이 그녀의 발목이 아니라 허리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미모와 몸매, 학벌을 믿고 결정사에 프로필을 집어 넣었지만 여자의 학벌은 결혼시장에서 그리 중요한게 아니었고, 예체능 경력은 초혼여성인 경우에야 일부 유리한 면이 있는 정도였다.
나이 또한 경쟁력이 없었고 향후 자녀희망에 0이라고 적어 넣은 것도 치명적이었다.
여전히 빼어난 미모로 인해 매니져와 매칭남의 호감은 샀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솔희는 빠꾸되기 일쑤였다.
“솔희 회원님, 남자들은 첫째 나이, 둘째 미모를 봅니다. 나이를 본다는건 출산가능성이죠. 미모를 본다는 것은 2세를 설계하기 위함이고요. 무자녀 이혼남을 원한다지만 무자녀 남성들은 출산을 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두고 홀로된 남자분 밖에는 없어요. 현실을 인정하시면 미모가 되시니 품격있고 능력있고 안정된 중년남성들을 많이 소개 받으실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전 출산 육아경험이 전무해요. 생판 모르는 아이들의 계모가 되라는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할지 모르겠네요”
“재혼하시러 오셨쟎아요. 다 감수하셔야 해요. 님이 출산의 의지가 있다면 무자녀 돌씽남도 가능하겠지만, 능력있는 남자일수록 아이 둘은 낳길 원하거든요? 둘다 나이가 있기 때문에 그것도 빠른 임신과 출산을 원하지요. 그렇지 않으려면 민솔희 회원님은 어플리케이션에 자녀계획 있으시다고 표기하시는건 어떨까요?”
커플매니져가 이야기하는 중년남성들의 나이는 42세 이상의 사별남이나 이혼남을 의미했고 적어도 10살 정도 되는 아이를 키우는 이들이었다.
솔희는 매니져의 끈질긴 강권에 못이겨 한 43세, 9살 연상의 이혼남을 만났다.
중후한 인격과 분위기에 끌린 솔희는 그와 몇차례 만남을 갖고 그 집에 방문했을 때 유독 경계하고 피하다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던 10살된 딸의 눈빛을 잊지 못했다.
“L씨, 제가 방문하기 전에 따님한테 사전에 이야기 안하셨나요?”
“아이한테 반가움을 주기 위해서 말을 안했던거죠”
“아이한테 집에 놀러올 아줌마가 곧 새엄마 될거라고 말했다는건 무슨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요. 우선 L씨와 제가 좀더 서로를 진득히 안다음 아이들과 시간을 가지길 원했는데,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요”
솔희가 극혐하던 아줌마라는 호칭 때문에 실망한건 아니었다.
어딜 가더라도 더 어린 층들에겐 거침없이 아줌마라는 호칭을 들었으니깐 굳이 그런걸로 얼굴을 붉히기엔 지쳐버렸다.
그보다는 새엄마나 계모가 될 자신도 없었거니와 솔희를 아예 아이들의 보모로 들이려는듯한 상대 남성의 마인드에 실망해 버렸다.
그녀가 백보 양보해 만난 L과의 만남도 꽃피우기도 전에 그 남자의 부주의 탓이었는지 솔희는 가차없이 결별을 선언했다.
결국 솔희는 결정사마저도 탈퇴해 버렸다.
솔희가 자신의 임의적 결정으로 강행한 피임시술을 후회해본건 두번째이다.
처음으로는 제이의 결혼식에서 만난 캠퍼스의 첫사랑 Brian의 아이를 보았을 때, 두 번째로는 결정사에 가입했을 때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입증받으면서였다.
결정사 탈퇴 이후 한인들의 배드민턴 동호회에 겸사겸사 가입했다.
하지만 그곳은 커플들이 주류세력이었고 가끔 남편들의 은근한 눈빛과 아내들의 노골적인 견제를 느꼈고, 노총각들의 불필요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들이댐을 당하는 상황을 경험하고는 세 번째 출석 이후 발길을 끊었다.
그녀가 이혼 직후 보스톤의 파티에서 그녀를 대하는 이들의 기류가 묘하게 바뀌었던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미국인사회나 한국인사회나 다를바가 없었다.
엘에이 코리아타운의 가정집을 공동 사무실로 개조한 건물 하나.
그 공동 사무실 1층 제일 뒤쪽에 자리한 사무실 출입문에는 "Pine Tree & Joy Piano Lesson Studio"라는 은색명패가 달려 있다.
방음벽과 강화유리창이 설치되고 업라이트 피아노 두 대와 랩탑이 올려져 있고 악보들이 꽂혀 있는 테이블과 의자 세개가 놓여 있고 실내에 관리가 깨끗히 잘되어 향수냄새까지 풍기는 화장실을 끼고 있는 소박한 스튜디오.
거기서 솔희는 한 한국인 여고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네 실력을 평가한다면 동부지역 컨서바토리는 좀 힘들고 서부지역 음악대학들 어지간한 곳은 가능할 것 같아”
“엄마는 선생님이 나오신 동부의 G컨서바토리 나와서 전업연주자로 유명해지는거 아니면 안된다는데요, 어떡해요?”
“오디션을 받아봐, 그럼 네 실력이 측정되니깐 지원가능한 학교를 가늠할수 있어. 남들이 학교이름만 들으면 와~ 하는 소리들으려고 진학계획 세우지 말어. 남들의 눈 그런거 다 필요없어. 너와 조화로운 환경 속에서 미래를 꿈꿀수 있는 학교를 지원하는게 좋을 것 같아. 조화가 깨지면 행복해지지 않는단다.”
렛슨생은 고개를 푹 떨구고 벌써부터 엄마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실망하는 표정을 짓는다.
엘에이로 귀환한 솔희는 화려한 학벌과 보스톤에서의 연주경력 몇 개를 적절히 포장하여 예전 엘에이에서 결혼생활 때 받은 렛슨비보다 세배를 더 받고 있다.
피아노과 진학을 원하는 전공지망생들만 받았고 솔희의 학벌에 혹하여 자녀의 피아노 렛슨을 맡기려 하는 부모들이 많아 솔희는 상당히 비싼 렛슨비용을 청구한 것이다.
그럼에도 솔희는 자녀의 행복과 능력보다 아이들에게 자기의 허영심을 투사하여 정신적으로 혹사시키는 부모들에 대해 수없이 실망하며 이 일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엄마는 제가 일단 좋은 컨서바리토리에 진학하면 성공의 길이 열린다고 말씀하세요.”
“선생님 모교 나와서 장거리 트럭 드라이버하면서 운행 생활을 유튜브로 중계하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미국남자도 있어. 부모님들 젊었을 때의 영웅이었던 서혜경 선생님, 젊은 층으로 조성진 오빠나 손열음 언니같은 사람들 공통점이 뭔지 아니? 세계적 콩쿨에서 스무살 이전에 뜬 사람들이야. 그 바로 아랫급들은 연주경력 몇 번 쌓은뒤 박사학위 따서 음대교수를 바라보는 길이 있겠지. 그 외 피아니스트들은 대개 존재감없이 살아가거나 전직해. 유명해지려면 지금 유명해졌고 이 자리에서 나랑 피아노 공부하고 있을 이유가 없어”
“그러면 제가 그 아랫급 학교에 가게 된다고 하면 나중에 뭐하나요?”
“네 실력으로 갈수 있는 어지간한 캘리포니아 주립 음대들도 좋은 곳들이야. 비음악인들은 거기만 나와도 와~ 해주거든? 계속해서 말하지만 선생님은 제자들이 나중에 뭘 해도 음악 안에서 행복하게 되길 바래. 학교의 지명도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솔희는 렛슨생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리고 진심으로 그 아이에게 하고싶은 말을 전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그 아이가 솔희의 모교에 갈 실력이 전혀 안되지만 솔희는 다른 각도로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때 학생 라이드를 온 듯한 중년 여인이 스튜디오 문을 두드린다.
솔희는 학생 엄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어머님, 영희의 진로에 대해서는 제가 방금 이야기를 했습니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제게 전화해주세요.”
“네, 그리고 선생님......이거 생신이라 맛난거라도 사드시라고......”
“제 생일이요? 카톡에서 보신 모양이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솔희는 학생 엄마가 전달해준 렛슨비 봉투와 생일 선물조로 준비한 봉투를 거침없이 받으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미국마켓에 들른 솔희는 작지만 싱싱하고 물좋은 연어 한 마리를 꼼꼼하게 고른뒤 탱탱한 레몬 두 개와 파슬리를 집고 잡다한 것들을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주류섹션으로 가서 나파밸리산의 고급스러운 사비뇽 와인을 골랐다.
원래 와인하면 유럽산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솔희지만 이번에 북가주 나파밸리 근방의 친정 농장에서 일하면서 뭔가 느낀바가 있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어지간한 나파밸리 와인이 유럽산보다 나았기 때문이고 솔희의 미각은 이름값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카톡으로 그녀의 생일을 안 학부모가 선물한 현금이랑 솔희의 마켓비용과 얼추 맞았다.
마켓 안에서 오가는 한국인이던 타인종이던 일부 남자들이 그녀를 주의깊게 바라보거나 곁눈질로 훝어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솔희는 그게 불쾌해지기까지 했다.
그녀는 일자바지 정장차림에 아주 가벼운 화장으로 출퇴근을 했지만 그녀의 생얼 미모는 30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오히려 더 빛을 발하고 있었기에 여전히 세간의 관심을 끈다.
그전같으면 솔희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은근히 즐기곤 했지만 언젠가부터 부담스럽고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이제 어둑어둑해지는 넓은 주차장의 청록색 광택에 빛나는 랜드로버의 뒷문을 열고 마트에서 산 물품을 놓은뒤 운전석에 가 앉아 시동버튼을 누르고 시트벨트를 맨다.
솔희의 신형 아이폰과 연동된 차의 대시보드 모니터에는 과거 함께 했던 앙상블 멤버들이 부지런히 생일축하 이모티콘을 보내는 것들이 나타나고 있다.
케이크 박스며 꽃다발, 하지만 손에 잡을수 없는 2D일 뿐이었다.
(쯧쯧, 이런 장난말고 ‘언니, 어디로 몇시까지 나와, 우리가 생파해줄게’ 이 정도는 나와야지, 하여간 니들도 한참 바쁘고 좋을 때 아니겠니? 나이 많은 내가 이해해야지)
솔희가 그녀들의 행동없는 생색을 경멸할수 없었던 것이, 이제 그녀들도 가정을 갖거나 결혼을 염두에 둔 연애에 한참인 이들이 많아 그전처럼 솔희를 위해 한 자리에 모일수가 없었을 것이다.
저녁 노을을 등지고 동쪽의 다운타운을 향해 솔희가 운전하는 고배기량의 영국산 SUV는 힘차게 달려 나간다.
코리아타운을 벗어나자마자 낙후된 곳과 재개발 공사중인 지역을 지나 짧은 터널로 들어가 나오자 초고층 빌딩의 숲의 세계가 펼쳐졌다.
넓은 거실의 호화로운 주방과 키친 아일랜드를 지닌 호화 신축 아파트의 주방 테이블엔 그릴 레몬연어 스테이크가 반쯤 남아 있고 역시 와인도 절반쯤 남아 있다.
그것 외에 아직 먹지 않은 작은 미니 생일 케이크에는 길쭉한 세 개와 얇고 작은 다섯 개의 초가 꽂혀 불을 밝히고 있다.
솔희는 술을 즐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이 마시지는 않았고, 고급 와인 반병이 딱 그녀의 주량이었다.
살짝 취기가 올라오자 솔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좁고 긴 드레스자락을 추스르며 천천히 테라스로 걸어가 블라인더를 개방한다.
이 혼자만의 생일 파티를 위해 솔희는 음식과 와인을 준비했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한뒤 파티용 드레스를 입었고 얼굴에는 정성껏 풀메이크업을 한 상태였다.
그녀는 대형 창문을 통해 반쯤 비치는 더욱 아름다워진 풀메이크업된 그녀의 얼굴을 스스로 즐겼다.
“화장은.........여자의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거지, 남자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건 아니야”
얼굴이 워낙 화장을 잘 받는데다가 메이크업 교육도 받았던 솔희의 화장은 더욱 그녀의 미모를 빛나게 하곤 했다.
하지만 나홀로 파티를 하는 솔희가 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화장한 얼굴을 보아줄 이는 아무도 없다.
다시 돌아온 엘에이에서 렛슨생도, 학부모도, 지나가다 마주치는 갑남을녀들도 솔희의 이 풀메이크업된 얼굴을 아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당신 입술색깔, 꼭 말벡와인같아! 그런 의미에서 집에 가서 같이 말벡와인 한잔할까? 당신 노고도 위로할겸)
(어유! 하여간, 아부는.....이렇게 말해놓고 저더러 집에서 화장하라고 말할려고 했죠?)
(아니야! 무슨 소리야, 난 당신 생얼이던 메이크업이던 둘다 좋아)
(그럼 와인마시면서 시간끌고 그 다음은요? 휴우........저 집에 가면 씻고 바로 푹 잘 생각밖에 없어요. 제 음악이 얼마나 어떻게 훌륭했는지 구체적으로나 이야기해봐여, 어느 구간에서 감동받았는지, 솔희가 원하는 칭찬은 그런거에요, 그게 아닐거면 빨리 운전이나 해요. 저 빨리 가서 쉬고 싶어요)
정균과 결혼생활할 때 연주회를 마치자 정균이 차 안에서 그렇게 솔희의 콘서트 메이크업이 된 얼굴을 미소를 짓고 바라보다 그녀에게 했던 말이었다.
솔희는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며 빨리 집에 가서 쉬자고 보챘었다.
그때의 썰렁하고 퉁명스러웠던 대화와 상황이 그녀의 가슴 속에서 살아나자 솔희는 쓸쓸한 웃음을 짓고 테라스 아래를 의미없이 바라본다.
그녀가 입주해 있는 곳은 신축 아파트의 28층, 언젠가부터 번화하고 호화롭게 변신한 엘에이 다운타운은 여기저기 초고층 호텔과 고급 아파트들이 서로 키자랑을 하며 불빛을 발하고 있었고 아래는 자동차들의 끝없는 불빛이 이어지고, 저 건너편 멀리 고가 하이웨이의 차들의 행렬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솔희는 다시 주방 테이블로 돌아와 털썩 의자에 앉는다.
테이블에 놓여진 작은 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 넓게 펴진 아이섀도우, 그녀의 눈을 더욱 깊게 강조한 아이라이너와 속눈썹 화장과 촘촘한 파운데이션을 나르시스트처럼 바라보며 살짝 쾌감으로 젖어든다.
(이제 이런 화장을 하고 밖에 나갈 일은 남의 결혼식밖에 없고 그나마도 신부보다 튀면 안되니깐 이렇게까지 할순 없겠지, 누군가 이런 화장이 된 얼굴을 보아줄 사람도 없을거고. 그래도 가끔 혼자 집에서 기분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거야)
솔희가 쓸쓸히 동그란 유리잔에 반쯤 남은 와인을 살짝 들이키매, 와인 색상과 그녀가 바른 립스틱의 색상이 완연히 일치하는 진풍경을 발휘한다.
“ 그래, 한번 해봤으면 됐어. 버리면 편안한 것을, 진작 이렇게 결심할 것을, 지금 남자를 다시 만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돈은 나혼자서 충분히 버니깐 됐고, 아플때나 외로울때나 느끼는 감정은 내가 선택한 자유로움에 대한 댓가일 뿐이야, 사고가 날 만한 상황은 최대한 피해다녀야겠지. 섹스도 안해 버릇하니깐 그것대로 살만하고.......연인이 없으니 질투할 일도 없을거고”
당도가 높은 케이크, 솔희는 몸매를 회복하고 관리하기 위해 음식을 극도로 통제해 왔지만 35회 홀로 맞는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이제 휘릭하고 바람을 만들어 반쯤 타서 촛농까지 케이크의 크림을 녹이던 불을 끈다.
솔희는 35회 생일에서 모종의 의식을 치르면서 여생을 독신으로 살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녀의 여자로서의 객관적 상태가 어떻다는 것을 확인하며 멘붕에 빠졌지만 그렇다고 그전처럼 우울증에 빠지진 않을 정도로 멘탈은 어느 정도 단단해져 있다.
그럼에도 여자로서의 가치가 그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은 충격으로 다가오긴 했다.
그래서 예쁜 옷도, 아름다운 풀메이크업도 이젠 솔희에게 무가치한 것으로 다가와 홀로 즐기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솔희는 생일상 설거지를 한뒤 파티용 드레스를 벗고 화장실로 가서 양치질을 했다.
그리고 손상된 입술에 다시 립펜슬을 대고 입술화장을 보강한다.
파티용 드레스를 벗은 그녀는 하프컵 블래지어와 티팬티가 단단하게 히프와 가슴을 지탱하고 있다.
침실 미등을 남겨 놓고 불을 다 끈 솔희는 그 상태에서 슬립을 걸친뒤 화장을 지우지 않고 침대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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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