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를 품고 있는 가야산은 해인사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예부터 ‘조선 8경’ 중 하나로 손꼽힌 명산이다.우두산이라고 불리는 가야산은(1,430m) 경남 합천군과 거창군 성주군에 걸쳐있는 우리나라 10월 단풍을 대표하는 산 중의 하나로 주봉인 상왕봉(1430m)을 중심으로 하여 두리봉(1135m)과 남산(1140m), 단지봉(1008m),의상봉(1046m), 비계산(1126m)등 각기 1000m가 넘는 고봉이 들쭉 날쭉 날카로운 암봉과 암벽으로 병풍을 두른듯 감싸고 있다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유래되었다는 해인사 품에 안고 있어 더욱 유명하고 8만 대장경과 장경각등 국보급 문화재.바람소리,물소리,목탁소리 어느것 하나없이 아름다운 소리로 찾는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가 하면, 함께 어우러진 노송과 그 사이 비단결 같은 시심이 흐르고, 붉게 물든 홍류동 계곡으로 떨어지는 황금빛 물줄기 사이로 푸근한 고향의 향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산세가 웅장하고 그 경치가 썩 빼어나서 예로부터 해동의 십승지로 일컬어졌던 것이다. 적송, 잣나무 같은 늘푸른 나무며 철따라 빛깔을 달리하는 여러 활엽수가 온 산에 울창한가 하면, 기암괴석이 또한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로는 말그대로 맑고 푸른 벽계청수가 쉬임없이 흘러내린다. 특히 해인사 앞자락을 굽이쳐 도는 홍류동 계곡은 우리나라 팔승 가운데 으뜸이라는 그 명성이 무색하지 않게 여느 산에서는 볼 수 없는 멋들어진 계곡 풍경을 철따라 운치있게 펼쳐내고 있다 그렇듯이 빼어난 명산 가야산에 해인사가 터를 잡은 모습을 일러 행주형국이라하니, 이는 곧 큰 바다에 배가 가고 있는 모양이란 뜻이다. 가야산의 이런 지형은 일찍이 신라의 이름난 선비 고운 최치원이 찬탄하여 이른대로, 가야산이 명산 가운데 명당이라는 것을 잘 드러내어 준다. 가야산 등산 루트는 한 바퀴를 돌아 원점에 돌아오는 형태, 일직선으로 올라갔다가 되돌아오는 형태, 말발굽 모양으로 한 지점에서 출발해 목적지에 도달한 뒤 다른 지점에 이르는 형태 등 세 가지 방식이다.한 바퀴 도는 형태는 해인사 입구에서 약수암~지족암~해인사~홍제암~원당암~삼선암을 돌아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크게 힘들지 않지만 트인 전망은 없다. 일직선 루트로는 해인사 왼편 용탑선원을 스쳐 지나 상왕봉에 오른 뒤 되돌아온다. 말굽형은 치인리~해인사~상왕봉~서성재~백운대로 이어진다. 모두 5시간가량 걸리는 긴 코스답게 다양한 경관을 즐길 수 있다
▲ 1코스 : ( 4.7Km 4:30 ) 해인사 입구⇒ 마애불 갈림길⇒마애불 입성⇒ 중봉(봉천대)⇒ 상왕봉 ▲ 2코스 :(12km 4: 50) 신부락⇒ 해인사 ⇒ 용탑선원 ⇒ 능선갈림길 ⇒ 마애불상 ⇒ 해인사 ⇒ 신부락 ▲ 3코스 : (11km 4: 40) 백운동 ⇒ 심원골 ⇒ 서성재 ⇒ 정상 ⇒ 삼거리 ⇒ 마애불상 ⇒ 해인사 ⇒ 신부락 ▲ 4코스 : (10km 4: 20) 백운동⇒ 심원골 ⇒ 서장대⇒ 서성재⇒ 정상 ⇒ 서성재 ⇒ 백운사지⇒ 용기골 ⇒ 백운동 ▲ 대중교통 대구 ⇒ 가야산(해인사) 88올림픽고속도로(광주 방향) ⇒ 해인사IC ⇒ 1084지방도로(야천방면) ⇒ 치인리 거창 - 가야산(해인사) 88올림픽고속도로(대구 방향) ⇒ 해인사IC ⇒ 1084지방도로(야천방향)⇒ 치인리 왜관/성주 - 백운동 경부고속도로 왜관IC ⇒ 33번 국도(성주 방향)⇒ 성주읍 ⇒ 수륜 ⇒ 59번 지방도⇒ 백운동 ▲ 해인사 통도사(불보사찰), 송광사(승보사찰)와 함께 국내 삼보사찰 중의 하나다. 신라 애장왕 때 건립돼 신라말, 고려 때 번창했으며 국보(32호)인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다. 이 밖에 국보 제52호 장경판고 등 수백여점의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산의 보고다. ▲ 합천호 합천댐과 함께 생겨난 합천호는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조화를이루며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가야산 국립공원과 연계한 새로운 호수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합천에서 봉산교까지 이르는 벚꽃길은 드라이브코스로 알려졌으며 호수주변의 낚시터도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합천호는 합천읍에서 17km쯤 서쪽에 위치해 있다.
100대 명산 선정사유
o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12대 명산 또는 8경에 속하는 산으로서 '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특히 '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보 팔만대장경과 해인사가 있는 등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점을 고려하여 선정
o `가야국'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며, `택리지'에서는 가야산의 기암괴봉을 불꽃에 비유하여 석화성(石火星)이라 하였음. 산위에서의 조망이 좋고, 특히 용문폭포와 홍류동 계곡 등이 유명
[한겨울산행] 코스가이드 5선 - 가야산
경남 합천과 경북 성주군에 걸쳐 있는 가야산(伽倻山·1,430m)은 정상부의 모양새가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하다 하여 석화성(石火星)의 절정으로 표현되는 산이다. 특히 덕유산에서 바라볼 때 겹겹을 이루는 산줄기들의 끄트머리에 치솟아 중심을 잡아주는 장관은 잔잔하면서도 기운찬 풍광으로 산사진가들 사이에서 손꼽히고 있다.
멀리서 볼 때 이렇듯 우뚝 솟구친 가야산 정상은 한겨울 설산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몸을 뒤흔들 만큼 강한 바람이 밤낮으로 불어대는 정상에 올라서면 남으로 역시 바위산의 절경을 뽐내는 남산제일봉(南山第一峰·1,010m)이 바로 앞으로 바라보이고, 서로 수도산과 북으로 독용산으로 흰 눈을 인 채 도도히 뻗어나가는 산줄기들은 감동을 일으킬 정도로 웅장하고도 아름답다.
가야산은 예로부터 산이 반이요, 절이 반이라 표현될 만큼 사암이 많고, 고승대덕이 끊임없이 찾아든 산이다. 홍제암, 원당암, 지족암, 백련암 등 여러 암자들이 팔만대장경을 지닌 법보사찰 해인사 주변에 자리 잡고 있고, 남서쪽 단지봉 기슭에는 가야산의 산세에 이끌린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말년을 보낸 고운암이 있다.
무릉교, 칠성대, 홍류동, 음풍뢰 등 가야산 13경과 더불어 제시석(題詩石), 농산정(籠山亭) 등은 최치원이 이름을 지었거나 그와 얽힌 얘기가 전하는 유적들이다. 해인사 집단시설지구가 위치한 치인리 역시 최치원의 이름을 따 ‘致遠里’였던 것이 ‘致仁’으로 바뀌었다 다시 ‘緇仁’으로 변했다 전한다.
가야산 국립공원의 등산로는 단순하다. 치인리에서 해인사를 거쳐 토신골을 타고 석조여래입상 갈림목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백운지구에서 용기골을 타고 백운사지를 거쳐 서성재까지 올라선 다음 칠불봉 갈림목을 거쳐 역시 정상으로 오르는 길 두 가닥이다. 두 가닥을 엮을 경우 대개 해인사 문화재관람료(어른 2,000원)를 내지 않는 백운지구에서 출발해 정상에 올랐다 해인사 일원의 사암을 답사하고 치인리로 내려선다. 치인리로 내려선 다음에는 택시를 이용해 다시 백운지구로 돌아가 주차장 부근에 위치한 가야산국민호텔에서 사우나로 피로를 푸는 산행도 많이 한다.
▲ 법보사찰 해인사 대웅전.
백운지구 주차장에서 용기골 탐방안내소를 지나 백운교 다리를 건너 20분쯤 오르면 보이는 산길 오른쪽 철조망은 경관이 뛰어나 인기를 끌었던 미륵불~동장대~동성재~용기사지를 거쳐 용기골로 이어지는 산길이지만, 통제되고 있다.
갈림목에서 20분쯤 더 오르면 대피소 자리에 이르고, 여기서 30분쯤 더 오르면 백운사터를 거쳐 서성재에 올라선다. 네 갈래 길이 나 있는 서성재에서 정상으로 오르려면 오른쪽 길을 따른다. 다른 방향의 산길은 모두 통제된 상태다.
칠불봉 갈림목 안부까지는 급경사 바위지대로 위험한 구간에는 로프와 철계단이 설치돼 있지만 좁고 가파르므로 조심해야 한다. 힘든 만큼 멋진 풍광을 선사하는 구간도 이 능선이다. 해인사 방면과 남산제일봉 일원뿐 아니라 멀리 성주와 대구 일원까지도 바라보인다. 백운동지구~용기골~서성재~정상 구간은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안부에서 철계단을 따라 칠불봉에 올라 동성봉으로 기운차게 뻗은 바위능선의 절정을 감상한 다음 철계단을 내려서 서쪽으로 나아가면 쇠머리봉이라는 우두봉 정상 아래에 닿는다. ‘상왕봉 0.05km, 칠불봉 0.15km, 백운동 매표소 4.25km’이란 이정표를 지나 바위절벽에 설치된 철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사철 밤낮 할 것 없이 바람이 모질게 몰아치는 우두봉(상왕봉) 정상에 올라선다. 서쪽으로 덕유산, 남쪽으로 지리산까지 잘 바라보일 정도로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해인사로 내려서려면 정상 바위 아래 안부에서 오른쪽 길을 따르도록 한다. 한동안 급경사 바윗길로 내려서야 하는데, 바위면이 널찍해 어둡거나 안개가 끼었을 때는 헤맬 가능성이 있는 구간이다. 조망이 뛰어난 바윗길에 이어 급경사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삼거리에 다다른다(안부에서 약 40분). 여기서 곧장 뻗은 길을 따르면 토신골을 거쳐 용탑선원이 바라뵈는 극락교로 떨어지고, 석조여래입상 길목 표시가 돼 있는 왼쪽 길을 따르면 석조여래입상과 마애불상을 거쳐 극락골로 내려서지만 극락골은 현재 입산금지 구간이다.
석조여래입상 갈림목 이후 해인사까지는 편안한 내리막길로 숲은 점점 더 울창해지고, 깨끗한 물을 흘러내리는 계곡가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르면 곧 해인사로 내려선다. 해인사에서 치인리까지는 승용차가 수시로 지나다녀 얼굴을 찌푸리게 하지만, 도로 옆으로 난 도보탐승로를 따르면 호젓한 하산길을 즐길 수 있다.
치인리에는 여관, 민박업소, 토종음식을 주메뉴로 삼는 식당이 여럿 있다. 백운지구의 가야산국민호텔은 객실이 깨끗하고, 대중목욕탕의 물이 좋기로 이름나 있다. 4인까지 이용이 가능한 객실 이용료는 토요일 85,000원, 평일 68,000원. 한식과 양식당이 있으며, 입욕료는 대인 5,000원. 전화 054-931-3500~1. 홈페이지 주소 가야산호텔.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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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산 좋은 절] 가야산 해인사
홍류동과 최치원, 곧게 굽은 길, 팔만대장경, 그리고 가야산의 불꽃
전설이 된 시인이 있다. 살아서 전설이 됐는지, 죽어서 전설이 됐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다. 내가 아는 건, 해인사에서 전설이 됐다는 것이다.
‘가야산해인사’라는 편액을 단 산문을 들어서자니, 갸우뚱 고개가 흔들린다. 가야산에 비추어도, 해인사에 비추어도, 기둥의 단청이 지나치게 화려하다싶어 흔들린 그 고갯짓은, 옳았다. 산문 뒤에는 ‘홍류문(紅流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그러면 그렇지, 가야산인(伽倻山人)들이 이 정도의 풍류도 잊은 채 무턱대고 화려함만 좇았을 리는 없다.
홍류문은 곧 ‘홍류동(紅流洞)’의 입구다. 전설이 된 시인 최치원은 이곳에서 비로소 세상을 벗어났다. 후인들은 ‘신선’이 됐다고 말한다. 이 때 남긴 이른바 ‘은둔의 시(遁世詩)’는 이렇다.
狂噴疊石吼重灣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미친 듯한 물결 첩첩 바위에 부딪쳐 산을 울리니 사람의 소리는 지척에서도 분간키 어렵네. 끊이지 않는 시비 소리 들릴까 두려워 짐짓 흐르는 물소리로 산을 감싸 놓았네.
▲ 고려대장경판전(국보 제52호). 세계문화유산으로 기림을 받는 세계인의 보물이다.
큰 시비에 단련되지 않고는 이런 시를 남길 수는 없다. 최치원은 12살에 당나라에 유학을 가 18세에 과거에 합격하여 당나라의 관리가 되어 ‘황소의 난’을 겪었다. 이때 그는 ‘토황소격’을 지어 천하에 문명을 떨쳤다. 그가 다시 신라에 돌아온 때는 885년(헌강왕 11), 나이 29세 때였다. 신라는 기울고 있었다. 시무책(時務策)을 지어 정치를 바로잡으려 했다. 진성왕은 그의 개혁안을 받아들였고, 그는 아찬에 올랐다. 하지만 진골 귀족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왕건의 집권을 예견했다. 하지만 고려 정권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홍류동으로 은둔했다. 끊이지 않는 세상의 시비가 신선을 만든 것이다. 역시, 번뇌는 보리(菩提)의 자양분이다.
과연 가야산의 지음(知音)다운 가람
▲ 봉황문에서 일주문으로 향하는 길. 부드러운 곡선이 공간의 깊이를 더한다.
홍류동을 거슬러 올라 해인사로 든다. 이 길은 성큼성큼 걸어야 한다. 종종걸음도 사뿐사뿐도 안 될 일이다. 가야산도 해인사도 아주 ‘센’ 곳이기 때문이다. 전각의 앉음새도, 가야산의 산세도, 절집의 가풍도 세다. 이 모든 것이 가야산의 기운에서 비롯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땅을 끔찍이 사랑했던 한 사람, 이중환은 가야산을 이렇게 말했다.
“경상도에는 석화성(石火星)이 없다. 오직 합천 가야산만이 뾰족한 바위들이 나란히 늘어서서 불꽃이 공중에 솟아오른 듯하고, 공중에 솟아서 극히 높고 빼어나다.”(택리지 복거총론 산수조)
봉황 흉내를 낸 뱁새가 진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본시 흉내라는 건 사람의 전매품이다. 가야산의 기풍을 좇아 성큼성큼 걸어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일주문에 들어선 순간 그것이 공연한 흉내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겠다. 일주문에서 봉황문까지 100미터 남짓한 길은 깊고 그윽하다. 구름다리처럼 부드럽게 휘어 오른다. 물리적 거리보다 훨씬 깊어 보인다. 그 길이 내게 말한다. ‘이래서 너는 하수인 거야. 부드러움을 내장하지 않은 강함은 폭력배의 조무래기들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걸음만 호방하다고 장부가 될 것 같으면 세상에 소인배는 하나도 없을 거야.’
비로소 나는 내 보폭을 찾는다. 봉황문을 지나서 해탈문 계단까지 길이 살짝 틀어져 있다. 해탈문 계단이 주는 수직성이 상당히 누그러진다. 스님들의 누더기 옷 같은 보기 좋은 틈새다. 역시, 해인사는 기운차다. 해탈문을 지나 구광루 앞마당에 몸을 세우면, 훤칠한 전각들이 가야산을 통째로 들어올리고 있다. 과연 가야산의 지음(知音)다운 가람이다.
▲ 1)고려대장경판전의 창살. 위아래의 크기가 다른 창틀은 항온 항습을 유지하게 하는 과학적 보존의 비결을 담고 있다. 2)기와와 진흙을 켜로 쌓은 담장. 산지 가람의 역동성을 느끼게 하는 조형감이 돋보인다. 3)안개가 피어오르는 산자락으로 곧 용이 승천할 것 같다. 자연과 조응하는 우리 건축 고유의 아름다움이다. 4)종각 안의 목어. 늘 깨어 있으라는 의미의 상징물이다.
구광루 마당에서 대적광전으로 오르는 길은 수굿하다. 구광루 좌우에 자그마한 문을 만들어, 어느 쪽으로 오르든 대적광전을 대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해인사의 모든 문은, 되바라진 자세로 부처님과 마주서게 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가는 우뚝한 기운에 질려서 팔만대장경의 이삭 하나 줍지 못하고 돌아서게 될지도 모른다.
해인사의 정점은 팔만대장경이다. 대적광전 뒤, 장경각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날렵하다. 산허리를 최소한으로 허물고 터를 얻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수직성을 최대한 누그러뜨린다. 석축을 접고 물려서 담장을 쌓았고, 장경판전으로 드는 문에는 차례로 ‘팔만대장경’, ‘장경각’, ‘보안당’이라는 편액을 걸어 문의 이미지를 확장시킨다. 자연이 허용한 입지를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인간화시킨 공간 미학이다. ‘팔만장경’이라는 장광설과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知)’라는 전광석화 같은 선(禪)의 기용이 함께 번뜩인다.
흔히 고려대장경의 우수성을 말할 때, 경판고의 온·습도 조절이나 통풍 기능 같은 보존기술의 과학성을 빠뜨리지 않는다. 경판의 완비성과 정확성도 물론이다. 조성 동기의 호국적 성격도 늘 강조된다. 이런 점들이 틀림없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런 것들에 의미를 가두는 것은 고려대장경의 진정한 의미를 박제화 하는 일이다.
고려대장경, 문자 너머의 문자들
▲ 파초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좋은 계절이다. 하늘이 경전을 읽는 소리를 들으며 인간이 할 일은 오직 침묵.
지난 세상, 지금 세상, 다음 세상의 모든 인류가 팔만대장경의 주인이다. 팔만대장경의 위대성은 거기에 있다. 대장경판전(국보 제52호)과 고려대장경판(국보 제32호), 고려각판(국보 제206호)이 나라의 보물이고 세계문화유산이란 사실은 부차적인 것이다.
고려대장경은 대몽항전이라는 극도의 혼란 상황에서 조성됐다. 민중들의 자발적 참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다양한 계층의 재물 보시자와 몸 보시자가 그것을 증명한다. 수준이 다른 각수가 참여하여 점차적으로 수준을 높여간 점도 한 방증이다. 같은 각수가 참가 첫해에는 단 2장을 팠다가 그 다음해에는 수십 장을 판 사실도 자발성의 좋은 예다.
오늘날의 공장 시스템처럼 개인별 목표를 정해뒀다면 판각의 완성도는 들쑥날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단 1장을 판 각수와 수십 장을 판 각수의 결과물이 대등한 수준을 유지하도록 작업량을 통제한 것이다. 만약 조정이나 정권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면 결코 있을 수 없었을 일이다.
고려대장경의 조성이 국사였던 불사였든, 나에게는 별로 중요치 않다. 내가 한없이 부러운 건 당대인들의 삶 속에서 생동한 붓다의 목소리다. 그들에게 붓다의 가르침은 지성의 보고였고 삶의 구체적 길잡이였다. 불교는 생동하는 가르침이었다.
고려대장경판의 가치를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것에서 찾는 일은 민망스럽다. 그 속에 담긴 가르침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식’이 되지 못하는 한, 장경판고는 고려대장경이라는 보물을 보관하는, 그렇지만 누구도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은 꽉 닫힌 창고에 불과하다.
▲ 가야산해인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해인사 산문. 안쪽에는 홍류문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경판전 옆 학사대에 선다. 최치원이 종적을 감추기 전에 꽂은 지팡이가 살아난 것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전나무가 있는 곳이다. 내가 해인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홍제암과 원당암으로 건네주는 외나무다리를 들썩이는 계곡 물소리도 좋고, 차분히 가라앉은 전각들의 뒷모습도 좋다. 삼매에 든 것인지 잠에 빠진 것인지 알 길 없는 선승의 모습 같다.
홍류동, 일주문에서 봉황문으로 향하는 휘어진 길, 절묘한 자리에 앉아서 사물을 보는 최고의 안목을 열어주는 문(門)들, 그리고 고려대장경. 내 마음속에 가야산의 불꽃을 일게 하는 문자 너머의 문자들이다.
가야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해인사에 이르는 약 4Km의 계곡. 계류에 비친 가을 단풍이 물까지 붉게 물들인다 하여 홍류동(紅流洞)이란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이 계곡의 진정한 매력은 단풍에 있는 게 아니다.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 기암괴석에 부딪치는 물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최치원이 세상과 인연을 끊으며, “끊이지 않는 시비 소리 들릴까 두려워 / 짐짓 흐르는 물소리로 산을 감싸 놓았네” 하고 노래한 바로 그 소리다.
해인사 산문 언저리의 농산정(문화재자료 제172호)과 낙화담, 분옥폭포 등 명소를 품에 안고 있다. 농산정 맞은편 바위벼랑에는 최치원 선생의 친필이 암각되어 있다. 합천8경 중 제3경으로 일컫는다.
가야산 (伽倻山)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12대 명산 또는 8경에 속하는 산으로서 '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특히 '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보 팔만대장경과 해인사가 있는 등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점을 고려하여 산림청에서 100대 명산으로 선정 `가야국'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며, `택리지'에서는 가야산의 기암괴봉을 불꽃에 비유하여 석화성(石火星)이라 하였음. 산위에서의 조망이 좋고, 특히 용문폭포와 홍류동 계곡 등이 유명
국립공원 가야산은 조선8경의 하나로 주봉인 상왕봉(1,430m)을 중심으로 톱날 같은 암봉인 두리봉, 남산, 비계산, 북두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마치 병풍을 친 듯 이어져 있다.
가야산은 동서로 줄기를 뻗고 있으며 남북으로 경상북도 성주군과 경상남도 합천군의 경계를 이룬다. 합천 쪽으로 드리운 산 자락은 부드러운 육산을 이루고 성주군 쪽은 가파르고 험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가을 단풍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고, 눈 덮인 가야산 설경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가야산은 오묘하고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매표소에서 해인사까지 이어지는 홍류동계곡 주변에는 소나무뿐만 아니라 활엽수가 우거져 있어 그 아름다움이 해인사와 함께 가야산의 백미로 손꼽힌다.
해인사 초입의 갱맥원에서부터 정상의 우비정까지 19개의 명소가 있다. 가야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홍류동계곡은 계절마다 경관을 달리하여 주위의 천년 노송과 함께 제3경 무릉교로 부터 제17경 학사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절경이 10리 길에 널려있다.
가을의 단풍이 너무 붉어서 계곡의 물이 붉게 보인다 하여 홍류동이라 불리어 웠고 여름에는 금강산의 옥류천을 닮았다 해서 옥류동으로도 불리운다.
이 계곡의 아름다움은 봄이나 가을에 으뜸을 이룬다. 그밖에도 가야산에는 무릉교, 홍필암,음풍뢰, 공재암, 광풍뢰, 제월담, 낙화담, 첩석대 등의 명소가 있다.
가야산 남쪽자락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14개의 암자와 75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특히 해인사는 국내 3보사찰중 법보사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3보 사찰중 하나인 가야산 해인사는 불교의 성지이다. 조선시대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옮겨온 후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법보종찰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가야산 능선은 곰취, 더덕, 잔대, 두릅, 미나리 등 많은 종류의 산나물 산지로 봄철의 산나물산행으로도 인기 있다. 해인사 입구에서 주민들이 직접 채취한 산나물을 판다.
현대에 들어와서 가야산은 백련암에서 수도했던 성철스님으로 말미암아 더욱 유명하게 됐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는 홍류동계곡의 맑은 물과 더불어 가야산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항상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산행길잡이
산행기점은 해인사가 있는 신부락 쪽에 3개, 경북 성주군 수륜면 쪽에 2개이다. 대표적인 코스는 해인사에서 용탑선원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이다.
신부락 집단시설지구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해인사와 용탑선원을 거쳐 1시간30분쯤 오른다. 소의 잔등 같은 밋밋한 정상 바로 밑의 능선에서 40분쯤 오르면 정상이다.
가야산 정상부에는 우비정이라는 샘이 있다. 하산은 능선 갈림길까지 내려선 후 마애불입상을 거쳐 해인사로 한다.
해인사 쪽으로 난 등산로가 봄, 가을에 좋으며 수륜면 쪽은 겨울에 좋다. 가야산 북쪽의 등산로는 계곡의 앙상한 뼈대와 얼어붙은 골짜기 등으로 겨울산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자료제공,가야산원경,허의준
위 치 : 경남 합천군 가야면 ,경남 거창군 가조면, 경북 성주군 수륜면
홈페이지 : www.npa.or.kr/kaya 관 리 청 :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관리사무소 (055-932-7810)
홍류동 매표소 (055-934-3140)
청량동 매표소 (055-932-1116)
개 요 : 예로부터 조선 팔경의 하나로 손꼽혀 온 가야산은 높이 1,430m의 우두봉(상왕봉)이 최고 봉
우리로 1972년 10월 13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에 있는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
나인 해인사는 법보종찰로도 유명하다.
대장경판(국보제32호)과 1995년12월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장경판전(국보
제 52호)등 각종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어 더욱 유명하다. 특히 산 어귀에서 해인사에 이르
는 4 km의 홍류동 계곡은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가을단풍이 계곡에 비치어 물이 붉게 보인다
하여 홍류동이라 한다.
또한 가야면 황산리 홍류동 남쪽의 남산제일봉(1,010m)아래에 있는 청량사는 삼국사기에 최
치원이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이다. 절 뒤의 남산 제일봉은 천개의 불상이
능선을 뒤덮고 있는 듯 하다 하여 불가에서는 천불산이라 부르고 있다. 천불산은 당일 등산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관람최적시기 : 4~11월
- 1일 최대 수용능력 : 1만 5천명
- 1일 적정 수용능력 : 1만~1만2천명
- 관람소요시간 : 3~4 시간/ 1박2일
산불 방지 기간 중 개방구간
- 춘계 산불방지기간: 3월 1일 ~ 4월 30일(매년)
- 추계 산불방지기간: 11월 15일 ~ 12월 15일(매년)
개방 구간
- 청량동매표소 -> 남산제일봉
- 해인사관광호텔 -> 남산제일봉
- 백운동매표소 -> 서성재 -> 상황봉
- 해인사 -> 토신골 -> 상황봉
※ 현지 여건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이용시설 : 사무소
가야산사무소 165.00㎡ 055-932-7810
매표소
홍 류 동 14.04㎡ 055-934-3140
청 량 동 91 21㎡ 055-932-1116
야 영 장
치 인(경남) 15,000㎡
백 운 동(경북)11,340㎡
주 차 장
치인대형 4,851㎡
치인허득 1,200㎡
이용안내 : 문화재관람료
어 른 학생,청소년,군경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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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인 2,000원 1,000원 700원
단 체 1,800원 800원 500원
공원시설이용료
구분 기준 사용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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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텐트 3인 이하 3,000원
야영장 중형텐트 4인 이상 10인 미만 4,500원
(치인, 백운동) 대형텐트 10인 이상 6,000원
주차이용료
구 분 사용료(당일) 사용료(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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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륜차 900원 1,800원
영업용 승용차 600원 1,200원
비영업용승용차 4,000원(경차 50% 할인) 8,000원
마이크로버스 4,500원 9,000원
대형버스 6,000원 12,000원
등산코스 : 1코스 토신골 코스
해인사 ⇒ 토신골 ⇒ 가야산정상 4.4㎞ 2시간 30분 소요
2코스 백운동 코스
백운동 매표소 ⇒ 서성재 ⇒ 가야산정상 4.3㎞ 2시간 30분 소요
3코스 남산제일봉 코스
청량동매표소 ⇒ 남산제일봉 2.3㎞ 1시간 30분
해인사관광호텔 ⇒ 남산제일봉 2.7㎞ 1시간 30분
- 홍제암(4km 1시간 50분) - 두리봉(4km 1시간 30분) - 정상(2km 45분) -
- 남릉안부(약 4km 1시간 30분) - 해인사(2km 30분) - 신부락
교통안내 : [항공편]
서울 ⇒ 대구 296마일 약30분
[열차편]
서울 ⇒ 대구 327km 약 3시간 30분
부산 ⇒ 대구 117.4km 약 1시간 30분
[버스편]
서울 ⇒ 대구 297km 약 3시간 50분
서울 ⇒ 고령 329km 약 4시간
부산 ⇒ 대구 135.5km 약 1시간 50분
대구 ⇒ 가야산(치인리) 약 1시간 30분 해인사지구
진주 ⇒ 가야산(치인리) 약 2시간 20분 해인사지구
※ 문의 대구서부정류장(053-656-2824-5) 또는 해인사터미널(055-932-7362)
[자동차]
1) 대구 ⇒ 서대구(성서,화원)I.C ⇒ 88고속도로 ⇒ 해인사I.C ⇒ 1084번 지방도 해인사 방
면 우회전 ⇒ 7.2km 진행후 야천리에서 59호국도와 만나 좌회전 ⇒ 7.1km 직진 ⇒해인사
2) 서울 ⇒ 경부고속도로 ⇒ 김천 I.C ⇒ 59호 국도 이용 ⇒ 성주댐에서 수륜면까지는 33번
국도병합 구간 ⇒ 수륜면에서 59호 국도로 우회전 ⇒ 8.2km ⇒ 백운동 ⇒ 5.8km ⇒ 야
천리에서 우회전해 59호 국도 ⇒ 7.1km ⇒ 해인사
3) 부산, 창원 ⇒ 구마고속도로 ⇒ 88고속도로 ⇒ 해인사IC ⇒ 야로 ⇒ 해인사(가야산)
현지교통 : 1) 합천 ⇒ 해인사 07:00-19:10 중 4회 운행 1시간 소요
2) 성주 ⇒ 백운동 11:50,16:00 2회 운행 40분 소요
3) 대구서부 ⇒ 해인사 06:30-20:00 중 15분간격 운행 90분 소요
4) 대구서부 ⇒ 백운동 07:00,16:55 3회 운행 90분 소요
5) 진주 ⇒ 해인사 09:20-17:50 중 3회 운행 2시간30분 소요
현지숙박 : 구분/업소명 전화번호 소 재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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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관광호텔 055-933-2000 국립공원내
은성장여관 055-932-5599 〃
진주장여관 055-932-7216 〃
문화장여관 055-932-7237 〃
향원장여관 055-932-7575 〃
88장여관 055-932-7377 〃
가야장여관 055-932-7220 〃
대웅장여관 055-933-1070 〃
주요문화재 : 문화재명 비고 위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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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판 국보 제32호 해인사 내
장경판전 국보 제52호 해인사 내
해인사고려각판 국보 제206호 해인사 내
치인리 마애불 입상 보물 제222호 가야산 등산로
반야사원경왕사비 보물 제128호 해인사 내
청량사 석등 보물 제253호 청량사 내
해인사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264호 해인사 내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제265호 청량사 내
청량사 3층석탑 보물 제266호 청량사 내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518호 원당암 내
고려각판 보물 제734호 해인사 내
해인사 목조희랑대사상 보물 제999호 해인사 내
해인사 길상탑 보물 제1242호 해인사 내
해인사대적광전동조 보물 제1253호 해인사 내
영산회산도 보물 제1273호 해인사 내
해인사홍제암 보물 제1300호 홍제암 내
사명대사석장비 및 부도 보물 제1301호 홍제암 내
대적광전비로자나삼존불 지방유형문화재 제38호 해인사
법주사지 3층석탑 지방유형문화재 제86호 백운동
당간지주 지방유형문화재 제87호 백운동
법보전비로자나 좌상 지방유형문화재 제141호 해인사
해인사 3층석탑 지방유형문화재 제254호 해인사
해인사석등 지방유형문화재 제255호 해인사
해인사대적광전 지방유형문화재 제256호 해인사
문의안내 : 합천군청 문화공보실 055-930-3176, 933-2181
성주군청 공보새마을과 054-930-6063
해인사 055-934-3000
가야산국립공원사무소 055-932-7810
주변관광지 : 남산제일봉(7km), 합천호(40km), 홍류동 계곡
황매산 군립공원(60km), 옥전고분군(40km), 해인사
특 산 물 : 한과, 토종돼지, 한우, 팔만대장경 모조경판
도자기 - 유신도자기(932-7982), 화훼(가야농협(055-932-7796)
정보제공자 : 678-890 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123-1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관리사무소
(055-932-7810 / 팩스 055-931-0070)
가야산 소개
가야산 소개
가야산은 성주의 남서쪽 경계지역에 있는 산으로 경상남도 합천군, 거창군, 경상북도 성주군에 걸쳐있는 명산이다. 가야산은 19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주봉인 칠불봉 (1,433m)과 우두봉, 남산, 단지봉, 남산제1봉, 매화산 등 1,000m내외의 연봉과 능선이 둘러 있다. 예로부터 "조선팔경"의 하나로 알려진 가야산은 산세가 변화무쌍하게 펼쳐진다.
수륜면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순환도로를 따라가면 검붉은 기암절벽이 하늘을 찌르는 장쾌한 광경이 펼쳐진다. 이 일대 에는 해인사 만큼 유명한 절은 없지만 법수사와 심원사 폐사지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계곡, 폭포를 끼고 이어지는 용기골과 심원골의 이색적인 등산로 코스가 있다. 용기골은 웅장하고 남성적인 가야산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으며, 하늘 바위 아래 미륵부처님이 오는 길을 굽어 살피고 있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맑은 계곡도 등산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다. 심원골에서 서성재를 거쳐 용기골로 내려오는 등산로는 이색적인 볼거리들이 널려있다. 딸배나무, 고로쇠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산다람쥐, 산토끼 등이 산 여기저기에서 뛰놀고 있어, 자연학습장으로도 손색이 없어, 가족동반 등산로로 더할 나위없이 좋은 곳이다. 특히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가을 단풍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하고, 눈 덮인 가야산 설경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연 락 처 - 관 리 :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사무소 055)932-7830 - 관광안내 : 합천군청 관광개발사업단 055)930-3755,6
조선8경의 하나로 주봉인 상왕봉(1,430m)을 중심으로 톱날 같은 암봉인 두리봉, 남산, 비계산, 북두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마치 병풍을 친듯 이어져 있으며 남북으로 경상북도 성주군과 경상남도 합천군의 경계를 이룬다. 합천 쪽으로 드리운 산자락은 부드러운 육산을 이루고 성주군 쪽은 가파르고 험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기암괴석과 어울어진 가을 단풍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하고, 눈 덮인 가야산 설경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가야산은 오묘하고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매표소에서 해인사까지 이어지는 홍류동계곡 주변에는 소나무뿐만 아니라 활엽수가 우거져 있어 그 아름다움이 해인사와 함께 가야산의 백미로 손꼽힌다. 해인사 초입의 갱맥원에서부터 정상의 우비정까지 19개의 명소가 있다. 가야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홍류동계곡은 계절마다 경관을 달리하여 주위의 천년 노송과 함께 제3경 무릉교로 부터 제17경 학사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절경이 10리 길에 널려있다. 가을의 단풍이 너무 붉어서 계곡의 물이 붉게 보인다 하여 홍류동이라 불리웠고 여름에는 금강산의 옥류천을 닮았다 해서 옥류동으로도 불리운다. 이 계곡의 아름다움은 봄이나 가을에 으뜸을 이룬다. 그밖에도 가야산에는 무릉교, 홍필암, 음풍뢰, 공재암, 광풍뢰, 제월담, 낙화담, 첩석대 등의 명소가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 가야산은 백련암에서 수도했던 성철스님으로 말미암아 더욱 유명하게 됐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는 홍류동계곡의 맑은 물과 더불어 가야산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항상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가야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불교의 불, 법, 승 3보 가운데 법보사찰이다.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법보종찰인 해인사는 우리나라 3보 사찰 중 하나이다. 삼보사찰이란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娑)를 봉안한 불보(佛寶)사찰,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法)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法寶) 사찰, 송광사는 보조 국사(普照國師)이래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했기 때문에 승보(僧寶)사찰로 삼보사찰이라 한다.
특히 해인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자 우리 민족의 믿음의 총화인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로서 한국인의 정신적인 귀의처요, 이 땅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 되어 왔다.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그 도도한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기치 아래, 이른 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해인사입구까지 이르는 4km 계곡으로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서 흐르는 물에 붉게 투영되어 보인다 하여 홍류동 계곡이라 한다. 주위의 송림사이로 흐르는 물이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소리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귀를 먹게 했다하며, 선생이 갓과 신만 남겨두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을 말해주듯 농산정과 시구를 새겨놓은 큰 바위가 있다. 홍류동에는 주요문화재 자료인 농산정과 낙화담, 분옥폭포등 19명소가 있으며 특히 농산정 맞은편에는 암각된 최치원 선생의 친필을 볼수 있어 더욱 유명하다. 합천 8경중 제 3경이다.
가야산 국립공원에 속하는 경남 합천군 가야면 매화산은 가야산에 버금가는 다양한 산세를 지니고 있다. 흡사 금강산 축소판과 같은 산세에 날카로운 바위능선이 있는가 하면 울창한 상록수림이 녹색과 붉은색의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또한 천개의 불상이 능선을 뒤덮고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불가에서는 일명 천불산으로 부르며, 소나무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다.
남산 제일봉(1,010m)은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겨울이면 소나무 숲과 어울린 설경이 가히 천하 절경이다. 동서로 길게 이어진 능선을 이루고 있는 기암괴석들이 마치 매화꽃이 만개한것 같다하여 속가에서는 매화산으로 또한 불가에서는 천개 불상이 능선을 뒤덮고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천불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합천 8경 중의 제4경이다.
연 락 처 - 관 리 : 합천군청 문화공보과 055) 930-3176 - 관광안내 : 합천군청 관광개발사업단 055) 930-3755,6
합천 8경중 제5경인 함벽루는 고려 충숙왕 8년(서기 1321년)에 합주 지군 김모(金某)가 창건하였으며, 수차에 걸쳐 중건하였다. 취적봉 기슭에 위치하여 황강 정양호를 바라보는 수려한 풍경으로 많은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즐긴 장소로,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우암 송시열 등의 글이 누각 내부 현판으로 걸려 있고, 뒤 암벽에 각자한 "함벽루"는 송시열의 글씨이다. 함벽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 2층 누각, 5량구조, 팔작지붕 목조와 가로 누각처마의 물이 황강에 떨어지는 배치로 더욱 유명하다.
용주면 황계리에 있어, 구장산 계류가 풍광명미하고, 주변의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험준하다. 경치 또한 절경이라, 20여미터 높이 절벽위에서 떨어지는 폭음은 뇌명과 같고, 수량의 다과는 다소 다르나 마를때가 없어 한 여름에도 더위를 익히 잊게한다. 1단 폭포 밑소는 명주실 한꾸리가 다들어 가도 닿지 않을 정도로 깊다하여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옛 선비들이 승경에 도취하여, 저 유명한 중국의 여산폭포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상도에는 바위로 된 산봉우리가 불꽃처럼 솟아있는 형태의 산이 없다. 오직 합천의 가야산만이 바위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져 마치 불꽃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듯하여 지극히 높고 수려하다” 라고 하였다. 명산에는 풍수 지리적으로 기가 세어 명당에 유명한 사찰이 있다고 한다. 삼라만상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에 산사로 가는 길은 안개와 만나는 행복한 들판의 어울림이 있어 아름답다.
가야산에 안긴 해인사… 약수암 국일암 등 15개 암자 차례로 반기고
일주문·봉황문·해탈문 지나니 국내 최초·최고 비로자나 불상 미소
매화산 중턱 청량사엔 신라말기 석조여래좌상·삼층석탑이 그대로
[해인사 가는 길] 해인사의 답사는 가야산의 암봉이 겹겹으로 보이는 야로면에서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는 은행 나뭇잎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된다. 절은 계곡이 있어 윤기가 돌고 계곡은 절이 있어 빛난다. 홍류동 십리 계곡으로 들어서면 울창한 아름드리 소나무 숲에 매료된다. 그런데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우리나라 소나무가 재선충에 시달리고 있어 멸종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소식이 들려온다. 주위의 송림 사이로 흐르는 물이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소리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귀를 먹게 했다 하며. 선생이 갓과 신만 남겨두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을 말해주듯 농산정과 시구를 새겨놓은 큰 바위가 있다.
계곡 중간 지점에 만들어 놓은 현대식 석불과 석탑은 홍류동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계곡을 거슬러 해인사로 오르는 길은 처음에는 필시 오솔길이었을 것이나. 자동차 도로를 만들면서 아스팔트길로 만들어 걸어가는 사람들의 오솔길은 아예 없애 버렸다. 그러나 주차장과 매표소 부근에서 해인사 경내로 이어지는 도로는 보행자와 자동차를 분리하여 걸어가는 사람들이 풋풋한 산죽 향기와 정자에서 쉬어 가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배려한 해인사 스님들의 넉넉한 마음이 묻어난다.
[해인사] 세계문화유산 및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산재한 해인사의 유명세는 쓸 말이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해인사를 품고 있는 가야산 산내 암자는 15개가 있는데. 암자를 찾아가는 길이야말로 큰절에서 만나는 번잡함이 없어 고즈넉한 아름다움으로 답사를 할 수 있다.(사진 : 해인사 일주문)
보일 듯 말 듯 돌아가는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약수암. 국일암. 지족암. 희랑대. 백련암 등이 손짓을 한다. 일주문 앞을 지나쳐서 석종형 모양에 홍제교라고 써놓은 다리를 건너면 유서 깊은 홍제암이다. 홍제암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이곳에 은거하던 사명대사가 광해군 2년에 속세 나이 예순일곱으로 입적하였는데. 광해군은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여 자통홍제존자(慈統弘濟尊者)라는 익호를 내리고 이곳에 스님의 비를 세웠다. 그 뒤로부터 스님의 익호를 따라 이 암자를 홍제암이라 하였고. 뒤편 언덕배기에는 평범하면서 명문이 없는 사명대사의 석종형 부도가 있다.
발걸음을 옮겨 해인사 본사로 향했다. 일주문 입구에는 예전에는 연못이 있어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무지개를 그리곤 했는데 지금은 없어져 버려 아쉽다. 해인사 일주문의 정면에 걸려있는 伽倻山海印寺(가야산해인사)의 편액은 일제 강점기에 글씨로 꽤나 이름을 날렸던 근대기의 서예가였던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이 쓴 것이다.
일주문을 지나 쭉 뻗은 전나무가 도열하듯이 서있는 흙 길을 잠시 걸으면 두 번째 문인 봉황문이다. 이 문은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어 천왕문이라고도 불린다. 봉황문을 나서면 제3문인 해탈문이다. 일반 사찰의 불이문에 해당하는 곳으로 완전한 불법의 세계는 주·객. 세간과 출세간. 선과 악. 옳고 그름. 나고 죽음 등 대립하는 상대적인 것들을 초탈한 불이법문의 세계로 나아감을 뜻한다.
지난 6월 법보전에 있는 쌍둥이 비로자나 불상의 개금불사를 위해 복장유물을 개봉하였다. 확인해 본 결과 9세기 통일신라 목조불상으로 서기 883년 제작된 국내 최초. 최고 비로자나불상이다. 보경당에서는 내달 8일까지 100일 친견 대법회가 열리고 있어 옻칠을 한 비로자나 불상의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볼 수 있다.
종각에서는 젊은 스님이 웅장한 법고와 범종을 쳐서 사시(중식)를 알리고 있었다. 절 집에서 식사를 해보는 것도 일반인에게는 특별한 체험이다. 쌀밥과 미역국. 호박나물. 콩나물. 총각김치로 차려놓은 식사는 정갈하고 담백하다. 스님 50인분과 일반신도 100명분의 식사를 준비한다는 해인사의 공양간 출입문에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출입을 금지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돌계단을 따라 대적광전을 뒤로 하고 고려 팔만대장경이 보존되고 있는 장경판전으로 갔다. 관리를 맡고 있는 분에게 화재 예방에 대한 시설을 물어보니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팔만대장경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다. 6·25당시 폭격으로 한 줌의 재로 사라질 뻔했던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두 군인 장지량 중령과 김영환 대령이 있었다. 당시의 상황으로는 어려운 폭격 명령을 거부하고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두 분의 이름이 팔만대장경과 함께 우리 모두에게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한다.
[청량사] 해인사를 나와 홍류동 계곡을 벗어나서 가야면 황산2구에서 등산로를 따라 오리쯤 가면 매화산 중턱에 청량사가 있다. 해가 중천에 떠 점심시간을 넘겼는데도 비지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 등산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를 타고 가는 내 자신이 송구스러웠다.
신라 말기 옛 절의 자취는 찾아보기 어렵고 여러 해 불사를 하여 깨끗함이 살아있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웅전에는 손 모양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조여래좌상이 완전한 모습으로 있고. 앞마당에 있는 삼층석탑과 석등이 엄연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석등 옆 요사채 마당에 있는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홍시를 대나무 장대로 따먹어도 스님은 온화한 미소만 보낸다. 지금은 아이들 군것질거리도 안 되는 홍시를 들고 먼 비슬산이 가깝게 다가오는 툭 트인 풍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답답한 마음까지 툭 트여지는 것 같다.
[월광사터 동서삼층석탑] 청량사에서 내려서면 야로면 월광리. 대가야의 마지막 왕 또는 태자로 전해지는 월광태자가 신라에 저항하여 싸우다 전사하였는데. 최후의 싸움터가 지금의 월광사 터라고 전해온다. 쌍탑 후면에 월광태자와는 동떨어진 분위기의 절집이 대신 자리하고 있고. 옆에는 작자의 이름이 없는 ‘월광사지’ 라는 제목의 ‘아득한 풍경 소리 어느 시절 무너지고 태자가 놀던 달빛 쌍탑 위에 물이 들어 모듬내 맑은 물줄기 새 아침을 열었네’ 라고 시가 돌판에 새겨져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었다. 쌍탑 사이에 있는 무덤은 명당이라고 조상을 모셨을까? 월광사지 쌍탑을 찾아와서 바라보는 사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합천 박물관] 답사 길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늘 행복한 여행이다. 굽이굽이 돌아드는 산길 100리를 한걸음에 달려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있는 합천박물관으로 답사 길을 재촉했다. 우리 답사회 제100차 기행 때 합천고등학교에서 시청각실을 기꺼이 빌려주어 ‘불상의 변천’에 대하여 강의를 해주었던 조원영(42) 학예사가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합천 답사의 첫걸음은 합천의 가야 왕국 다라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합천박물관을 찾아보아야 한다. 박물관 뒤쪽에 있는 옥전고분군과 인연이 깊은 류영기(66) 문화유산해설사가 있어 합천 길의 즐거움은 배가되었다.
첫댓글 가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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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감사합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